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수교사가 돌아오자 소영이는 대뜸 물었다.
“선생님, 마녀야?”
“어? 응.”
특수교사의 표정은 심드렁했다. 소영이는 발끈했다.
“하지만 왜 마법을 쓰지 않아?”
“그야 마법을 쓰지 않는 마녀니까 그렇지.”
“그게 뭐야?”
“뭐긴 뭐야, 말 그대로지. 마녀이지만 마법을 쓰지는 않아.”
소영이는 마법을 쓰지 않는 마녀, 라는 말에 골몰해 있다가 다시 물었다.
“과자로 만든 집에 있던 언니, 선생님 맞지?”
“글쎄, 나는 그 시간에 집에 있었던 것 같은데, 누구였을까?”
소영이가 모험담을 쭉 늘어놓아도 특수교사는 애매한 반응만 보였다. 선생님이 의뭉스럽게 딴청을 부리는지 아니면 정말 그런 건지 통 알 수 없었다. 고민하는 소영이를 앞에 특수교사는 마분지 몇 장을 차례로 내놓았다.
“여기 쓰인 대로 해봐, 알았지?”
「소리를 질러 보세요.」
“으악!”
평소에도 이렇게 외치는 걸 좋아했기 때문에 소영이는 몇 번이고 되풀이했다. 멀찍이 떨어져서 덧셈과 뺄셈 숙제를 하고 있던 태형이가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들었다.
“자, 그 다음은?”
「사탕을 먹어보세요.」
소영이는 마분지를 뚫어져라 들여다보며 오랫동안 생각에 잠겼다. 그러곤 아주 기발한 생각이 떠올랐다는 듯, 팔을 양쪽으로 크게 벌렸다가 모으면서 하트 모양을 그렸다. 특수교사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그러자 소영이는 자신의 의사를 더 확실히 전달하기 위해, 손가락으로 특수교사를 한 번 가리킨 뒤 또다시 하트 모양을 만들었다. 입술까지 모아 앞으로 삐죽 내밀었다. 특수교사는 다시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러자 소영이는 무척 실망한 표정을 짓더니 또 머리를 굴렸다. 마침내는 특수교사 옆으로 바싹 다가가 볼에다 뽀뽀를 쪽 했다.
“아, 사탕을 사랑이라고 읽었구나!”
특수교사는 웃음을 터뜨렸다.
이참에 태형이도 기지개를 켰다. 그러곤 소영이를 향해 하트 모양을 동그랗게 그려주며 웃었다. 그런데도 입으론 “누나 미워!”라는 말을 내뱉었다. 소영이 누나는 엄연히 ‘누나’인데도 자기가 지난봄에 공부한 것을 이제야 배우고 있다니, 그건 ‘미운’ 일이었다.
특수교사는 태형이 쪽으로 갔다.
“아직 못 끝냈어?”
“어려워요!”
“그럼 조금 더 생각해 봐.”
특수교사는 교실 뒤쪽으로 가서 앉았더니 책을 펼쳤다. 그 틈에 태형이는 소영이에게 열심히 손짓을 했다. 소영이가 살금살금 그 곁으로 다가갔다. 그러자 태형이가 귀엣말로 물었다.
“누나, 5더하기 3은 얼마야?”
“5에다가 3을 더하라고?”
“응.”
“에…. 5에다 3을 더하면, 그래, 53이네!”
“우아, 정말 그러네! 에이, 누나, 미워!”
“답 가르쳐줬는데 왜 미워?”
“나는 모르는데 누나는 아니까 밉지.”
“너, 유치해!”
