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동안 누리는 아래층 사람이 돌보았다. 환갑이 다 된 남자와 사십대 중반의 여자로 혼인 신고를 하고 같이 산 지 십년이 넘은 부부였다. 남자는 밤에도, 또 방안에서도 선글라스를 쓰고 있었다. 눈 하나를 잃어버린 탓이었다. 여자는 두 눈이 다 멀쩡했지만 남편과 보조를 맞추느라 옅은 색이 들어간 안경을 썼다. 해서, 그들은 선글라스 부부라고 불렸다. 선글라스 아저씨로 말할 것 같으면 한창 때는 공장에서 꽤 알아주는 일꾼이었지만 중년 고비에 정리 해고의 쓴맛을 맛보았다. 이혼보다 더 큰 시련이었다. 그 후 비정규직으로 전전하던 중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 함께 술장사를 시작했으나 보기 좋게 말아먹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두 부부가 공히 술을 너무 좋아했던 것이다.

 

그 다음, 그들은 조그만 족발가게를 열었다. 남자도 여자도 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가게 이름은 곰탱이 족발이었다. 가게는 집에서 엎어지면 코 닿을 데, 대문만 열어도 곧장 보이는 곳에 있었다. 술집을 교훈 삼아 이번에는 오직 족발만 팔고자 했다. 하지만 그 다짐은 금방 허물어지고 어느새 술이 등장했다. 술안주는 많을수록 좋아, 선글라스 내외는 집안의 식탁을 통째로 가게로 옮겨왔다. 솔직히 그들의 족발은 그다지 맛있지 않았다. 선글라스 아저씨의 족발 써는 솜씨도 서툴러, 뼈다귀에는 늘 살점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그래도 부부는 별로 걱정하지 않았다. 동네에서 거의 유일한 족발 가게라서 배달 주문도 적지 않았고, 가게 안에도 늘 서너 명의 중년들, 노년들이 무리지어 앉아 있었다. 비좁은 동네라 늘 그놈이 그놈이었고, 새로운 뉴스거리도 마땅히 생기지 않았다. 그래도 소주잔을 기울이며 족발을 뜯을 때는 뭐든 할 얘기가 있었고 함께 낄낄댈 건수가 있었다. 문제는 그 손님들 속에 주인 내외도 끼여 있었다는 점이다. 그들 역시 족발과 소주를 앞에 두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한 탓이었다. 족발을 파는 건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먹고 마시며 함께 놀기 위해서인 것 같았다. 족발 가게는 밤늦도록 열려 있었지만 주인 내외는 땡전 한 푼 저축하지 못했고, 혹은 그러지 않았고, 밤마다 술에 전 노래를 흥얼거리며 집으로 돌아왔다. 족발 가게 문을 여는 시간도 조금씩 더 늦추어졌다. 그러던 것이 아예 안 열리는 날도 생겼다. 두 내외는 전날 마신 술독을 빼내느라 방안에서 뒹굴었다. 결국, ‘곰탱이 족발곰탱이라는 이름에 딱 걸맞은 사람에게 팔렸다.

 

곰탱이 족발의 새 주인은 젊어서부터 족발만 만들어 팔아온 사람이었다. 뛰어난 장인이 다 그렇듯, 그는 서비스를 포함한 각종 장식은 다 빼고 오직 족발, 상추와 깻잎, 마늘, 새우젓, 쌈장, 콩나물국만 내놓았다. 곰탱이 아저씨의 족발 써는 솜씨도 일품이었다. 두툼한 손으로 족발의 장딴지 부분을 받치고, 역시나 두툼한 손으로 여유만만하게 뼈마디 부분에 칼날을 갖다 댄 뒤 가뿐하게 살점들을 도려냈다. 그것들은 접시나 스티로폼 접시의 가두리에 차곡차곡 쌓였다. 살이 싹 발려나간 다리뼈는 접시 한 가운데에 떡하니 자리를 잡았다. 이제 그야말로 발 부분의 마디를 손과 때론 칼의 힘을 빌려 쪼개는 일이 시작됐다. 간혹 마디가 너무도 세게 맞물린 녀석을 상대할 때는 힘을 주느라 얼굴이 울그락불그락 해졌다. 하지만 그의 힘과 요령을 당해낼 돼지 뼈는 없었다. ‘곰탱이 족발은 나날이 번성했다. 서너 명만 앉아 있어도 충분해 보였던 가게가 이제는 늘 사람들로 북적댔다. 문전성시라는 말이 실감났다. 중년과 노년은 물론이거니와 젊은 사람들도 곧잘 이 집을 찾았다. 그 손님들 중에는 선글라스 부부도 있었다.

 

선글라스 부부는 하루살이처럼 살았다. 아니, 일감이 매일 있지도 않았으니 사흘 살이, 나흘 살이라고 해야겠다. 더러 일주일씩 일이 쭉 있기도 했다. 새 집에 페인트칠을 하거나 벽지를 발라주고 장판을 깔아주는 일, 고장 난 수도관, 하수관, 변기를 뚫거나 부품을 새로 갈아주는 일 등이었다. 그때마다 선글라스 아저씨는 창고에 쟁여 놓은 공구를 챙겨 들고 나갔다. 그만 해도 부부가 먹고사는 데 별 지장이 없었다. 월세가 나가는 것도 아니었고 식비와 생활비는 딱 버는 만큼만 썼다. 때문에 선글라스 아줌마는 구태여 일을 하지 않았다. 그녀는 하루 종일 집과 텃밭을 오가며 살았다. 남편이 일을 나가고 없는 날에는 누리를 붙들고 놀았다. 간간히 곰탱이 족발에 들러 먹고 남은 돼지 다리뼈를 가져와 누리에게 던져주기도 했다. 누리 앞에서 그녀는 스스로를 엄마’, 남편을 아빠라고 불렀는데, 굳이 이 말을 알아들어서는 아니겠지만 누리는 그들 부부에게 낯가림이 없었다. 이렇듯 누가 봐도 아래층 사람들이야말로 이 집의 새 주인으로 적격이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모아놓은 돈이 없었다. 그들의 꿈은 그저 까다롭지 않은 주인이 들어와 지금 전세금 그대로 살게 해주는 것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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