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시인 파스테르나크(1890-1960)의 삶과 <닥터 지바고>

    

 

모든 일에서 / 극단에까지 가고 싶다. / 일에서나, 길에서나, / 마음의 혼란에서나,

재빠른 나날의 핵심에까지 / 그것들의 원인과 / 근원과 뿌리 / 본질에까지.

운명과 우연의 끈을 항상 잡고서 / 살고, 생각하고, 느끼고, 사랑하고, / 발견하고 싶다.

, 만약 부분적으로라도 / 나에게 그것이 가능하다면 / 나는 여덟 줄의 시를 쓰겠네. / 정열의 본질에 대해서 /

오만과 원죄에 대해서 / 도주나 박해, / 사업상의 우연과 / 척골(尺骨)과 손에 대해서도 /

그것들의 법칙을 나는 찾아내겠네. / 그 본질과 / Initial을 나는 다시금 반복하겠네.

 

독문학자이자 수필가 전혜린의 수필집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1966)에 실린 파스테르나크의 시이다. 독일어 중역인데다가 시의 마지막 네 연이 빠져 있음에도 모든 일에서 / 극단에까지 가고싶은 서정적 자아의 차분한 집념 혹은 조용한 열정은 잘 느껴진다. <닥터 지바고>(이하 <지바고>)로 잘 알려진 파스테르나크는 실제로 소설가이기보다는 시인이었다.(...)

 

시인이었던 그가 산문 장르에 관심을 가진 것은 이십대 후반부터이다. 1930년을 전후한 시점에서 몇 편의 서사시와 운문 소설, 자전적 에세이 <안전 통행증>(1931), 중편소설(류베르스의 어린 시절) 등이 쓰인다. 이러한 이력에도 불구하고 <지바고>의 집필과 그 동기는 작가의 문학적, 내적 욕구와 더불어, 어쩌면 그보다는 시대적 정황과 연결되어 있다. 1940년대, 파스테르나크는 모스크바 근교의 페레델키노에 칩거한 채 일종의 내적 망명에 돌입한다. 침묵과 고독 속에서 십여 년(1946-1956)에 걸쳐 장편소설을 쓰는데, 그것이 <지바고>이다. 스탈린 사망 직후인 1954년에 이 소설의 말미에 실린 시 중 10편이 잡지(<깃발>)에 발표되기는 했으나 전반적으로 소설의 운명은 순탄치 못했다. <신세계>에 출간을 의뢰했으나 편집진은 꼼꼼한 장문의 퇴짜편지를 보낸다. 이 서간체 평문에서 우선적으로 문제 삼는 것은 소설의 정신, 그 파토스, 삶에 대한 작가의 시각이다. “당신의 소설의 정신은 사회주의 혁명을 수용하지 않겠다는 파토스입니다. 당신의 소설의 파토스는 10월 혁명, 내전, 그와 연결된 이후 사회 변화가 민중에게 고통을 제외하면 아무것도 가져다주지 않았고 러시아 인텔리겐치아를 물리적으로 혹은 도덕적으로 파괴했다, 라는 주장의 파토스입니다.” <지바고>의 첫 독자-비평가들이 극히 그리고 무엇보다도 정치 소설”, “소설-설교라며 내친 소설은 1957년 이탈리아에서 이탈리아어 번역으로 출간된다. 이듬해(1958) 노벨 문학상까지 받게 되자 파스테르나크는 작가동맹에서 제명되고 추방의 위협을 당한다. 결국 그는 상을 거부하고 사실상 거의 직후인 196070세를 일기로 사망한다.

 

이 소설을 둘러싼 일련의 스캔들, 그리고 친()소비에트와 반()소비에트 양진영의 평가를 두루 살펴볼 때 두 가지 점이 눈에 뜨인다. 첫째, 작품의 정치성 내지는 경향성인데, 그토록 무정치적인작가, 또 그런 경향의 소설을 그토록 정치적인 것으로 만든 문학 외적 정황이 놀라울 따름이다. 둘째, 작품의 문학성과 관련하여, 사실상 표층적 차원인 문체 외에는 장점이 없다는 식의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출간 이후 반세기가 훌쩍 지난 지금, 물의-스캔들은 가라앉았지만 이 작품이 정치적 정황 때문에 과대평가되었다는 식의 논란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물론, 이런 혹평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소설의 의의에 대한 반증이기도 하다. 어떻든 2018년 현재, <지바고>는 고리키, 숄로호프, 솔제니친, 불가코프, 플라토노프 등 여타 20세기 러시아 소설과 비교할 때 가장 많이 읽히는 소설이다. 1960년대의 인기는 데이비드 린의 영화(1965)에 빚진 측면도 있겠다. 하지만 그 역시 과거지사, <지바고>는 비슷한 식으로 인기를 누린, 가령 마가렛 미첼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1936/1937 퓰리처 상)와는 달리 문학사의 심판에서 문자 그대로 살아남았다. 역사소설로 읽든 연애소설로 읽든 어쨌든 대중통속소설을 넘어선 맥락에서 작품을 평가해야 할 때이다.

 

2. <닥터 지바고> - 유폐된 지식인의 참회록

 

제목 그대로 닥터(의사) 지바고의 삶을 다룬 이 소설은 어린 지바고인 유라의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시작한다. 화려한 장례행렬에 관심을 보이는 자에게 주어진 답에서 이미 산 자를 매장한다’(‘지바고(Zhivago)’(zhizn', zhivoy)’의 의미가 들어 있다)라는 중의적인 의미가 생성되고, 다음 장면은 아예 아버지 지바고의 열차 투신자살을 포착한다. 조실부모한 지바고가 훗날 삶과 죽음의 친연성, 극히 기독교적인 의미의 부활과 불멸에 탐닉하는 것은 당연하다. 위대한 학자임이 수차례 강조되는 그의 외삼촌(니콜라이 베데냐핀)의 영향이기도 한바, 삶의 대극은 죽음이 아니라 죽음-부활이다. 이것이 임종을 목전에 둔 안나 이바노브나(토냐의 어머니)에게 들려주는 지바고의 얘기의 핵심이기도 하다. “죽음이란 없습니다. 죽음은 우리의 영역이 아니거든요.”(1, 122.) 산 자들을 임박한 죽음에서 구해야 하되 그 때문에 또한 죽음을 가장 가까이에서, 가장 자주 접해야 하는 의사라는 직업 역시 양가적이다. 이런 모순에 대한 인식과 수용이 현실 공간(의학)과 나란히, 그러나 외따로 존재하는 문학의 공간에서 이루어진다.

