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 꽃밭에 도착한 노인은 아이의 어머니를 보고 깜짝 놀랐다. , 역시! 그럼, 이 눈은 당신 것이었군. 강물에서 건져 올린 투명하고 아름다운 두 눈을 어머니에게 건넸다. 이제 어머니는 앞을 또렷이 볼 수 있었다. 그녀는 노파가 일러준 대로 말했다. 우리 아이를 내놓으세요, 다른 꽃을 뽑아버릴 거예요. 그러고서 어머니는 빛바랜 보라색이 안쓰러워 보이는 제비꽃을 감쌌다. 그리고 그 옆에 있는 꽃을 한 손으로 위협했다.

 

그것은 제비꽃보다 훨씬 더 초라한, 옅은 분홍색의 메꽃이었다. 그 역시 이제 막 꽃봉오리를 터뜨리려고 했지만 유리벽 안의 햇빛과 수분과 양분을 충분히 흡수하지 만큼 건강하지 못해 힘겨워하고 있었다. 노인은 말했다. 네 아이의 꽃이 뽑히면, 그래야만 저 메꽃은 무럭무럭 자라날 수 있을 것이다, 라고. 아이의 어머니는 분노했다. , 왜 우리 아이만?! 그리고 어머니는 메꽃의 모가지를 향해 갑자기 늙어버린 추악하고 앙상한 손을 뻗었다. 노인은 전율했다.

 

여기까지 오자 소영이는 참지 못하고 물었다.

, 그럼 결국 메꽃을 뽑아버렸어?”

물론, 교훈을 주는 훌륭한 동화 속의 어머니였다면 뽑지 말았어야 했겠지. 또 다른 아이가, 그리고 그 아이의 어머니가 자기처럼 고통 받게 해서는 안 되니까. 하지만 이 어머니는 자기 아이를 되찾기 위해 자기가 겪은 고통이 너무 서러웠어. 아니, 자기 아이만 그렇게 추악한 병에 걸리고 또 그렇게 빨리 죽어야 한다는 게 너무 분했던 거야. 결국, 어머니는 메꽃을 뽑아버렸지.”

으악, 그럼 그 메꽃 아이는 어떡해? 그 엄마는?”

그러니까 그 다음 얘기는 더 슬픈 거야.”

 

그렇게 딸을 되찾았지만, 이미 죽음의 정원까지 들어왔던 딸은 이전보다 더 추악해져 악마의 몰골이 됐다. 온 몸이 점점 더 심하게 쭈글쭈글해지더니 조금씩 축소되어 갔다. 급기야는 둥그런 눈 알 두 개만 남기고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어머니 역시도 원래의 젊음과 아름다움을 찾지 못했기에 더 이상 아이도 갖지 못하게 됐다. 하지만 두 눈은 여전히 빛을 발했다. 이것이 더 큰 불행이었다. 아이와 자기에게 닥친 불행을 두 눈으로 모두 봐야 했기 때문에.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니는 저주와 분노로 가득 찬 두 눈을 부릅뜬 채 죽었다. 그리고 아이들의 영혼이 피어 있는 꽃밭을 가꾸는 노파가 되었다. 수많은 세월 동안 속죄를 한 뒤 노파는 천국에 가게 됐다. 그곳에서 노파는 자기의 아이를 만났다. 아이는 태어날 때의 모습대로 작고 귀여운 엄지 공주의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너무 늙어버린 자기 엄마를 알아보지 못했다.

 

에이, 그게 뭐야? 딸이 엄마를 못 알아보는 데 그게 또 무슨 천국이야?”

그러게 말이야. 어떡하면 좋을까, 소영아?”

제일 예쁠 때의 모습으로 만나게 해.”

역시 그게 좋겠지? 그럼, 아이를 본 순간 노파는 다시 원래의 젊음과 아름다움을 되찾았고 아이는 엄마의 품으로 안겨들었다, 라고 끝낼까?”

소영이는 배시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방을 나올 때는 키가 크는 약은 까맣게 잊어버렸다. 복도 끝에서 문지기가 나타났다. 그는 예의 그 나긋나긋한 걸음으로 마녀의 집으로 들어갔다.

 

*

 

동이 틀 무렵, 성탑 노파는 자연 상태로 돌아갔다. 나무 관 속에 누워 있는 노파는 인공적인 침대 위에 붙들려 있던 노파보다 훨씬 더 편안해보였다. 심지어 이제야 비로소 진정한 생명을 찾은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관 뚜껑이 덮였다. 순간, ‘의 조합에 가까운 발음이 들려오는 성도 싶었다. 마녀는 흠칫했다. 문지기도 마찬가지였다.

 

날이 완전히 밝자 마녀의 집은 상갓집 분위기가 물씬 났다. 늘 꼭꼭 닫혀 있던 문이 활짝 열렸다. 검은 상복에 자줏빛 할미꽃을 꽂은 사람들이 끊임없이 드나들었다. 장례식장은 안팎으로 하얀 백합과 국화로 가득 찼다. 노파는 이제 액자 속에 갇힌 채 꽃과 향에 휩싸였다. 향로에서는 가느다란 짙은 초록색의 향이 역시나 실처럼 가는 연기를 뿜어내며 천천히 죽어갔다. 향냄새와 꽃향기에 머리가 어질어질해질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 몽롱함이 또한 숙연함을 자아냈다.

 

맞은편에서는 시끌벅적한 잔치판이 펼쳐졌다. 군데군데 차려진 식탁 위에는 떡, 호박전, 부추 부침개, 양념을 옆에 곁들인 돼지고기 수육 등이 먹음직스럽게 놓여 있었다. 술과 음료수도 보였다. 문상객들은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앉아 있었다. 다들 나이가 지긋했지만 오구작작 떠드는 모양새는 어릴 때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이 집은 육개장이 아니네.”

육개장보다야 올갱이 해장국이 낫지. 국물 한 번 시원하다.”

얄궂어. 하필이면 그 집 손녀가 사라진 날이랑 똑같아.”

슬그머니 이 말을 내뱉은 남자는 주위를 살폈다.

왜 은주라고, 저어기 몸이 좀.”

그러자 동석한 사람들이 맞장구를 쳐주었다.

, 그 병신?”

 

하지만 또 다른 사람이 대화의 맥을 끊어버렸다.

에이, 거참! 여기요, 국 좀 더 줘요!”

국이 다 떨어졌어요. 잠깐만 기다리세요!”

사람도 없어지고 국도 다 떨어졌군.”

그는 자못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딱히 국 때문이 아니라, 고인에게 은혜를 입은 사람으로서 좋지 않은 기억이 담긴 말을 들은 까닭이었다. 마침 그 곁에서 놀고 있던 소영이는 병신이라는 말에 화들짝 놀랐다. 어째 그것은 바보와도 다른 어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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