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붕어 아저씨와 소영이는 섬을 나와 P항 일대를 돌아다녔다. 수산물 시장을 지나자 약재상들이 즐비한 거리가 나왔다. 바싹 말린 지네 더미 옆에서 Y다리가 시작됐다. 그들은 다리 아래 계단으로 내려갔다. 앞으로 갈 길의 방향을 정하기 위해서였다. 지도를 방바닥에 깔아놓고 눈을 꼭 감은 뒤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짚은 다음, 눈을 떴을 때 무작정 거기로 떠나는 심정과 유사했다. 어쩌면 풀 한 포기 제대로 자라지 못하는 척박한 땅에다 새카맣게 말라버린 죽은 나무 한 그루를 심는 심정에 가까울 지도 모르겠다.

 

그들이 들어간 점집은 인근 집들 중에서 제일 깔끔했다. 주인은 늙은 노인이었지만 혈색이 좋았다. 눈이 탁하지도 않았다. 입을 열자 색깔이 싯누렇기는 해도 상당히 바르고 촘촘한 치열이 드러났다.

어째 아침부터 삼계탕이 눈앞에 어른거리더니.”

떡붕어 아저씨와 소영이는 당혹스러워하며 서로 눈짓만 주고받았다. 바닷바람이 불어와도 후텁지근한 건 어쩔 수 없었다. 떡붕어 아저씨는 티셔츠의 단추를 풀었다. 등판은 벌써 땀에 절어 있었다.

찹쌀과 은행과 대추와 인삼은 당연하고 닭똥집이 들어가도 좋지. 날이 이렇게 푹푹 찌니 몸보신을 좀 해야겠는데. 어떻소, 보시겠소?”

 

떡붕어 아저씨는 자신의 생년월일과 시간을 넣었다. 약국 영감은 돋보기안경을 끼더니 책을 뒤져가며 빠른 속도로 그의 사주팔자를 풀었다. 몇 행, 몇 열의 한자를 공책에 나열한 뒤 암호문을 풀 듯 우리말로도 꼼꼼히 썼다. 말을 하기 전에 이렇게 기록하는 것이 그의 습관이었다. 남의 사주팔자를 풀어놓은 공책이 수십 권은 족히 됐다. 떡붕어 아저씨는 꽤 오래 기다렸다. 여로를 결정하기 전, 아무 양감도 없는 종이 지도를 손가락으로 더듬는 심정이었다.

불덩어리군요.”

드디어 약국 영감이 입을 열었다.

, . 제가 원래 몸에 열이 좀 많습니다.”

그 얘기가 아니라 사주에 불이 많다는 소리요.”

약국 영감의 기나긴 설명이 이어졌다. 제문을 낭독하듯 또박또박하고 무엇보다도 느렸다. 떡붕어 아저씨의 40여년의 인생사가 은유와 환유와 제유와 직유의 형식으로 읊어졌다. 말을 다 끝냈을 때 약국 영감의 얼굴과 목에서는 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심지어 숨까지 가쁘게 몰아쉬었다. 그가 안쓰러웠지만 떡붕어 아저씨는 난감한 심사를 감출 수 없었다.

저어기,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어허! 내가 무슨 점쟁이요? 나라고 앞날을 어찌 알겠소?”

, 그럼, 아까 형제가 다섯이라는 건 무슨 말씀이십니까?”

, 좋은 얘기요. 선생 복으로 형제 다섯은 거뜬히 먹여 살릴 거요. , 거참, 당장 직장도 없어 보이는 양반이 이렇게 배가 부르고 등이 따시다니, . 놀고먹을 팔자구먼. 이 처자는?”

 

또 다시 고문의 시간이 흘렀다. 만년필을 쥔 앙상하지만 힘 있는 손이 강물처럼 유유히 흘러갔다. 집도 허름하고 옷가지도 별로 없는데도 만년필만은 최고급이었다. 펜촉이 종잇장을 긁는 소리가 귀를 간질였다. 그 동안에 소영이는 구덩이 오막살이의 양지바른 곳에 바싹 말라죽은 나무 한 그루를 심었다. 그리고 매일 계곡에서 물을 퍼다 주었다. 계곡은 제법 멀었다. 양쪽 어깨에 물통 두 개가 달린 막대를 메고 나르다 보면 어깨가 뻐근하고 날갯죽지가 시큰해왔다. 그래도 내일 또 나무에 물을 주기 위해 그 긴 여정을 되풀이했다. 하지만 나무는 여전히 싹을 틔우지 못했다. 어느 순간부터는 자기가 왜 물을 주는지를 생각하지 않았다. 그 사이 소영이는 훌쩍 자랐다. 물통 두 개가 이제는 별로 무겁지 않았다. 물을 흘리는 일도 없었다. 저 멀리서 나무 위에 뭔가 새파란 것이 돋아난 것을 멀리서 보았다. 그것이 정말 새싹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물통을 내팽개치고 열심히 달리기 시작했다. 그때 약국 영감이 입을 열어 소영이의 묵념을 방해했다.

 

허어, 여자 사주에 경금이 이리 많다니.”

그는 땀을 닦으며 혀를 찼다. 여전히 압도되고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어라, 이렇게 뜸을 들이더니 고작 그거야? 다슬기 할매가 매일 해준 얘기인 걸.”

소영이가 소리쳤다. 약국 영감이 이 업계에 발을 들여놓은 이래, 가장 충격적인 말이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될 지나 얘기해줘. 아이, 배고파 죽겠네!”

소영이의 앙칼진 목소리에 약국 영감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러니까 처자는 (약국 영감은 돋보기를 들어 올려 가며 자신의 공책을 유심히 들여다봤다.) 베풀어야 하오. 무조건 베풀어야 명줄도 길고 명예도 얻고 재물도 얻고 아들도 얻고,”

세상을 다 얻으면 뭐해? 배고프다니까!”

약국 영감은 너무 놀라서 기가 팍 죽어버렸다.

할아버지, 그 삼계탕 집이 어디야? 아저씨는 또 뭐해? 빨리 좀 일어나! 할아버지, 여기는 변소 없어? 아씨, 오줌보 터질 것 같은데, 정말!”

이제야 약국 영감은 이 말[]만 한 처자가 예사롭지 않다는 걸 확신했다. 그는 동정과 연민의 눈빛으로 소영이를, 또 떡붕어 아저씨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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