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안의 악마를 어찌할 것인가
- 윌리엄 골딩, <파리대왕>
비행기에 탄 채 어디론가 이송되던 소년들이 불의의 사고로 바다 한가운데 무인도에 불시착한다. <파리 대왕>은 이 소년들의 모험담을 다루고 있지만 모험소설이나 성장소설로 읽히지는 않는다. 차라리 디스토피아 소설, 혹은 우화의 형식 속에 인간의 본성과 그것의 사회적 발현인 정체(政體)에 대한 사유를 담아낸 철학소설에 가깝다.
(베엘제붑(-불)/파리대왕)
소년들은 크게 랠프 파와 잭 파로 나뉘는데, 이를 통해 이성과 광기(본능), 문명과 야만, 어른의 세계와 아이의 세계, 낙관주의와 냉소주의, 민주주의와 전체주의 등의 이분법이 형성된다. ‘쿠데타-혁명’으로 ‘정권’을 쟁취한 후 불이 필요해지자 피기의 안경을 훔쳐가 버린 잭 일당 앞에서 랠프와 피기가 하는 말이 나름의 도식이 될 수 있겠다. 두 소년의 ‘말’과 잭 일당의 야유와 함성도 묘한 대조를 이룬다.
「나는 이 말을 해야겠어. 너희들은 마치 한 패의 어린아이들처럼 처신하고 있다는 것을」
야유소리가 높아졌다가 돼지가 마술적인 힘을 가진 흰 소라를 쳐들자 다시 조용해졌다.
「어느 편이 좋겠어? 너희들같이 얼굴에 색칠한 검둥이처럼 구는 것과 랠프같이 지각 있게 구는 것과」
오랑캐들 사이에서 큰 함성이 터졌다. 돼지는 다시 소리쳤다.
「규칙을 지키고 합심을 하는 것과 사냥이나 하고 살생을 하는 것 - 어느 편이 더 좋겠어?」
다시 함성과 휙 하고 날아오는 소리.
소음에 지지 않고 랠프가 다시 외쳤다.
「법을 지키고 구조되는 것과 사냥을 하고 모든 것을 파괴하는 것 중 어느 편이 좋으냔 말이야?」(270)
랠프는 해군 중령의 아들로서 아빠 없는 피기를 은근히 무시하고 또 피기의 애원에도 불구하고 그의 별명(피기-돼지)을 다른 아이들에게 알리지만,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수호할 의지와 능력을 갖춘, 온화한 유형의 지도자-대장으로 나온다. 피기 역시 훌륭한 통치자의 멘토, 즉 지성의 상징이다. 그럼에도 성가대 지휘자로서 카리스마를 발휘하던 야심가 잭 대신 랠프가 ‘선거’를 거쳐 ‘대장’으로 선출되는 데 엄정하고 필연적인 논리가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선거 장난은 소라만큼이나 모두의 마음에 들었다. 잭은 항의를 하기 시작했으나 좌중의 고함소리는 대장을 골라내자는 일치된 의견에서 박수갈채로 랠프를 선출하자는 것으로 변했다. 그 이유는 아무도 설명할 수 없었을 것이다. 지성(知性)이라고 할 만한 것을 보여준 것은 돼지였고, 한편 누가 보아도 지도자다운 소년은 잭이었다. 그러나 앉아 있는 랠프에게는 그를 두드러지게 하는 조용함이 있었다. 몸집이 크고 매력 있는 풍채였다. 뿐만 아니라 은연 중 가장 효과적인 것은 소라였다. 그것을 불고 그 정교한 물건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화강암 고대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존재 - 그런 존재는 별난 존재였던 것이다.(30)
그 때문인지 랠프와 잭의 연대는 시작부터 위태롭다. 우선 구조될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불을 피워 연기를, 즉 봉화를 올리자는 견해와 당장 먹을 식량을 구하기 위해 사냥을 하자는 견해가 대립한다. 작가는 은근히 전자 쪽에 손을 들어주지만 과연 어느 쪽이 옳다고 정언적으로 말할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 또 잭 일당을 얼굴에 색칠을 한 채, 즉 가면을 쓴 채 짐승처럼 날뛰는 ‘오랑캐’로, 공포와 폭력의 축으로 몰아간 것(상당히 선정적이고 폭력적인 암퇘지 사냥 장면이나 사이먼-‘짐승’ 살해 장면)은 영국 작가 특유의 결벽증의 산물인지도 모르겠다.
대체로 <파리 대왕>의 내포 작가는 어디로 튈 줄 모르는 ‘아이-자식’을 바라보는 ‘어른-아빠’와 유사하다. 이 ‘어른-아빠’는 소위 착하고 똑똑한 아이들(랠프와 피기)이나 아직 백지 상태에 가까운 꼬마들이 자신의 권위를 따르며 그 훌륭하고 질서정연한 세계를 모방하길 바란다. 소라의 이용, 선거 흉내, 봉화 지키기 등에 반영된 의회 민주주의의 미니어처를 보라. 한데 하나의 전범이나 희망의 형태로만 존재하던 ‘어른-아빠’가 소설의 말미에서 갑자기 진짜로 등장한다. 이 해군 장교가 아이들에게 던진 첫 질문이 “성인들 - 어른들도 함께 있니?”(300)라는 점은 꽤 의미심장하다. 사태를 어느 정도 파악한 다음 그는 ‘어른-아빠’ 특유의 점잖은 완곡어법으로 아이들을 나무란다.
「영국의 소년들이라면… 너희들은 모두 영국 사람이지?… 그보다는 더 좋은 광경을 보여줄 수가 있었을 텐데. 내 말은…」(302)
진짜 ‘어른-아빠’ 앞에서 아이들은 더 이상 어른 흉내를 낼 수 없다. 그토록 호기롭고 용감하게 어른의 세계를 구축했던 잭마저도 몸부림치며 울기 시작한다. 그렇다면 과연 ‘어른-아빠’의 세계는 완벽할까.
<파리 대왕>은 ‘어른-아빠’가 아이들을 구원하는 것으로 끝나지만 소설 바깥에 더 큰 공포가 도사리고 있음을 간과하지 않는다. 섬 속의 아이들이 봉화냐, 사냥이냐 하는 문제로 다투다가 결국 두 명의 희생양을 내기에 이르렀다면, 섬 밖의 어른들은 숫제 핵전쟁을 벌이고 있다. 어른 세계라고 ‘짐승’이라는 이름의 불안과 공포가 없을 리 없다. 잭 일당에게 잔인하게 살해된, 무수한 파리 떼로 뒤덮인 암퇘지의 머리, 즉 ‘파리 대왕’(베엘제붑-악마)은 우리 안에 있으며 그것이 결코 아이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점, 이것이 진정한 비극이다.
그(사이먼)는 재빨리 눈을 떴다. 야릇한 햇볕 속에 그 머리는 재미있다는 듯 씽긋 웃고 있었다. 꾀는 파리도 도려낸 창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막대기에 꽂혀 있다는 창피함조차도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투로 -(205)
-- 네이버캐스트
-- 저 글을 쓰며 처음 읽어봤는데요(-_-;;) 그 명성에 비해... 좀 실망했습니다.(영화는 오히려 괜찮았는데요.) 전반적인 주제는 아무래도, 도...키의 <악령>에 가까울 법도 합니다만. 영국 소설은 아무래도 너무 귀족적인(??) 감이 있어요. 최고 소설가는 코난 도일과 아가사 크리스티??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