 

의사이자 작가인 지바고의 실제 삶은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소설의 시작과 함께 사라진 자신의 아버지를 그대로 반복한다. , 생활인-가장으로서 그는 예의 그 우유부단함과 나약함 때문에 퇴폐적이라는 말에 가장 걸맞은 행태를 보여준다. 라라와의 관계는 어떤 수사를 동원할지라도 불륜이고 파르티잔 생활 중에도 내연녀를 향한 그리움이 가족에 대한 걱정을 압도한다. 뿐더러, 라라는 사랑하되 그녀와의 관계에서 생긴 아이(타냐)에 대해서는 무심하고 사실상 세 번째 아내인 마리나와 두 딸을 낳았음에도 자기만의 세계로 도피한다. 불성실한 가장인 지바고는 사회적 존재로서도 퇴폐적’, 즉 다분히 무기력하고 기회주의적인 지식인의 전형이다. 1차 세계대전에 군의관으로 참전한 것은 징집을 피하지 못했기 때문이고 파르티잔이 된 것도 라라를 만나러 가던 길에 납치되었기 때문이다.

 

이렇듯 지바고는 자기에게 주어진 각종 의무를 저버리거나 마지못해 이행하다가 자기만의 골방에 틀어박힌다. 여기에 나름의 이론 내지는 원칙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는 어떤 순간적이고 강력한 충격을 통해 역사의 흐름을 바꿀 수는 없다고, 역사 위에 뭔가 더 높고 더 숭고한 원칙이 존재한다고 믿는데, 그 전범이 <전쟁과 평화>의 작가 톨스토이다. “톨스토이는 나폴레옹, 통치자, 사령관의 선구자적 역할을 부정했으되 자신의 생각을 끝까지 밀고 나가지는 못했다.() 역사는 누가 만드는 것이 아니며, 풀이 자라는 것을 볼 수 없듯,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전쟁, 혁명, 차르, 로베스피에르 같은 자는 역사의 유기체적인 선동자, 즉 발효소일 뿐이다.”(2, 348) 역사의 크나큰 원칙 앞에서 고개를 숙이는 것은 무조건적인 회피나 무기력한 수용이 아니라 운명과의 타협 내지는 경건한 운명애에 가깝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삶의 주체로서 활동할 수 있는 영역을 글쓰기에서 찾는다. 역으로, 오직 이것만이 그의 나태한 삶의 알리바이가 될 수 있다. 특히 17. 지바고의 시의 첫 시 햄릿은 혁명의 가두리에 머물다가 불가피하게 그 물결 속으로 휩쓸려 들어간 귀족-인텔리겐치아의 역사와 개인의 소명에 대한 성찰을 담은, 일종의 지식인을 위한 변명으로 읽힌다.

 

소요가 멎었다. 나는 무대로 나갔다./ 문설주에 기댄 채 아득한 메아리 속에서/ 나의 인생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붙잡아 본다.

한밤의 어둠이 천 개의 쌍안경처럼/ 나를 향하고 있다./ 할 수만 있다면, 하느님 아버지,/ 이 잔을 거두어 주옵소서.

저는 주님의 확고한 뜻을 사랑하며/ 기꺼이 이 역할을 맡겠나이다./ 그러나 지금은 다른 극이 진행되고 있으니/ 이번에는 저를 면하게 해 주옵소서.

하지만 막()의 순서는 짜여 있고/ 길의 끝은 피할 수 없다./ 나만 혼자이고, 다들 바리새주의에 빠져 있다./ 삶을 사는 것은 들판을 건너는 것이 아니다.(2, 457)

 

여기서 서정적 자아는 정확히 햄릿도 아니고 햄릿 역을 맡은 배우이며 은연중에 스스로를 그리스도와 동일시한다. 러시아문학사와 지성사에서 행동보다는 사유의 표상으로 받아들여진 햄릿은 혁명기의 러시아에서는 긍정적인 인물상이 될 수 없었다. 말하자면 지바고는 19세기 이래 러시아문학이 창조한 잉여 인간의 20세기 버전, 최후의 잉여 인간이라고 할 수 있다. , 역사상 가장 치명적인 사건이 이 조용한 낭만주의자의 삶을 강타한다. 햄릿-그리스도의 처절한 고백은 인간 개인의 힘으로는 뒤바꿀 수 없는 절대 법칙에 대한 작가 지바고-파스테르나크의 심오한 통찰과 고뇌의 산물이다. 우유부단해 보이는 삶 역시 이 법칙에 맞서 그가 취할 수 있었던 가장 적극적인 대응 방식이었으리라.

 

파벨 안티포프(스트렐니코프)는 소설의 구성상, 주제상 지바고의 짝패라고 할 수 있다. 그는 1905년 혁명 때 철도 파업을 주동했다가 투옥되었고 1917년 혁명 이후에는 무자비한 관료가 된 파벨 안티포프의 아들이다. 아버지는 정치적 과업을 위해 가족마저 내팽개친, 피도 눈물도 없는 인물이지만(유형지인 유랴틴의 군법 재판소 위원임에도 아들의 가족을 외면한다는 점이 며느리 라라에 의해 강조된다) 섬세하고 여린 성정을 타고난 아들은 아버지와는 전혀 다른 삶의 궤적을 좇아간다. 그런 그가 사실상 아버지 못지않게 잔혹한 혁명가로 생을 마감하는 것은 반복의 비극’, 즉 개인사와 역사의 슬픈 아이러니이기도 하다. 1차 세계대전 발발과 참전, 혁명에의 투신 같은 행동에는 물론 프롤레타리아로서의 계급의식이 개입되어 있다. 지바고 앞에 늘어놓는 기나긴 고백을 들어보자.

 

이 모든 건 당신을 위한 것이 아니죠. 당신이 이해할 건 아니라는 말입니다. 당신은 다른 식으로 자랐으니까요. 도시 변두리의 세계, 철도 길과 노동자 숙소의 세계가 있었습니다. 더럽고 비좁고 죽도록 가난하고 노동자도 더럽혀지고 여자도 더럽혀지는 세상. 또 방탕, 마마보이들, 안감이 하얀 교복을 입은 대학생들, 상인들이 실실 웃어 대는 뻔뻔스러운 무법천지가 있었습니다.”(2, 358)

    

소년 파샤는 자신의 개인적 체험을 보편적인 역사의 차원으로 확대하고 그 구현을 라라에게서 발견한다. “, 소녀 시절, 김나지움 학생이었을 때 그녀는 정말 예뻤어요!() 이 시대의 모든 주제, 모든 눈물과 모욕, 모든 충동, 그동안 축적된 모든 복수와 오만이 그녀의 얼굴과 자태에, 처녀다운 수줍음과 자신만만한 날씬함의 혼합 속에 쓰여 있었습니다. 그녀의 이름으로, 그녀의 입으로 이 시대에 대한 고소장을 제출할 수 있을 정도였죠.”(2, 359-360) 이어 그는 자신이 그녀를 위해 대학에 들어가고 또 교사가 되었다고, 결혼 후에는 그녀를 새롭게 쟁취하기 위해 전쟁에 나갔다고 고백한다. 혁명에 투신한 것 역시 그녀의 복수를 위해서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실상은 그녀를 위해서저 모든 것을 했다기보다는 저 모든 꿈을 이루기 위한 동력으로서 라라-순수(이상)’를 필요로 했던 것은 아닐까. 라라는 한층 객관적으로 안티포프를 정의한다. , 그는 시대의 징후를, 사회적인 악을 가정적인 현상으로 착각하고 부부의 관계가 망가진 것을 자기 탓으로 돌려 자기가 벽창호이자 중치, 상자 속의 인간이라고 생각했으며(2, 265) 전쟁에 나간 다음에는 그저 치기 어린 자존심 때문에 역사에 심통을부리고 계속 역사와 셈을 치르는 중”(2, 266)이라는 것이다.

