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를 파한 아이들이 삼삼오오 무리지어 오구작작 떠들며 집으로 가고 있었다. 떡붕어 아저씨는 물끄러미 그들을 바라보았다. 물체 주머니를 빙빙 돌리는 아이, 걸으면서 조그만 고무공을 위로 던졌다 받기를 반복하는 아이, 등 뒤로 양손을 돌려 책가방을 밑에서 툭툭 치는 아이, 괜히 뜀박질을 하며 걷는 아이, 친구와 끝말잇기를 하며 고심하는 아이 등. 그들은 하나 같이 참 작았다. 저렇게 작은 것들도 사람이구나, 싶을 만큼 작았다. 그들 사이로 소영이가 우뚝 솟아 있었다. 진즉에 중학생이 됐어야 할 소영이는 꼭 교생실습을 나온 어린대학생처럼 보였다. 떡붕어 아저씨는 소영이가 아이들 무리에서 벗어나 이쪽으로 좀 더 가까이 올 때까지 담장 옆에 서서 기다렸다. 고개를 반쯤 숙인 소영이는 무슨 생각에 골몰해 있는지, 떡붕어 아저씨를 알아보지도 못하고 그 곁을 지나쳤다. 그는 보폭을 조절하며 천천히 소영이의 뒤를 따라갔다.

 

소영아!”

그는 몇 발짝을 달려가 소영이를 뒤에서 껴안았다. 소영이는 흠칫 놀랐다. 그러곤 곧 당혹스러워하며 얼굴을 붉혔다. 둘 다 그 동안에도 몇 번은 있었을 포옹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 들었다. 잠깐이지만 소영이는 이 생경한 느낌의 암호를 풀어보려고 애썼다. 하지만 해독 불가능한 바이러스가 침투한 것처럼 아찔하기만 했다.

아저씨, 나한테 아기 만들려고 그러지?”

?”

선녀와 나무꾼이잖아! 내가 호시탐탐 떠날 궁리를 한다는 거 아저씨도 눈치 챈 거지? 나 잡아 두려고 껴안은 거 아니야? 그런데 아저씨, 빨리 왔구나, 생각보다는.”

은학이랑 아름이는?”

둘이 사귀는 걸.”

태형이는 요즘 뭐해?”

걔는 이제 중학생이잖아? 어라, 물고기는 하나도 안 잡아왔어? 뭐야?!”

소영이는 떡붕어 아저씨에게 달려들어 배며 등을 마구 때렸다.

그만 좀 해! 대신 금괴를 사왔단 말이야!”

이제는 업어주기에도 민망할 만큼 훌쩍 자란 아이, 그건 이미 숙녀였다.

 

성으로 돌아온 떡붕어 아저씨는 더운 물에 목욕을 한 뒤 완전히 뻗어버렸다. 숙면에서 깨어났을 때 떡붕어 아저씨는 마음이 무척 편했다. 이것이 내 집이구나, 이것이 내 사람이구나, 라는 생각에 일상의 달콤함을 맛보았다.

아침부터 그는 분주했다. 벽이 뚫리고 금고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이번 출장에서 마련해온 금괴를 금고에 쌓았다. 소영이의 칠칠치 못한 손이 놓쳐버린 먼지와 때를 모조리 처리하느라 꼬박 하루가 갔다. 욕실 바닥에 검은 실지렁이처럼 퍼져 있는 머리카락도 긁어모았다. 검고 길고 가늘고, 오래 전에 몸에서 떨어져 나왔음에도 여전히 윤기가 흐르는 수백, 수천 올의 머리카락들. 그것이 그에게는 소영이가 성장했음을, 하지만 앞으로 더 성장해갈 것임을 말해주었다.

청소를 하다 말고 그는 욕실 거울에 자신의 모습을 비추어 보았다. 머리카락이 푸석푸석하고 성글었다. 원래 반 곱슬머리였는데, 이제는 곱슬곱슬 말린 것도, 구불구불 흘러내리는 것도 아니고 축축 처진다는 느낌을 주었다. 그는 약간 외로웠다.

