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돌은 갈비찜 옆에 다소곳이 찌그러져 있는 붕장어 구이만 연거푸 먹었다. 갈비찜 양념과는 달리 이 고추장 양념은 너무 싱거웠다. 하는 수없이 갈비찜 양념에 붕장어 조각을 찍어 먹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어머니가 손뼉을 탁 쳤다.
“그래, 그래, 장어가 남자한테는 그렇게 좋단다. 그나저나 장가는 안 갈 거냐?”
“장가를 가려면 직장이 있어야지! 다시 나와라. 사람은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야 되는 법이야.”
아버지가 언성을 높이자 밤돌도 대꾸를 했다.
“거기도 사람 많아요. 최근에는 아파트도 많이 짓고,”
“이놈이! 사람 사는 데라고 다 같은 게 아니야! 말은 나면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은 나면 서울로 보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야!”
“여기가 무슨 서울이에요? 서울에 비하면 완전히 시골이지.”
밤돌은 불퉁하게 내뱉었지만 금세 기가 팍 죽었다. 그가 주먹을 살짝만 휘둘러도 비명 한 번 못 지르고 고꾸라질 것 같은 노인이건만, 성장기에 세뇌된 권위의 힘은 실로 무서운 것이었다.
“잔말 말고 어서 들어와! 이 아비 말을 업신여겼다간 좋은 꼴 못 본다. 네놈이 어느 구석에 박혀 있는지 내가 모를 줄 알아? 다 알면서도, 그저 기다려줬을 따름이야.”
아버지는 천연덕스럽게 거짓말을 늘어놓았다. 순진한 환자를 꼬드겨 오며 굳어진 습관과 아들 앞에선 억지로라도, 거짓으로라도 위풍당당해야 한다는 해묵은 의무감이 다시 고개를 쳐든 것이었다. 신기하게도 이것이 금방 효력을 발휘했다. 밤돌은 자신의 은신처를 들킬까봐, 지금껏 누려온 자유를 빼앗길까봐 부들부들 떨었다. 성 안에서 혼자 놀고 있을 소영이도 떠올랐다. 이 아이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아니, 만에 하나 대면의 순간이 온다면 딸이라기엔 너무 크고 마누라라기엔 너무 어린 이 아이를 어떻게 소개해야 하나. 보나마나 아버지는 혼자 음흉한 상상을 하며 다짜고짜 “걔랑 잤냐?”라는 질문부터 할 것이다. 우물대며 대답을 회피하거나 어떻게 감히 그런 질문을 할 수 있냐며 역정이라도 내면 당장에 일장 훈계가 시작될 것이다. “요 녀석 봐라, 잤구나!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놈이! 사내자식은 모름지기 혀끝과 고추 끝을 조심해야 하는 법이야!” 운운하면서 말이다.
밥상이 나가자 술상이 나왔다. 일을 할 때는 그래도 좀 자제했던 술버릇이 은퇴 이후 기고만장하게 절정을 맞은 것이다. 밤돌은 술상을 앞에 두고 아버지의 술주정을 들어야했다.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그래서 한마디 했다.
“아버지, 아무리 임플란트를 했어도 술을 이렇게 드시면 이빨이,”
“이놈이! 술이 아까워서 그러냐? 아님 이빨 걱정을 하는 거냐? 아이고, 잘난 놈! 땡전 한 푼 안 보태 준 주제에! (여기서 아버지는 잠깐 휴지부를 두고서 생각에 잠기는 척 했다.) 술 참다가 화병으로 죽느니 술 먹고 술병으로 죽는 게 수천 배는 낫다, 음.”
아버지는 술기운이 돌아 점점 혀가 꼬이고 몸이 허물어졌다.
밤돌은 해방의 순간을 꿈꾸었다.
아버지가 느닷없이 벌떡 일어나더니 마루 한 구석으로 나갔다. 그리곤 앉은뱅이책상 앞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밤돌은 어리둥절했다. 곧 독경이 시작됐다. 꼬인 혀로 읊어대는 염불에서는 술 냄새와 퇴폐의 냄새가 풀풀 풍겨져 나왔다. 밤돌은 아버지를 내버려두고 술상을 치웠다. 그러곤 안방으로 갔다. 웬일인지 문이 꼭 닫힌 상태였다. 밤돌은 조용히 노크를 하며 안으로 들어갔다. 어머니는 무릎을 꿇고 허벅지를 세운 채 벽에 걸린 십자가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혼잣말처럼 기도소리가 흘러나왔다. 밤돌은 황망해하며 다락방으로 갔다.
