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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으로 돌아온 떡붕어 아저씨는 풀썩 쓰러졌다. 몇날며칠 동안 열이 펄펄 나고 살갗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반쯤 정신을 잃은 상태에서 계속 헛소리를 하고 조금씩 정신이 들 때마다 숨이 끊어질 것처럼 불안하게 기침을 해댔다. 눈을 감은 상태로 몸을 반쯤 일으켜서는 정신없이 토사물을 게워내기도 했다. 개 독감이었다. 소영이는 학교도 가지 못하고 떡붕어 아저씨의 곁을 지키다가 결국 마녀를 찾아갔다.

 

마녀와 문지기는 의사를 불렀다. 무자비한 도시화와 산업화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살아남은, 무릎이 귀를 덮을 정도로 늙은 시골의사였다. 그는 자기만큼 늙은 누렁소가 끄는 수레를 타고 왔다. 이 형편없는 시골의사는 떡붕어 아저씨의 환부(이건 몸 전체였는데)를 보는 둥 마는 둥 하다가 그의 오른쪽 엉덩이 한가운데에 활짝 핀 붉은 꽃처럼 열려 있는 선연한 상처를 발견했다. 거기서는 수십 마리의 구더기가 꿈틀대고 있었다.

 

시골의사는 이제야 답을 알았다는 듯 근엄하게 입을 뗐다.

죽을병이오. 그냥 죽게 내버려둬요.”

이 말에, 지금껏 의식을 잃었던 떡붕어 아저씨가 갑자기 몸을 벌떡 일으키며 외쳤다.

안 돼! 난 살고 싶어! 나를 구해줘요!”

비장한 표정을 지으며 최후의 유언을 내뱉은 뒤 떡붕어 아저씨는 다시 자리에 털썩 드러누웠다. 순식간에 의식이 꺼졌지만, 그 무뚝뚝하고 음울한 얼굴에는 단말마의 고통을 반영하는 것 같은 주름이 생겨버렸다. 소영이는 떡붕어 아저씨를 흔들어보다가 반응이 없자 울부짖으며 악을 썼다.

으악! 우리 아저씨가 왜 죽어? 할아버지 의사잖아? 빨리 살려내란 말이야!”

하지만 귀가 다소 먹어, 어린 여자의 새된 소리에도 시골의사는 별 감흥 없이 자기 말만 되풀이했다.

어차피 죽을병, 약을 써도 소용이 없소.”

뭐야? 할아버지 돌팔이 의사야? 주사를 놓든 약을 먹이든 하란 말이야!”

소영이는 더 악에 받쳐, 저 애처로운 시골의사의 대머리를 주먹으로 쾅쾅 두들겼다. 그제야 시골의사는 자기가 어떤 환자, 어떤 보호자와 있는지 감이 왔다. 머리가 띵하고 속이 울렁거렸다. 이 골치 덩어리로부터 얼른 해방되기 위해 시골의사는 대번에 말을 바꾸었다.

, 그러고 보니 살 병이오.”

당연하지! 그러니까 빨리 낫게 하란 말이야!”

 

두 사람의 짧은 대화가 끝나기가 무섭게, 떡붕어 아저씨가 또 정신을 차렸다. 하지만 이번에는 죽음을 목전에 둔 사람처럼 힘없이, 가늘게 눈을 뜨며 차분하게 말했다.

나를 그만 죽게 내버려둬요. 한평생 잘 놀다 갑니다.”

환자가 담담한 태도를 보이자 시골의사는 자기를 무시하는 것 같아 자존심도 상했다. 아니, 목숨을 경시하고 초탈한 척 구는 태도가 얄미웠다. 그는 예언자처럼 조용하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천천히 말했다.

허허, 그야 물론 그렇지요. 어차피 살 병이니까 그냥 두면 그럭저럭 살다가 나중에 알아서 잘 죽어요.”

이렇게 말하며 시골의사는 환자의 반응을 살폈다. 하지만 환자는 비장한 유언을 끝으로 장렬하게 무의식 속에 함몰한 뒤였다. 시골의사는 아주 오랜만에 부아가 치미는 걸 느꼈다. 때 아닌 폭풍우 속을 뚫고서 그야말로 죽을힘을 발휘하며 여기까지 왔는데, 저놈의 환자는 쿨쿨 잠이나 자고 있다니!

 

그때 시골의사는 급습을 당했다.

