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영이는 오후 내내 정은이의 오빠 타령을 들어 주어야 했다. 호청을 빨랫줄에 너는 동안에도 계속 징징댔다. 목욕탕 청소를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다행히 저녁밥을 보자 정은이의 눈물과 하소연은 잦아들었다. 밥상을 물릴 무렵 또 다른 보모 아줌마가 왔다. 소영이는 퇴근할 준비를 했다.
“아줌마, 또 빛나만 예뻐해 주면 안 돼!”
“내가 뭘 어쩐다고….”
아줌마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에잇! 약속해! 다 똑같이 예뻐해 준다고!”
이렇게 일침을 가한 뒤 소영이는 재활원을 나왔다.
재활원 앞. 마침 폐지를 가득 실은 수레 두 대가 길의 양쪽에서 천천히 지나가고 있었다. 두 대의 수레 모두 노인이 끌고 있었는데, 그 중 한 명은 운동장을 돌던 그 폐지 할아버지였다. 그 둘은 이제 비좁은 길을 서로 교차로 지나가야 했다. 그 사이를 재활원 노파가 뚫고 지나갔다. 두 노인은 신호등 불이 바뀌기를 기다리는 보행자처럼 서서 세상만사를 잊은 듯 담담한 걸음을 옮기는 노파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노파가 길을 다 건너자 두 노인은 다시 수레를 끌기 시작했다. 방향을 잘 잡지 못해, 그들의 수레가 서로 부딪쳤다. 그 바람에 한 쪽 수레 위에 얹혀 있던 종이 박스 하나가 툭 떨어졌다. 서정적으로 쓸쓸한 장면에, 순간 불쾌한 소음이 일었다.
“아니, 이 영감이! 그거 하나 제대로 운전도 못해?”
피해를 입은 노인이 버럭 고함을 지르며 상대방을 닦아 세웠다. 그쪽도 지지 않았다.
“애당초 잘 묶어놨어야지! 어디서 뺨 맞고 어디서 화풀이야?”
두 노인은 기세등등한 눈으로 서로를 노려보며 곧장 드잡이라도 할 기세였다. 실제로 주먹이 날아다니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들은 부실하게 서로의 어깨를 치고 몸을 조금 흔들어놓는 것으로 끝났다. 소영이는 바닥에 떨어진 박스를 들어 다시 수레에 올렸다. 서로 다투는 것도 흥겹지 않았는지, 두 노인도 서로 엇갈린 채로 제 갈 길을 갔다. 그들이 시야에서 사라지기가 무섭게 굵은 빗방울이 우두둑 떨어지기 시작했다. 소영이는 파카 모자를 뒤집어쓰며 달리기 시작했다.
*
소영이는 해가 중천에 뜨도록 잤다. 떡붕어 아저씨는 아침 일찍 선글라스 아저씨와 함께 일을 나가고 없었다. 소영이는 고무줄로 머리를 대충 묶고 점퍼를 걸친 뒤 밖으로 나갔다. 찬바람이 불어와 머리카락이 마구잡이로 날렸다. 누리는 자기 집에 틀어박혀 나올 생각도 안 했다. 선글라스 아줌마는 웬일로 대낮부터 부산을 떨었다. 소영이는 아줌마가 막 끓여 놓은 보리차 한 잔을 들고 마당으로 갔다. 그러고는 누리의 밥그릇에 따뜻한 물을 부어주었다. 누리가 어슬렁거리며 집에서 나왔다.
“너도 춥지? 은학이 오빠는 겨울마다 보리차를 마셨는데…. 정말 옛날 일이야.”
하지만 누리는 물에 혀 한 번 대지 않고 소영이의 뺨만 핥아댔다.
“따뜻한 물을 마시면 몸도 따뜻해지거든.”
소영이의 정성이 갸륵했는지 누리는 물그릇 곁으로 얼굴을 가져갔다. 하지만 뜨거운 김에 질려 곧장 몸을 뒤로 빼며 시큰둥하게 깨갱거렸다.
“어머나, 뭐 하는 짓이야?”
선글라스 아줌마가 깜짝 놀라 물었다. 소영이는 방실방실 웃으며 대답했다.
“날이 너무 춥잖아.”
“잘 한다! 개가 뜨거운 물을 어떻게 먹어?”
“어, 왜?”
“왜는 왜야? 그냥 못 먹어. 갑자기 보리차는 왜 들고 나가나 했네. 그 정신으로 애들은 어떻게 돌보는지, 원.”
“에이, 애들이 나를 얼마나 좋아하는데. 이모도 같이 가자, 응? 요즘 매일 집에만 있잖아. 텃밭도 꽁꽁 얼었고.”
“소영아, 이모는 그렇게 험한 일은 못해. 게다가 얼마나 바쁜데. 너야말로 할 일 없으면 나 좀 도와주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