다락방은 그가 성장기와 청춘을 보낸 곳이었다. 10여년을 방치했건만 꼭 어제 떠났다가 온 것처럼 깨끗했다. 이부자리도 깔려 있었다. 그는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몸에 닿는 이불의 감촉이 영 생경했고 방 안 공기도 낯설었다. 그럼에도 누가 업어 가도 모를 만큼 깊은 잠에 빠졌다. 눈을 떴을 때는 해가 중천에 떠 있었다. 다락방의 창문 위로까지 뻗은 나뭇가지에서 새들이 요란스레 울어댔다. 밤돌은 깜짝 놀라 후다닥 일어났다. 저도 모르게 자명종부터 찾았다. 10시가 넘은 시각이었다. 이렇게 늦잠을 자다니 낭패였다.
“으악!”
밤돌은 소영이처럼 비명을 지르며 마루로 뛰어 내려갔다. 이 시각엔 이곳에 없어야 할 아버지가 보였다. 그는 앉은뱅이책상 앞에 앉아 열심히 염불을 외우고 있었다.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팔을 사십오도 각도로 꺾어 목탁까지 쳤다. 제법 그림이 나오는 것이 은퇴 후 줄곧 이 일만 한 모양이었다. 불경 소리가 열린 현관문을 타고 마당으로까지 퍼져갔다. 밤돌은 안방으로 들어갔다.
“엄마! 왜 안 깨우고,”
밤돌은 곧장 말문이 턱 막혀버렸다. 방안 한 구석에서 찬송가가 흘러나온다는 걸 그제야 깨달았다. 행여 남편의 독경과 염불을 방해할까봐, 늙은 아내는 방구석에 콕 처박혀 카세트 스피커에 귀를 바싹 댄 채 찬송가를 듣고 있었다. 입술을 달싹이며 따라 부르기도 했다. 성령이 임했는지 그녀의 얼굴은 눈물에 젖어 있었다.
밤돌은 세수도 하는 둥 마는 둥 하고서 얼른 집을 나왔다. 그 모습이 꼭, 가늘게 뜬 실눈으로 힐끔 본, 도망치는 시골의사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곧 다시 되돌아갔다. 그러고는 가방 속에서 금괴 하나를 꺼내, 안방의 십자가 밑에 살짝 놔두곤 다시 나왔다. 동네를 완전히 빠져나왔을 때 밤돌은 떡붕어 아저씨가 됐다. 세상의 모든 아침이 한꺼번에 찾아온 것에 당황할 겨를도 없이.
*
산뜻한 가을날, 아침 햇볕이 내리쬐는 선착장은 아늑했다. 아직도 제법 쌀쌀한 바닷바람도 짭조름하니 맛깔스러웠다. 파도가 살짝 일긴 해도 배가 못 뜰 정도는 아니었다. 배 시간에 대기 위해 그는 얼마간 선착장 주위를 배회했다. 마침내 배에 올랐다. 출항하기가 무섭게 굵은 빗방울이 조그만 선창을 때렸다. 바다로 나왔을 때는 기어코 배가 조금씩 울렁이기 시작했다. 떡붕어 아저씨의 몸은 금방 배의 흐름에 반응했다. 익숙하지만 불쾌한 느낌이었다. 주위에서 사람들이 헛구역질에 토악질을 해댔고 뒤쪽으로 나가는 사람도 있었다. 떡붕어 아저씨도 냉큼 그리로 달려갔다. 다행히 아직은 그의 큰 몸을 뉘일 공간이 남아 있었다. 그는 배 바닥에 배를 깔고 엎드렸다. 파도와 배의 움직임에 따라 뱃속이 기이하게 울렁댔고 눈앞이 몽롱해지면서 곧 노래졌다. 의식도 가물가물해지며 사지에 힘이 쭉 풀렸다. 그는 눈을 감았다.
드디어 섬이었다. 그는 선착장을 빠져나가 곧장 택시를 잡아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