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킹메이커 - 8인8색 참모들의 리더십
박기현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08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 조선의 킹메이커 >>

 

킹메이커란 말 그대로 왕을 만드는 사람 내지는 절대권력을 유지하는데 일등공신을 일컫는다고 할 수 있겠다. 아주 가까운 근래이 예를 들면 고인이 된 한나라당의 허주 김윤환처럼 자신은 그림자가 되고 절대권력을 창조하는 그런 부류의 사람들을 일컫어 킹메이커라고 할 수 있겠다. 이책에서는 조선의 대표적인 킹메이커 8인을 소개하면서 각 개인의 정치신념과 군주보좌의 다른 방법을 해설하면서 진정한 킹메이커의 속내를 보여주고 있다. 한편으로 권력에 대한 인간의 무한한 욕심이랄까 권력앞에선 부자관계도 용납될 수 없다는 시대에 슬기롭게 절대 군주의 치세를 보필하면서 나름대로 정치철학을 펼친 이들의 삶을 조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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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삼봉 정도전(1342년-1398년) 한 시대를 풍미한 인물중 가장 드라마틱한 삶을 살다고 간 이가 정도전이 아닐까 싶다. 진정한 '택군론'의 신봉자로 무너져 가는 고려왕조를 대신하여 태조 이성계를 새로온 대안으로 새왕조 조선왕조의 창립의 기본적인 틀을 확립한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참모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조선왕조 창업이란 한편의 영화의 실질적인 주인공은 정도전이라고 해도 과장되지는 않을것이다. 창업초 정신적인 정치개념에 정당성을 부여한 이도 정도전이었고, 민생의 기틀이 될 제세의 혁신과 권력유지에 걸림돌이 될 사병의 혁파 및 조선의 헌법이라 할 수 있는 경국전의 발의에서 부터 그의 손을 거치지 않은 제도가 없을 정도의 신의 손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이다. 정도전은 적극적인 참모형이다. 자신이 택군한 군주를 자기 정치신념에 맞게 리모델링하는 의지와 신념을 가지고 철저히 시행했다. 고려왕조의 폐망을 군주의 부덕과 신하의 간언으로 규정한 그는 절대왕권이 아닌 절대왕권을 견제할 수 있는 신권강화만이 새왕조의 진정한 모토가 될 수 있다고 파악했다. 물론 태종 이방원등의 견제세력과 정도전자신의 독주 때문에 그 결실은 맺지 못했지만, 그는 참모와 군주의 역활분담에 대해서 참모의 역활을 최대한 강조하고 몸소 실천한 킹메이커이다.

2) 호정 하륜(1347년-1416년) 조선시대를 상고해보면 군주와 참모는 두가지 형태의 삶을 살아갔다. 권력창출을 같이 했어도 참모가 토사구팽을 당하는 경우와 혹은 평생동지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형태이다. 하륜의 경우 후자의 삶을 살다간 인물이다. 아마 조선시대 참모로서 그 만큼 군주의 속내를 잘 이해하는 이도 드물정도로 태종의 또 다른 복심으로 군주의 성격에 맞는 정치를 보좌했다. 그 또한 사가의 평가 역시 분분하지만. 새왕조 창업의 사실상 일등공신이 정안군이 정치적 위기로 내몰릴때 그를 선택하여 군주의 반열을 올리고 생을 마감할때까지 군주의 속내에 대해서 단 한번의 반기도 들지 않는 순종적인 참모형이었다. 물론 역사적 평가로서 그의 행동을 질타할 수 있겠지만. 그에게는 그게 참모로써의 진정한 역활이라는 정치적 신념이 있었던 것이다. 아마도 태종과 정도전이 군주오 참모로 만났다면 정말 그 정치는 하루가 조용한 날이 없었을 것이다. 그 만큼 하륜은 태종의 성격을 잘 알았고 또 그것을 적절히 이용해서  그의 치세를 보필했다.

3) 방촌 황희(1363년-1452년) 조선시대를 망라하여 우리 역사상 가장 궁합이 잘맞는 조합이 바로 세종과 황희의 만남이 아니었을까 싶다. 비록 황희의 경우 권력창출과는 무관하지만 그가 아니였다면 세종의 빛나는 치세 또한 없었을 정도로 황희의 참모역활은 띄어나다고 할 수있다. 조선의 군주중에서 가장 자기관리가 철저했으며 정사에 대한 열정이 띄어났고 지시한 일을 손수 직접챙겨야만 속이 풀리는 군주가 세종이다 그래서 더 그의 치세가 그리운것이고 이런 군주를 더욱 더 빛나게 하는 참모의 역활은 다른 시대의 참모의 역활과는 사뭇 달라야 하는다는 것을 황희 자신은 간파했던 것이고 그리고 철저하게 보필했던 것이다. 군주옆에서 군주의 완급조절을 할 수 있었던 유일한 참모였던 것이다.  

4) 범옹 신숙주(1417년-1475년) 그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많은 부분에서 양분되는게 사실이다. 사육신의 입장에서 보면 선왕의 유지를 거슬린 배신자와 기회주의자로 낙인찍혔고, 정난의 주역들 입장에서 보면 적극전인 권력창출에 이바지한 공이 크지 않다는 이유로 그 공의 평가를 소홀히 한다고 할 수 있다. 신숙주가 살았던 그 시대만큼 격변의 시기도 드물다고 할 수 있겠다. 일찍 세상을 떠난 임금과 그의 어린 아들, 그리고 장성한 숙부들과 훈구대신들의 권력장악등 한마디로 안개속정국이 지속되고 있었던 시기였다. 물론 그 시기에서 적극적으로 수양대군을 도와 정난을 성공시킨 한명회 같은 적극형의 참모도 있지만 신숙주같은 약간의 방관자적 참모도 있는게 사실이다. 그에 대한 평가가 사실 권력앞에서 기회주의적 입장을 견지했다는 비난을 피하긴 힘들지만 아마도 그것또한 그의 정치철학이지 않을까 싶다.  

