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I. 동화 속의 동화

 

 

   

성 둘레에 투명한 유리벽이 세워졌다. 혹독한 추위를 잊은 채 성은 겨울잠에 돌입했다. 떡붕어 아저씨와 소영이도 오랜 잠에 빠졌다. 떡붕어 아저씨는 꿈을 꾸는 법이 없었다. 그랬기에 그는 해가 뜨고 지는 시각에 맞추어 눈을 떴다가 감았다. 깨어 있는 시간에는 수족관을 오갔다. 간간히 소영이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아이가 깨어나길 기다렸다. 하지만 소영이는 해와 달의 순환에는 무관심한 듯 잠에 빠져 있었다.

 

꿈같은 현실 속에서 소영이는 싸늘한 밤거리를 헤매다 성 안으로 들어왔다. 가슴팍에 하얀 봉지를 꼭 품은 채였다. 그 안에는 막 구워낸 바삭바삭하고 따뜻한 붕어빵 세 개가 들어 있었다. 첫 번째 붕어빵은 몸통만, 두 번째 붕어빵은 머리만, 세 번째 붕어빵은 꼬리만 남아 있었다. 갑자기 눈앞에 구덩이 속에 묻힌 할머니가 나타났다. 웬일로 몸까지 움직였다. 비록 두 발로 걷지는 못했지만 손바닥으로 땅바닥을 짚고 무릎을 끌며 기어 다녔다.

할머니!”

 

소영이가 할머니를 부르자마자 갑자기 성이 구덩이 오막살이의 음침한 부엌으로 바뀌었다. 할머니는 네 발 달린 동물처럼 고개를 쳐들고 웃었다. 침도 질질 흘렸다말이, 아니, 신음에 가까운 소리가 나왔다. 소영이 귀에는 그것이 으로 들렸다. 소영이는 아직 식지 않은 붕어빵 봉지를 내밀었다.

할머니, 이거!”

을 보자 할머니는 다시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여느 때처럼 쭈그리고 앉아 미소만 지었다.

 

소영이는 직접 봉투를 열어 붕어빵을 꺼냈다. 하지만 그것은 조각조각이 아니라 하나의 온전한 몸뚱어리가 돼 있었고, 더욱이 붕어빵이 아니라 반짝이는 비늘이 붙어 있고 파닥대기까지 하는 진짜 붕어였다. 붕어는 몸통으로 폴짝 뛰어 할머니의 어깨 위에 내려앉았다. 그러곤 꼬리를 받침대 삼아 몸통과 머리를 꼿꼿이 세운 채 말했다.

밥 남기지 마!”

하지만 그때 갑자기 할머니의 몸 뒤에서 회색 털의 토끼가 나타나 붕어를 꿀꺽 삼켜버렸다.

으악!”

소영이는 비명을 질렀다. 꿈속에서 소영이는 눈을 떴다. 꿈속의 현실은 이랬다.

 

, 아니 밥이 나타났다. 하지만 밥그릇에 담긴 하얀 쌀밥이 아니라 밥알 모양의 뽀얗고 보들보들해 보이는 생명체였다. 거대한 몸체에는 짧달 막한 팔다리가 붙어 있긴 했지만 신체 부위가 확연히 구분돼 있지는 않았다. 그래도 윗부분에는 눈사람 마냥 눈, , , 귀가 붙어 있었다. 심지어 그 얼굴 아닌 얼굴에 표정도 살아 있었다. 두 눈은 무섭게 소영이를 노려보았고 입술은 엄격한 모습으로 굳게 다물어져 있었다. 입술이 열리며 말도 새어 나왔다.

밥 남기지 말라고 했지?”

 

소영이는 할머니를 위해서 그런 거라며 열심히 변명을 했다. 하지만 밥 귀신은 계속 무섭게 야단을 쳤다. 그 주위로 반찬 귀신들이, 그러니까 대파 귀신, 쪽파 귀신, 마른멸치 귀신, 미역 귀신, 쏘가리 귀신 등이 나타나서 똑같은 말, 똑같은 목소리로 설쳐댔다. 소영이는 그들의 야유를 피하느라 손을 마구 휘두르며 외쳤다.

에이, 바보들! 왜 사람 말을 못 알아들어? 세상을 깜깜하게 만들어버릴 테다!”

이 말과 함께 소영이는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꿈밖의 소영이는 눈을 감은 채 거세게 몸을 흔들었다. 그래도 귀신들이 진정하지 않자 꿈속의 소영이는 자기를 덮친 감자 귀신의 팔을 콱 깨물어버렸다. 소영이는 곧 잠잠해졌지만, 떡붕어 아저씨가 비명을 지르며 잠에서 깼다. 그의 턱에는 소영이의 이빨 자국이 시뻘겋게, 커다랗게 나 있었다.

