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방으로 돌아온 떡붕어 아저씨는 빈손이었다. 대신 톱밥 썩는 냄새가 유달리 많이 났다. 성탑 나들이를 다녀올 때마다 소영이는 아저씨의 손에서 나는 저 익숙한, 그럼에도 여전히 고약한 냄새에 얼굴을 찌푸렸다.

, 냄새! 손 좀 씻어! 아저씨, 있잖아, 저 성탑 할머니는 몇 살일까? 백 살? 이백 살? 아저씨는 몇 살이야?”

많아.”

, 물론 많겠지. 아저씨는 어른이잖아. 스무 살, 스물한 살? 어라, 더 많아?”

떡붕어 아저씨는 피식 피식 웃어댔다. 무뚝뚝하게 굳어진 얼굴에 불편한 주름이 일었다.

우리 선생님보다 더 많아? 아참, 아저씨, 우리 선생님 여기 산다! 여기서는 마녀 아줌마야. 아줌마가 약을 줬는데 맛이 너무 이상해서

 

소영이 얘기는 그칠 새 없이 이어졌다. 도중에 흥분한 소영이가 제 자리에서 펄쩍 뛰다시피 뜀박질을 했는데, 그만 바지가 쫙 찢어져버렸다. 떡붕어 아저씨는 새 바지를 꺼내왔다. 어제까지만 해도 잘 맞았던 것 같은데 왠지 단추가 제대로 채워지지 않았다. 바지자락도 복숭아뼈를 훌쩍 넘겼다.

어라, 아저씨, 이건 또 무슨 일이래?”

그게 독약이 아니라 키 크는 약인가 본데.”

떡붕어 아저씨가 얼떨결에 한 말을 소영이는 곧이곧대로 믿었다. 얼른 자라고 싶어, 그래서 얼른 과자로 만든 집의 아가씨처럼 예뻐지고 싶어, 다음날 또 마녀의 집을 찾았다.

 

마녀 아줌마의 집의 풍경이 좀 달라져 있었다. 지난번에 본 가마솥과 장작불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널찍한 책상 하나가 놓여 있었다. 그 위에는 공책이 한 권 놓여 있었다.

어라, 아줌마 이제 약 안 만들어?”

이제 더 이상 먹을 사람이 없거든.”

이건 뭐야?”

소영이는 공책을 가리켰다.

내가 쓰는 동화. 읽어줄까?”

우아, 멋지다! 하지만 나도 읽을 줄 알아! 선생님이 가르쳐줬잖아?”

 

소영이는 얼른 공책을 펼쳤다. 하지만 그것은 글자는커녕 점 하나 찍혀 있지 않고 줄 하나 그어져 있지 않은, 완전히 텅 빈 새 공책이었다.

에이, 이게 뭐야? 아무것도 없잖아.”

너랑 내가 지금 써나가는 거지.”

그럼 얘기해봐, 내가 받아쓸게.”

아니, 너는 그냥 들어주면 돼.”

마녀는 소영이에게 어느 어머니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옛날 옛적에 어느 어머니가 살았다. 그녀에겐 작고 귀여운 엄지 공주 같은 딸이 하나 있었다. 한데 그 어린 딸은 병에 걸려 시름시름 앓다가 모양새가 일그러져버렸다. 팔다리가 뒤틀려 손은 벽을 보게 됐고 발은 땅바닥에 제대로 닿지도 않게 됐다. 등뼈가 굽어 커다란 혹처럼 보였고 가슴뼈는 앞으로 볼썽사납게 튀어나왔으며 목은 거의 없다고 할 만큼 짧아 얼굴이, 머리통이 두 어깨 속에 푹 파묻힌 형국이었다. 얼굴 자체도 음울했다. 입은 완전히 비뚤어져 절대 다물어지지 않았고 그 때문에 늘 침을 질질 흘렸다. 눈도 점점 작아졌고 눈과 눈 사이도 점점 멀어져 금붕어 같은 꼴이 됐다. 그럼에도 어머니는 딸을 병이 나기 전의 예쁜 모습 그대로 끔찍이도 사랑했다. 아니, 이 추한 모습의 딸을 더 사랑했다. 자기가 아니면 그 누구도 사랑해줄 수 없는 소중한 존재였기에 더더욱.

