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몽(2)
1.
전깃불도 없는 산골짝, 장맛비가 쏟아진다. 날카롭고 들쑥날쑥한 산들의 틈새를 비집고 작은 집 한 채가 서 있다. 일곱 살 아이는 묵직한 부엌 문고리를 잡아당긴다. 시커먼 웅덩이가 괴물처럼 아가리를 벌린다. 아이는 조심조심 한 발을 내딛는다. 걸쭉한 흙탕물이 정강이를 휘감으며 곧 무릎을 집어삼킬 태세이다. 맨 살에 와 닿는 질척질척하고도 미끈미끈한 느낌에 소름이 돋는다. 아이는 잠시 고민한다. 들어갈까, 말까? 음습한 부엌을 살피던 시선이 어둠침침한 구석에 꽂힌다. 있다. 분명히 있음에도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뭔가. 침처럼 질질 흘리는 기분 나쁜 웃음이 있다. 풀어헤친 검은 머리카락의 느낌이 있다. 귀신! 아이는 흙탕물에서 한쪽 발을 얼른 빼내 후다닥 밖으로 나온다.
아이는 부엌 쪽은 다시 볼 엄두도 못 내고 얼른 섬돌을 딛고 툇마루로 올라간다. 방안, 호롱불의 일렁이는 춤에 맞추어 신문지를 발라놓은 흙벽에 사람들의 그림자가 어린다. 잠이 든 아이의 꿈속에 부엌 귀신이 보인다. 아니, 기괴한 웃음과 풀어헤친 머리카락의 느낌만 보인다. 먹먹한 침묵의 소리만 들린다. 아무런 형체도, 고로 아무런 이야기도 없는 소름 돋는 악몽이다.
2.
‘레피노’ 행 전차. 길쭉하고 좁다란 객실 바닥이 몹시 더럽고 러시아인 특유의 고약한 암내가 자욱하다. 어중이떠중이 행려병자 같은 자들이 필터도 없는 독한 싸구려 담배를 스스럼없이 피워대고 역시나 독한 싸구려 보드카를 마셔댄다. 니코틴과 알코올 냄새에 공기도 어질어질, 현기증이 인다. 등받이 커버도 없는 딱딱한 철제 의자에 오래 앉아 있자니 꼬리뼈의 통증이 척추로 올라간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열차 벽에 몸을 기대고 창밖을 본다. 높이도 색깔도 똑같은 자작나무의 단조로운 연속이다. 수시로 덜커덩대는 전차의 진동이 없다면 창밖에 풍경화 하나가 걸려 있다고 여겼을 법하다. 과연. 산이 없으니 차이가 없고, 고로 전망도, 원근법도 없다.
자작나무 숲의 맞은편, 철제 의자에 앉아 있는 노파가 눈에 들어온다. 허물어져가는 뼈대와 헐렁한 몸뚱어리가 퀴퀴하고 꿉꿉한 장마철의 빨래를 연상시킨다. 몸통은 얇은 블라우스에 가려졌지만 앙상한 뼈다귀와 빈한한 살가죽은 무자비하게 드러나 있다. 팔과 목덜미는 백색인종 특유의 색소 빠진 듯 희멀건 색깔이고 그 때문에 우중충한 갈색의 저승꽃이 더 도드라진다.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흔적, 사람의 기억이다. 할머니도, 늙은 여자도 아닌 노파. 무릎 위에는 노파만큼이나 낡은 바구니가 덩그러니 얹혀 있고 그 안에는 거무스름한 보랏빛의 열매가 가득하다. 노파가 그를 향해 눈을 찡긋한다. 굵은 바늘로 엉성하게 꿰매놓은 것 같은 두 입술이 달싹이자 얼굴에 파문이 인다. 그도 어설픈 미소를 만들어낸 다음 시선을 자작나무 숲으로 옮긴다. 몇 분 전의 자작나무 숲이 고스란히 반복된다. 다시 노파. 이번에는 미소에 덧붙여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린다. 노파의 성긴 은발이 날카로운 비늘처럼 이마를 가로질러 두 눈을 찌를 것 같다. 이 눈이 문제다. 신기하게도 흰자위가 전혀 혼탁하지 않고, 새카만 동공과 옅은 회청색의 홍채가 영롱한 빛을 발한다. 청신한 연둣빛 이파리를 가득 입은 하얀 자작나무 숲 위로 펼쳐지는 북국의 하늘빛. 노파의 아름다운 두 눈이 참을 수 없는 우수를 불러일으킨다.
