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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라이의 나라
이케가미 에이코 지음, 남명수 옮김 / 지식노마드 / 2008년 7월
평점 :
품절
사무라이의 나라
조선이라는 나라를 지탱해온 가장 큰 힘은 바로 선비라는 사대부의 존재이다. 500여년이라는 역사를 가진 조선은 이들 선비의 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모든 정책이나 정치이념에서 비록 절대군주의 나라였지만 선비들의 힘은 막강했다. 군주의 교체까지도 감행했던 선비들은 조선의 기둥이었던 것이다. 그럼 조선과 지척에 있던 일본은 어떠했는가? 조선에 선비가 있었다면 일본에는 그에 사응하는 사무라이가 있었다. 비록 그 형태는 상이하지만 두집단의 정치적배경이나 힘이 동일시 된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것이다. 그리고 사무라이라는 계급의 출현은 조선의 선비보다 그 연대를 앞서 있다. 대략 서기 9세기에서 10세기에 무력을 소유한 형태의 집단이 출현하면서 사무라이라는 신흥계급이 탄생하게 된다.
이 책은 사무라이의 출현에서 부터 성장 그리고 몰락에 이르는 거대한 역사를 소개하면서 단순히 사무라이라는 계급의 성망흥쇠의 기록이 아닌 사무라이이 계급이 갖고 있는 문화적인 특성을 역사적 고찰보다는 사회문확적고찰 측면에서 다루고 있다. 그래서 내용 또한 광범위하고 내용의 깊이 상당하다.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사무라이하면 히데요시나 도쿠가와등의 쇼군을 대표하여 칼을 차고 인민을 호령하는 무사계급정도로 알고 있는게 현실이다. 사무라이계급의 공식적인 해체는 메이지 유신(1868년)이후 그 특권이 공식적으로 폐지되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현대의 일본의 아직도 사무라이정신이라는 무사도에 대해서 국민들 의식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것 또한 사실이다. 마치 선비정신이 아직도 대한민국국민들의 정서에 남아있듯이 말이다.
그러면에서 볼때 사무라이라는 계급에 대한 전반적인 인식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래야 지금의 일본의 정신을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사무라이시대를 크게 나누면 1190년-1333년의 최초의 바쿠후시대인 가마쿠라시대, 15세기-16세기의 센고쿠다이묘의 전국시대, 그리고 도쿠가와막부의 시대로 나눌 수 있다.
우선 가마쿠라시대를 보면 사무라이라는 계급이 주도한 일본최초의 준 중앙정부를 개창한 시대였다. 천황을 비롯한 극히 일부의 귀족들이 지배한던 시대를 무사계급의 출현과 동시에 사무라이 집단이 그 역활을 대신해 나가는 시대이다. 물론 일방적으로 사무라이집단이 집권을 했던 시대는 아니였다. 단지 군사전문가로서의 사무라이가 기존의 귀족계급을 제패하는 과정이었다. 또한 사무라이 내부적으로도 중앙집권적인 형태가 아닌 일개 이에(家)를 중심으로 합종연횡한 상당히 개인적인 성격이 강했던 시기였다. 그래서 언제든지 분열될 수 있는 소지를 가지고 있는 그런 조직체였던 것이다. 그 만큼 쇼군을 위시한 이에의 수장에 대한 정치적인 자율성 또한 상당하였고 이에에 소속된 무사들은 쇼균이 아닌 이에의 가신으로서 역활을 할 뿐이었다. 군신간의 관계 또한 이에의 영지를 적극인정해 주는 일종의 장원제같은 제도가 도입되었다. 이에간의 군사적인 특징도 개벌적인 성격이 강한 탓에 1:1대결과 같은 사적군대의 특징이 아직도 남아 있었다.
가마쿠라 바쿠후의 붕괴이후 지방에 근거를 둔 대이에라 할 수 있는 센고쿠다이묘의 등장으로 인해 일본은 절대강자가 없는 전국시대로 접어든다. 가마쿠라 시대에는 그래도 귀족들의 입김이 살아있었지만 전국시대에는 그야말로 명목상 천황만 존재할 뿐 귀족들은 완전히 쇠락하는 시대가 되고 일단이 농민들 또한 자력구제의 방침으로 무장을 하는 그야말로 일본 전국은 무장화의 시대로 칼만이 생명을 담보하는 시대로 접어든다. 전국시대를 거치면서 사무라이집단도 많은 변화를 겪게 된다. 다이묘의 영역안에 있는 이에경우 기존의 자율성이 상당히 감소하게 되고 영지인 장원제도 많은 제약이 따르는 간다카로 바뀌게 된다. 또한 군사적인 측면에서도 일개인의 특출한 무공이 아닌 군대라면 전체주의적인 요소가 가미되기 시작하면서 집단화된 구조로 전환하게 된다. 특히 이시기에는 다이묘들간의 연합등을 통해서 서로 견재의 역활을 했다.
