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붕어 아저씨는 소영이 주위에 널려 있는, 가위질이 된 마분지를 집었다. 정은이는 탐탁지 않았지만 다정한 눈길에 이끌려 그의 곁으로 다가갔다. 천천히 종이상자가 만들어졌다. 그 사이에 아침에 배달된 빵이 하나씩 둘씩 바닥났다. 갑자기 방문이 열리면서 찬 기운이 확 들어왔다. 재활원 원장이었다. 그는 꼭 이맘때쯤 나타나곤 했는데, 그때마다 빵을 한 두 개씩 들고 갔다. 원장은 빵 안에 뭔가 내용물이 들어있는 것을, 가령 단팥빵, 슈크림 빵, 땅콩 크림 빵 같은 것을 좋아했다. 그래서 그가 다녀간 날에는 소보로 빵과 달맞이 빵만 잔뜩 남았다. 어쩌다 일이 좀 한가할 때는 훔쳐간 빵 값을 내는 셈 치고 방청소를 하거나 빨래를 해주기도 했다.

원장님, 소보로 밖에 안 남았어. 팥은 내가 먹고 슈크림은 희주가 먹고, , 진영이는 아무것도 먹지 않았어. 빵 먹으면 설사할지도 몰라.”

소영이의 말에도 불구하고 원장은 열심히 방 상자를 뒤적였다. 정말로 소보로 밖에 없었다. 그는 심드렁한 표정을 지으며 밖으로 나갔다. 소영이는 열심히 종이상자의 모서리를 맞추고 있었다. 얼마 뒤 또 문이 열리며 찬바람이 확 들어왔다.

에이, 소보로 밖에 없다니까!”

소영이가 소리를 꽥 질렀다. 추워서였다.

이리로 앉으세요.”

떡붕어 아저씨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인기척도 없이 방한가운데로 들어온 건 원장의 어머니였다.

, 할머니였구나. 소보로 먹을래?”

소영이는 마침 다 끝낸 종이상자를 내려놓고 노파에게 소보로 빵을 건넸다. 노파는 아무 말도 없이 빵을 손에 쥐고 조금 베먹었다. 하지만 곧 자기 손에 뭔가가 들려 있다는 것도 잊은 양 동작이 멎었다. 아이들은 노파에게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들에게 노파는 투명인간 같았다. 하지만 투명인간의 손에 들린 소보로만은 또렷이 보였다. 진영이가 달려들었다.

에비, 에비! 진영이는 빵 먹으면 안 돼! 아저씨, 이거 좀 선반 위에 올려줘. 할머니, 이거 우리가 만든 거다!”

소영이는 일곱 개의 상자를 차곡차곡 쌓았다. 아이들은 환호성을 지르더니 우르르 달려들어 상자를 허물었다. 소영이는 이제 상자를 하나씩 풀기 시작했다. 다시 마분지가 된 상자들을 떡붕어 아저씨가 선반 위에 갖다 올렸다. 그 동안에도 노파는 쥐죽은 듯 조용히 앉아있었다.

할머니, 내가 아이들한테 재미있는 얘기 해주는 거 들을래? 얘들아, 옛날 얘기 해줄까? 옛날 옛적에 마법의 성이 하나 있었거든. 거기에는 이상한 문지기랑 이상한 마녀가 살았어. 문지기는 문지기였지만 문을 지키지 않았고, 마녀는 마녀였지만 마법을 쓰지 않았어. 문지기가 문을 지키지 않은 이유는 간단해. 문지기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삶을 꿈꾸었거든. 그게 뭐냐고? 원래 문지기는 회사에 다녔어. 파이프를 만드는 회사였지. 거기서 문지기는 파이프를 관리했어. 한 번은, 몹시 추운 겨울날이었는데, 파이프 개수를 세야 했어. 건물 하나 없는 허허벌판에 파이프가 엄청나게 쌓여 있는 거야. 파이프는 구멍의 크기에 따라 나뉘어져 있었어. 문지기는 그것을 하나하나 다 세야 했어. 그는 이미 개수를 센 파이프 위에 화이트를 콕콕 찍었어. 헷갈리면 안 되니까. 그런데 파이프 구멍을 계속 보고 있자니 머리가 핑핑 도는 거야. 구멍이 작은 파이프는 너무 작아서 자꾸 보다보니 속이 메스꺼워졌어. 구멍이 큰 파이프는 그 사이로 찬바람이 쌩쌩 불어 들어와, 눈을 뜨고 있기도 힘들었어. 그래도 용케 그는 일을 끝냈지. 그가 센 파이프는 종류별로 몇 개였더라.”

정은이는 눈알을 굴리고 귀를 쫑긋 세웠다. 가람이는 철봉에 묶인 채 꾸벅꾸벅 졸았다. 진영이가 큰일을 보는 바람에 잠깐 이야기가 중단되기도 했다. 떡붕어 아저씨를 시킬 수가 없어 소영이가 직접 진영이를 욕실로 데려갔다. 기저귀에 묻은 똥이 질지 않아 안심이 됐다. 또다시 이야기가 이어졌다. 그 동안 떡붕어 아저씨는 방을 닦고 세탁기를 돌렸다. 소영이의 얘기는 계속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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