*
1학년 1반 수업은 따분했다. 4교시라 더 그랬다. 소영이는 수업 내내 칠판 옆에 걸린, 동그란 벽시계를 들여다보았다. 처음에는 시침에 집중했다. 12시에 고정된 채 꼼짝도 않고 있었다. 이제 분침을 보았다. 분침 역시 그림책의 시계 침처럼 숫자판에 딱 붙어 있었다. 소영이는 뚫어져라 분침을 응시했다. 새끼거북이처럼 아주 미세하게, 아주 천천히 분침이 움직였다. 그 옆으로 초침이 째깍째깍 분주하게 원을 그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초침의 분주한 발걸음엔 아랑곳하지 않고 분침은 이제 겨우 ‘1’을 살짝 비켜났을 뿐이었다. 세 개의 침에게 부여된 운명이 불공평하게 여겨졌다. 왜 하나는 가만히 있고 또 하나는 기어가고 또 하나는 저렇게 각박해야 되나. 이 생각을 하다 보니 분침은 어느새 ‘3’을 훌쩍 넘어 ‘4’에 근접하고 있었다. 시침 역시도 아주 약간이지만 ‘12’의 정중앙으로부터 살짝 떨어져 비스듬히 기울어지는 듯싶었다. 소영이는 초침에 집중한 채 인내력을 갖고 좀 더 기다렸다. 한참이 흘렀다. 다시 분침을 봤다. 정확히 ‘5’에 머물렀지만, ‘6’으로 가려면 아직도 영겁의 세월을 기다려야 했다. 그 동안에도 초침은 조금도 쉬지 못한 채, 동일하고 균일한 속도로 숫자판을 돌아야 될 것이었다.
마침내 소영이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면서 갑자기 허기가 해일처럼 밀려왔다. 소영이는 고픈 배를 움켜쥐고 당당하게 앞으로 걸어갔다. 순식간에 친구들의 눈이 그 쪽으로 쏠렸다. 소영이는 문 곁에 있던 의자를 시계 밑에 갖다 놓고 그 위로 올라갔다. 아이들이 웅성댔다. 담임교사가 소영이를 보며 말했다.
“소영아, 뭐 하니? 연필깎이는 뒤에 있잖아?”
소영이가 수업 도중에 걸핏하면 자리에서 일어나 연필을 깎으러 가는 습관이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전혀 엉뚱한 대답을 했다.
“초침이 불쌍해. 내 배도 불쌍해. 배가 고파서 자꾸 울어.”
“뭐?”
담임교사는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소영이를 쳐다봤다.
소영이는 손을 뻗어 가늘고 긴 초침을 손가락으로 붙잡았다. 그러곤 발뒤꿈치를 세워가며 한 바퀴 돌렸다. 아이들은 숨을 죽인 채 소영이의 행동을 지켜보았다. 연이어, 소영이는 초침을 세 바퀴 더 돌렸다. 분침은 아직도 ‘6’에서 딱 요만큼 떨어져 있었다. 소영이는 초침을 한 번 더 돌렸다. 그제야 소영이는 몸을 돌리며 담임교사에게 큰 소리로 말했다.
“선생님, 12시 30분이야! 나 밥 먹으러 갈래!”
담임교사는 당혹스러워했고, 소영이는 함박웃음을 지었다. 자신의 위업에 너무 흥분한 나머지 의자에서 내려올 때 그만 균형을 잃어버렸다. 오른발이 교실바닥에 닿기도 전에 왼발이 의자 위에서 비틀거렸다. 쾅 하는 소리가 나면서 소영이는 무릎을 움켜쥐었다. 담임교사가 소영이게로 달려갔다. 가벼운 타박상이었지만 연한 피부에는 시퍼런 멍이 생겨버렸다.
아이들은 이때를 노렸다는 듯 모두 깔깔 웃음을 터뜨렸다.
“소영이 말이 맞아요, 선생님! 12시 반이잖아요!”
“선생님, 밥 먹게 해주세요!”
“수업 끝났다! 밥 먹으러 가자!”
곳곳에서 아이들이 떠들어댔고, 담임교사는 주먹으로 교탁을 탁 쳤다.
“다들 조용히 좀 못해! 자, 3쪽!”
하지만 이렇게 말하는 담임교사 역시도 웃음을 참지 못해 킥킥거렸다. 진정이 됐을 때 종소리가 들려 왔다. 아이들은 선생님의 허락도 없이 모두 책상에서 일어나 구내식당으로 달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