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식 딱지가 사라지고 미음이 나왔다. 마음 같아서는 돼지 갈비라도 뜯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아직도 구토의 흔적이 남아 있는 뱃속은 미음도 간신히 받아들였다. 그럴수록 머릿속에서는 음식 생각이 간절해졌다. 식사 시간마다 풍겨나는 반찬 냄새와 쩝쩝대며 음식 씹는 소리에 질투마저 생겼다. 마침내, 죽이 나왔다. 새로이 찾아온 참한 식욕에, 구토의 흔적을 떨쳐버린 뱃속에 나는 감사했다. 이제 곧 새로운 생활이 발견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이 생겨났다. 병원에 들어온 지 닷새째였다.

 

내 맞은편에 누워 있는 환자가 눈에 들어왔다. 기억을 되살려보니 그녀는 처음부터 그곳에 누워 있었다. 항상 누워만 있었다. 더러 간병인이 와서 상체를 세우는 일이 있었지만 아주 잠시였다. 간병인이 그녀를 상대로 무슨 일을 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때마다 침대 주변에 커튼을 쳤기 때문이다. 항상 누워만 있는 그녀도 간혹 제 힘으로 몸을 살짝 돌리는 일이 있었다. 침대에 바싹 붙여 놓은 작은 탁자 위에 노트북이 있었다. 그녀는 그 쪽으로 한 손을 뻗어 마우스를 클릭하며 인터넷을 했다. 그녀에게 있어 윈도우는 정녕 세상을 보여주는 유일한 창이었다.

 

이제 좀 나아졌어?”

내 옆 침대의 할머니가 말을 걸어왔다.

들어올 때는 곧 죽을 것 같더니만. 난 암이라도 걸린 줄 알았지, 뭐야.”

농담이었는지 할머니는 키득키득 웃었다. 내 시선은 계속 맞은편 침대에 머물러 있었다.

젊은 나이에 안 됐어. 교통사고야. 얼마 전에 남편이 다녀갔는데 결국 이혼했지. 애들도 있고 한데.”

할머니는 소리를 죽여 가며 말했다.

 

그때 의료진이 나타났다. 할머니는 유난히 들떴다.

또 오셨어요? 지난주에 나가셨잖아요?”

수간호사는 약간은 놀리는 투로 아침 인사를 건넸다.

팔을 못 들겠는 걸 어떡해? 어휴, 이것 좀 봐, 이제는 요 만큼도 못 들겠어.”

, 푹 쉬다 가세요.”

쉬긴 어떻게 쉬어! 치료를 받아야지, 치료를! 얼른 고쳐줘!”

의료진 일동은 더 안으로 들어갔다. 나와 맞은편 여자를 빼면 전부 노인이었고, 그들은 대개 말이 없었다. 이 병실이 시끄러웠다면, 오직 일 이주 간격으로 입원과 퇴원을 반복해온 옆 침대 할머니 덕분이었다.

 

이틀 뒤, 담당 의사는 나에게 밥을 처방주었다. 은색 식판에 소복이 담긴 밥알 더미와 맑은 북엇국, 아직 온기가 남아 있는 구운 고등어 한 토막, 파릇파릇한 시금치 무침. 나는 조심스럽게 국 한 숟가락을 입 안에 넣었다. 이어, 밥 한 숟가락과 시금치가 들어갔다. 구토의 흔적은 내 몸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았다.

 

다음 날 나는 퇴원했다. 의사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진단서를 굳이 떼 주었다. 거기에 적힌 내 병명은 급성 장염이었다. 그리고 괄호 속에 과로와 영양실조라는 말이 들어갔다. 장염이야 영원한 트렌드이지만, 마지막 두 개는 극히 시대착오적인, 병명 같지도 않은 병명이었다. 나는 대단히 실망했다. 최소한 결핵처럼 어딘가 좀 있어 보이는 병을 기대했는데 말이다.

 

병원 건물을 나왔다. ‘완쾌라는 말에 생명을 부여해주는 화창한 날이었다. 나 혼자 두 다리로 서서 맑은 정신으로 바깥 공기를 맛보는 것이 일주일만인가. 나는 두 발을 움직이며 가볍게 제 자리 걸음을 해보았다. 내 맞은편에 있던 환자가 생각났다. 아마 그녀가 잃어버린, 어쩌면 언젠가 되찾기를 갈망하는 실존이 이런 것이었겠지. 내 사정은 좀 달랐다. 나는 다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곳 편의점에서 담배와 라이터를 샀다. 건물 옆에서 들이켠 담배의 첫 모금은 몸이 다 나았다는 신호였다. 흡연하는 나, 심지어 내 의지로 흡연을 멈출 수도 있는 나, 그 실존이 되돌아왔다.

 

*

 

몇 통의 링거를 꽂아 두었던 팔뚝의 붓기가 가라앉았다. 그 자리에는 허연 버짐과 같은 얇은 각질이 일어났다. 허물을 다 벗자 새 살이 돋아났다. 변태의 작업이 끝났을 때도 나는 여전히 골초였다. 하지만 그래도 뱃속이 염려되어 식사 시간을 엄수하고 주로 소화하기 쉬운 것만 먹고 있었다. 그럼에도 또한, 스물셋의 3월처럼 각혈을 꿈꾸고 있었다. 정작 각혈은 다른 곳에서 터져 나왔다.

 

한밤중에 수아가 전화를 했다. 다 죽어가는 목소리였다.

수아, , ?”

아니나 다를까 였다. 다만, 이번엔 쥐약이 아니라 수면제였다. 나는 부리나케 수아의 자취방으로 달려갔다. 도중에 119도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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