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아내는 역시나 대자리 위에 나무늘보처럼 늘어져 있었다. 머리맡에는 읽다 만 책들이 엎어져있었다.
“야, 너 거기다가 침 안 흘렸냐?”
“어, 또 졸았나. 결혼식은 어땠어? 신부는 예쁘디? 웨딩드레스는? 요즘은 너나할 것 없이 죄다 탑을 입던데, 그쪽도 무슨 베라 왕이야? 밥은 잘 나왔어? 하긴 그래봐야 스테이크였을 거 아냐? 칼질할 때마다 핏물이 줄줄 흐르는 걸 다들 어쩜 그리 잘 먹는지. 차라리 국수나 갈비탕을 주지. 아참, 그 친구랑은 얘기해 봤어?”
나는 윤상원과 나눈 얘기를 전해주었다. 아내는 홍상수의 「오 수정」이 생각난다면서 킥킥거리더니 주섬주섬 책을 정리했다. 책을 책상 위에 올려놓은 다음엔 갑자기 허리를 곧추 세우고 거나하게 트림을 했다. 꺼-억.
“어, 동훈아, 나 왜 이래? 너한테 옮았나?”
하지만 아내의 표정은 장난스럽기만 했다. 순간, 베란다 너머 앞산에 진달래꽃이 만개했을 때 아내가 잠자리에서 모호하게 내뱉은 말이 떠올랐다.
“야, 너 혹시?”
“뭐? 아, 그거? 그거는 헛구역질이 나는 거고 이건 그냥 트림이잖아, 바보야.”
“하긴…. 넌 어차피 키우는 거 잘 못하잖아. 저 봉숭아도 지금이야 멀쩡하지만 조만간 또 죽일 거 아냐?”
“내가 죽이는 거야? 제 수명이 다 해서 죽는 거지.”
아내의 얼굴에는 서글픈 기색이 감돌았다. 나는 아내가 그냥 가볍게 토라진 것이라고 생각했다. 감정 기복이 심한 편이니까 저러다 말겠지, 라고. 사실 서글퍼진 건 나였다. 연애할 때는 물론이거니와 결혼할 때도 우리는 아이를 원치 않았다. 이십대 때 그런 생각을 한 건 나름대로 원칙이 있어서였다. 그 어떤 아이도 자기를 낳아달라고 하지 않았건만 자기들이 원해서, 또 필요해서 아이를 만드는 것은 일종의 도덕적 만행이라고 여겼다. 더 무서운 건 철저하게 객체 내지는 대상에 불과했던, 심지어 추상적인 관념에 불과했던 아이가 태어나는 바로 그 순간부터는 어마어마한 주체로 변해버린다는 사실이다. 그 공포를 달래기 위해, 우리가 너를 위해서 희생했다, 라는 식의 말을 입에 달고 산다. 다소 우스꽝스럽지만, 이런 무책임한 행동을 젊은 날의 우리는 하지 않기로 했다.
다시 만나서 결혼까지 했지만 이제는 과거와는 다른 이유로 아이를 갖는 것이 꺼려졌다. 말도 안 되는 원칙 따위는 사라져버렸지만 어쩌면 그 때문에 더 무서워졌다. 어차피 살아가면서 우리가 우리의 원칙이나 의지에 따라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지만 아이조차도 자연스러운 부부생활을 거쳐 그런 식으로 태어난다는 게 무서웠다. 아마 이와는 무관하겠지만, 정사의 횟수가 줄어들수록 꿈을 더 많이 꾸게 됐다. 그리고 극히 산술적인 확률 원칙에 따라 그 꿈도 더 빈번해졌다.
아내가 어느새 명랑해져서는 뜬금없는 말을 꺼냈다.
“어쨌거나 꽃이 피면 손톱에 봉숭아물을 들일 거야.”
아내 특유의 딱따구리 같은 웃음이 이어졌다. 내가 달려들자 아내는 얼른 방안으로 사라져버렸다. 나는 아내를 따라갔다. 어린애들처럼 몸싸움이 시작됐다. 나는 몸을 잔뜩 웅크린 아내의 몸 여기저기를 간질였고 아내의 방어가 약간이라도 허술해지면 곧장 배를 공략했다. 최근 들어 아내의 배에 도톰하게 살이 올라 간질이는 것이 더 재밌었다. 나의 커다란 손이 아내의 배꼽 주위의 살에 닿는 순간, 아내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야, 이 변태야! 그만 좀 못해!” 그러곤 내 가슴팍을 향해 거세게 발길질을 해버렸다. 꺼-억. 바로 그때 내 뱃속 깊은 곳에서 트림이 올라왔다. 환청인가.
“아이, 술 냄새야. 안주는 치킨이었냐?”
“나 트림한 거 맞지?”
“당연하지. 방안에 느끼한 냄새가 가득하잖아. 꺼-억. 꺼-억. 꺼-억.”
아내는 ‘꺼-억’을 몇 번씩 반복하면서 몸까지 힘껏 움츠렸다. 그러곤 또 딱따구리처럼 자지러졌다.
“뭐가 그리 웃기냐? 숨 넘어 가겠다.”
나는 침대 위에 벌렁 드러누워, 습관적으로 아내의 도톰한 배 위에 손을 올렸다. 아내도 역시나 습관적으로 몸을 움츠리며 내 손을 꽉 붙잡았다. 그러자 또 장난기가 발동했다. 나는 아내의 배를 처음엔 살금살금, 점차 더 무자비하게 간질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