 

소영이가 기나긴 잠에서 완전히 깨어났을 때는 새벽이었다. 떡붕어 아저씨는 세상모르고 곤히 자고 있었다. 소영이는 냉동실에서 봉지 하나를 꺼냈다. 1층까지 내려오자 문지기 방을 힐끔 살폈다. 역시나 닫혀 있었다. 까치발을 하고서 문의 위쪽에 달려 있는 창문에 코를 갖다 댔다. 문지기가 등을 돌린 채 책상에 앉아 있었다. 맞은편 벽을 바라보는 듯했다. 거기에는 조그마한 그림이 걸려 있었다. 초상화인 것 같았지만 자세히 보이지는 않았다. 소영이는 성 밖으로 나왔다.

 

유리벽과 성채 사이의 공간은 아늑하고 오붓한 꽃밭이었다. 황매화와 흑싸리, 싸리 꽃, 뚱딴지 꽃이 유리벽을 안쪽에서 에워싸고 그 사이로 꽃다지, 제비꽃, 도라지꽃이 피어 있었다. 바닥에는 잔디가 사람 손을 전혀 타지 않은 채로 자라나 있었다. 초록색 잔디를 배경으로 할미꽃에 눈에 뜨였다. 꽃송이가 밑으로 좀 구부러졌다는 걸 빼면 꽃잎과 꽃줄기, 잎에 뽀송뽀송 솜털이 나있는 것이 할미보다는 어린아이를 연상시켰다. 그것도 걸음마를 막 시작한 포동포동한 어린아이를. 유리벽 너머로 꽁꽁 얼어붙은 연못과 앙상한 나무들이 보였다. 그냥 보기에도 무척 싸늘할 것 같은 겨울바람이 가느다란 나뭇가지를 사정없이 흔들고 지나갔다. 어떤 나뭇가지는 고드름 부러지듯 툭 끊겨 꽁꽁 언 땅 위에 떨어졌다.

 

소영이는 꽃밭을 누비며 성채를 한 바퀴 돌았다. 소영이는 기억을 더듬어가며 계단이 있던 자리를 찾아 다시 성채를 반 바퀴 돌았다. 그리고 성탑 꼭대기를 향해 외쳤다.

할머니, 할머니, 머리카락 내려줘!”

고개를 뒤로 완전히 꺾고 하늘을 봐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소영이는 두 번, 세 번 연거푸 외쳤다. 그러자 하늘의 꼭대기에서 가느다란 뿌리가 뻗어 내려오는 것 같았다. 꿈틀대는 뿌리는 땅에 가까워지면서 몸을 배배 꼬며 춤을 추는 뱀처럼 변했다. 소영이는 뱀의 꼬리를 잡은 채 성벽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소영이는 하늘과 맞닿은 창문을 통해 탑 안으로 들어섰다. 고약한 냄새가 성탑 안을 채우고 있었다. 소영이는 숨을 더 깊이 들이셨다 내쉬길 반복했다. 방안의 냄새가 지난번보다 훨씬 더 진했다. 하지만 이것이 똥 냄새나 오줌 냄새인지, 아니면 양념이 너무 많이 들어간 음식 냄새인지, 아니면 뭔가 특이한 꽃 냄새인지 통 짐작할 수가 없었다. 할머니는 여전히 길고 튼튼한 안락의자 위에 반쯤 드러눕다시피 앉아 있었다. 할머니의 머리카락도 여전히, 한 올 한 올 벽에 설치된 장치에 연결돼 있었다. 하지만 할머니의 입을 덮고 있던 투명한 마개가 사라지고 없었다. 이제는 할머니의 얼굴이 다 보였다.

 

그것은 둥그렇고 커다랬으며, 무엇보다도 파리가 앉아도 미끄러질 것처럼 반들반들 윤이 났다. 겉껍질 위의 잡티들을 조금씩 태우거나 긁어내고 심지어 겉껍질 자체를 끊임없이 발라내고 그 위에 왁스칠을 해놓은 덕분이었다. 목은 헐겁고 무겁고 굵은 주름으로 뒤덮여 있건만 얼굴은 무척 팽팽했다. 얼굴 살 안에 바람을 주입하고 얼굴 둘레에 용수철을 달아 뒤로 잡아당겨놓은 덕분이었다. 이런 얼굴과 빵 반죽처럼 부풀어 오른, 바늘을 갖다 대기만 해도 묽은 지방이 줄줄 흘러내릴 성 싶은 몸의 조합이 몹시 기괴해 보였다. 몸뚱어리는 이스트라도 집어넣었는지 이전보다 더 부풀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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