그런 게 어디 있어? 할아버지, 정말 나한테 맞아볼 테야, ?”

소영이는 당장 시골의사에게 달려들어 코를 콱 깨물어버렸다. 시골의사가 미처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그의 귀가 소영이의 이빨 사이로 들어갔다. 시골의사는 고통스럽게 비명을 질렀다. 그런데도 소영이는 그의 귀를 풀어주기는커녕 숫제 잘근잘근 씹어댔다. 갑자기 시골의사의 절망적인 비명이 구질구질한 푸념으로 바뀌었다.

지금 이 늙은이를 갖고 노는 거요? 이 늙은이가 불쌍하지도 않소? 내 평생 여기저기 왕진을 다니느라 인생을 다 써버리고, 오늘은 누렁소도 사정이 여의치 않았단 말이오! 이웃사람이 빌려준다는 걸 끝끝내 뿌리치고 다 죽어가는 누렁소를 이끌고 저 비바람을 헤치고 왔거늘! 돈이라도 많이 받는 줄 아쇼? 하지만 나 아니면 누가 이런 시골에서 의사 노릇을 하겠소?”

귀는 물론 눈마저 멀기 시작한 늙은 시골의사의 푸념은 날카로운 비명보다 더 애절했다. 소영이는 이빨에 힘을 풀었지만 계속 씩씩댔다.

, 세상에 불쌍한 사람이 할아버지 밖에 없는 줄 알아? 괜히 불쌍한 척 하지 마!”

 

이 말에 시골의사는 흠칫 놀라며 소영이를 바라보았다. 이제껏 한창 물 오른 소녀인 줄만 알았는데 자세히 뜯어보니 쭈그렁바가지 노파였다. 늙은 시골의사에겐 때 아닌 연민이 샘솟았다. 노망이 난 노모를 돌보는 장성한, 심지어 중년으로 접어든 아들이라니.

! 그렇구먼. 내 처방을 해주리다. 저 양반은 푹 꼬아 드시구려.”

시골의사는 코와 귀를 번갈아 만지며 열린 문 너머로 보이는 개를 가리켰다. 그 녀석은 오늘도 변함없이 마녀의 현관 문 앞에 쭈그리고 앉아 집을 지키고 있었다. 시골의사 옆에 있던 마녀는 피식 웃었고 시골의사는 계속 주위를 살폈다. 복도 끝에서 그의 누렁소가 해슬피 게으른 울음을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이 그에게 어떤 영감을 준 모양이었다. 갑자기 그는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곤 마녀에게 귀를 좀 빌려달라며 손짓을 했다. 시골의사는 계속 뭐라고 속닥대고 마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뭐야, 뭐야? 나한테 얘기해줘, 얼른!”

, 그럼 이 몸은 그만 퇴청하겠소.”

어라, 할아버지! 이 대머리야!”

소영이가 바짓가랑이를 잡을 틈도 없이 늙은 시골의사는 쏜살같이 방을 뛰어나가 버렸다. 제대로 걷지도 못 할 만큼 늙어버린 양반이건만, 저 순발력과 정력은 어디서 나오나 싶을 정도로 놀라운 속력이었다. 수레에 올라타자마자 그는 누렁소의 궁둥이를 탁 쳤다. 누렁소는 갑자기 말처럼 히힝 소리를 내며 복도 창문을 뚫고 나가버렸다.

 

저 할아버지 정말 의사 맞아?”

소영이가 마녀에게 물었다.

그럼 이 동네에서 소문난 명의인걸. 의료행위 경력이 수백 년은 되는 양반이야.”

완전히 바보 같은데?”

원래 사람이 경지에 이르면 바보와 차이가 없어지는 법이란다.”

 

마녀의 말은 사실이었다. 시골 의사가 다녀간 후 떡붕어 아저씨는 얼마 지나지 않아 병상을 털고 일어났다. 병마의 흔적은 조금도 남아 있지 않았다. 식음을 전폐할 만큼 앓아누웠던 것도 성과가 있었다. 기하급수적으로 축적되었던 지방이 싹 빠져버린 덕분에 떡붕어 아저씨는 생활의 감각을 되찾았다. 다시 금괴를 사기 위해, 그만한 돈을 모으기 위해 그는 P시로 떠났다. 갑자기 어른스러워진 소영이는 눈물을 감추며 그를 배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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