갑자기 노파가 그의 허벅지를 톡톡 치더니 바구니에서 열매를 한 움큼 집어 건넨다. 손바닥은 물론 손등까지도 거무스름한 보랏빛으로 물들어 있다. 그는 두 손을 모아 열매를 받는다. 노파는 예의 그 쭈글쭈글하고 걸쭉한 미소를 질질 흘리며 주문이라도 외듯 뭐라고 연신 중얼거리다 환히 웃는다. 골이 깊은 주름으로 뒤덮인 희멀건 얼굴 위로 시커멓고 음습한 동굴이 아가리를 벌리자 몇 안 되는 금니가 황금빛 광채를 뿜어낸다. 노파는 열매 한 움큼을 자기 입안에 넣고 열심히 씹는다. 먹어도 괜찮아, 맛있어. 이런 뜻으로 짐작된다. 마지못해 그는 열매 두 어 개를 입안에 넣고 미처 맛을 느낄 틈도 없이 꿀꺽 삼킨다. 시큼함 같은 것이 한참 뒤에야 감지된다. 혓바닥이 거무스름한 보랏빛으로 물들었을 것 같아 섬뜩하다. 흐뭇한 웃음을 흘리는 노파의 모습이 흉물스럽다. 이런 느낌 자체가 너무 죄스러워 꼭 천벌을 받을 것 같다.
3.
김재현은 누군가가 자신의 어깨를 툭 치는 것을 느꼈다.
“야, 다 왔다.”
권태웅이었다. 아는 얼굴이라 반갑고 젊은 얼굴이라 반갑고 또 모국어라서 반가웠다. 김재현은 손에 열매를 그대로 든 채 뒤도 돌아보지 않고 기차에서 내렸다.
“재현아, 그거 크리죠브닉 아니야?”
“아! 이게 그 나무딸기냐?”
권태웅은 열매를 몽땅 자기 입안에 털어 넣었다.
“정말 시다! 그래도 맛있는걸. 색깔도 잘 익은 오디처럼 탐스럽고.”
권태웅은 오만상을 다 쓰면서도 입맛을 쩝쩝 다셨다. 주접을 떨듯 이어지는 권태웅의 말에 김재현은 뭔지 모를 불길한 예감에서 해방되는 것 같았다. 아니면 바깥의 빛이 내면의 어둠을 걷어간 것일까. 화창한 여름, 강렬한 태양과 짙은 녹음이 어우러졌다.
레핀의 삭막한 화폭과 달리 조붓한 숲 속 오두막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늑한 실내, 가이드가 통역해주는 관장의 말이 음악처럼 흘렀다.
“…그만 자기 손으로 아들을 죽인 건데요… 이반 뇌제는 피투성이 아들을 엉거주춤 부여안고 망연자실하고…. 기다리지 않았다, 라는 제목의 그림은… 천신만고 끝에 녹초가 되어 귀향한 한 남자가… 반면 집안은 안락 그 자체인데 다들 얼마나 당혹스러운지….”
오두막 밖을 나온 다음 권태웅이 약간 불만조로 말했다.
“고골 그림은 왜 빼먹었대?”