 

어떤 경우든 안티포프의 저돌적인 움직임의 저변에 깔린 것은 프롤레타리아 해방과 같은 거국적인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지극히 개인사적인 것(특히 첫날밤에 완전히 확증된 라라와 코마롭스키의 관계)이다. 동기가 어떠했든 그것은 가정으로부터의 도피인바, 생활인-가장으로서의 무책임함에 있어 정녕 지바고와 비슷하다. 그러나 죽은 혼이 된 안티포프를 확인사살하고 스트렐리니코프로 부활한다는 점에서, 그리하여 저 구시대 러시아의 악의 대변자들에 대한 복수를 감행한다는 점에서는 확실히 방관하는 지식인이 아니라 행동하는 지식인에 가깝다. 혁명이 완성되자 정식 당원이 아님에도 수뇌부와 너무 가까웠던 그가 최고형을 선고받고 쫓기는 신세가 되는 것 역시 혁명(이상)과 정치(현실)가 찰나적으로 결합했다가 영원히 결렬되는 역사의 보편적인 현상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그는 라라가 떠난 이후 바르이키노로 숨어들었다가 자신의 아내와 한 시절을 보낸 남자와의 대화로 지새운 밤이 끝나기 전에 자살한다. 아침녘에 지바고의 눈에 포착된, 하얀 눈밭 위에 번진 선혈은 라라의 비유인 빨간 마가목 열매처럼 혁명과 열정과 순수와 파국의 상징이기도 하다. 이런 그야말로 혁명을 소재로 한 이 소설의 주인공-영웅이 되어야 마땅할 법한데 실상은 햄릿의 짝패를 이루는 돈키호테로 형상화된 측면이 있다. 지바고와는 달리 역사의 흐름을 한 인간의 의지로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신념, 그 한 인간이 자기 자신이라는 선민의식은 비극적 패배를 낳았을 뿐이다.

 

닥터 지바고라는 제목이 붙은 소설에서 주인공만큼이나 비중 있는 인물이 라라이다. 어떤 인물과 관계하느냐에 따라 그녀의 형상은 넓은 스펙트럼에서 진동한다. 또래 친구인 올랴(데미나)와의 관계에서는 야무진 중고생(김나지움 여학생)인 그녀가 거의 동시에 코마롭스키에게는 어린 요부의 전형이다. 라라 입장에서도 독자들의 손쉬운 오독과는 달리 일방적인 성폭력의 도식이 재현되는 것은 아니다. “그녀가 그에게 종속된 것이 아니라 그가 그녀에게 종속된 것이었다. 정녕 그녀는 그가 자기 때문에 얼마나 애를 태우는지 모른단 말인가?”(1, 87) 라라의 성장기가 끝난 모스크바 시절 이후에도 그들의 관계는 유지된다. 코마롭스키는 이미 다른 남자(파벨)의 아내가 되었을 뿐더러 심지어 또 다른 남자(유리)의 정부로 살고 있는 라라를 구하기 위해 유랴틴까지, 이어 일부러 며칠을 낭비한 다음 바르이키노까지 찾아온다. 코마롭스키의 감정의 진정성이나 그 전개 방식(가령 정식으로 청혼하지 않음)은 문제 삼을 수 있어도 그가 그녀의 삶에 가장 실질적인 도움을 준 인물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지바고는 심지어 그녀의 남편보다도 코마롭스키에게 구제불능의 질투를 느낀다고 고백한다. 끝으로, 타냐의 말을 통해(에필로그) 라라가 말년에도 코마로프 부인으로서 코마롭스키의 그늘 아래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어린 지바고에게 라라는 음란한 욕망과 타락의 상징이었다. 토냐, 미샤(고르돈)와 함께 톨스토이의 크로이처 소나타와 솔로비요프의 사랑의 의미를 읽으며 금욕과 순수를 논하던 시절, 라라는 다른 세계에서 온 소녀’, 그만큼 신비스러운 존재이기도 했다. 이후 1차 세계 대전, 사회주의 혁명과 내전 등 운명은 군의관 지바고와 간호병 라라를 한껏 미화된 낭만적 사랑으로 묶어놓는다. 지바고에게 있어 그녀는 신비한 아름다움의 육화인 나의 마가목 아가씨임과 동시에 편안한 자세로 독서를 즐기는 지식인이자 청소와 빨래와 요리 등 각종 가사의 달인-주부이기도 하다. 어느 경우든 라라는 여성에 대한 유구한 표상인 성녀-탕녀20세기 버전으로서 지바고-파스테르나크의 성적 판타지를 고스란히 반영한다. 그 본원이 막달레나 마리아인데, 23. 막달레나 (I)에서는 육욕과 타락의 이미지가 강한 반면 24. 막달레나 (II)는 예수의 십자가 처형 전날 마리아를 포착한 만큼 희생과 구원의 이미지에 방점을 둔다. 이 시들을 소설 텍스트와 병치하면 파르티잔을 탈출하여 유랴틴, 이어 바르이키노로 돌아온 지바고를 간호하고 돌보는 라라의 모습은 예수 그리스도의 발을 씻기던 마리아의 소비에트적 변주로 읽힌다. 비단 지바고 뿐만 아니라 혁명기 세 유형의 인물(햄릿-지바고, 돈키호테-안티포프, 고등 속물 코마롭스키)의 운명을 정리해주는 것도 그녀이다(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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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대 후반, 파스테르나크는 자신에 대한 비우호적 분위기가 만연한 가운데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괴테의 <빌헬름 마이스터의 방랑 시대>(그리고 <수업시대>), 디킨스의 소설에 맞먹는 작품을 쓰고자 한다. 이런 야망을 갖고 구상한 소설의 첫 제목은 <소년소녀들>이었다. 혁명과 전쟁을 겪으며 어른이 된 소년소녀들의 이야기는, 그러나, 전통적 의미의 소설이라기보다는 소설의 외피를 쓴 서정적 비망록이 되었다.

