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은 Y다리를 건너갔다. Y섬 어귀에 약국 영감이 말한 식당이 있었다. 오직 영계백숙만 파는 곳이었다.

할아버지 왜 이런 데서 이러고 살아? 여기도 곧 허물어질 텐데, 그치 아저씨?”

배가 어느 정도 차자 소영이가 물었다.

이렇게 보시하고 사는 인생도 나쁘진 않소.”

보시? 그건 뭐야?”

베풀고 산다는 뜻이오.”

에이, 베풀긴 뭘 베풀어? 딱 보니까 이렇게 노는 걸. 아저씨, 남은 닭고기는 제사 지내자. 성탑 할머니도, 문지기도, 마녀 아줌마도 다 올 거야, 닭고기 먹으러.”

여기서 잠깐 뜸을 들이다가 한마디 덧붙였다.

정말 올까, 귀신들이?”

그러곤 떡붕어 아저씨를 바라봤다. 이제 더 이상 올려다보지 않아도 됐다.

이제 어떡해? 어디로 가, ?”

떡붕어 아저씨는 물끄러미 서 있기만 했다. 약국 영감은 아직도 입맛을 다시며 황홀한 점심식사의 여운을 음미했다. 그러고는 둘의 앞날을 축복해주며 천천히 자기 집으로 되돌아갔다. 남은 둘은 그냥 그 자리에 눌러앉았다. 물론, 식당이 아니라 그 식당이 있는 Y섬에 말이다.

 

*

 

Y. 바다가 훤히 내려다보일 만큼 지대가 높고 비탈진 곳에 2층짜리 주택이 하나 있었다. 낡았지만 단정한 건물이었다. 뒤쪽에는 널찍한 공터가 있었다. 전에 살던 사람들이 그곳을 밭으로 일구었다. 그들은 고향을 떠나와 P시의 공장에서 일했다. 밭은 주로 그 집 할머니가 가꾸었다. 늦은 봄이나 한여름이면 손녀를 등에 업고 나와 도라지 싹이 돋도록 김을 매고 상추나 깻잎을 뜯곤 했다. 그렇게 거둔 채소는 저녁녘에 동네 어귀로 나가 근처 주부들에게 팔았다. 그 돈으로 손녀에게 과자나 머리핀을 사주는 것이 할머니의 낙이었다. 손녀가 어린이집에 다닐 때도 할머니는 밭농사에 열심이었다. 조그만 닭장을 만들어 토종닭을 키우기도 했다.

 

손녀가 학교에 입학할 무렵 아들 내외는 Y섬을 떠나 P시의 내부로 들어갔다. 대출을 끼긴 했지만, 또 평수가 적긴 했지만 전세 아파트도 하나 얻었다. 할머니는 Y섬에 그대로 남았다. 그래도 죽을 때는 아들 내외의 집에서 죽었다. 병치레를 한 건 두세 달 밖에 안 됐다. 매일 공장에 나가는 부모를 대신하여, 어느덧 중학생이 된 손녀가 할머니의 대소변을 받아내고 물수건으로 몸을 닦아주었다. 그녀는 자는 잠에 조용히 갔는데, 손녀는 이것을 무척 슬퍼했다. 할머니의 마지막 얼굴을 보지 못하고 마지막 말을 듣지 못한 것은 두고두고 한처럼 남았다.

 

장례식 직후 그들은 방치해둔 Y섬의 집을 내놓았다. 집값은 별로 비싸지 않았지만 초로로 접어든 개 한 마리를 키워야 한다는 조건이 붙었다. 이 개는 아파트로 이사 갈 때 손녀가 울며불며 이별한 강아지 누리였다. 할머니가 죽은 뒤에도 누리는 여전히 이 집의 일부인 양 버젓이 살아 있었던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이 집은 누리의 집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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