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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붕어 아저씨는 T시를 완전히 버렸다. 하지만 그건 그만의 착각이었고 실은 해고당한 것이었다.

이참에 떡붕어 아저씨는 오랫동안 꿈꾸었던 놀고먹는 삶을 마음껏 탐닉했다. 한 번 낚시를 나가면 몇 박 몇 칠 동안 돌아오지 않았다. 돌아올 때는 주로 빈손이었다. 낚시도 하지 않을 때는 만화방에 둥지를 틀었다. 매캐한 담배 연기와 책장 곳곳까지 밴 담배냄새, 공기에 스민 눅눅한 곰팡내가 떡붕어 아저씨 몸의 톱밥 냄새를 조금씩 지워버렸다. 피시방 컴퓨터 앞에서도 대단한 집중력을 발휘하며 오락에 몰입했다.

 

각종 아이템은 금괴와 동일시됐고 그 자신은 그가 조종하는 캐릭터와 한 몸이 됐다. 컵라면 용기가 차곡차곡 쌓이고 재떨이가 꽁초로 가득 찼다. 용을 무찔러 성을 탈환하려면 목구멍과 폐를 온통 니코틴과 타르로 칠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식이었다. 그 무렵 그가 가장 존경한 사람은 일주일 내내 식음을 전폐하고 잠도 자는 둥 마는 둥 오락만 하다가 조용히, 영원히 깊은 잠에 빠지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정작 그 옆에 앉아 있던 사람이 그런 식으로 마지막 숨을 내쉬었을 때는 지하 피시방의 음습한 공기로부터 자기를 보호하려는 듯 얼른 내빼버렸다. 그 뒤로 그는 방에 칩거해버렸다.

 

소영이가 책가방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어라, 오늘도 안 나갔어?”

떡붕어 아저씨는 슬슬 몸을 일으켰다. 사지를 추스르는 것조차 귀찮다는 투였다. 하품을 쩍쩍 했지만 그 하품마저도 성가신 것 같았다.

아저씨, 나 아저씨 이렇게 사는 거 정말 싫거든! 아저씨 세수도 안 했지? 양치질은? 뭐야, 정말?! 이빨 닦는 법 몰라? 내가 가르쳐줘, ?”

소영이는 잔소리 많은 마누라처럼 바가지를 긁었다. 떡붕어 아저씨는 천천히 일어나 방을 나갔다. 그 뒤로 그는 집에 오지 않았다.

 

열흘 정도가 지났을 때 소영이는 마녀를 찾아갔다. 호랑이를 닮은 커다란 개가 집 앞을 지키고 있었다. 마녀는 겉옷을 걸치고 나왔다. 이상하게도 그녀의 가슴이 부풀어 있고 배가 불룩 솟아난 것 같았다. 소영이는 그녀의 뱃속에 새로운 고양이가 생겨났다고 생각했다.

언제 태어나, 그 고양이는?”

그게 무슨 소리야?”

에이, 시치미 떼지 마. 아줌마 배 말이야!”

어라, 이건 그냥 똥배야.”

에이, 무슨 똥배가 그렇게 커? 뱃속에 커다란 혹이 생긴 것 같은데?”

설마?”

아줌마, 아저씨가 사라졌어. 찾으러 가야겠어. 같이 가줄래?”

마녀가 고개를 끄덕이자, 고양이 얼굴을 한 커다란 개가 몸을 일으켰다. 오랫동안 한 자리에 웅크리고 앉아 있었기 때문에 다리에 쥐가 나는 모양이었다. 개는 덩치에 맞지 않게, 참 품위 없게 네 다리를 비틀며 제 자리에서 준비운동을 했다. 달릴 준비가 된 개는 소영이를 등에 태웠다. 소영이는 의아해하며 마녀를 올려다보았다. 마녀는 개의 꼬리를 살짝 잡아당기며 개를 몰았다.

 

마녀와 소영이는 명동이 즐비한 동네를 구석구석 다 돌았다. 어디에서도 떡붕어 아저씨는 찾을 수 없었다. 지친 그들이 <장보고 명동>을 지나칠 때는 이미 날이 어둑어둑했다. 마녀는 장이나 봐야겠다며 슈퍼마켓 안으로 들어갔다. 졸지에 개의 등은 장바구니로 가득 찼다. 그들 일행은 두부 공장 옆을 지나갔다. 삶은 콩과 막 쪄낸 두부 냄새가 코를 찔렀다. 공장 앞의 개는 몰려드는 길 고양이들을 향해 험악한 표정을 지었다. 여차하면 당장 달려들 기세였다.

 

낡은 다세대 주택들이 두부 공장과 벽을 맞대고 있었다. 수십 년 동안 수리를 하지 않은 건물 벽에는 쇳물과 땟물이 화석처럼, 돌무늬처럼 새겨져 있었다. 손바닥만 한 창문 너머로 누추하고 번잡한 세간들이 보였다. 현관문은 대개 다 열려 있었다. 마당 한구석에는 장독들이 있었고, 벽을 따라 화분대용으로 쓰는 두툼한 물통이 보였다. 그곳에도 자잘한 모종들이 삐죽이 고개를 내밀기 시작했다. 성질이 급한 풀들은 벌써 꽃을 활짝 피웠다. 저녁 식사 시간을 앞두고 아이들은 마당을 이리저리 오가며 뛰어놀았다. 어른들은 아이들이 이곳을 벗어나는 걸 달가워하지 않았다. 불과 몇 발짝 떨어진 곳에서부터 모텔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모텔은 해가 떨어지길 기다렸다는 듯 이른 저녁부터 화려한 불꽃을 피웠다.

 

어라, 빗방울 떨어진다!”

어스름이 내린 시멘트 길을 걷고 있던 소영이가 위를 올려다보며 소리쳤다. <호텔 바이올렛>, <호텔 수>, <목화장> 등을 막 지나왔을 때였다. 그리로 향하던 늙은 연인들은 깜짝 놀라며 부질없이 고개를, 몸을 숙이며 걸음을 재촉했다.

아참, 아줌마 마녀잖아? 우산 좀 만들어 봐, ?”

마법은 그런 때 쓰라고 있는 게 아니야.”

 

그러고도 마녀는 뭐라고 더 말을 했지만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가랑비인가 싶었는데 빗줄기가 금세 굵어진 탓이었다. 몇 걸음도 떼지 않아 우박이 떨어지고 천둥번개가 쳤다. 첫 번째 천둥에 소영이는 비명을 지르며 마녀의 팔을 꼭 붙들었다. 두 번째 천둥이 치자, 더욱이 번개마저 번쩍하며 세상이 순식간에 밝아졌다가 어두워지자, 소리 내어 엉엉 울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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