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 조선의 표준을 세우다 - 집념과 포용의 정치로 실현한 애민과 훈민, 세종을 찾아서 이한우의 군주열전
이한우 지음 / 해냄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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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우님의 군주열전 시리즈 그 두번째 [세종]편이다.

우선 본책은 박영규님의 세종대왕실록보다는 좀 따분하고 읽기가 그리 녹녹치 않은편이다. 그러나

실록의 관점에서 해석하였으며, 흥미위주보다는 세종이 가지고 있는 진면목을 충분히 보여 줬다고

해야할 것 같고, 아마 여태까지 나온 세종관련서적중에서는 단연으뜸으로 보인다.

우선 본책을 읽고나서 느낀점 세종에 대해서 너무나도 몰랐구나 하는 생각, 그리고 세종도 사람이

엇구나 하는 생각... 조선시대 제왕의 훈련은 세자시절부터 세자시강원이라는 싱크탱크에 의해

군주의 자질을 훈련받게 되어있어 군주로 즉위시 제왕의 기본소양을 갖춘상태에서 치세에 들어가

는게 모범이었다. 그러나 세종의 경우 이런한 준비과정이 없이 즉위하였지만 태종의 섭정이 다름

없는 기간동안 정치의 모든 것을 틀어잡앗다는 점은 그가 바로 준비된 군주가 아니였나 하는 생각

이 들게 만든다. 세종은 아버지의 태종의 탁월한 선택에 한치의 부끄러움없이 보답하였다고 할까

아버지가 만들어준 가마솥에 가득 흰쌀밥을 짖어 자자손손대대로 조선왕조를 먹여살린 군주라고

하면 너무 비약적일지 모르지만 세종시대는 조선왕조 500년을 버티게 해준 거름이었다고 본다

흔히들 역사에 만약이라는 가정이 존재한다면 난 단연코 세종이 좀더 살아서 치세를 했다면...

세종치세기간은 32년 그 기간동안 정치, 경제, 국방, 기술, 법령, 의전음악, 인사, 그리고 정말

희대의 발명인 훈민정음창제에 이르기까지 엄청난 치적을 남겼다. 물론 이런 치적을 남길 수 있

엇던 가장 큰 원인은 세종의 인재관과 백성에 대한 애민관이 다른 군주들과 차별화 되었기 때문에

가능했을것이다. 신인 인재의 발굴(집현전을 통한)고 발굴한 인재의 적재적소의 배치(김종서,정인

지,신숙주,박연등)와 원로들(황희,맹사성,류관,이수,윤회)의 조화속에 자신의 의지를 굽히지 않고

신하들을 설득해가면서 정무처리 하는 모습은 관연 세종만의 전매특허인 셈이다.

그리고 여태까지 우리는 세종의 밝은면만을 강조하고 보아왓지만 여기선 어두운 면을 통한 인간

세종의 모습을 보게끔 해준다. 우선 세종 개인적으로 봐서 치세기간동안 요즘을 치면 상복을 입은

기간만 10년이 넘는다. 위로 태종, 원경왕후, 왕비는 소헌왕후, 대군 둘과 장녀인 정소공주의 죽음

으로 상치르기에 바빳다 할만큼 어두운 그림자에서 지내야했다 특히 소헌왕후의 사망이후 세종도

역시 평상심을 잃기 시작했던 것 같다. 물론 근본적인 병세까지 한몫 거들었지만

또한 세자(문종)빈의 당시로는 엽기적인 이색행각(동성애포함)을 포함한 폐세자빈사건과 원자인

단종의 탄생까지 무려 14년이란 세월을 인내해야햇던 점등은 세종의 다른 면이다.

마지막으로 세자가 아닌 두 대군(수양,안평)에게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점이 향후

자신의 사후 이후 벌어지는 골육상쟁과 자신의 아들내지는 제자랄 할수 있는 신하들의 배신등

세종자신으로서는 어찌보면 아버지인 태종보다는 후계선택에 소질이 없엇나 보다.....

세종의 밝으면, 어두운면을 보앗지만 역시 세종이다. 아니 세종일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다시한

번 더 들게 하는 내용이다...

참고로 박영규님의 한권으로 읽는 세종대왕실록과, 이한우님의 군주열전 시리지 태종을 같이보면

좀더 행간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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