 

시인이 쓴 소설답게 서사 원칙, 즉 인과성과 개연성보다는 우연과 연상이 지배적이다. 많은 인물들, 심지어 주인공들조차 상징성이 너무 강해서 형상성이 다소 떨어진다. 특히 지바고의 이복동생 예브그라프는 기계 타고 내려온 신’(Deus ex Machina), 즉 인물이 아니라 기능에 가깝다. 더 근원적으로, <지바고>의 전범처럼 여겨지는 <전쟁과 평화>와 비교할 때 인물 구도도 단순하거니와, 파스테르나크 특유의 온화한 귀족주의와 엘리트주의의의 반영인바, 혁명(전쟁) 소설에 일반적인 갈등의 증폭과 해결(파국)의 서사 구조가 구축되지 않는다. 차라리 소설 전체가 서사화를 원하지 않는 파편적 사건과 서정적으로 유려한 풍경 묘사와 적절히 철학적인 아포리즘의 향연에 가깝다.

 

이런 독특한 문학적 구조물을 그는 왜 만들어야했을까. 그 답은 그의 절친한 사촌이자 신화학자였던 올가 프레이덴베르그에게 보낸 편지의 일절에서 찾을 수 있겠다. 굳이 혁명이 필요 없었던, 심지어 혁명 때문에 모든 것을 잃었으나 그럼에도 죽는 순간까지 자기 식으로 시대정신에 화답하고자 한 작가-인텔리겐치아의 조용한 고백이기도 하다.

 

나는 모든 사람들 앞에 죄가 있어. 하지만 내가 뭘 어쩌겠어? 그러니까 이 소설은 나의 빚의 일부, 내가 조금이라도 노력했다라는 것의 증거야.”

 

* * *

 

<닥터 지바고>를 번역하는 데 딱 3년이 걸렸다. 출간까지는 2년 정도가 추가되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 사이 겨울방학이었지 싶다. 범우사판(오재국 번역)을 통해 이 소설을 읽었다. 사실상 단칸방이나 다름없는 집, 새벽에 시장에 나가던 부모님과 국민학교다니던 두 동생이 잠든 밤에 카세트라디오로 <라라의 테마> 같은 영화음악을 즐겨 듣던 시절이다. 노르스름한 스탠드 불빛 아래, 빼곡히 들어찬 자잘한 글자들 속에는 많은 것이 들어 있었다. 혁명, 문학, 불멸, 사랑, 비극, 관념. 책을 읽는 동안에는 비루하고 옹색한 현실 세계에서 다른 세계로 이월하고 나 역시 그런 다른 존재로 변신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책읽기, 특히 문학이 그런 것임을 그 무렵에는 꽤 난해했던 이 소설을 읽으며 배웠다.

 

그로부터 30여년이 흘렀다. 강조하건대, 파스테르나크는 시인이고 <지바고>는 시어로 쓰인 소설이다. 나는 소설가이고 러시아문학박사로서도 주로 소설을 연구해왔다. 훗날 이 소설을 더 많이 아끼는 역자가 나타나 더 좋은 우리말본을 만들어주길 바란다. 현재로서는 그래도 이 책이 우리 독자들에게 가장 마땅한 번역본이 되리라 자부한다.

끝으로, ‘여고시절전혜린의 번역으로 즐겨 읽은 파스테르나크의 시를 마저 옮겨본다. “모든 일에서 / 극단에까지 가고 싶다.”는 이렇게 끝난다.

 

나는 정원처럼 시를 가꾸겠네. / 잎맥을 파르르 떨며 / 보리수들이 잇따라 / 연이어, 일렬로 꽃을 피우리.

시 속에 나는 장미향과 / 박하향을 넣겠네, / 풀밭과 사초와 풀베기와 / 천둥번개를.

언젠가 쇼팽이 소담한 영지와 / 공원과 숲과 무덤, / 그 살아 있는 기적을 / 자신의 에튀드에 넣었듯.

다다른 승리의 / 유희와 고뇌 - / 팽팽한 활의 / 당겨진 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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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드무와젤 플레리의 밀짚모자에 카밀레(캐모마일)과 함께 꽂힌 꽃 수레국화. васильки. 'синий'가 어떤 색인지 궁금하면 이 꽃을 보면 될 듯하다. 오래 전, 젊은 헬레나 본 햄 카터, 다니엘 데이 루이스가 나왔던 <전망 좋은 방>에서도 본 듯한 꽃이다. 대단히 서구적으로(?) 느껴졌는데, 이 역시 들꽃, 서구적인(^^;;) 들꽃이다. 노발리스의 소설 제목이기도 한 파란꽃(!), 파란색도 독한 색인데 빨간색(양귀비) 앞에서는 여지없이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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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하루만 기다렸어도 '할 일 없는 사람'이 되지 않는 거였다. 버티면 되는데 그게 그렇게 힘든 것이다. '닥터 지바고'에 '지바고'가 없어 놀랐으나 표지의 감각은 편집부를 믿는다. <죄와 벌> 표지도 편집부에서 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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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19-01-26 00:3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얼마전 KBS_클래식 FM 방송에서 일주일 내내 파스테르나크의 생애를 들려주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마음을 읽다>라는 코너에서였죠. 잔잔히 흐르던 <라라의 테마>와 함께요.

그때 라디오에서 들은 얘기로는, 아버지는 유명한 화가였고 어머니는 피아니스트여서 어려서부터 톨스토이니 라흐마니노프니 하는 댕대 최고의 예술가들이 자주 집을 들락거리는 걸 보고 자랐다고 하더군요. 처음엔 작곡가가 되기 위해 애쓰다가 독일로 건너가 철학을 공부하고 난 뒤에야 문학가가 되기로 결심했다고도 하고요. 그러면서 그가 숨어살다시피 하면서 쓰게 된 작품이 <닥터 지바고>라고 소개해 주더군요. 노벨상 수상소식이 오히려 그를 힘겹게 만들었다는 사실도 그때 처음 알았고요. 암튼 <닥터 지바고>를 언젠가는 꼭 한번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번에 작가님이 새로 번역한 책은 어떤 모습일지 무척 기대가 됩니다. 오랜 기간 번역하시느라 고생 많으셨고요.

