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인이 있던 날 성탑 주위를 두르고 있던 유리벽이 사라졌다. 순식간에 찬바람이 몰아쳤고 꽃밭의 꽃들이 활짝 핀 채로 얼어붙었다. 사람들은 온 몸을 꽁꽁 싸맨 채로 밖으로 나왔다. 문지기는 우체부의 도움을 받아 노파의 관을 화장터로 가져갔다. 그곳은 성에서 좀 멀리 떨어진 숲속, 언젠가 우체부가 장작을 만들기 위해 나무를 벤 곳이었다. 우체부가 도끼를 휘둘렀다. 하지만 나무의 밑동이 벌어지기도 전에 지쳐버렸다. 결국 은학이가 도끼를 받아 쥐었다. 겨울을 나는 동안 훌쩍 자라 이제는 아버지보다 더 컸다. 아버지가 한 쪽에 쭈그리고 앉아 어깨를 주무르는 동안 아들은 열심히 도끼질을 했다. 한참 뒤에야 나무가 거대한 진동을 내며 머리통을, 곧 이어 온 몸을 땅바닥에 쿵, 찍었다. 떡붕어 아저씨, 문지기, 한숨 돌린 우체부가 모두 달려들었다. 도끼질하는 소리가 숲 가득 울려 퍼졌다. 굵은 통나무가 장작으로 변하기까지 반나절은 족히 걸렸다.
드디어, 노파의 나무관이 시뻘건 장작불 위에서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불길을 보자 사람들은 허기를 느꼈다. 마녀는 성에서 챙겨온 각종 씨앗을 순식간에 키워 밥상을 차렸다. 장작과 노파의 관이 불에 녹아가며 뿜어내는 열기 때문에 추위도 느껴지지 않았다. 사람들이 밥을 먹는 동안 관이 다 녹아내리고 노파의 시체가 타 들어갔다. 그 곁에서 사람들은 디저트를 먹었다. 각기 다른 이유로 눈물을 흘렸고, 각기 디저트의 종류도 달랐다. 누구는 블랙커피에 치즈 케이크, 누구는 레몬과 설탕을 넣은 홍차에 초코쿠키를 먹었다. 누구는 그냥 카페라테만, 누구는 녹차를 마셨다. 하지만 눈에선 눈물이 흐르고 입안으론 따뜻하고 달달한 먹을거리가 들어간다는 점에서는 똑같았다. 소영이는 죽은 할머니 생각도 나고 하여 그 누구보다도 많이 울었다. 때문에 배도 많이 고파져, 누구보다도 더 많이 먹었다. 다들 포만감에 젖었을 무렵 관이 거의 다 탔다. 우체부가 하얀 재와 굵직한 뼈를 긁어모아, 따로 갈지 않고 곧바로 유골함에 담았다. 그러곤 문지기를 쳐다보았다. 그제야 정신이 들었는지는 문지기는 유골함을 받아 품에 안았다. 금세 또 반쯤 넋이 나간 표정이었다. 그의 눈은 퉁퉁 부어 있었고 입에서는 진한 커피와 시나몬 향이 풍겨났다.
노파의 유골함은 성 바로 곁의 나무 밑에 묻혔다. 나무에는 노파의 이름과 생몰년도가 새겨졌다. 소영이는 떡붕어 아저씨의 등에 업힌 채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
성탑 노파 덕분에 봄이 왔다. 노파의 몸의 잔해를 빨아들이며 나무는 싹을 틔웠다. 그 기운이 주변으로 번져갔다. 연못을 덮었던 두툼한 얼음이 녹았다. 형형색색의 물고기들이 활개 치는 모습도 보였다. 순식간에 얼어붙었던 꽃들은 촉촉하고 검은 흙과 하나가 되었다가, 저절로 자연의 꽃밭을 만들었다. 쑥과 냉이와 씀바귀가 돋아나고 할미꽃, 제비꽃, 꽃다지가 고개를 들이밀었다. 질경이와 토끼풀도 복작대기 시작했다. 그 사이로 연못에서 튀어나온 개구리들이 산책을 즐겼다. 메뚜기와 방아깨비도 이 풀밭 겸 꽃밭의 어엿한 주인이었다. 잡초를 헤집으며 가늘고 굵은 뱀들이 어슬렁거리기도 했다. 우체부는 하루에도 두 번씩, 어떨 때는 세 번씩 성을 다녀갔다. 종잇장이 날아다녔고 종잇장 곳곳에 붉은 도장이 찍혔다. 성에 대대적인 봄맞이가 시작된 것이다.
