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식사가 끝나자마자 소영이는 빨랫감을 챙겼다. 속옷과 겉옷을 구분하여 차례로 세탁기에 넣고 버튼을 눌렀다. 그 와중에 선반 위의 빵 더미에서 단팥빵을 꺼내 우걱우걱 씹어 먹었다. 어느새 학교 갈 시간이 됐다. 진영이는 제 손으로 분홍색 잠바를 걸쳤다. 소영이는 나머지 아이들에게 겉옷을 입혔다. 빛나는 부축을 하다시피 데리고 나갔다. 교실은 한 층 아래 지하에 있었다. 계단 앞에 이르러 소영이는 빛나를 등에 업었다. 골반 뼈가 뒤틀려 서로 방향이 완전히 어긋난 빛나의 두 다리가 계단을 질질 끌다시피 하며 내려갔다. 빛나를 등에 업은, 아니 짊어진 소영이는 숨이 헉헉 차올랐다.
지하 교실은 공기가 썩 좋지 않았다. 아이들은 수시로 재채기를 해댔다. 특수교사가 나타났다. 아직 군대도 가지 않은 젊은 청년이었다. 그는 스웨터에 분필 가루가 묻을까봐 전전긍긍하면서 칠판에 1부터 5까지 숫자를 썼다. 가람이는 의자에 꽁꽁 묶인 채 몸을 뒤틀었다. 진영이는 속이 더부룩해서 자꾸 트림을 했다. 빛나는 눈에 보이는 모든 물건은 죄다 몸 안으로 집어넣었다. 정은이는 계속 히죽히죽 웃고 자동인형처럼 고개를 까딱거리며 뭐라고 계속 혼잣말을 했다.
다시 위층으로 올라온 소영이는 빨래를 걷어 하나하나 갰다. 어제 빨아 넌 이불 홑청 때문에 시간이 좀 더 많이 걸렸다. 표백제까지 사용했음에도 진영이가 싸놓은 싯누런 설사의 흔적은 사라지지 않았다. 세탁기는 아직도 돌아가고 있었다. 그동안에 방청소를 했다. 빗자루로 방을 한 번 쓸고 나자 또 허기가 밀려왔다. 이번에는 카스텔라를 꺼내 먹었다. 방을 다 닦고 걸레를 빨아놓은 뒤에는 세탁기에서 빨래를 꺼냈다. 그러곤 힘을 주어 탈탈 턴 다음 작고 짧은 것은 밑에, 크고 긴 것은 위에 순서대로 널었다. 장난감 정리까지 다 끝날 무렵 점심시간이 됐다. 소영이는 다시 방을 나갔다.
지하 계단 밑에서 특수교사의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진영이가 기저귀에 똥을 싼 다음 바지 속에 손 넣어 주물고 있었던 것이다. 소영이는 얼른 진영이를 목욕탕으로 데려왔다. 타일의 표면이 다 닳은 욕실 한 가운데에 직사각형 모양의 욕조가 있었는데, 들어가서 씻으라는 곳이 아니라 그냥 물을 받는 곳이었다. 소영이가 뜨거운 물을 받아 진영이를 씻기는 사이에 아이들이 위층으로 올라왔다. 소영이는 지하 교실로 달려갔다. 빛나는 여전히 의자 위에서 몸을 뒤틀며 울부짖고 있었다. 빛나의 불룩한 스웨터 밑으로 종이뭉치, 풀 뚜껑, 몽당연필, 형광펜, 머리카락과 먼지뭉치 등이 와르르 쏟아졌다.
“이런, 뭘 또 이렇게 많이 모았어, 엉?”
소영이는 빛나의 바지 속에 손을 집어넣었다. 아까 소영이가 먹은 단팥빵 봉지며 오래 전에 잃어버린 더러운 양말짝이며 코를 푼 휴지뭉치가 나왔다. 팬티 속에서는 진영이의 머리를 묶어놓았던 고무줄과 머리핀이 나왔다.
“설마 이걸 깔고 앉아 있었단 말이야? 아휴, 얼마나 아팠을까. 너, 정말 짜증 나!”
