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영이는 할머니 곁으로 다가갔다. 손이 저절로 올라가 할머니의 머리카락에 닿았다. 푸석푸석하고 메마르고 싸늘한 것이 느껴졌다. 소영이는 얼른 손을 뗐다. 머리카락 한 올이 소영이의 손가락에 낀 채로 팽팽하게 당겨졌다. 순간, 벽에 붙어 있는 무수한 단추 중 하나에 빨간 불이 들어왔고 시끄러운 기계음이 들렸다. 할머니가 이제 막 전기 공급을 받은 로봇처럼 두 눈을 번쩍 떴다. 소영이는 비명을 지르며 몸을 뒤로 뺐다. 그 바람에 소영이의 손에서 비닐봉지가 툭 떨어졌다. 그와 동시에 할머니의 몸 깊은 곳에서, 아마도 뱃속에서 이상한 소리가 새어나왔다.
“어, 어, 어, 으, 으~음? 어, 어, 으~으~우~?”
말이라고 하기엔 동물의 신음에 가까울 만큼 애매하고, 또 동물의 신음이라고 하기엔 발음이 제법 또렷하고 억양도 있었다.
“할머니, 밥 달라는 거야? 안 그래도 이거 할머니 주려고 갖고 왔어.”
소영이가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조심스레 비닐봉지를 내밀었다. 갑자기 할머니의 팔이 용수철처럼 튕겨 올라 비닐봉지를 낚아챘다. 곧 다른 쪽 팔이 또 용수철처럼 튕겨 올랐으나, 봉지 속으로 들어가는 손의 움직임은 몹시 둔했다. 두툼한 손가락이 봉지 안에서 한심하게 꿈틀댔다. 사위가 조용했기 때문에 바스락거리는 소리는 유난히도 크게 들렸다. 봉지의 밑바닥이 찢기면서 내용물이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그것은 겨우내 떡붕어 아저씨가 냉동실에 보관해 온 꽁치 두 마리였다. 어찌나 꽁꽁 얼어붙었는지, 돌멩이보다 더 딱딱했고 온 몸에 뽀얀 성에가 덮여 있었다.
꽁치들은 바닥에 닿자마자 두어 번에 걸쳐 통통 튀어 오르는가 싶더니, 금세 꼬리를 밑으로 향하고 머리를 위로 지켜든 채 꼿꼿이 섰다. 그러곤 지느러미가 없어서 영 불편하다는 듯 고개를 힘겹게 삐거덕대며 흔들더니 곧 스카이콩콩처럼 바닥을 뛰기 시작했다. 그 사이에 꽁치들은 몸이 슬슬 녹아, 꼬리 춤의 모양새도 훨씬 더 유연해졌다. 푸른 살이 흐느적거리며 벌렁거릴 때마다 붉은 속살이 드러났다. 일자로 쭉 갈라진, 내장이 다 사라진 꽁치의 배, 아니 몸뚱어리는 언제 난도질을 당하고 언제 죽었었느냐는 듯 신나게 통통거렸다.
소영이는 두 마리의 꽁치를 모두 손에 넣으려고 분주하게 앞뒤, 좌우로 뛰어다녔다. 하지만 꽁치들은 늘 수색자의 손바닥보다 한 발 앞서 뛰는 벼룩처럼 소영이의 손아귀를 쏙쏙 빠져나갔다. 할머니는 반들반들한 얼굴 아래쪽에 불그스름하게 뚫려 있는 입을 달싹이며 계속 “으~음, 어, 어, 으~음” 소리를 반복했다. 꽁치들은 할머니의 부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몸을 튕겨 창가로 다가갔다. 그러곤 세 번에 걸쳐 제자리 뛰기를 하더니 창밖으로 날아가 버렸다. 소영이는 창밖을 내다보았다. 아이들도 모두 그리로 달려가, 벽과 하늘을 이어주는 틈새로 얼굴을 내밀었다. 꽁치 두 마리는 어느새 푸른 하늘과 뒤섞여버렸다.