 

*

 

우물이 있는 학교의 나무들이 슬슬 가을을 타기 시작했다. 특수반 아이들은 우물 옆에 앉아 소꿉놀이를 했다. 소영이는 특수반 교실의 서랍 안에 보관된 성냥을 슬쩍 들고 나왔다. 은학이는 학교 건물 뒤에다 열심히 나뭇가지와 낙엽을 긁어모았다. 아름이는 은학이의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 자기 몸만큼 긴 나뭇가지를 휘두르며 커다란 황소를 모는 계집애처럼 은학이의 다리와 궁둥이를 쿡쿡 찔러대는 것이 무척 재미있는 모양이었다. 음식 재료가 준비되자 아이들은 모래밭 위에 돌멩이를 둥그렇게 쌓고 그 한가운데에 불쏘시개를 넣었다. 아름이는 계속 앞뒤, 좌우를 오가며 조잘댔다.

엄마, 아빠, 밥 줘, !”

조금만 기다려봐.”

은학이는 양동이를 우물 밑으로 떨어뜨려 물을 길었다. 도르래가 돌아가며 노래를 불렀다. 나뭇가지와 낙엽 앞에 쪼그려 앉은 소영이는 성냥불을 켜보려고 했다. 특수교사의 손놀림을 떠올리며 따라해 보았지만 번번이 실패였다. 불은 붙지 않고 소나무에서 송충이만 자꾸 툭툭 떨어졌다. 그때마다 아름이는 비명인지 환호성인지 하여간 소리를 지르며 송충이를 덥석 잡았다.

에잇, 그러면 안 돼, 아름아.”

은학이가 만류하자 아름이는 우글거리는 송충이를 은학이에게 획 던졌다. 등 무늬가 하나 같이 알록달록한 송충이들 때문에 은학이 얼굴이 졸지에 괴물이 됐다. 은학이는 고개를 숙이고 얼굴을 흔들어댔다. 송충이 우수수 땅바닥으로 떨어졌다. 그 중 한 마리는 곧장 소영이 발치에서 꿈틀댔지만 소영이는 여전히 성냥갑에 줄을 긋고 있었다. 어찌나 그어댔는지 성냥개비의 붉은인이 거의 다 닳아버렸다. 멀쩡한 성냥개비가 몇 개째 그냥 반 동강이 나버렸다. 아름이는 소영이의 손놀림을 호기심과 질투어린 눈으로 지켜보았다. <장보고 명동>에도 없는 신기한 물건이었다.

우아, 언니는 별 걸 다 한다.”

아름이는 아이들 주위를 부산스럽게 오갔고, 급기야 우물 벽에 손을 집고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때 소영이의 손끝에 쥐어진 성냥에서 불이 확 타올랐다. 아름이가 손뼉을 치며 환호성을 질렀다.

, 불이다! 불이야!”

 

당황한 소영이는 저도 모르게 불붙은 성냥을 앞으로 던져버렸다. 나뭇가지와 낙엽이 삽시간에 확 타올랐다. 겁을 집어먹은 아이들은 소리를 지르며 우왕좌왕했다. 우물 벽을 타던 아름이는 발을 헛디뎌 땅바닥으로 쾅 떨어졌다. 은학이는 얼른 아름이를 부둥켜 세우며 달랬지만, 은학이의 눈앞에 어른거리는 것은 피투성이가 된 태형이의 얼굴이었다. 아름이의 엉덩이와 무릎에 묻은 흙이 전부 핏빛으로 보였다. 바로 옆에서 뜨거운 불길이 치솟아 은학이의 불안을 더 부채질했다. 운동장에서 놀던 아이들이 몰려들었다. 불길은 잘 여문 불쏘시개를 태우며 우물 쪽으로 기어가 벽을 타기 시작했다. 한 남자 교사가 분수의 수도꼭지에 호수를 연결해 불을 끄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불구경에, 물 구경에 신이 났다. 아름이는 몸 어디가 욱신거리고 살갗이 따가운 것도 잊고서 다리를 절룩거리며, 또 엉덩이를 문지르며 불구덩이 주위를 뛰어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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