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시 27분이지만 '늦은밤'이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다. 아파서 일찍 잠든 아이 옆에서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보다가 저 말에 머물렀다. 도-키가 떠올랐다. 인간의 다면성이란. 인간이란 넓다, 너무 넓어서 차라리 축소시켰으면 좋겠다, 소돔의 구덩이에 빠져 있을 때도(그때야 말로!) 더더욱 마돈나의 이상을 불태운다, 신과 악마가 싸우는데 그 전쟁터가 바로 인간의 마음이다 등등. <카라마조프...>의 드미트리의 말이다. 누구에게나 이런 인생의 소설이 있지만, '그럴 사람 아니다'라는 말을 보며 다시 한 번 떠올린다.

 

 

 

 

 

 

 

 

 

 

 

 

 

(나의 은사님의 번역이 내 번역보다는 업그레이드 되었으리라 생각된다. 오역도 아마 잡아주셨을 테고. - 내 번역엔 오역이 없다, 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은 번역할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번역은 해석과 판단의 문제인 경우도 있어 더더욱 그렇다.)

 

드미트리가 인간의 '넓음'(모순)을 논할 때는 '공시성'에 집중했던 것 같다. 자, 여기에 '시간'을, 그 무서운 괴물을 덧붙여 보자. 통시성. 그 관점에서 (한) 인간을 본다면, '그럴 사람 아니다'라는 말 자체가 모순형용임을 알 수 있다. 한 살 아기, 열살 소년소녀, 스무살 청년, 서른살 처녀총각, 마흔살 아줌마 아저씨 등등. 말쑥한 변호사에 청와대 **가 된 선배의 모습에서, 오래 전 줄 담배 피우던 문학청년의 모습을 찾기 힘들듯(전자가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 '비에 젖은 단발 머리 곱게 빗은 그 소녀'는 이미 이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존재하는 것은 그 시절에 대한 우리의 그리움이려나. 혹은 그 가치(-를 담보한 사람)를 공유했던 과거의 내 모습이려나.

 

아마 다 진실이리라. 수더분한 인권 변호사, 착한 청장년, 노회한 정치인 등등. 하지만 그 반대도 또한 진실이리라. 연애 감정이 있었든 어쨌든 그것을 '폭력'이라 느낀 사람이 있다면 일정 부분 폭력이 있었다는 것 또한 진실이리라, 라는 얘기다. 아마 그를 좋아하고 존경하는 사람일 수록, 충격과 고통은 더 크리라 생각된다. 동시에, '그럼에도 - ' 이런 반동 역시 동반되지 않을지. 이건 '픽션'(=신화)을 만들려는, 그것이 없으면 안 되는 우리 인간의 본원적 속성이므로, 그의 자리에 박근혜를 갖다 놓아도 비슷할 법하다.  (저 불쌍한 것, 엄마 아빠 다 사고로 잃고 시집도 못 가고 나를 위해서 운운...) 

 

 

 

 

 

 

 

 

 

 

 

 

 

 

 

여러 정황상, 서로 짝패처럼 여겨지는 박상영과 김봉곤 중, 나는 이상하게도, 전자는 아주 재미있고 감동적인 데 반해 후자는 너무 안 읽혀 돈만 낭비한 셈이 되어 버렸다. 수업에서 다루기도 했지만, 너무 날 것의 느낌이 불편했다. 20여년 전, 누군가에게 내 소설이 그랬을 수도. 하지만 나는 워낙에 6천부 팔린 작가라^^; '물의'와 '추문'의 대상이 될 만한 영광도^^; 누리지 못했다. 센세이션, 스캔들. 아, 요즘은 이런 것도 문제가 될 수 있겠구나 싶다.  지난 봄/여름에 문제의 그 소설을 읽었으나, 그냥 독자일 뿐인 나는 그 'C누나'도 그냥 저냥 읽고 넘겼다. 현실 속의 그가 '폭력'을 느낀다면 그 역시도 폭력일 수 있겠다 싶기도 하다. 다른 한편으론, 두 사람 사이에서 적절히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원고를 보여줄 때) 이렇게 커진 이유는 무엇일까, 생각해본다. 

