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없음

 

 

 

 

 

'제목'을 넣으라고 한다 떠오르는 제목이 없다

'무제'라고 쓰기 싫어 '제목 없음'이라고 쓴다

 

캐나다 설탕단풍나무 수액을 뽑아 시럽을 만들어요

에티오피아산 커피콩을 볶고 한국산 우유를 끓이고

아메리카 아프리카 아시아가 커피 한 잔에

메이플라떼를 타서 마셔 봐요

우울에 먹히지 않길, 불안에 잠식되지 않길

이 모든 것이 꿈인가 싶네요

무섬증과 어지럼증과 구토에 시달리지 않길

 

죽은 자가 돌아온다면 어떤 기분일까요

죽은지 사흘 후가 아니라 20년 후의 부활이라면

아내는 젊은 신부 남편은 대머리 중년

엄마는 어린 새댁 아들은 건장한 청년

 

기괴한 광경이군

이런 유의 부활에는 도무지 익숙해지지가 않아  

 

 

 

 

 

*

 

기괴한 광경이군/ 이런 유의 부활에는 도무지 익숙해지지가 않아. -> <솔라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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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아버지 비에 젖으신다




사랑하는 아버지 흘러내리신다 

일어설 때마다 어휴, 어휴

방바닥을, 벽을 짚으신다 

사랑하는 아버지 허우적거리신다

걸음을 뗄 때마다 지팡이를 흔드신다 

 

세상에 늙고 병드는 것만큼 슬픈 일이 또 있더냐

아무렴 있지요, 젊고 병드는 것, 어리고 병드는 것

 

사랑하는 아버지 비에 젖으신다

물에 잠기신다, 혼자 발톱을 깎지 못하신다  

 

 

*

 

 

어제 문득 떠오른 싯구, 역시 이성복이었구나 ㅠㅠ

 

 

 

 

 

 

 

 

 

 

 

 

 

 

 

 

- 이성복 / <또 비가 오면> "사랑하는 어머니 비에 젖으신다 /"사랑하는 어머니 물에 잠기신다"

내 기억에서는 '아버지'였는데 찾아보니 '어머니'였다. 청년 이성복은 주로 아버지는 욕하고 어머니(+누나)는 찬미한다, 그런가 보다^^; 암튼, 사십대에 더 많이 되살아나는 시, 읽긴 이십대에 읽었는데. 그대는 진정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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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의 희생

 

 

 

 

매정한 너한테 꼭 할 말이 있다

너 같은 놈은 우주로 보내면 안 돼

그곳은 모든 것이 연약하거든

깨지기 쉬운 것 투성이야

지구나 되니까 너 같은 매정한 놈을

받아주는 거다, 희생을 감수하면서

 

 

 

*

 

<솔라리스> 중 크리스의 아버지 대사 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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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본다(6) - 상록수

 

 

 

 

 

 

엄동설한에도 초록을 못 벗는 상록침엽수가 징그럽다

안쓰럽다, 저 초록은 결코 새로 돋지 못하는 것이더냐

 

세상에 죽어도 되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안 죽는 사람도 아무도 없다

 

이천칠백살 자이언트 세콰이어에게

그렇게 오래 살면 기분이 어때?

하고 묻지만, 돌아오는 건 묵묵부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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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본다(5) - 나무, 땡감, 도덕

 

 

 

 

 

아침에는 나무자세, 손을 위로 뻗고 태양경배까지 할 기세다

황혼녘이면 나비자세도 고달프고 제대로 송장자세도 버겁다 

앞마당 감나무는 밤에도 나무자세, 본디 나무니까, 땡감 달고

 

땡감을 소금물에 며칠 담가두면 땡감의 고유한 맛이 사라진다고 국어책에 적혀 있기에 

실행에 옮겼더니 정말로 땡감의 떫은 맛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으나 그 대신 소금물의

고유한 짠맛이 너무 그윽해져 도무지 먹을 수 없게 되었다. 짠 땡감, 내다 버릴 수밖에.

 

그렇다, 국어는 모호함과 애매함의 책이기에

견고함과 명석함과 판명함의 책이 필요하다

 

도덕과 윤리를 주세요, 자연과 과학을 주세요

앙상한 나무에 몇 안 남은 주황 땡감은, 까치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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