5) 정암 조광조(1482년-1519년) 이 책의 주인공중 유일하게 정승의 반열에 오르지 못하였지만 정승의 역활이상을 한 참모가 조광조이다. 또한 참모중 가장 자기주장이 강했고 철저하게 성리학의 바탕을 둔 도학정치를 실현을 두고 평생을 매진한 인물이다. 한편으로 조선초기 정도전을 능가하면 신권강화에 전력을 했고 군주의 역량이 부족하면 교육을 시켜서라도 올곧은 군주를 만들어가야한다고 생각했던 인물이다. 그만큼 그가 추진한 정책들은 혁신적이었고 주류에게 위협을 주기에 충부했던 것이다. 또한 조선 역사상 사림들의 정치출사를 강조한 전형적인 실천형 참모였다. 하지만 조광조를 볼때 마다 느끼는 것은 진정한 군주와 참모의 선이 어디까지 가야하는가 하는 느낌이 든다. 

6) 서애 유성룡(1542년-1607년) 그가 세종같은 그런 시대에 태어나 참모역활을 했다면 황희를 능가하지 않았을까 하는 역사적인 가정을 해보게끔 하는 인물이다. 하지만 유성룡같은 참모가 있어 7년전쟁을 슬기롭게 극복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것이다. 군주가 튼실하지 못하면 참모가 그 역활을 해야한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준 실례라고 해야겠다. 비록 전란을 극복하고 정치에서 퇴출되지만 그는 생을 마감할때 까지 이런 변란에 대한 대비를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마치 호란을 발생을 예측이라도 한듯이... 유성룡의 참모역활이 뛰어난점은 비상시에 대한 그의 판단과 인물의 적재적소방침에 따른 천거와 기용이라고 할 수 있따 7년전쟁의 최대 영웅인 이순신과 권율의 발탁 및 명과의 적절한 외교전략을 통해 절체절명에 빠진 조선을 구한 참모이기도 하다.  

7) 창랑 최명길(1586년-1647년) 모두가 '예"라고 할때 '아니오'라고 하고 모두가 '아니오' 할때 '예'라고 할 수 있는 그런 참모형이다. 명나라에 대한 절재적인 지조를 지키던 시대에 당당히(?) 화친을 주장한 유일한 참모가 바로 최명길이다. 대의명분이 아닌 실질적인 정치철학 당파의 이해타산을 넘어 나라의 안위와 백성의 목숨을 담보로 한 주전론에 맞서 위기에서 구해낸 참모로 평가할 수 있다. 군주의 악업을 대신 짊어지고 화약통으로 분연히 나선 그의 철학과 신념은 난세에 참모가 어떻게 처신을 해야하는 지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일개인의 영화가 아닌 크게 볼 수 있는 혜안을 가진 참모였다고 할 수있다. 

8) 번암 체제공(1720년-1799년) 사실상 조선시대 마지막 군주인 정조를 보필하여 다 쓰러져 가는 조선이란 환자의 생명을 간신히 유지 시킨 참모이다. 개인이 영광이자 가문의 영광일 될 수 있는 영의정자리를 열흘만에 집어던지며 금등지사관련 문건을 폭로함으로서 정조의 울분을 씻겨준 군주에게 어찌보면 어버이 같은 참모였다. 어렵게 보위에 오른 정조와 그의 정치적 철학을 가장 올바로 소화해낸 인물이기도 하다. 물론 그도 당파싸움에서 자유로울수 없지만 민생을 위한 실용적인 정치를 펼쳐던 인물이었고 정조의 정치개혁 선봉에서 화성축조등의 많은 일들을 해낸 실무형 참모였다. 정치색보다는 실질적인 일처리로 군주를 보좌했던 참모형이었다.


▶▶▶ 이책에 나오는 인물중 실질적인 권력창출에 기여하여 킹메이커로서의 명성을 얻은이도 있지만 군주의 치세기간동안 제대로된 치세를 펼쳐갈 수 있도록 지근에서 보좌한 참모들도 있다. 참모란 군주의 그늘에 가려서 있지만 실제로 절대권력자의 치세를 올바르게 일끄러 가는 것이 진정한 참모의 역활일것이다. 조선왕조창업에 정도전이 없었다면 제대로 된 왕조탄생이 가능했을까 하륜의 보좌로 태종이 보위에 오르지 못했다면 어찌될을까 황희의 완급조절이 없었다면 세종의 빛나는 치세는 또 가능했을까 신숙주의 문화정치가 없었다면 세조는 어떤 평가를 받았을까 조광조의 멈추지 않았던 개혁이 없었다면 중종은 계속 공신들의 손아귀에서 놀아났을것이고 유성룡같은 참모가 없었다면 조선은 명국의 속국으로 전락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정조 이후 이러한 훌륭한 참모가 없었다는게 조선왕조의 문을 닫는 지름길이 아니었나 싶다.  

한 개인의 입장에서 절대권력을 제외한 모든 권력에 대한 사심이 없을순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절대권력자와 참모의 역활을 각기 처한 시대상황에 따라 달리 해석한 참모들의 면면을 보면서 이 시대를 살아가는 거울로 삼을 수 도 있겠다.

"장자방이 한고조를 선택했다"는 말도 있듯이 위대한 군주의 그림자속엔 이러한 킹메이커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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