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붕어 아저씨는 족구를 하다 말고 잠깐 쉬고 있었다. 소영이는 그쪽으로 걸어갔다.

아저씨, 폐지 할아버지는 늙었고, 축구공 갖고 노는 꼬마는 어려. 족발 집 아들은 젊고 아줌마는 늙었어.”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털갈이했으니까 누리도 한 살 더 먹었어. 아저씨, 나 좀 있으면 열아홉 살이지? 아니다, 스무 살인가? 아무 데도 안 가고 아무것도 안 하니까 나이도 못 세겠어.”

나이는 세지 않고 사는 게 제일 좋은 거야.”

그야 나이를 안 먹을 수 있다면 그렇지.”

그럼, 우리 소영이는 뭘 해야 될까?”

점쟁이 할아버지가 베풀고 살라고 했는데, 그지?”

 

그때 선글라스 부부가 다가왔다.

이제 슬슬 내려갑시다. 족발 사셔야죠, 헤헤.”

떡붕어 아저씨와 소영이는 그만 자리에서 일어났다. 느닷없이 소영이가 선글라스 아저씨에게 물었다.

아저씨 선글라스 끼고 있으면 안 갑갑해?”

이래도 세상은 다 잘 보인다.”

한 번 벗어봐. 아저씨 눈 어떻게 생겼나 궁금해.”

밉게 생겼는데 봐서 뭐하려고?”

선글라스 아저씨가 웃으며 말했다.

에이, 뭐 그리 숨기고 그래요? 한 번 보여줘요. 보고 싶다는데.”

선글라스 아줌마가 부추겼다. 선글라스 아저씨는 잠깐 망설이다가 선글라스를 벗었다. 그는 눈이 작은 편이었다. 그 작은 눈마저 한쪽이 완전히 감겨 있었다. 그것을 소영이는 오래도록 들여다보았다. 영원히 닫힌 눈꺼풀 위로 깊은 상흔이 난잡한 화살표 모양으로 남아 있었다. 멀쩡히 뜨인 다른 쪽 눈은 감긴 눈의 역할마저 자기가 다 해주겠다는 듯 야무지게 번득였다.

눈이 하나라도 세상을 보는 데는 별 문제가 없구나. , 그 할머니다! 할머니!”

 

그것은 한 달쯤 전 쓰레기봉투를 남의 집 대문 앞에 버리려 했던 덩치가 조막만한 노파였다.

어휴, 결국 여기다 버리기로 하셨어요?”

선글라스 아줌마가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할머니는 이번에도 아무 말 않고 쓰레기봉지를 툭 내려놓고는 돌아섰다. 소영이는 할머니의 손을 덥석 잡았다.

할머니, 할머니 재활원에 산다면서? 할머니, 나 거기 보여줘.”

노파는 신체의 감각 기관 중 어디가 완전히 마비된 사람처럼 무디고 멍한 표정을 지었을 뿐, 그냥 제 갈 길을 갔다. 등이 전혀 굽지 않은 작은 몸이 고른 보폭을 뽐내며 리듬을 타듯 조용히 움직였다. 누리네 집 사람들은 그녀의 뒤를 따라가는 형국이 됐다.

 

*

 

갑자기 날이 쌀쌀해졌다. 새파랗던 나뭇잎들이 순식간에 샛노랗게 변해 애처롭게 나무에 매달려 있었다. 그나마도 거센 바람이 불어와 사정없이 날려 버렸다. 재활원은 대문이랄 것도 없이 곧장 마당이 나왔다. 마당 옆에 서 있는 커다란 느티나무가 대문이요 문패였다. 나무 아래 벤치에 재활원 원장의 어머니가 앉아 있었다. 가뜩이나 조막만한 몸뚱어리에 다리를 위로 올린 채 웅크리고 있었기 때문에 하얗게 샌 머리와 노르께한 얼굴이 유난히 도드라졌다. 늦가을의 찬바람에 흰머리가 마구잡이로 날렸지만 노파는 멍한 눈을 한 채 앞만 바라보고 있었다. 벤치 밑에서는 지렁이 한 마리가 온 몸에 튀김가루처럼 흙을 묻힌 채 괴로운 듯 몸을 비틀고 있었다. 이것이 떡붕어 아저씨와 함께 재활원을 찾아간 소영이가 맨 처음 본 풍경이었다. 노파는 손님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