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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오후, 특수반 아이들은 학교가 끝나자마자 곧장 명동만두분식으로 향했다. 이곳에는 물만두, 찐만두, 군만두, 만둣국 등 온갖 만두가 다 있었다. 심지어 떡볶이와 라볶이에 튀긴 만두를 넣은 만두 볶이도 있었다. 콩나물을 넣은, 매콤하고도 달콤한 쫄면도 아이들이 즐겨 먹는 음식이었다. 오늘도 아이들은 만두 접시를 눈앞에 두고 정신없이 배를 채웠다. 군만두 하나를 남겨놓고서 소영이가 말했다.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은 누굴까? 돈 많은 사람? 힘 센 사람?”

아름이가 만두 볶이 접시에 코를 박고 있다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키는 크고 얼굴은 조그맣고 무진장 예쁜 사람!”

아니야! 배가 무진장 커서 하루에 네 끼, 다섯 끼, 아니 열 끼를 먹을 수 있는 사람이야. 세상에는 맛있는 게 정말 많거든.”

그건 맞아.”

은학이가 소박하게 웃으며 대답하자 아름이가 얼른 대꾸했다.

, 그럼 아저씨가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이야? 아저씨는 배 크잖아?”

아무리 배가 커도 하루에 열 끼는 못 먹어, 헤헤.”

이 말에 아름이는 소영이가 남긴 군만두를 냉큼 집었다.

 

그 때 태형이가 명동만두분식 앞을 지나갔다. 아름이가 식당이 떠나갈 새라 큰 소리로 외쳤다.

, 꽃남!”

태형이는 흠칫하며 가던 길을 멈추고 섰다. 6학년이 되면서 마냥 계집애처럼 예쁘장하고 귀엽던 태형이는 서서히 사내다운 틀을 갖추어갔다. 누구의 눈에나 예비 미남으로 보일 법한 이목구비였다.

은학이와 소영이가 꽃남을 보기 위해 의자에 앉은 채로 몸을 뒤로 돌렸다. 둘은 거의 동시에 외쳤다.

태형이었구나! 뭐해? 같이 먹자! 얼른 들어와!”

심지어 소영이는 자리에서 일어나기까지 했다. 그 순간, 태형이 머릿속에선 누나, 미워!” “형도 미워!”라는 말이 쓰이고 있었다. 그는 정말로 그들이 미웠다. 그들과 함께 했던 바보로서의 시간이 미웠다. 특수반에 가지 않아도 된 이후로 태형이는 이들을 슬슬 피했다. 그것은 한 번 부서지거나 뽑힌 이빨은 극소수의 예외를 제외하곤 절대 다시 심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시점과 거의 비슷했다.

학원 가야 돼요.”

잠깐 머뭇거리다 나온 말이 반말이 아니어서 태형이 스스로도 어색했다.

학원? 무슨 학원? 너 이제 학원도 다녀? 에잇, 아무리 그래도 군만두 먹을 시간도 없어?”

 

소영이의 물음에 태형이는 말을 얼버무리며 얼른 사라졌다. 만두 한 접시에 열광하는 저들이 왠지 촌스럽게 여겨졌다. 인생의 목표를 겨우 군만두 하나에 두는 것은 한심한 일이었다. 태형이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내년이면 중학생이 될 것이다. 당장 섬을 떠나지는 못해도, 이 지긋지긋한 섬마을을 벗어나 시내로 가려면 일분일초도 허비해서는 안 됐다. 누나에 대한 기억은 사라진 자리는 이제 세 살이 된 여동생이 대신했다. 어머니는 여전히 병신처럼 일만 하고서도 늘 남한테 굽실거리며 살았다. 태형이는 자기가 이 가난한 집의 장남이라는 사실을 벌써부터 어렴풋이 의식했다. 이 책임감으로 자신의 야망을, 또 자기중심적이고 야박한 삶을 정당화하기 시작했다.

 

명동만두분식을 나오는 아이들의 표정은 다 시큰둥했다. 그때 신임교장이 분식점 안으로 들어섰다.

, 너희들, 여기서 뭘 하는 거냐?”

만두 먹고 막 집에 가는 길입니다.”

은학이는 당당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어허, 이 녀석들이! 밥은 집에서 먹어야지! 부모님이 기다실 거 아니냐?”

어라, 언니, 이 할아버지 아까 그 꽃남하고 똑같은 소리 하네.”

요 녀석, 말버릇이 그게 뭐냐? 얼른 집에 가지 못해!”

교장은 무서운 표정을 지으며 고함을 쳤다. 은학이는 얼른 아름이를 들춰 업었다. 그러곤 소영이 손을 잡고 잽싸게 달아났다. 아름이는 영문을 모른 채 소리를 질렀다.

 

교장은 식당의 구석 자리로 가서 앉았다. 최근 들어 교장은 회식이 아니더라도 외식을 하는 일이 잦았다. 언제부터인가 그의 아내는 봉사활동, 종교 활동, 문화생활을 하느라 집을 자주 비웠다. 여성호르몬이 중단되면서 안주인은 그야말로 주인이 되어 살림은 전혀 하지 않고 오로지 소비활동을 통해 자기 존재를 증명했다. 그 바람에 교장은 집에서 따뜻한 밥 한 끼 제대로 얻어먹지 못했다. 그런데도 싫은 소리 한 번 못하는 것은 노년으로 접어든 암컷과 수컷의 당연한 권력 관계 탓이었다. 그나마 아직은 월급이라도 적잖이 벌어다주지만, 곧 닥칠 연금생활에서 최소한의 존엄성이라도 보장받으려면 지금부터 안주인에게 잘 보이는 수밖에 없었다.

 

교장은 이 굴욕적인 상황을 은근히 즐기는 경향이 있었다. 곁들어 그는 분식을 좋아했다. 이는 근검절약을 좌우명으로 매사에 궁상을 떠는 교장의 취미이기도 했다. 그는 어릴 적부터 정도라고 생각하는 것에서 조금도 이탈하지 않고 살아왔다. 적어도 그렇다고 생각해 왔다. 그에게 길바닥의 불량식품을 몰래 사먹는 것은 일종의 일탈이었다. 그 버릇이 말하자면 이렇게 나타났다. , 교직원들과 학생들 앞에서 늘 근엄하고 진중한 모습이던 그가 다름 아닌 학교 근처의 분식점에서 이렇게 조촐하게 식사를 하는 것이다. 이런 모습은 절대 연출처럼 보이면 안 됐다. 그저 겉보기에 권위적인 모습과는 달리 그의 내면은 진정 서민이라는 것을 은연중에, 하지만 모두에게 마음껏 과시해야 했다. 가난한 어부의 아들로 태어나 섬마을 최고의 초등학교 교장의 지위에 오른 자가 허접한 분식집에서 식사를 하다니, 이 얼마나 감격스러운 장면인가! 그런데 이 장면의 목격자가 하필 저 바보들이었다니.

 

혀를 차며 그는 메뉴를 하나하나 정성껏 읽었다. 그러곤 평소와 다름없이 떡볶이와 찐만두 한 접시, 얼큰한 속풀이 라면, 야채김밥 한 줄을 시켰다. 음식을 먹으면서 분이네 분식점과 훈이네 분식점을 오가던 학창 시절의 추억을 떠올렸다. 그러니까 맛있는 것은 이 음식이 아니라, 심지어 서민인 양 뻐길 수조차 있을 만큼 관대해진(그는 그러노라고 믿었다) 자신의 여유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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