“으~음? 으~음! 으~음… 으… 으… 주우… 우….”
할머니의 신음소리가 좀 더 길고 필사적이었다.
“이런, 꽁치들은 할머니가 싫은 가봐…. 생 거라서 그런가? 다음번에 익혀서 갖다 줄게.”
소영이는 몸을 돌렸다. 때문에 할머니의 손이 힘겹게 파닥거리는 것을 보지 못했다. 그것이 나름대로 손짓이었다는 것도 알지 못했다.
*
소영이는 매일 성 주변과 유리벽 사이를 돌며 꽃밭을 구경했다. 산책의 끝은 늘 성탑 안이었다.
한 번은 떡붕어 아저씨가 만들어준 꽁치 구이를 들고 올라갔다. 역시나 아저씨의 말대로 뚱보 할머니가 맛을 보기도 전에 구운 꽁치가 먼저 성탑 밖으로 뛰어내렸다. 김밥을 가져가도, 오이와 당근, 참외와 딸기를 가져가도 마찬가지였다. 먹을 것들은 발이 달린 양 냉큼 뚱보 할머니를 피해 달아났다. 마지막으로 소영이는 물을 들고서 방을 나섰다. 그 중 절반은 꽃들에게 주었다. 물을 머금자 꽃들은 한층 더 아름다워졌다. 황매화는 꽃잎이 더 무성해졌고 제비꽃은 보라색이 더 선명해졌다. 할미꽃도 더 아름다운 적자색을 뽐내며 솜털마저 미세하게 하늘거렸다.
하지만 나머지 절반의 물은 소용없게 돼 버렸다. 자동인형이 옆에서 할머니를 일으켜 받쳐주었지만, 물방울은 물 위의 기름처럼 할머니의 입술에 동그랗게 붙어 있을 따름이었다. 소영이는 물을 손바닥에 부어 할머니의 얼굴과 몸에 조금씩 뿌려보았다. 하지만 꽃들과는 달리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소영이는 허탈한 마음으로 성탑을 내려왔다. 그리고 꽃밭을 돌아 성 안으로 들어갔다.
그 때 관리실에서 누군가가 나왔다. 문지기가 아니었다. 소영이는 의아스럽게 상대방을 바라보았다. 어딘가 특수교사와 닮은 데가 있었지만 옷차림도 허름하고 얼굴선도 기괴하게 망가져 있었다. 몸에 커다랗고 시커먼 자루 같은 망토를 뒤집어쓰고 머리에는 꼭짓점이 축 늘어진 고깔모자를 쓴 모습도 괴기스러웠다. 소영이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아줌마… 설마 마녀? 선생님, 정말 마녀 맞구나!”
이렇게 말하면서도 소영이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마녀라면 날렵하고 경쾌한 꼬마 소녀거나 아니면 과자로 만든 집을 지키던 처녀처럼 무척 예쁘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사악한 눈을 번득이는, 추악하게 늙은 꼬부랑 할머니여야 했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 있는 건 생김새와 차림재가 약간 얄궂긴 해도 동네에서 흔히 보는 평범한 아줌마였다. 얼굴빛은 왠지 누리끼리하고 간간히 기미나 주근깨가 보였다. 깡말랐다고 할 만큼 여위었지만 왠지 뱃살과 허벅지살이 출렁이는 것 같고 조그만 젖가슴은 축 늘어져 있었다. 한참을 고민한 결과, 소영이는 그 나름의 결론을 내렸다.
“아, 선생님한테도 세상의 모든 아침이 한꺼번에 왔구나? 에이, 그래서, 이렇게 미워진 거야? 그런데 왜 여기 있어?”
“왜는 왜야? 나도 여기 사는 걸. 아줌마 집 구경 갈래?”
“응!”
“세상에, 아줌마 마녀는 처음 봐.”
“마녀라고 별 수 있겠어? 그것도 종류별로 다 있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