모든 방에 방문과 창문이 다 열리고 해묵은 먼지들이 둥실둥실 떠다녔다. 문지기는 전에 없이 활기를 띠었다. 그는 나가는 사람을 배웅하고 들어오는 사람을 마중했다. 말은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지만 근육 하나 없는 여린 몸을 흐느적대며 이삿짐을 날라주었다. 사람과 가구가 빠져나간 빈 방을 완상하는 것이 그의 유일한 취미였다. 이 일이 끝나면 방안에 짙은 자줏빛 팥을 굵은 소금과 함께 팍팍 뿌렸다. 이때만은 어디서 솟는지 무척이나 힘이 넘쳐, 머리카락을 휘날리는 삼손 같았다. 넋 나간 듯 흐리멍덩한 눈에서도 웬일로 광채가 번득였다. 팥알과 소금이 널브러져 있는 방을 보며 뭔가 비장한 각오를 다지는 양 큰 숨을 한 번 내쉬었다. 그 다음에는 제 손으로 그것을 쓸어 쓰레받기에 담았다. 이 의식이 끝나면 역시나 제 손으로 도배를 하고 장판을 새로 깔았다. 방문, 욕실 문, 싱크대 서랍의 손잡이, 수도 등도 한 번씩 살펴보았다. 하지만 늘 관조하듯, 음미하듯 봤기 때문에 결함이 발견되는 일은 잘 없었다. 떡붕어 아저씨도 팔을 걷어붙이고 그를 도왔다. 소영이도 신이 나 짐을 날랐다.
이제 더 이상 아무도 성탑을 생각하지 않았다. 머리채 계단은 주인을 잃은 채 성벽 한 쪽에 매달려 있었다. 소영이는 매일 그곳에 들러 머리채 계단을 매만졌다. 그때마다 머리채의 끄트머리가 조금씩 마모되어갔다. 그것이 손이 닿지 않는 먼 곳으로 사라진 날, 소영이는 떡붕어 아저씨를 졸랐다. 구덩이 오막살이에 데려달라는 것이었다.
“안 돼.”
“왜?”
“처음부터 안 된다고 했잖아.”
“아저씨가 싫으면 관 둬! 이제는 나 혼자서도 갈 수 있어. 봐, 이렇게 컸는걸.”
소영이는 두 손을 허리에 대고 몸을 쭉 펴며 자신감을 보였다.
“휴우, 알았다. 하지만 울면 안 돼.”
“내가 아직도 어린애인 줄 알아?”
다음날 아침 일찍, 둘은 먼 길을 떠났다. 소영이는 인생에서 두 번째로 배를 탔다. 이 섬에 들어올 때만 해도 그토록 까마득한 길이었는데, 이제는 풋잠을 즐길 겨를도 없이 P항에 도착해버렸다.
“아저씨 뱃길이 달라졌어? 아님 배가 좋아진 거야?”
“배는 더 낡았는걸.”
떡붕어 아저씨의 심드렁한 대답에 소영이는 서글픈 표정을 지었다. 그 표정이 열다섯 살이 된 소녀에겐 제법 잘 어울렸다.
둘은 P시의 항구 근처 해산물 시장을 지나갔다. 노점상이 즐비했던 곳에는 거대한 유리 건물이 들어서 있었다. 시외버스터미널, 아니 고속버스터미널도 예전과는 사뭇 달라 보였다. 매캐하고 역겨운 버스 냄새도, 삶은 계란과 귤이 담긴 그물망도 여전했지만 사람들의 옷차림과 건물의 모양새는 영 딴판이었다. 소영이도 이제는 멀미약을 먹지 않아도 됐다. 고속버스는 새로 닦은 도로를 유유자적하게 달렸다.
K군의 읍내. 햇볕이 따사롭게 내리쬐는 유쾌한 오후였다. 둘은 시내버스터미널로 가기 위해 장터를 지나갔다. 사람들의 얼굴은 여전히 시커먼 구릿빛이었지만 어디에도 죽은 쥐의 꼬리를 빙빙 돌리며 깔깔대던 소년은 없었다. 육류는 모두 냉장고에 보관, 전시되어 있었다. 거대한 건물로 변한 장터에 시들어가는 과일과 야채를 파는 노점상이 있을 리도 없었다.
시내버스에 오른 뒤에도 소영이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버스는 더 이상 덜컹거리지 않았다. 버스도 좋아졌지만 신작로와 시멘트 길 대신 아스팔트길이 생긴 탓이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산천의 풍경만은 오래 전 소영이의 뇌리에 새겨진 모습 그대로였다. 버스가 정차했다. 예전처럼 마을에서 한참 떨어진 곳이 아니라 바로 마을 어귀였다. 하지만 소영이의 구덩이 오막살이가 있던 마을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아저씨, 저건 뭐야?”
“개발을 하는 거야.”
소영이 앞에는 움푹 파인 넓은 구덩이가 있고 그 위에 두툼한 철근이 격자 모양으로 깔려 있었다. 목이 긴 장화를 신은 인부들이 거기에 시멘트를 붓고 있었다. 일이 거의 다 끝나자 그 시멘트 늪을 힘겹게 빠져 나왔다.
“아저씨, 여기야, 그치?”
떡붕어 아저씨는 고개를 끄덕였다. 옆의 건물까지 마저 허물어 부지를 확장한 것이 보였다. 구덩이 오막살이는 저 시멘트 늪의 5분의 1도 안 됐을 것이다. 저 넓은 늪 어딘가에 구덩이 오막살이의 꽃밭이 있으리라. 또 그 어딘가에 할머니가 묻혀 있으리라. 그러니까 그것은 세상 어디에도 없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