참,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를 읽을 때, <학원세계문학전집> 판으로 나온 책의 앞부분에 붙어 있던 이런저런 그림들을 구경하다가 파스테르나크가 그렸다는 설명이 붙은 그림을 보고 깜짝 놀랐던 기억도 나네요. <바실리 공작과 엘렌의 댄스>라는 설명이 붙어 있었는데, 그 그림도 알고 봤더니 <닥터 지바고>를 쓴 파스테르나크가 아니라 화가였던 그의 아버지가 그린 그림이더군요.^^

푸른괭이 2019-01-26 09:57   좋아요 1 | URL
파스-크는 당대 최고의 문제적 작가 중 하나였습니다. ˝숨어살다시피 하면서˝ 정도가 아니고요, 사실상 유배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나마 덜(?) 찍혀서(혼자서 조용히 또라이짓 하니까 그냥 두라고-_-;;) 숙청 안 당한 거죠. 한 번 읽어볼 만한 소설입니다.

<학원...>이라니, 헐, 세월이 느껴집니다^^;
 

 

 

 

 

 

 

 

 

 

 

 

 

 

 

집중해서 쭉 읽지는 못하지만, 그때그때 읽는 부분마다 감동적이다. 무엇보다도 감동적인 것은 간결하고 힘있는, 접속사가 거의 없이 단어와 단어, 문장과 문장만으로 이어지며 훌륭한 맥락을 만들어는 그의 놀라운 문체이다. 그런데 그는 의사이고 그것도 내과나 정신과가 아닌 외과의, 심지어 중증외상센터에서 일하는 외과의다. 아, 솔직히, 근래에 읽은 어지간한 소설(들) 보다 낫다. 몇 군데 옮겨온다.

 

"필사적으로 피를 막아내는 속도와 피를 부어 넣는 속도의 합이 파열된 장기로부터 터져 나와 쏟아지는 피의 속도에 미치지 못할 때, 핏물 속에서 환자의 장기를 더듬던 내 손은 서늘해졌다. 차갑게 식은 피와 굳어가는 장기가 손끝에 느껴지면 사신이 환자를 데려갔음을 알았다."(2, 11)

 

*

 

"내과와 외과를 구분 짓는 이유가 무엇이든, 외과를 업으로 삼는 우리의 일상은 갈라지고 짓이겨진 살과 부서진 뼈와 장기들, 끊어진 신경과 어긋난 조직, 솟구치는 핏물 속에 있었다. 병원 밖으로 나갈 수 있는 날이 많지 않았다. 삶은 평범함과 거리가 멀었다. 그래도 나는 수술이 좋았고 수술방에 감도는 서늘한 감촉을 사랑했다."(1, 33)

 

*

 

"남자의 몸 안에는 이전에 받았던 큰 수술의 여파로 심한 유착이 남아 있었다. 복강 내 수많은 조직과 장기들은 다 엉겨 붙어 한 덩어리와도 같아 보였다. 복강 제일 얕은 곳에서 간 파열로 인한 피가, 쪼개진 간 조직 사이로 울컥거리며 뿜어져 올랐다. 환자의 피는 따뜻했다. 그것 하나가 그의 숨이 아직은 이상에 머물고 있음을 짐작케 했다. (...) 지루한 박리 수술이 끝나고 마침내 후복강까지 시야가 닿았을 때 나는 아연실색했다. 환자의 비장과 좌측 신장이 이미 적출되어 있었다." (1, 65)

 

수술 뒤 환자를 중환자실로 보낸 다음, 식사하는 장면, 이 챕터의 마지막인데, 이 정도면 소설작법 교본으로 써도 되겠다. 해맑은 어린아아와 사목하는(이런 표현 쓰나?) 목사의 대조. '나'(이국종)의 마지막 행위.   

 

그날 저녁 교직원 식당이 문을 당아 외래객 식당으로 갔다. 밥맛을 느낄 수 없었으나 그냥 먹었다. 지나가던 아이가 나를 보고 물었다.

- 밥 먹어요? 혼자?

아이의 눈은 맑았다. 나는 그냥 짧게 고개만 끄덕했다. 다시 숟가락을 들려 할 때 원목인 손덕식 목사가 다가와 프린트한 기도문을 주며 말하고 갔다.

- 제가 기도 많이 합니다.

나는 말없이 종이를 받아 식판 옆에 엎어두고 보지 않았다. (1, 68)

 

이런 부분 많지만, 읽으면서 울컥, 하는 대목.

 

"그는 예비역 해병이자 취업 준비생이었다. 아르바이트로 오토바이 배달을 하던 중에 사고를 당했다고 했다. 한쪽 다리를 잃었고 인공항문까지 달았다. 20대 청년이 받아들이기에는 지독한 현실이었다. 그러나 그는 오래 괴로워하지 ㅇ낳았다. 좌절하는 대신 살아있음으로 가질 수 있는 나머지 가능성이 집중했다. 그 긍정이 놀라웠다. 그런 삶의 태도는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를 보며 나는 부끄러웠다."(1, 76) "얼마 뒤 그 환자는 국내 굴지의 대기업에 입사했다는 소식을 알려왔다."(1, 77)

 

 조직폭력배, "밤거리의 주먹들"을 수술하는 부분.

 

"나는 그들이 가진 적의의 근원을 알 수 없었고, 폭력과 살인의 명분도 이해하지 못했다."(79-80)

"정상적으로 흘러가는 피의 박동을 느끼면서 나는 젊은 생명의 강한 힘을 확인했다. 죽어가는 환자를 포기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나는 내 손끝에서 사람의 생사가 갈린다는 사실을 느낄 때마다 그 무게감에 짓눌렸다."(84-85) 

 

*

 

 

 

 

 

 

 

 

 

 

 

 

 

 

 

외과의사의 이런 체험을 생생하게 담은 소설로 불가코프의 초기 소설을 소개한 적이 있다. 모의대 특강에서도 읽었는데, 이국종의 책을 보니 참 무의미하다 싶다. 그때 나왔더라면 같이 읽었을 텐데.

 

 

 

 

 

 

 

 

 

 

 

 

 

 

우라사와 나오키 <몬스터> 속의 외과의사 닥터 덴마.(일본 만화라, 일본인으로 설정^^;)

- 선생의 손은 사람을 죽이는 손이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손입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요한이, 자기를 죽이려고 하는 덴마에게 하는 말이다. 덴마는 결국 요한을 못 죽인다, 오히려 다시 살려낸다. 외과의, 이 surgeon의  손은 참 신비로운 것이다. 그래서 더 매혹적인지도 모르겠다. 손에 든 메스만큼이나 붓-펜을 잘 휘두르다니, 거참.

