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온 가족이 함께 하는 외식, 만찬이 따로 없다. 남편의 통영 얘기는 간장 양념에 총총 썰어 넣은 쪽파 같다.

오줌은 여 아무 데나 싸고 큰 거 마려우면 우리 집으로 오이소, 라고 하는 데 미치는 줄 알았어. 무슨 방이 화장실도 없냐.”

숙박료 2만원. 처음에는 너무 싸다고 생각했지만 그럴 만했다. 성인 남자의 몸 하나만 간신히 들어갈 만한 크기의 쪽방에 화장실은커녕 수도시설 자체가 없었다. 남편은 손도 제대로 씻지 못하고 반쯤 실신하듯 잠이 들었다가, 새벽녘 눈을 뜨자마자 자신이 밤을 보낸 공간의 비루함에 소스라치게 놀라며 후다닥 짐을 챙겼다. 그리고 오줌은 여 아무 데나 싸고일단 차를 몬 다음 큰 거는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해결했다.

부장님도 진짜, 그쪽에 마땅한 숙소가 없다는 말도 안 해준 거야. 거기에 비하면 완주나 합천은 완전히 양반이더라고.”

아참, 그 오디 할아버지는 어떻게 됐어?”

우리 경쟁사로 옮겨갔대. 걔네들, 순 양아치거든.”

남편의 얘기가 더 이어진다. 대리점을 내주고 양아치 소리를 듣는 이유가 잘 납득되지는 않는다.

 

10.

 

추석을 일주일 앞둔 주말, 함안에 성묘 가는 날이다. 외갓집 성묘도 겸하기로 했다.

남편의 회사차로 시댁 도착. 만나기로 한 시각은 7시였으나 미혼의 시아주버니와 시동생은 샤워 중이다. 온 가족이 6인승 차에 탔을 때는 815. 남편의 회사 차는 시동생이 몰기로 한다. 한편 이 쪽, 시아버지 차의 운전대를 잡은 것은 시아주버니다. 그 옆에는 시아버지가 앉고, 그 다음 열에는 나와 남편이 두 아이를 끼고 앉고, 마지막, 다락방과 같은 느낌의 구석 자리에는 시어머니가 앉는다. 이런 식의 배치가 된 것은 손자손녀와 한 차에 타려는 시어머니의 열망, 그러면서도 아이들을 엄마와 아빠 옆에 앉히려는 그녀의 배려 덕분이다. 오만 사람 고생을 다 시키면서까지 굳이 친정 쪽 성묘도 가겠다는 며느리에 대한 불만을 우아하게 푸는 셈이다.

 

오후 2시경, 시아버지의 고향 도착. 고속도로를 달리는 내내 토를 해대던 우진이는 땅바닥에 발을 내딛자마자 쌩쌩, 건강해졌다. 막 선잠을 깬 건우는 불쾌감도 잠시, 평생 처음 보는 특이한 풍경에 격렬한 호기심을 보인다. 주름 가득한 얼굴에 함박웃음을 머금고 자기를 안는 사람에게는 방실방실 미소로 화답한다. 이 사람은 시아버지의 당숙모이다. 그녀는 해마다 이맘때면 추어탕 밥상을 차려놓고 우리를 맞이한다. 동네어귀의 도랑에서 잡은 추어와 직접 가꾼 채소와 방아를 넣고 끓인 귀한 음식이다. 민어조기 구이, 오이소박이, 가지나물 무침, 부추전과 같은 평범한 반찬도 토속적인 맛깔스러움을 뽐낸다.

당숙모, 화장실도 개조하셨네요?”

이른바 통시가 있던 자리에 세면대와 양변기를 갖춘 어엿한 신식 화장실이 들어섰다. 얼기설기 엮어 세워둔 싸릿대도 걷어내고 철문도 하나 달아놓았다. 이런 변화 때문에 자그마한 곁채가 오히려 생경하다.

엄마, 그 귀신 할머니 아직 있을까?”

우진의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척 문고리를 톡톡 두드린 다음 문을 연다. 전래동화처럼 늙은 꼬부랑 할머니는 언제 죽었는지 온데간데없고 온갖 잡동사니가 발 디딜 틈 없이 들어차 있다.

식후의 성묫길. 마을 뒤쪽, 좁다란 계곡 하나를 끼고 잡초만 무성한 넓은 밭이 보인다. 조만간에 채석장이 들어온다고 한다. 좀 더 들어가자 나지막한 언덕이 나온다. 봉긋 솟은 두 개의 봉분 주변에는 시할머니를 묻은 날 심었다는 백일홍 나무가 무던히 잘 자라고 있다. 시골의 따가운 햇볕을 받으며 무덤 앞에서 보내는 시간은 길어야 일이십 분이다.

 

화창한 오후, 우리는 소담한 시골길을 벗어난다. 우리, 즉 나와 남편과 우진이와 건우. 추수를 앞둔 벼들의 빛깔과 광택이 눈이 시리도록 아름답다.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 고향 땅을 밟는다, 라는 말이 선사하는 설렘도 크다. 그러나 차가 국도의 허리를 자르고 고속도로로 들어서자 속이 메슥거리고 머리가 어질어질하다. 초로의 영문학도에게서 전화가 걸려온다. 이제 막 예술적인 집에 당도한 그의 형과 형수, 즉 나의 부모의 왁살스러운 소리도 들린다. 우진이의 몸을 꽃밭 삼아 활짝 피었던 열꽃과 건우의 의식을 앗아갔던 경련이 동시에 내 몸을 덮칠 것 같다. 불현듯, 아무데도 가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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