 

어느 날 거지 노인 하나가 그녀를 찾아왔다. 그녀는 이 노인이 자기 딸을 구원해주러 온 천사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따뜻한 식사를 대접하고 잠자리까지 봐주었다. 하지만 다음날 아침, 노인은 그녀의 딸을 소리 소문 없이 어디론가 데려가 버렸다.

 

어머니는 딸을 찾기 위해 집을 나섰다. 하지만 갈림길이 나오자 어느 방향으로 가야 될지를 몰랐다. 호랑가시나무가 서 있는 곳이었다. 호랑가시나무는 자기를 품에 안아, 뾰족한 이파리를 부드럽게 해주면, 딸이 간 방향을 알려주겠다고 했다. 어머니는 호랑가시나무를 껴안았다. 순간, 뾰족한 이파리가 날카로운 못으로 변해 어머니의 가슴을 마구 찔러댔다. 어머니의 가슴에서는 피가 흘렀다. 대신 어머니는 딸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다.

 

하지만 눈앞에 넓고 깊은 강이 펼쳐졌을 때는 목 놓아 울지 않을 수 없었다. 강물은 그 아름다운 눈물을, 또 그 눈물샘이 담겨 있는 영롱한 두 눈을 주면 강을 건너게 해주겠다고 말했다. 어머니는 한없이 눈물을 쏟았고 마침내 두 눈알까지 쏟아냈다. 대신 어머니는 눈 깜짝할 새에 강 너머에 가 있었다.

 

강 너머 언덕은 거대한 유리로 쌓여 있는 아름다운 꽃밭이었다. 튤립, 카네이션, 꽃다지, 코스모스, 들국화, 달리아, 원추리 등 각기 다른 꽃들이 딱 한 송이씩만 자라고 있었다. 전설처럼 늙은 노파가 굽은 허리를 받히며 꽃을 돌보다가 고개를 들었다. 어머니는 하소연했다. 내 아이는 어디에 있느냐고. 노파는 이곳 어딘가에 당신 아이의 영혼이 꽃의 모양으로 살아 숨 쉬고 있으리라고 말했다. 아이 엄마는 꽃의 숨결만으로도 자기 아이의 꽃을 찾아낸 다우.

 

정말로 어머니는 금방 자기 아이의 꽃을 찾았다. 그것은 꽃잎이 유난히도 얇아 보이는 제비꽃이었다. 이제 막 꽃을 피우려 꽃잎을 벌였지만 힘이 없어 꽃잎 끝이 벌써부터 시들어가고 있었다. 애초에 부여받은 신비스럽고 아름다운 보랏빛도 끄트머리에서부터 슬슬 색이 바래가고 있었다. 눈앞이 잘 보이지 않았지만 온 몸으로 느껴지는 쇠락의 분위기에 어머니는 절규했다. 어떻게 하면 이 꽃을 살릴 수 있냐고 물었다. 노파는 어머니에게 윤기가 흐르는 탐스러운 검은 머리카락과 탱탱하고 뽀얀 살 껍질을 달라고 했다. 그러면 저 아이 꽃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주겠노라고.

 

어머니는 주저하지 않고 머리카락과 살 껍질을 내주었다. 내 푸석푸석한 흰 머리카락과 저승꽃이 핀 이 축 처진 살갗이라고 가져가요, 없는 것보다 나을 테니까. 그러고서 순식간에 몰라보게 젊어진 노파가 말을 이어갔다. 곧 노인이, 즉 죽음의 신이 아이를 안고 도착할 것이다, 그러면 이 제비꽃 대신 다른 꽃을 뽑아버리겠노라고 말해라, 그리고 그렇게 다른 꽃을 뽑아버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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