 

사회성은 발달의 시작과 끝.

우리의 성장과 발달은 사회성(눈맞춤, 호명 반응, 감정 교류, 의사소통)에서 시작하여 사회성으로 끝난다. 두 번째 사회성의 경우, 상상력, 추상력, 이런 것도 들어가겠다. 일면식도 없는 장하준, 유시민, 유현준, 김영하 등등의 책이나 방송, 강의, 토론 등을 자주, 그러나 짬짬이 찾아 듣고(보고) 교감한다. 이런 건 일방향 사회성이라 편하다. 하지만 쌍방향(오, ZOOM!) 사회성은 다르다. 과연, 접촉과 오류는 불가피하다.

 

다시 <카라마조프.> 드미트리의 떠들썩한 모크로예 술판에 동참했던 젊은 지주. 그는 완전히 엑스트라인데, 드미트리가 체포되었을 때 절규한다. 아, 정말 사람이란! 사람을 알 수가, 믿을 수가 없구나! 화자는 덧붙인다. 그는 드미트리가 진범이라고 확고히 믿었다, 라고. 아주 사소한 디테일이지만, 역시 대가답게, 살면서 자주 떠오르는 대목이다. 그는 (아마 이름이 막시모프??) 드미트리를 좋아했지만, 동시에, 드미트리가 표도르를 죽였다고 믿었고, 동시에, 자기가 믿은 그 사실(실은 그런데 이것이 거짓이다!) 때문에 통탄한다.

 

다시, 그럴 사람 아니다.

항암 중인 아비를 보면,  전혀 다른 맥락에서, 또 이런 말을 생각한다. 하, 저런 양반이 아닌데. 그러니까, 우리는 항상, 그럴 사람이 아니다, 그럴 수 있다. 특히 과거의 나, 미래의 나와 비교해 보면.

 

생각할 수록 머리가 복잡해지는데, 노년의 톨스토이는 이 문제에 굉장히 심플!하게 접근한다. 체급별로 다 잘 싸우는 당신은 정녕 천재.

 

 

 

 

 

 

 

 

 

 

 

 

 

 

한 자 한 자 원어로 읽어가면서 (주로 아이에 의해, 또 일정 부분 아빠와 두 동생에 의해 유발되는) 내 안의 불안과 공포와 우울에 '항-'을 넣는 중이다. 항암, 항생, 항바이러스, 항우울, 항전간 등. antibiotics, 抗生劑. 하나만  찾아보니 이렇다. 아, 부작용이 있어도 좋다, 제발 작용이라도 멀쩡하게, 어엿하게 좀 있어다오, 이 말이다. 작용이 작용하면 '싸이드' 작용 쯤이냐 기꺼이 감수하겠다. 어떤 질환이든 다들 비슷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싶다. 이 역시 조만간 체념하게 되겠지만 -.

 

 

 

 

 

 

 

 

 

 

 

 

 

 

 

과학, 의학에 거는 기대랄까, 지푸라기 잡는 심정의 절박함이랄까, 이런 건 어쩔 수 없는 듯하다. 사실 저출산이 그렇게 비극인가, 그렇게 생각하는가, 이 지구상에 호모 사피엔스가 너무 많지 않은가.(by 유시민) 여사여사 책을 좀 정치하게 읽고 생각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 라는 생각에 논문을 쓰자. 더불어, 이번 학기에 급증한, 하지만 전혀 해소하지 못한 SF에 관한 관심을 내년 쯤에는 어떻게 해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책을 모아보고(-만) 있다.

 

 

 

 

 

 

 

 

 

 

 

 

 

 

 

 

 

 

 

 

 

 

 

 

 

 

 

 

 

 

자료가 너무 많아 이미지를 긁어오기 힘들 정도. 차분한 호흡으로 가자. 오늘은 아주 질 좋은 삼계탕을 먹었다. 내일도 살아 있어야 - 그럴 사람이 아닐 수도 있고 그럴 사람일 수도 있고 - 아무튼, 좌우지간 살아 있어야...