이런 전국시대를 거쳐 히데요시가 잠시 다이묘를 통합하는 계기를 만들었으나 그 기반이 약했던 관계로 와해된다. 사실상 전국시대를 통일한 절대강자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에 와서 그 종지부를 찍게된다. 이시기부터 일본은 도쿠가와막부의 시대를 열어가게 된다. 기본의 다이묘를 제압하고 전국을 통일한 도쿠가와는 누구보다 사무라이의 속성을 제대로 인식한 이였다. 그래서 그가 조치한 첫번째 개혁이 바로 영지의 사유화를 철저히 배척했던 것이다. 일종의 신봉건제 국가의 형태를 주창했던 것이다. 결국 이 시대에 와서 사무라이라는 계급이 절대강자의 위치에 오르게 된다. 전국시대의 무장화 되었던 농민계급의 무장해체를 통해 무력은 사무라이계급만이 가질수 있는 특권으로 남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계급제도를 관료제로 이양하면서 세습이나 녹봉의 형태로 변화하게 된다. 물론 다이묘의 영지를 박탈한 것은 아니지만 사실상 다이묘를 중앙에서 지배할 수 있는 힘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또한 그동안 사무라이계급의 군사기능을 사실상 폐지함으로써 명목상의 상징으로 남게 된다.
이런 일련의 역사를 거치면서 최초 귀족에게 봉사한다는 개념에서 출발한 사무라이는 유일무이한 지배계급으로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역사적인 배경이외에 사무라이의 문화적인 배경은 어떻게 형성되었는가 하는 관점이 남아있다. 흔희 사무라이하면 명예를 먼저 떠올리게 된다. 명예에 죽고사는 그런 계급이 사무라이이고 명예를 빼곤 사무라이를 논단하기도 힘든게 사실이다. 단지 명예라는 개념이 조선이나 중국과는 상이하다는 전제가 있어야 할 것이다. 이 또한 역사적 세시기에 맞추어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가마쿠라시대의 사무라이는 극히 개인적인 좀더 넓은 의미에서 이에에 대한 명예가 우선이었다. 아니 그게 전부였다고 할 수 있따. 아무리 쇼군이라고 해도 이에의 가신에게 수치스러운 지시를 할 수 없었다. 그 만큼 개인의 자율성이 강했던 시기였다.
세켄(평판)이라는 명예공동체 속에서 사무라이는 동료라는 의식이 강했고 평등하다는 생각이 이었다. 그래서 이에간의 경쟁 또한 상당하였던 것이다.이런 틀 속에서 사무라이의 명예에 대한 의식이 강화되고 성숙하게 되는 시기였다. 일종의 명예에 대한 제도화가 이루지기 시작한 시대였다. 전국시대에 접어들면서 이런 개인의 명예보다는 상위의 개념인 공동체의 명예가 강조되는 경향이 두드러지기 시작해서 결국 도구카와시대에 그 결실을 맺게 된다. 사무라이집단에게는 준시라는 일종의 순장같은 풍속이 있었다. 이에의 수장이나 다이묘가 사망할 경우 가신이 사무라이 또한 그 주군의 뒤를 이어 활복하는 풍습이 이었다. 이는 준시를 통하여 사무라이의 존속을 강화시키고 단결을 한층더 공공히 하는 점도 있지만 결구 이에라는 개별적인 집단으로 남게 하는 단점이 있는것이다. 이러한 풍습이 결국 도구카와시대에 와서 근절되므로서 일게 이에나 다이묘가 아닌 바쿠후라는 최고정점에 대한 충성으로 이어지게 만들었다.
사무라이는 초기에 폭력과 자율성에 대한 긍지에 기초한 명예에서 출발하여 일종의 명예문화라는 형태로 설정하므로서 계급의 지속성을 이어왔다. 조선의 선비들이 성리학이론에서 그 존재가치를 찾았듯이 사무라이는 명예라는 곳에서 그들만의 존재가치를 찾았던 것이다.
책에서 소개되는 사무라이 개인의 명예회복이나 수치심에 대한 자료는 극히 일본적이고 개인적이지만 사무라이라는 계급이 그 만큼 명예에 대한 생각이 어떠했는지에 대해서 잘 알수 있는 부분들이 많이 있다. 이는 일본을 이해할 수 있는 많은 부분들중 일부이지만 일본의 근저에 자리잡고 있는 사상을 올바르게 볼 수 있는 핵심이기도 하다. 마치 선비정신을 이해하지 못하면 대한민국을 이해하기 힘들듯이 말이다. 이 책은 역사서적이기보다는 사회문화학적인 서적의 성격이 강하다 보니 내용도 상당한 난이도를 가지고 있다. 또한 우리에겐 다소 생소한 사무라이계급의 실체를 설명하다보니 내용이 방대하고 쉽게 접근하기엔 다소 무리가 있지만 큰 틀에서 사무라이라는 계급의 성격을 일목요연하게 설명해주는 책이다. 어느 국가나 그 시대를 대변하는 시대정신이라는 것이 있다. 그런 면에서 사무라이의 정신은 지금의 일본을 존재하게 하는 그런 시대정신임에는 틀림없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