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과 관습을 넘어, 자연과 호흡하는 자유의 삶을 찾아

- 마크 트웨인, <허클베리 핀의 모험>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미시시피 강을 따라 펼쳐지는 십대 소년의 모험담을 그린 동화 정도로 생각한다면 그만한 실례도 없을 것 같다. 실상 남북전쟁 직전의 미국 사회, 특히 남부의 생활상과 세태, 모럴과 관습을 이 정도로 밀도 있게 조망한 소설도 드물다. 헉은 더글라스 과부댁의 양자이고 짐은 그녀의 여동생인 왓츤 아줌마의 노예이다. 둘은 나이, 그보다는 피부색의 차이 때문에 좀처럼 어울리기 힘든 사이지만 도망이라는 정황 때문에 문자 그대로 한 배를 탄다. 헉은 알코올 중독자이자 부랑자인 아버지의 폭력을 피해, 짐은 올리언스 지방으로 팔려갈 위기를 피해 도망친 것인데, 가정과 국가-사회의 폭력(노예제도)이 묘한 유비를 이룬다. 어쩌면 이 때문에 검둥이’(nigger)와 소외된 백인 하층 소년 사이에 유대 관계가 돈독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허클베리…>에서 흑백의 대립과 인종 문제는 단순한 휴머니즘과 훈훈한 온정주의로만 환원되지는 않는다.

 

 

 

 

 

 

 

 

 

 

 

 

 

 

 

가령 희대의 사기꾼인 공작이 짐을 펠프스 농장에 팔아버린다. 헉은 법률과 관습에 따라 검둥이를 내줄 것인지 아니면 그것을 어기면서까지 검둥이를 구할 것인지 고민한다. 왓츤 아줌마에게 짐의 행방을 알리는 편지를 쓰기도 하지만 결단을 내리는 데는 제법 시간이 걸린다.

 

좋아, 난 지옥으로 가겠어.- 그러고는 편지를 북북 찢어버렸습니다.

그것은 끔찍스러운 생각이었고 무서운 말이었지만 벌써 입 밖으로 내뱉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나는 내뱉은 말을 취소하지 않고 그냥 그대로 내버려두었지요. (중략) 다시 나쁜 짓을 하기로 하자고 했습니다. 나란 놈은 자라나기를 그런 식으로 자라났으니 나쁜 짓이 내 천성에 맞고, 착한 일은 그렇지 않다고 말입니다. 맨 첫 번째 일로 나는 짐을 다시 한 번 노예 상태에서 훔쳐내자, 아니 그보다 더 나쁜 일을 생각해 낼 수 있다면 그것도 하겠다고 다짐했지요. 나쁜 짓을 하기로 한 이상, 더구나 끝까지 하기로 한 이상, 철저하게 해내는 것이 좋을 테니까요.”(451-452)

 

절친한 친구를 구하는 일이 그가 흑인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지옥과 동일시되는 정황은 시대적인 맥락을 고려해야만 이해될 수 있겠다.

 

 

 

 

 

 

 

 

 

 

 

 

 

 

헉의 눈에 비친 짐은 어리석고 미신적이며 따라서 어딘가 야만스럽지만 인정이 많고 생활의 지혜를 보여주는 일도 잦다. 그럼에도 이런 긍정적인 자질들은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것이다. “짐이 하는 말은 대체로 늘 옳았습니다. 짐은 검둥이치고 비상한 머리를 갖고 있었지요.”(166) 한편 짐은 자유주에 도착하면 열심히 돈을 모아, 다른 농장으로 팔려가는 바람에 뿔뿔이 흩어진 처자식을 되사겠다는, 만약 주인이 팔지 않으면 노예 폐지론자에게 부탁하여 애들을 훔쳐오겠다는 생각을 하고 가족이 그리워 수시로 눈물을 흘린다. 이에 대해 헉의 반응이 참 아이러니하다. “자기 가족을 생각하는 심정은 흑인이나 백인이나 다를 것이 없다고 나는 믿고 있습니다.”(340) 간단히, 검둥이는 인간에 근접한 그 무엇이지, 온전한 의미의 인간은 아닌 것이다. 노예제도의 위력이 실감남과 동시에 이 소설의 리얼리즘이 도드라지는 대목이기도 하다.

 

 

 

 

결국 헉은 얼떨결에 펠프스 집안의 조카 톰 역할을 떠맡은 다음 그 특유의 거짓말과 연기 능력을 발휘하여, 또 느닷없이 등장한 톰 소여의 도움을 받아 짐을 탈출시키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짐이 진정한 자유를 획득하는 것은, 다소 황당하게도, 왓츤 아줌마의 갑작스러운 개심덕분이다. 짐은 이렇게 수동적으로 자유를 얻는 반면, 헉은 그 스스로 그것을 찾아 떠난다. 그가 글을 쓰는 일에 회의를 표하고 무엇보다도 교양으로써 자신을 길들이려는 은혜로운자들을 피하는 것은 문명에 대한 저항이자 자연-자유를 향한 추구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교양 있는’, 그리하여 자신이 읽은 책에 따라 삶을 그야말로 모험-유희로 즐기고 어딘가 주일학교냄새를 풍기는 톰 소여와 확연히 구분되는 헉의 특징이기도 하다.

 

, 이제 더 이상 쓸 이야기라고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것이 나에게는 무엇보다도 기쁩니다. 그 까닭은 만일 책을 쓴다는 것이 이렇게 귀찮은 일인지 미리 알았더라면, 나는 아마 이 일에 덤벼들지 않았을 것이고, 두 번 다시는 이런 일을 하려고도 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나 나는 나머지 사람들보다 앞서 인디언 부락으로 떠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샐리 아줌마가 나를 양자로 삼아 <교양 있는> 사람으로 만들려 하고 있고, 나는 그 일이 도저히 참을 수 없었기 때문이지요. 그 일이라면 전에도 한번 해본 적이 있으니 말입니다.(596)

 

여기다 무슨 얘기를 더 보태는 것 자체가 작가의 의도를 배반하는 행위일 것 같다. 이 소설이야말로 흐르는 강물처럼쓰인, 또한 그렇게 읽는 것이 더 옳지 않겠는가. 이 책의 맨 처음에 다음과 같은 경고문이 붙어 있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에서 어떤 동기를 찾으려고 하는 자()는 기소할 것이다.

이 이야기에서 어떤 교훈을 찾으려고 하는 자()는 추방할 것이다.

이 이야기에서 어떤 플롯을 찾으려고 하는 자()는 총살할 것이다.

- 지은이의 명령에 따라

군사령관 G. G.

 

 

-- <네이버캐스트>

 

-- 미국 문학에 대한 무지와 무관심에 대해서는 전에도 말씀드렸던 것 같은데, 마크 트웨인이 이렇게 비중있는 작가라는 건 이 소설을 읽으면서 처음 알았습니다. 동화로만, 티브이 만화로만 알았던 <허클베리...> <톰 소여...>, 어릴 때 동화로만 읽은 <왕자와 거지> 등의 작가인 그가 실은 러시아문학으로 치면 고골쯤 된다는군요...-_-;;  실제로 정신차리고(?!) 읽어보니, 어려운(=지루한 ㅠ.ㅠ) 책이더라고요... ㅋㅋㅋ

마크 트웨인 하면 떠오르는 건, 자기는 담배를 끊을 때마다 성공했다는(^^;) 식의 말뿐인데 대단한 애연가였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많이 크지만 이런 사진을... ㅋㅋ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