 

 

 

*

 

 

 

 

 

 

 

 

 

 

 

 

 

 

 

 

루쉰 역시 원래 일본 유학을 갈 때는 의학도였는데 돌아올 때는 작가-사상가가 되어 있었다. 사람 몸을 고치는 것보다 머리를 고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에서였다고, 그 스스로 밝힌 바 있다. 이른바 환등기 사건. 음, 그 머리 역시 실은 몸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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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라는 동물은 태어나면 1년 안팎으로 걷는다. 2년 안팎으로 말을 한다. 여기까지는 대략 자연법칙이 정한 발달의 과정을 따른다. 우리가 어릴 때부터 배워왔거니와, '동물-사람'과 '인간-사람'의 차별점은 그 다음부터이다. 언제 글을 배우는가. 읽고 쓰기의 문제. 요즘은 대략 대여섯 살에는 어지간히 한글을 읽는 것 같고(하다못해 통글자라도) 초등 입학을 전후하여 몇 자씩은 다 쓴다. 1-2학년 때는 받아쓰기가 가능하다. 어지간하면 70점 이상은 받는 듯하다. 여기서 막히는 아이는 문제 있다.  

 

그 다음 단계는 무엇인가. 바로 글쓰기이다. 받아쓰기가 아니라 '작문'. 문장, 문단을 만들어야 한다. 이 문단이 나름으로 하나의 완결된 텍스트가 되어야 한다. 두 세 문장도 하나의 문단, 텍스트가 된다. 그 완성도는 육하원칙이 얼마나 잘 지켜졌는가에, 우선, 달려 있다. 문체고 나발이고 나중의 문제이고, 우선은 '누가 무엇을 언제 어디서 왜 어떻게' 했느냐가 표현되어야 한다. 판사의 판결문(가령 세간에 공개된 탄핵문을 떠올려보자)에서도 이게 제일(심지어 이것만!) 중요하다. 이쪽, 즉 법학자, 역사학자, 인문학자 등등이야 원래 문과생이니 당연히 노력해야하고, 이른바 이과생들의 글쓰기는 어떤가. <의학 세계사>를 읽으며 드는 생각이다.

 

 

 

 

 

 

 

 

 

 

 

 

 

 

'마태우스'라는 필명(?)은 익히 알던 터. 그의 재미있는, 심지어 기상천외하다고 생각한 전공(기생충학)도 익히 알던 터. 하지만 책을 읽는 건 처음이다. 재미있고 유익하다. 우리에게 의학은 항상 현실, 현재인데(당장 나를, 나의 아이를 낫게 해줘!) 그것에 역사가 있음을 미처 생각지 못했다. 아주 옛날로 거슬러가 고대이집트, 아랍, 중국, 인도 등 흥미로운 일화, 지식이 많다.

 

특히, 히포크라테스. '의사'의 사실상 첫 윤리로서 '환자의 비밀을 지켜줄 것!'을 언급했다니 놀라운 대목이다. 뇌전증(간질) 역시 소위 '신/악마 들림'이 아닌 자연(몸)의 한 현상으로 접근했다는 것, 역시 한 분야의 원조가 될만한 인물이었던 것. 한데, 많은 천재들, 위인들의 업적과 더불어 꼭 언급되어야 하는 것이 '기록 여부(유무)'이다. 써놓지 않으면 아무도 모른다..ㅠ.ㅠ 시간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괴물인지 알겠는 요즘, 정말 좀 써라! 써야지만 시간을 이길 수 있다. 가령 저 히포-스는(하다못해 측근이라도) 심지어 썼다, 쓰기도 했다.

 

 

 

 

 

 

 

 

 

 

 

 

 

 

 

 

 

 

 

 

 

 

 

 

 

 

 

 

 

 

우리 같은 평민은 접근할 수 없는 의학의 분야. 이렇게 좀 써주시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 비단 의학 뿐이랴. 물리학, 화학, 수학, 생물학 등 다 그렇다. 하다못해 경제학도 문과의 학문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글쎄, <21세기 자본>을 읽으려다 포기했다, 너무 어려워서-_-;; 이미지를 중구난방으로 갖고 왔는데, 핵심인즉, 다 썼다는 것이다. 뉴튼도 다윈도 호킹도. <수학이 필요한 순간>의 서문인가 '수학을 하는 자는 많지만 수학을(-에 대해) 쓰는 자는 적다(없다)' 하는 식의 문장이 나온다. 바로 이 대목. 왜 그런지.

 

원초적인 대목이지만, 바로 글쓰기(-**에 대해 말하기)가 어렵기 때문, 또 귀찮기 때문이다.(다들 살지만 사는 것에 대해 말하는-쓰는 자는 적다.) 나이 들수록 느끼지만 귀찮은 것과 어려운 것이 은근히 동의어다. 굳이 필요 없어 안 하다 보니 귀찮고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에는 하기가 어렵고 숫제 불가능해진다. 그리고 불가능한 것은 다시 동어반복으로 불필요한 것이 된다. 내가 이 나이에(혹은 이 자리에서) 굳이... 이런 식. 그럼에도 이렇게 꾸준히 좋은 저작들이 나오는 것은 참 고맙고 고무적이다. 따라 읽기가 벅차, 그것이 좀 아쉬울 따름이다. <파우스트 박사의 오류>의 주인공도 원래 수학자로 구상했는데, 도무지 수학 공부를 할 수가 없어 말이다...ㅠ.ㅠ (아침에 아이가 소수가 뭔지 묻는데 이것도 제대로 설명을 못하겠더라는 ㅠ.ㅠ)

 

다시 의학 세계사. 책 제목을 보고 기대한 것은 좀 쉽게 풀어쓴 이론서 혹은 교양서였는데, 내용의 일부가 이야기 형식이다. 요즘 아이들이 많이 보는 교양 만화의 느낌. 나는 이것이 좀 마음에 안 들었다. 차라리 시종일관 지식-정보 전달 형식(실제로 많은 부분이 이렇게 기술되었다)으로 되어 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고, 작가의 이른바 '-끼'는... 소설로 풀어보시면 어떠실지.^^; 의학 소설 역시 전문가만이 쓸 수 있는 장르이니 말이다. 이 점에서, 잘 읽히는 훌륭한 연구서, 교양서의 전범은 역시나 유발 하라리.

 

 

 

 

 

 

 

 

 

 

 

 

 

 

 

 

*

 

- "어제도 안 썼다, 시작!"

- "일기 쓰기 싫은데? 작문하는 거 싫어...ㅠ.ㅠ"  

- "글을 쓸 줄 알아야지! 자기가 하고 싶은 말 하고 친구한테 카드나 편지도 쓰고... 굳이 소설이나 연구서를 쓸 필요는 없지만..."

뭔가 알아듣는 것도 같고 마지 못해 가서 쓴 일기인즉, 겨우 두 줄에다가....

 

"오늘 자유선택활동 시간에 아무튼 병원 놀이를 했다. 재미있었다."   