 

cf. 백낙청 선생님 이름 오랜만에 들어본다(... 스무 살이나 많은 내가 당신의 장례를... 이럴 줄 몰랐다, 라는 식의 말씀), 겸사겸사 그의 장남 블로그도, 이웃 동네 마실 가듯, 구경간다, 너무 다른 삶의 양상, 그 대조가 거의 미학 수준이다, 라는 생각이 든다.

 

 

 

 

 

 

 

 

 

 

 

 

 

 

 

 

 

주저리주저리 썼는데, 쓰는 행위가 지닌 '항-'의 효과를 실감한다. 오토픽션, 이라고? 글쎄, 사소설과 크게 다르지 않게 여겨지는데, 별로 중요하지 않다. 본질적인 것은, 읽을 만한, 훌륭한 언어적 구조물을 만드는 것이다.(가령 위에서 가져온 책들.) 이제 자야지. - 모두 안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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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20-07-16 1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김봉곤의 날것 ! 맞습니다. 저도 김봉곤 읽으면서 ˝ 날것 ˝ 이란 생각이 들어 거부감이 들더군요. 문학이란 게 날것을 요리를 해서 익힌 것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믿는 저에게는 그냥 날것만 덜렁 내놓고는 먹어라, 라고 하니 거부감이 들더군요..

푸른괭이 2020-07-16 10:42   좋아요 1 | URL
하지만 그걸 돈주고 살 만큼 좋아하는 독자들이 있으니까, 그들의 취향도 존중받아야 된다고 생각해요. 저는 그의 글 자체가 별로 마음에 안 들더라고요-_-;; 저렇게 마구 쓰는데도 인기가 있다니ㅠㅠ 그래서 이번 소설집은 아예 안 샀어요.

아무리 그래도 창비, 문동 보이콧까지 ㅠㅠ 가뜩이나 파리 날리는 게 문학판인데, 다들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아요 ㅠㅠ 모두 너무 에너지가 넘치는 듯^^;;
 

 

 

 

검정 고무신

 

 

 

 

1.

 

아이의 비명을 듣고 잠에서 깼다.

 

고요한 어둠을 덮은 채 

아이는 새근새근 잘 자고 있었다.

한 땀, 두 땀, 세 땀 무한대로 솟는 땀에

아이의 정수리가 흠뻑 젖었다  

 

그 옆에서 아내가 이를 악문 채, 눈을 질끈 감은 채,

아니, 눈을 부릅 뜬 채, 주먹을 불끈 쥔 채 

경련과 발작 중이었다. 아내의 몸은 불타고 있었다, 

산불 맞은 늦가을 낙엽처럼.

 

 

 

2.

 

남편의 꿈이 복기되는 동안

방울 토마토를 심어놓은 텃밭에다

버려진 고구마가 터전을 마련했다. 

너를 키워야 하나 뽑아야 하나

 

오덕아, 원기소 먹자!

땡구야, 카스테라 왔다!  

기영아, 만두 찐빵 먹을래?

 

 

*

 

 

 

 

고구마는 그냥 여기저기 던져놓은 것인데 너무 무성해져서 가위로 순을, 가지를 잘라내지 않으면 안 될 정도다. 전지. 한편, 저놈의 씨몽키는 진짜 엽기. 무슨 가루(?)인가를 뿌렸는데 저렇게 '부화'되어 '살고' 있다. 하. 저것도 생명!!! 마트에서 온 생명이다. 저 비좁은 수조 안에서도 세상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

 

 

동물과 식물의 한 살이. 태어나서 자라고 자손을(!) 낳기 까지의 과정. 자손 안 낳으면 '한살이'를 제대로 못한 것이다. 흑, 이번 생은 여기까지! 하고 죽은 애벌레도 있고 번데기가 되었다가 나비가 되는 배추흰나비도 있다. 다 큰 애벌레는 최대 30mm. 1학기, 즉 상반기가 어떻게 갔는지 모르겠는 판에 아이는 2학기 교과서를 들고 온다.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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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이런 책들을 훑었다, 읽었다고 할만한 것도 있다.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를 읽기 위해서였다. 이 책인데, 번역이 조금 갱신되면 좋겠다는 아쉬움이 있다. 소설이 짧아서 작업에 큰 시간이 걸리진 않을 텐데.

