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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 조선의 난세를 넘다 ㅣ 이한우의 군주열전
이한우 지음 / 해냄 / 2007년 2월
평점 :
조선군주중에서 가장 병약한 군주의 대명사로 떠오르는 인물이 선조이다. 그래서 그런지 선조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아주 비관적이다 아마도 그건 임진,정유재란 왜와의 7년전쟁을 거치면선 보여준 군왕으로서의 평가의 재위 40년이라는 적지않는 기간을 통채를 집어삼켜 버렸기 때문이다.
선조는 여러가지 진기록을 남긴 군주이다. 우선 7년전쟁을 통하여 전국을 초토화시킨 군주, 그리고 재위기간중 잦은 선위파동, 그리고 최초의 정비의 소생이 아닌 후궁(중종과 창빈안씨)의 손자로 재위에 오른 군주이다. 그동안 조선이라라는 나라는 장자,차자를 떠나 정비소생이 왕위에 올랐다. 폭군 연산군 또한 성종의 적장자였던 점을 보면...
이렇듯 태생적으로 선조는 정통성문제에 있어서 죽는날까지 고민했다. 오죽했으면 나이 52세에 왕비를 새로 간택하여 대군을(영창대군)을 생산하여 왕위계승을 할려고까지 했을까 물론 이점이 또다른 피의 역사를 불러일으키지만, 그만큼 선조의 의식 깊이 서자출신이라는 강박관념이 크게 자리잡고 있었고 그점은 권력장악에도 치명적인 아킬레스건이 되어버린다. 이후 본격인 당쟁의 역사가 시작된다(동/서 대결, 남/북 대결, 대/소북 대결)
이 책은 선조시대와 선조시대를 정확히 이해할수 있는 바탕이 되는 연산군부터 명종시대까지의 역사적 배경을 간략하게 설명한다. 당쟁의 단초가 된 무오/갑자/기묘/을사 사화를 통하여 이미 돌이킬수 없는 왕권의 추락을 전제조건으로 선조시대의 출발자체가 본인의 의지와 무관한 신하들의 의지로 등극한 왕이라느점 그리고 신하들의 구미에 맞게 성장했다는 점 물론 성종또한 신하들이 선택하고 신하들이 가르킨 군주였지만 성종은 친정하면서 철저히 왕권강화에 나섰다는 차이는 있다
우리가 역사상 가장 치욕적으로 생각하면서 한편으론 통쾌하게 생각하는 7년전쟁과 정여립의 난을 빼고는 선조시대는 다른 어떤 시대보다 사화도 없었고, 평온한 시대였다. 적어도 7년전쟁이 있기까지는 선조또한 당쟁싸움의 한가운데서 철저히 왕권을 유지하면서 동,서인을 저울질 하면서 두루두루 인재를 등용했다. 이 점은 조선역사상 가장 뛰어난 인물들이 이 시대를 풍미했다는 점이 말해주고 있다. 이황, 이이, 유성룡, 이덕형, 이황복, 이연경, 정철, 정탁, 이산해, 윤두수,근수형제, 기대승, 성혼, 이루 말할 수 없는 인물을 배출했고, 왕 사후에 추존되는 공식명칭인 존호를 보더라도 무려 38자에 이르는 존호를 가지고 있는 임금이다. 실례로 세종대왕은 26자이다. 그리고 재위기간중에 종계변무를 바로잡았다는 점(조선시대 역대 군주의 가장 희망사항으로 중국역사서에 이성계가 공민왕의 아들이라고 잘못기재된 점을 누누히 고치려고 하였지만 뜻대로 되지않은점) 이런점을 보았을때 선조가 무능하고 나라 말아먹은 군주라는 비판은 7년전쟁을 거치면서 보여준 행태가 자신의 재위기간 전부를 덮어버렸기 때문일것이다. 물론 그점에 대한 평가는 당연히 받아야 하겠지만 다른 이면의 평가 또한 적절하게 해야하는 것이 후세인들이 역사를 바로보는 관점이라고 하겠다.
이처럼 선조는 불운한 군주였다. 당초 즉위 당시의 신분으로 인한 번민과 그에 대한 집착으로 세자 광해군과의 불화 결국 어린아들 영창대군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인목왕후의 폐모사태까지 가는 참담한 결과를 낳게 한다. 또한 7년전쟁을 통한 리더십이 결여된 지도자의 모습으로 인하여 사실상 군주로써의 권위가 없어진 상태에서 말년을 지내게 된다. 하지만 역사는 한시점만 보는게 아니라 전체적으로 판단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저자의 다음 표현이 인상적인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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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당시'조선호'라는 낡고 오래된 배의 키를 잡고 있던 사람은 선조다. 애당초 자신이 키를 잡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배에 관한 항해에 관한 지식이라고는 한줌도 되지 않았고 바다에 나가본 적도 없었다. 갑자기 노련한 항해사들이 와서 열여섯 살 어린 아이를 보고 선장을 맡아줄 것을 강권했다. 사양했지만 피할 수가 없었다. 선장직을 수락한 후에도 모든 것은 향해사들이 알아서 했고 자신은 뒤늦게 항해술에 관한 수업을 받느라 정신이 없었다. 다행이 난파 조짐을 보이던 배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고 조금씩이나마 항해를 계속해 나갔다. 마흔 살을 넘어 조금씩 항해에 흥미를 가지려 할 무렵에 태산 같은 파도가 밀려오더니 7년간의 폭풍우가 몰아쳤다. 이런 상황은 난생 처음이었따. 그동안 익힌 항해술로 대처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제발 다른 사람이 키를 맡아달라고 수도 없이 호소했지만 아무나 선장이 되는 것은 아니라며 자리를 지켜줄 것을 강요했다. 폭풍우가 잦아들었을 때 배는 만신창이가 됐지만 난파는 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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