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쎄, '지적'이라기보다는 시건방지다, 발랄하다, 뭐 다른 수식어를 찾아볼 수도 있겠다. 아무튼 요즘은 밥벌이용 책 말고는, 소설책을 빠른 시일 내에 완독하는 일이 드문데, 아, 재미있었다. 소설 읽기의 즐거움, 이런 것이었구나.
기억을 아무리 뒤져봐도 아멜리 노통브 책을 읽는 게 없나 보다 싶다. 헐, 놀라워라. 이 소설은 그녀의 데뷔작인데, 이십대 작가다운 발랄하고 오만한 총기가 넘친다. '그 후'가 궁금해지기도 하는, 즉, 작가가 나이 들어가면서 어떻게 변할지 귀추가 주목되기도 한다.
내용 자체는 연골암, 이라는 희귀암에 걸린, 그래서 기고만장(^^;;) 한, 노벨상까지 받은 연로한(83세?) 작가가 두세번(?의 인터뷰를 한다. 첫 부분에서는 그냥(?) 지적인 소설, 소설에 대한 소설로 읽혔다. 그런데 인터뷰와 인터뷰이의 대화가 너무 재미있어, 사실 맛만 볼 생각이었는데, 책장이 계속 넘어가는 것이었다. 노작가는 무척 괴팍하고 냉소적인 엄청난 뚱보로서 많은 작품을 썼는데, 일부러(!) 미완성작 하나를 남겨놓는다. 아니, 일부러 미완성으로 발표한다. 이게 나름의 키워드.
마지막 인터뷰(기자는 '니나'라는 러시아식 이름을 갖고 있다)에서 드러나듯, 그 소설의 제목이 바로 <살인자의 건강법>. 동시에, 노작가의 유년(조실부모, 외가에서 성장, 외사촌 누이와의 미묘한 관계 등), 무엇보다도 살인과 방화 등이 얘기된다. 이 부분, 지나치게 신화적, 상징적인데, 너무 그래서 거의 판타지 같다. 롤리타 콤플렉스를 떠올리게 하는 대목. 신화적 공간 속의 소년 소녀처럼 사랑하는 사촌들, 그들은 성인이 되는 것을, 성장이 되는 것을 두려워해 독특한 '건강법'을 유지한다. 잠 안 자기(거의 두 시간만 잔다 ㅠ.ㅠ), 괴상한 음식만 먹기(가령 독은 없으되 얄궂는 버섯 등 - 왜 이리 사냐 ㅠ.ㅠ) 등등. 그러던 어느 여름날(년도까지 자세히 언급된다) 강가에서 수영을 하던 중 소년은 소녀가 초경을 시작한 것으로 발견, 그 자리에서(30분이라니, 헐) 소녀를 교살한다.
다시금 인터뷰. 결말은 익히 예상 가능한 대로, 니나가 노작가를 교살해주는 것으로 끝난다.
스토리도 재밌고 문체도 마음에 든다. 이런 천재성에도 불구하고 너무 작위적(=판타지)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는 없다. 분량 역시, 조금 더 발라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독자로서는 좀 있다. 이후에 그녀는 어떤 소설을 썼는지.
소설은 직접 읽어봐야 알 것이지만, 책 표지를 장식한 상당한 미모가 나이와 함께 양질전화되는 모습은 금방 확인된다. 중년이 돼도 '와쿠'는 남아 있다^^;; 그리고 저 레드립!
이 소설을 알게, 또 읽게 된 것은 어느 젊은 평론가 덕분인데, 김영하의 <살인자의 기억법> 얘기를 하던 중이었다. 최근 몇년간 읽은 (경)장편 중 제일 마음에 든 소설이다. 아멜리 노통브 소설을 읽은 뒤의 감상도 그렇다. 팔은 안으로 굽는 모양이다. 스토리도 훨씬 더 흥미진진하고(인물군도 다양하고 생기롭다) 정말 발라낼 것이 하나도 없을 만큼 딱 필요한 말, 필요한 문장만 쓰였다. 작가가 얼른 새로운 경장편 한 편을 더 써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