 

 

 

 

 

 

 

 

 

 

 

 

 

 

 

 

러시아문학도 번역이 많이 되어 있다. 그런데도 제대로 안 읽다니^^; 이런 책들이 러시아 수용소 문학으로 대략 꼽히는 모양이다. 바실리 그로스만의 책도 있는데, 나는 읽지 못했고, 번역도 없고, 아마 번역되어도 안 읽기 쉽겠다.

 

 

 

 

 

 

 

 

 

 

 

 

 

 

이들 중 최근에 읽고 독자로서 가장 감동 받은 것은 빅터 프랭클 책이다. 처음 듣고(아, 무식?) 처음 읽는 작가라서 그렇기도 할 테지만, 문체가 담백하고, 무엇보다도, 이런 유의 문학(홀로코스트)에 항상 있는 '늪'이 여기는 없다. 그가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과연 '로고테라피'가 효과가 있구나, 싶은 대목이다. 결국 자살하고 만 프리모 레비와는 사뭇 다르다. 레비는 완독 못했다, 읽어나가기 힘들었다. 반면, 프랭클은 '읽히는' 것에 대해 쓴다. 읽을 만하고 참을 만하다.

 

"세상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도 있다니!"(?) 언제 죽을지 모르는 수용소에 강제 노역을 하다가 저녁 노을에, 자연 풍경에 감동하는 것, 역시 이것이 인간이다!

 

러시아 수용소 문학의 연원은, 놀라운가, 역시나 도스토예프스키다. '문학'이라기에는 너무나 자료집, 르뽀에 가까운 체호프의 <사할린 섬>은, 그러나, <6호실>, <구셉>과 같은 걸작의 에뛰드라고 볼 수 있다. 아, 작가는 부지런해야!

 

 

 

 

 

 

 

 

 

 

 

 

 

 

 

다시 도-키. 서론에만 잠깐 언급되지만, 확실히 그에 맞먹을 만한 작가는 톨스토이(그리고 약간은 체호프) 밖에 없는 것 같다. 이 책은 겨우 2부작이다. 얼마든지 더 쓸 수 있었겠지만, 확실히 이런 유의 '기록'(반쯤은 논픽션)보다는 소설, 픽션이 더 끌렸을 터.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그의 머릿속, 가슴속에서 터져나오길 바라고 있었을까. 나를 꺼내줘, 나를 써줘, 나를 소설로 만들어줘! 솔제니친에 대해 쓰다가, 엉뚱하게도, 다시금, 도스토옙스키의 위대함을 절감한다. 생긴 건 정말이지 도끼 자루 같은데 -_-;; 마침 <죄와 벌> 저 표지의 도끼가 생각나서, - 아무 의미 없는 비유다.

겸사겸사, 러시아문학 번역의 완벽한 세대 교체. 나-우리 역시 조만간 교체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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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아웃

 

 

스위치 끈 로봇처럼 가만히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이렇게

잠시만 

 

존재했다.   

 

 

________

 

* 스위치... : 장하준 경제학 강의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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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관적으로(4)

 

 

 

 

올 여름은 월요일이 유난히 빨리 온다

 

이번 월요일은 쉬는 월요일

다음 월요일은 맞는 월요일

이번 월요일은 입원, 이틀 뒤 퇴원

쉬는 월요일 다음은 또 맞는 월요일

 

도대체 몇 번을 맞아야 -

 

배가죽은 딱딱해졌는데도

배속으로는 밥이 들어가, 심지어

맛있다

 

아이들은 직관적으로, 라는 말을 좋아한다

다음 맞는 월요일은 또 직관적으로 -

논증 없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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