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거울 앞에 선 불행한 군주
광해군과 그의 시대로부터
격동하는 세계 속 기미와 자강의 지혜를 배우다


우여곡절 끝에 1033년 12월, 중초본을 완성했다. 광해군을 쫓아낸 지10년 만이었다. 중초본을 완성했으니 다시 정서하여 활자를 뽑고 인쇄를 하는 것이 순서였다. 그런데 또다시 재정 문제가 불거졌다. 고민 끝에인쇄는 포기하고 두 벌의 정서본을 만들었다. 이어 정서한 두 벌을 강화도의 정족산과 무주의 적상산에 설치한 사고에 보관했다. 정서하는 데대본으로 썼던 중초본은 세초하지 않고 봉화의 태백산 사고에 집어넣었다. 『광해군일기」만 유일하게 정서본과 중초본이 동시에 남아 있게 된 배경이다.
- P23

내정에선 때로 우유부단하고 소심한 모습을 보였던 광해군이었지만, 외교 문제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보인 태도는 의외로 냉철했다. 그리고과감하고 준비성이 있었다.
- P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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