엉덩이 부분을 헤적인 손가락에 피가 살짝 묻어나왔다. 소영이는 씩씩대며 빛나를 들춰 맸다. 물론 내리막길보다 오르막길이 더 힘들었다. 옆에 있던 특수교사가 나섰다.
“제가 좀 도와드리죠.”
그는 소영이 옆에 바투 붙어 빛나를 업으려 했다. 그러자 빛나는 괴물 같은 비명을 지르며 반항했다.
“우리 빛나는 원래 낯을 많이 가려.”
소영이가 낑낑대며 힘겹게 대답했다. 특수교사는 소영이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벌써 반 년째 봐오고 있지만 아무래도 특이한 여자애였다. 어딜 보나 한창 물이 오른 나이에 동그란 두상과 작은 얼굴, 큰 키와 긴 팔다리를 보면 예쁘다는 소리를 들을 법했다. 하지만 어린애 같은 표정과 몸짓, 말투는 누구에게나 혐오감 내지는 동정, 적어도 의아스러움을 불러일으킬 만했다.
방안에는 구린내가 진동했다. 아까 개놓은 이불 홑청 위에 희주가 푸짐한 똥을 싸놓은 것이었다. 소영이는 금방 울상이 됐다. 희주도 그 표정을 읽고서 울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힘겹게 한마디를 덧붙였다.
“언니, 화장실이 너무 멀어….”
차라리 옷을 입은 채로 눴으면 좋았을 것을 희주는 그 습관이 안 돼 있었다. 즉, 이 방 아이들 중 드물게 제 발로 화장실에 가서 일을 볼 줄 알고 소화력도 좋은 편이었다. 웬일로 오늘은 똥이 좀 질었다. 그것이 화장실까지 달려가지 못한 이유였다. 똥은 걷어냈지만 하얀 홑청은 또다시 싯누런 물이 들어버렸다. 희주도 진영이만큼은 아니지만 약을 많이 먹기 때문에 똥냄새가 무척 지독했다. 소영이는 숨이 멎을 것 같았다. 현관문이 열리면서, 맞은편 도시락 집 점원이 나타났다.
“점심요! 도시락 왔어요!”
점원은 일곱 개의 도시락을 방안까지 갖다 주었다. 코를 찌르는 역한 냄새를 맡고 잠깐 주위를 둘러보기는 했지만 서둘러 다시 밖으로 나갔다. 아이들은 우르르 도시락 쪽으로 몰려들었다. 빛나는 뒤틀린 팔을 꺾어 바닥을 짚고 뒤틀린 두 다리를 질질 끌며 포복을 하다시피 기었다. 배가 고프기는 소영이도 마찬가지였다. 소영이는 얼른 도시락 뚜껑을 다 열어놓고 빛나를 껴안았다. 수저도 따로 필요 없이 음식물이 빛나의 입과 소영이 입으로 번갈아 들어갔다. 정은이도 순서를 기다리다 못해 제 손으로 밥을 떠먹기 시작했다. 숟가락이 제 뜻을 따라주지 않으니까 아예 내동댕이쳤다. 그러고는 도시락 통에 코를 처박고 손으로 밥을 거머쥐고 바로 입안으로 가져갔다. 반찬을 먹기에도 손이 훨씬 더 편했다. 제 배를 어느 정도 채운 소영이가 정은이 곁으로 왔다. 정은이의 손은 밥알, 김치 국물, 고등어 등껍질, 불고기 양념과 쇠고기 부스러기 등으로 범벅이 돼 있었다.
“언니, 나 혼자서도 잘 먹었지, 응?”
소영이는 걸레를 가져다가 정은이의 손을 닦아주었다. 정은이는 소영이의 품안으로 손을 뻗어 소영이의 배와 젖가슴을 만지작거렸다.
“아이, 뭐 하는 짓이야! 간지러워!”
“나는 좋은데 언니는 싫어? 왜?”
정은이의 눈에는 어느새 눈물이 고였다.
“에이, 또 왜 울어? 자, 고등어랑 밥이랑 한 숟가락만 더 먹자, 응?”
정은이는 밥보다도 소영이의 웃음 가득한 다정한 시선과 손길에 또 금방,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아이가 되었다. 식사가 끝나기가 무섭게 소영이는 가람이의 한 쪽 팔을 철봉에 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