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종 조선의 태평을 누리다 - 성군(聖君), 성종의 리더십에 대한 최초의 재평가 이한우의 군주열전
이한우 지음 / 해냄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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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열전 그 새번째 이야기

흔히들 조선시대 군주중에서 손가락안에 꼽히는 군주가 우리가 알고 있는 성종이다. 경국대전의 완성, 문예부흥의 군주, 그리고 각종 방송사의 단골매뉴로 등장했던 폐비윤씨....

성종시대를 논할려면 거꾸로 올라 세종이 훙하는 시점에서부터 살펴봐야한다. 세종의 가장 큰실수인 수양과 안평이라는 세자가 아닌 걸세출의 정치가를 방치했다는점이다. 이를 시점으로 문종,단종,세조,예종으로 이어지는 권력싸움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계유정난을 통한 수양(세조)의 등장으로 조선의 군주 세습은 또다시 엉망이 되고 만다. 이런 와중에서 공신들(흔희들 훈구세력)과 세조의 결탁 그리고 예종의 의문스러운 죽음, 이어서 군주세습순위에서 한참이나 먼 잘산군(성종)의 등극까지 정말 이런 드라마가 없다고 할것이다.

사실 성종의 등극은 정희왕후(세조정비)와 인수대비(성종친모)와 한명회를 비롯한 훈구대신들의 사전작업에서 부터 철저하게 진행된 일이다. 어찌보면 성종은 조선의 군주중 가장 행운아인셈이다. 세종조에 다져지고 세조가 완전히 굳힌 조선이라는 나라를 거저 먹은거나 바름없는 셈이다. 그리고 성종제위기간중 정말 태평성대에 가까운 대란이 없다는 점또한 정말 행운이라고 할수있다. 물론 다른면에서는 성종시대부터 조선은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고 볼수있다.

성종은 세자내지는 세재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바로 등극한 조선의 최초의 군주이다. 어린나이에 위로는 3전(정희대왕대비,안순왕대비,인수대비)이라는 유일무일한 여성들의 치맛자락에 둘러쌓여 친정시까지는 원상들(훈구대신)의 비위를 맞쳐가면서 정치를 펴게 된다. 거기다 우리가 너무나 잘알고있는 중전 윤씨의 폐비 및 사사로 인하여 향후 희대의 폐륜아 연산을 탄생케 하는 독불장군같은 정치또한 펴게된다. 흔희들 성종을 문예부흥군주로 알고있는데 이는 잘못된 상식이다. 성종의 경우 태조-태종-세조로 이어지는 전형적인 무인기질의 군주이다. 제위기간중 2차례난 원정을 했고 비록 성과는 없었지만, 수도없는 강무 및 사냥등을 통하여 신하들과 마찰또한 상당했던 군주였다.

성종시대의 또하나의 불운은 뭐니뭐니해도 사림들의 등장이라 할 수 있다. 성종으로선 훈구대신의 견제역활로 사림이란 부득이한 선택을 하였지만 이 사림의 성격이 기존 유학과 다른 교조적인 성리학일변으로 인한 붕당 그리고 당쟁 향후 조선의 먹구름을 드리우게되는 역활까지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성종을 폄하해서는 안됀다 어리나이에 3전을 모시고 그리고 언제든 왕을 교체할수 있는 어마어마한 권력집단이 훈구대신의 틈사이에 끼여 자기의 천정을 준비하면서 조선의 최상기를 구가하게했던 군주임에 틀림없는 것이다. 또한 역대의 군주보다 더 왕권강화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가지고 있어고 또한 신하들과의 논쟁에서도 밀리지 않았던 점은 역시 대단한 군주임에는 틀림없는 사실인것이다.

가장 안타까운 점은 교조주의적인 성리학신봉자들인 사림들의 정치세력화가 결국 향후 조선시대내내 피바람을 일으키는 원인되었다는 점에서 성종자신또한 자유로울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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