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신입생 중에 통통하고 귀여운 아이가 있었다. 아름이는 개학 첫날부터 아이들의 관심을 끌었다. 빈틈없이 짜인 시간표에서 일탈을 꿈꾸는 아이들에게 이만한 먹잇감이 없었다. 심지어 소영이보다 더 중증에, 따라서 더 흥미로운 존재로 보였다.

 

아이들은 귀중한 시간을 할애하여 아름이를 괴롭혔다. 금이나 다름없는 시간을 소비하는 것이기에 괴롭힘의 방식도 훨씬 더 정교했다. 호머 파베르의 후예임을 증명하듯 도구까지 준비한 다음 우물 뒤쪽으로 끌고 갔다. 왠지 그냥 쥐어 패는 것은 시시껄렁하고 싱겁다는 생각에 옷을 찢어가며 벗겨야 된다는 강박관념 같은 것에 사로잡혔다. 그리고 그것은 그대로 실행에 옮겨졌다. 가뜩이나 몸가짐이 거칠고 목소리가 찢어질 것처럼 날카로운 아름이가 발버둥을 치고 비명을 지르자, 아이들은 약속이나 한 듯 거의 의식적으로 더 흥을 냈다. 한 아이는 아름이에게 마구 발길질을 하며 얼굴에 침을 퉤퉤 뱉었다. 그러자 다른 아이가 박수를 치며 추임새를 넣어주었다. 이어, 아이들은 아름이의 팔다리를 잡아당겼다. 아름이가 거의 까무러칠 지경이 되자 아름이의 다리 사이를 탐색하며 다음 행동을 준비했다.

 

아이들의 상상력은 공포의 임계점을 모른 채 점점 더 위험한 쪽으로 치달았다. 그때 은학이가 시커먼 먹구름처럼 아이들 위로 드리워졌다. 아이들은 언제 그토록 용감하게 아름이를 괴롭혔냐는 듯 비굴할 정도로 오그라들었다. 아름이는 온 몸에 가시를 세우며 큰소리로 외쳤다.

아저씨는 또 뭐야?”

은학이는 아저씨라는 호칭에 어리둥절해했다. 그 표정이 나름대로 귀여웠는지 아름이는 긴장을 풀었다. 은학이가 자기를 구해줬다는 걸 깨닫는 데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아름이는 옷을 주워 입으며 조잘대기 시작했다.

아저씨 뭐냐니까? 아저씨도 선생님이야? 그럼 또 나한테 야단칠 거야, ?”

급기야는 은학이를 쿡쿡 찌르고 꼬집기까지 했다. 언제 비명을 지르고 언제 엉엉 울었냐는 투였다.

잠깐만 좀 있어 봐, 목도리 둘러야지.”

은학이는 나뭇가지에 걸린 채 땅바닥으로 널브러져 있는 목도리를 집어 아름이의 목에 매주었다. 그 동안에도 아름이는 은학이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기고 다리를 들어 올려 어깨로 기어오르려고 안간힘을 썼다. 큰 곰을 갖고 노는 토끼, 혹은 호랑이를 거느린 고양이 같았다. 꽤 정겨운 풍경이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둘은 이내 단짝이 되었다.

 

아름이는 수업 시간에도 소란을 일으키기 일쑤였다. 특수교사가 꾸지람을 하자 버럭 화를 냈다.

에이, 왜 자꾸 시비 걸어? 짜증 나!”

곧장 의자 위로 올라가 방방 뛰더니 교실의 책상과 의자를 죄다 뒤엎어버렸다. 순식간에 교실은 난장판이 됐다. 그때 은학이와 소영이가 교실 안으로 들어섰다. 아름이가 마구 집어던진 물건 중 하나가 은학이의 머리를 툭 쳤다.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라 은학이는 미처 통증도 느끼지 못하고 멍하게 서 있다가, 잠시 뒤 교실바닥에 떨어진 물건을 주워 올렸다. 헝겊으로 된 필통이었다. 그제야 은학이는 넋 나간 표정으로 넓적한 이마에 불퉁하게 생겨난 혹을 문질렀다. 아름이는 은학이의 모습에 깔깔대며 웃다가 갑자기 생각난 듯 물었다.

아저씨랑 언니는 뭐야? 왜 매일 같이 다녀?”

책상 위에 서 있던 아름이는 순식간에 은학이의 어깨에 매달렸다. 은학이는 아름이가 바닥으로 떨어질까 봐 얼른 팔을 뒤로 뻗어 아름이의 엉덩이를 받쳤다. 졸지에 은학이 등에 업힌 아름이는 은학이의 등과 머리에 자기 머리를 콩콩 박으며 끊임없이 소리를 질러댔다.

 

아름아, 이제 그만 좀 내려오면 안 되냐?”

은학이가 참다못해 소리를 질렀지만 이 꼬마 폭군은 막무가내였다. 특수교사까지 나서서 힘을 썼지만, 아름이는 손가락, 발가락을 연체동물의 빨판처럼 만들어 은학이의 등에 더 찰싹 들러붙어버렸다. 그런데도 은학이는 감히 아름이를 떨어뜨리지 못하고 상대가 이 가학적인 놀이에 싫증을 내기만을 기다렸다.

아저씨, 나 저쪽!”

아름이가 허리를 꼿꼿이 세운 채 교탁을 가리켰다. 은학이는 벙어리 삼룡이처럼 말없이 교탁으로 걸어가, 아름이가 안전하게 내릴 수 있도록 등을 교탁에 갖다 댔다. 그러고는 아름이를 두 팔로 껴안아 교실바닥에 내려주었다.

나 졸려, 잘 거야. 아저씨 엎드려봐!”

은학이는 이미 교실바닥에 엎드렸고 아름이는 그 등위에 대자로 뻗어버렸다. 그리고 거짓말같이 곯아떨어졌다. 교실 한 쪽에 조용히 앉아 뜨개질을 하던 보조교사가 기어코 터져버렸다.

저런, 저런 사탄이!”

심지어 성호마저 그었다. 뒤에는 연이어 아멘이 따라 나왔다. 특수교사는 난처한 표정을 지을 뿐, 딱히 동조도, 제지도 하지 않았다. 그 동안에도 은학이는 싸늘한 교실바닥에 배를 깐 채 거북이처럼 버티고 있었다. 평생 처음으로 사랑에 빠진 순정파가 된 것이다.

 

아름이의 모습을 보자 소영이는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조금씩 혼자서 높임말을 연습해보았다. 혓바닥이 미끈미끈하고 입에 낯선 음식을 문 것처럼 어색했다. 왠지 씹을수록 더 이상한 맛이 나서 절대로 삼켜지지 않는, 결국엔 잘근잘근 씹은 채로 뱉어내고 마는 그런 음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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