 

여기서 압권은 '아무튼'이라는 말. 얼마나 쓰기 싫으면!(ㅋㅋㅋ) 부사냐, 접속사냐, 아무튼. 보다시피 작문 실력이 거의 향상되지 않고 있다. 그래서 더더욱 꾸준히 할 필요가 있다. 어제는 줄넘기 수업을 너무 잘 하고 와서(아, 진작 시도해볼 걸!) 쉬었지만 오늘은 꼭 강제하려고 한다. 쓰지 않아도 우리는 얼마든지 잘 살 수 있기 때문에, 더더욱 써야, 쓰는 훈련을 해야 하는 것이다.

 

*

 

 

 

шиповник финский залив. 쉬포브니크, 핀란드 만. 이렇게 검색했더니 떴다. 6월이란다. 대학 시절에는 사전에 쓰인 대로 '들장미'라고 외운 단어. 심지어 상징주의 계열 그룹 중 '들장미파'도 있어서 굉장히 고급한(?) 느낌의 꽃인줄 알았는데 바닷가에서 거친 해풍을 맞고 피는, 저런 들꽃의 모습이다. 화려해도 들꽃(야생화)은 들꽃. 우리말 역어는 '해당화'가 맞다. 실제로 서해안에 초여름(늦봄)에 많이 피는 것으로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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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재작년인가, 계절 수업에서 한 학생이 '나'를 대상으로 소설(초고)을 썼다. '헐'이라는 말을 참을 수 없는 순간이었다. 나 말고도 나를 미적(글의) 대상으로 삼는 자가 있다니. 나름 당혹스러운, 그러나 신선한 경험이었다.

 

시선은 권력이다. 사람을, 사물을 보고 그릴(쓸) 때 나는 권력자다.

사진 찍힐 때는 어떤가. 오랜만에 당혹스러운, 그러나 신선한 경험을 해보았다. 맞아, 이런 것이었지. 왕년에는 잘 나갔다고.

 

이렇게 화보 수준으로 많이 찍어야 하는 지면인 줄 알았으면 (솔직히 너무 부담스러워, 또 - 시간 맞추기도 힘들어) 안 갔을 것을, 일단 원고도 쓴 다음이라 가서 찍게 되었다. 몇 컷 올려본다.

 

(나는 얼굴의 정면이 나오는 것을 좋아한다.)

 

(구도와 배경은 좋았는데 '오브제'가 망쳤다.) 

 

  (전신컷은 싫어하지만 잘 나왔다. 내 마음에 드는 나의 익숙한 표정이다.)

 

(예쁜 배경에 비해 조금은 아쉬운 컷들.)

 

 

(책과 사람보다 빛이 좋다. 나에게 저런 표정도 있구나, 싶은 사진.)

 

 (나를 대상으로 사진을 찍어주는 자가 없어진 지 오래라, 이런 사진 건지기(!) 참 쉽지 않다. 어깨를 좀 내려야, 허리를 세워야 디스크가 심해지지 않을 텐데.)

 

*

 

의도하지 않았으나 내가 갖고 간 책이 제일 훌륭한 소품이 되었다. 이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나의 가장 예쁜 모습은, 파마도 염색도 하지 않은 원래 나의 머리를 단발로 자르고 흰색 셔츠 블라우스에 약간 짙은색 청바지, 트렌치코트를 입고 사시사철 감기를 예방할 머플러를 두른 모습이다. 날씨가 추워서 두툼한 스웨터에 패딩 입고 가야했지만 사진을 찍으려고 무리를 했다. 그래도 고생한 보람이 있어, 한 몇 년은 쭉 쓸 수 있겠다.

 

그럼 이제 문제는...

 

소설을 쓰는 것이지,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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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삼스럽지만, 모차르트에 대한 글을 읽으며 이 고색창연한 낭만적 단어를 생각한다. 천재. 역사 속의 그는 분명히 천재였지만, 물론 살아서도 그 수식어를 별명처럼 달고 살았지만 확실히 생존시 생활 속에서 부딪치는 그 단어의 느낌은 사뭇 달랐을 터이다. 우선 생김새. 정말 그냥 흔해빠진, 어쩌면 평균에 못 미치는 아저씨. 또한 달리 말하면, 모차르트-천재가 아니라면 전혀 문제 없을 그런 평범한 아저씨. (흡사 우리가 나폴레옹을 무슨 땅콩쯤으로 생각하는 것과 비슷한데, 그는 사실상 평균 신장이었다고 한다.) 그 다음 성격. 글쎄, 개차반은 아니었을 테고, 좀 경박했을까. 이 역시 '평범-일반'의 수식어에 부합할 것 같다. 워낙 '신동', 요즘 같으면 '영재'였던 것인데, 음악(피아노 연주, 작곡)에 몰입할 때 이외의 그의 모습은 전형적인 그 나이 또래 꼬마의 모습이었다고. 그랬을 테지.

 

문제는 성장. 마의 16세던가, 아무튼 여러 위험 요소에도 불구하고 성장기를 무사히 넘기는 데 성공한 것 같다. 즉, 그를 협박하는, 동시에 돈을 대주는 귀족들, 대략 그런 부류와 다름 없는 구세대(부모), 무엇보다도, 그 자신의 음악적 재능의 흐름에 있어서의 일련의 변덕, 굴곡 등. 특히, 그의 아버지. 어린 아들의 재능을 알아보고 그것을 키워준 것은 전적으로 아비였다. 나는 그가 그저 업계종사자 정도인 줄 알았는데, (하이든 작곡으로 알려진) <장난감 고향곡>을 작곡한 인물이라니. 헐, 모차르트 역시 '핵금수저', 유전자 부자였던 것이다!(피카소의 아버지 역시 화가, 미술 선생이었다고 한다.) 

 

아이가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이 기존 어른의 세계로부터 탈출해야 하는데, 여기서 성공. 그리고 결혼도 한다. 흔히 우리가 세계 3대 악처라고 부르는 콘스탄체는, 천만의 말씀, 너무 사랑스러운 아내였다. 저 책에 이런 편지가 인용된다. 

 

너무나도 예쁘고 사랑스러운 당신의 작은 보금자리를 깨끗하게 준비해둬. 내 귀여운 장난꾸러기는 사실 그런 대접을 받을 자격이 있으니까. 녀석은 아주 훌륭하게 처신하고 있어. 당신의 매혹적인 (    )을 소유하고 싶은 것 외엔 다른 희망이 없지. 내가 이 편지를 쓰는 동안 탁자 위에서 꿈틀거리면서 내가 질문을 해대는 그 악동을 생각해봐. 솔직히 말하면 나는 녀석을 손가락으로 튕겨주고는 해. 하지만 그 녀석은 그저 (   )할 뿐이야. 이제 그 못된 녀석은 더 뜨거워져서 통제할 수가 없어.(<주경철의 유럽인 이야기>3)

 

처음엔 축자적으로 읽었는데, 밑에 저자가 써놓은 글을 보가 다시 읽었다. 헐, 엄청 야한 얘기였구나. 괄호 부분은, 훗날 모차르트 전기 작가이기도 한, 공교롭게도 콘스탄체의 두 번째 남편이 된 자가 지워 놓은 부분이라고. 비슷하게, 도-키의 두 번째 아내도, 도-키가 첫번째 아내에게 쓴 편지 중 일부를 열씸~히 지웠다. 거참, 죽은 배우자까지도 질투하는 그런 사랑이라니, 부럽다.