그가 말하는 그림은 말년의 고골을 그린 것이었다. 고골은 죽은 혼 2권을 썼으나 고된 노동의 결실이 자신의 이름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판단, 원고를 불사르기에 이른다. 자기 소설의 첫 독자로서 냉혹한 심판, 동시에 작가로서 깊은 절망, 평생 문학밖에 몰랐던 한 남자의 괴상한 무채색 삶…. 작가의 두 눈이 하늘에 뚫린 천공처럼 허허롭고 암담하다. 훨훨 타오르는 원고 앞에서 절규하는 그의 얼굴에, 그러나 놀랍게도, 웃으면 천벌을 받을 것 같지만 그럼에도 치미는 웃음을 참을 수 없어 고개를 숙이고 한 손으로 입을 틀어막은 채 킥킥거리는 것 같은 희극적인 표정이 어리어 있다.
“아참, 재현아, 빅토르 아저씨 성이 고골이다?”
“어, 정말? 어쩐지!”
빅토르 아저씨는 기숙사의 전기공으로 배가 불룩 나온 짜리몽땅한 중년 남자였고, 기숙사의 배관공인 카프카스 지역 출신의 요염하고 까무잡잡한 아가씨 방에 얹혀살았다. 그는 사생들에게 걸핏하면 “러시아 문학에서 가장 위대한 작가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을 던졌는데 원하는 답을 얻기 전에는 절대 물러서지 않았다. “코의 모양이 좀 독특했지.” “그로테스크해.” “말년에는 종교에 빠졌는데.” 마침내 ‘고골’이 나오면 고골처럼 유달리 긴 코를 만지작거리며 그의 소설 얘기를 늘어놓았다.
“하지만 태웅아, 고골은 결혼도 안 했잖아? 사생아가 있다는 기록도 없고?”
“글쎄, 속사정을 누가 아냐.”
권태웅은 눈을 찡긋하는가 싶더니 때 아닌 한숨을 푹 내쉬었다.
4.
‘레피노’를 떠나는 전차.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자마자 잠이 쏟아진다. 기숙사에 도착한 그는 곧바로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눕는다. 뭔가가 계속 그의 숨통을 틀어막으며 그를 짓누른다. 온 몸이 저릿저릿하고 묵직한 것이 서서히 마비되는 느낌이다.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지만 어떻게 용케 감지되는 거대한 진자가 사신(死神)처럼 무뚝뚝한 왕복 운동을 반복하고, 그의 몸은 암흑의 나락으로 하강한다. 어느덧 나락이 시커먼 흙탕물로 바뀌고 부엌 귀퉁이에서 뭔가가 자신도 자신의 존재가 두려운 듯 조심스레, 스멀스멀 기어 나온다. 대체 어떤 형상일까? 꿈속의 그는 너무 궁금해서 눈을 커다랗게 부릅뜬다. 그러나 정작 그것이 모습을 드러낼 찰나에는 눈을 질끈 감아버린다. 반면 꿈밖의 그는 남은 열매를 다 먹어치운 권태웅을 보기 위해 침대에서 일어난다. 그러나 한 발을 떼어놓는 순간 선 자세 그대로 둔탁한 소리를 내면서 쓰러진다. 거무스름한 보랏빛이 그의 몸 위로 번져간다. 의식이 명멸하기 직전에도 그는 이것이 자신이 끝까지 보기를 거부한 악몽의 연속이라고 생각한다.
5.
싸늘한 주검이 된 김재현을 발견한 것은 전기공과 배관공이었다. 고골은 그로테스크한 탄식을 연발하며 호들갑을 떨었고 그의 미녀 애인은 진중하게 알라신을 읊조린 다음 경찰서에 연락했다.
사흘 뒤 페테르부르크에 도착한 유족의 요구에 따라 검시를 했으나 상세불명의 심장마비라는 결론뿐이었다. 그의 시신은 목재 유골함에 담겨 귀국, 유년의 음습한 부엌 뒤쪽, 커다란 감나무 옆에 묻혔다.
권태웅은 김재현의 죽음과 장례를 지켜보며 계속 불안에 떨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어떤 이상한 징후도 나타나지 않았다. 이후에도 그러했다.
(- 서울대동창회보 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