 

10년 동안의 결혼 생활에서 콘스탄체는 여섯 명의 아이를 낳았다. 그 중 성년에 이른 아이는 둘 뿐이지만, 어쨌거나 그들은 알콩달콩, 티격태격, 옥신각신 좋은 부부였다. 아내와 아이를 사랑해도 "씀씀이가 헤픈" 건  어쩔 수 없었던 것 같다. 도박도 마찬가지. 쓰면 쓸수록 어쩜 도-키와 이렇게 비슷한지. 모차르트가 급사할 때도(진짜 돼지고기 식중독이었는지) 그의 옆을 지킨 건 막 출산한 콘스탄체였다.

 

 

 

 

 

 

 

 

 

 

 

 

 

 

 

 

 

그 다음 교우 관계, 특히 살리에르. 그가 모-트의 재능을 질투하여 사십대 중반의 그에게 <레퀴엠> 작곡을 의뢰, 과로사를 유도했다는 식의 얘기는 진짜 사실무근인 것 같다.  이 스토리는 <아마데우스>라는 영화를 통해 잘 알려졌지만, 원작은 푸시킨은 <모차르트와 살리에르>(소비극)이다. 푸시킨도 말하자면 모-트형 천재였는데 은근히, 자기를 여기에 빗댄 듯하다. 그 다음, 여기에 기반한(그런 것으로 나는 아는데) 피터 셰퍼의 저 희곡이다. 오히려 그는 멀쩡한 인격의 소유자였고 사실상 유복자나 다름없는 모차르트 아들의 음악 교육에도 관여한다. 물론 그 아들은 아버지 같은 음악가로는 자라지 못한다.  

 

주경철의 책에서 새로 알게 된 것, 혹은 새로운 해석. 당시 살리에는 상당히 잘 나가는 작곡가였다. 심지어 모-트와의 이른바 '작곡 배틀'에서 더 많은 돈을 받을 정도로 더 인정받은 측면도 있었다. 요컨대 음악적 재능 때문에 모-트를 저렇게 질투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아, 싶은 대목이었다. 동일자끼리 알아본다, 라는 것. 차라리 모-트의 선배인 하이든은 모-트를 질투했을 수 있을 것이다. 그 넘을 수 없는 산이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역사의 평가를 참조한다면, 살리에르는 모-트의 재능을 알아볼 만한 눈/귀조차 갖고 있지 않았을 법하다. 새삼, '질투는 나의 힘'이라는 기형도의 시구가 떠오른다.

 

 

 

 

 

 

 

 

 

 

 

 

 

(자유로운 지식인의 밥벌이 문제는 실은 훨씬 이전부터 있었겠으나.)  

 

18세기, 세계는 변하고 있다. 귀족(궁정)의 하수(이른바 후원-패트로니지 시스템)로 살지, 아니면 곧이어 베토벤이 보여줄 굶주린, 그러나 자유로운 예술가로 살지. 모차르트가 그 중간에 있었다는 점이 의미심장하다. 시대는 많이 다르지만, 나와 내 주변의 '프리랜서들' 역시 자주 생각하는 대목. 자유는 좋지만 배가 고프고, 배도 채우고 내 맘대로 쓰려면 귀족(^^;)보다 더 무서운 대중을 만족시켜야 한다. 즉, 책이 팔려야 한다. 참 냉혹한 현실인데 이걸 무시하고는 천재성이고 나발이고 없음을 명심해야 한다. 모차르트는 돈도 많이 벌었고 그 아버지가 놀랄 정도의 사업 수완도 있었다. 문학계의 셰익스피어, 괴테랄까. 

 

요컨대 천재성이 여러 병리적인(각종 정신질환) 요소를 정당화주지 않는다. 천재는 다 미친놈이었을 것 같은가? 그랬으면 좋겠지. 하지만 이것이야말로 범인들의 속된 바람일 뿐, 천재는 생활인으로서는 그냥 생활인(심지어 더 뛰어난)이고 그리고 자기 분야에서는 천재인 것이다. 세상 참 불공평한 것이다. 그러니 빌 게이츠의 말이던가, "사람은 다 다르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데 익숙해져라."

 

*

 

"다들 ‘돼지’라고 하면 살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돼지 다리가 짧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돼지에 개 정도의 다리만 달아줘도 비대해 보이지 않는다. 다리가 짧으니까 몸집이 뚱보로 보인다. 시점을 바꿔 보면 대상이 달라진다. 이미 일어난 과거를 알려면 검색하고, 현재 일어나고 있는 것을 알려면 사색하고, 미래를 알려면 탐색하라. 검색은 컴퓨터 기술로, 사색은 명상으로, 탐색은 모험심으로 한다. 이 삼색을 통합할 때 젊음의 삶은 변한다.”
([출처: 중앙일보] “암 걸리고 나니 오늘 하루가 전부 꽃 예쁜 줄 알겠다”)

 

이어령 선생의 최신 인터뷰 기사를 반복해서 읽는다. 중학교 때 국어선생님이 극찬하시던 분인데, 참 왜 이어령인 줄 알겠다. 어떤 주제를 들이대도 귀 기울일 만한 말을 쏟아내는 자, 새로움과 젊음에 대한 열린 태도(안티-꼰대의 전형이랄까), 그리고 무슨 말을 해도 어쩜 저렇게 운이 잘 맞는지. 저건 단순히 문체나 기법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관, 사람 자체의 문제이다. 검색, 사색, 탐색. 비교적 최근에 그가 쓴 이상에 관한 논문(에세이)를 어느 모음집에서 읽었다. 너무 현학적이고 시건방지고(?) 저돌적이어서 좀 놀랐는데, 무려 대학교 1학년(?)인가에 쓴 글... 역시 천재ㅠ.ㅠ

 

어릴 때 천재인 아이는 많아도, 가령 모차르트처럼 죽을 때도 천재인 사람은 잘 없다.(주변에 영재는 왜 이리 많은지, 그냥 '겨우' 상위 2~3프로니까 많은 게 당연할 지도^^;) "젊은이는 늙고 늙은이는 죽는다."(?) 잘 늙는 일이 참 힘들다. 

 

'소설적 스트레스'에 시달리다가 좀 끄적여 보았다. 나한테도 재능을 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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