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영이는 1학년 1반에 배정됐다. 담임교사는 열 살이나 먹은 이 늦깎이 초등학생을 보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일주일쯤 지나자 소영이가 이른바 ‘바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 때부터는 어른에게 반말을 한다며 꾸짖는 일도 없었다. 소영이는 이 사람이야말로 정말 바보라고 생각했다.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일주일이나 허비했으니 말이다. 소영이는 곧장 특수반에 보내졌다. 아무래도 특수반교사는 머리가 좋은 것 같았다. 적어도 첫 눈에 소영이가 바보라는 걸 알았다. 나아가, 소영이가 정신지체나 발달장애가 아니라 축적된 학습 결핍과 그로 인한 학습 능력의 현저한 저하로 판단된다는 소견을 내놓았다. 떡붕어 아저씨는 이 말에 상당히 위안을 얻었고, 기쁜 마음으로 서류에 서명했다.
특수반은 다른 교실과는 달리 별채 건물에 있었다. 도르래가 달린 우물 바로 옆이었다. 특수반 아이들은 소영이를 포함하여 총 세 명이었다. 은학이는 재작년에도, 또 작년에도 6학년이었는데 올해도 6학년이었다. 은학이의 아버지가 은학이를 중학교에 보내려고 하지 않았던 것이다. 얻어맞는 일만 더 많아질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그의 눈에는 아들이 세상에 갓 나왔을 때의 모습, 2킬로가 간신히 넘는 미숙아의 모습으로만 보였다. 껴안는 것도 조심스러울 만큼 작은 아내를 대할 때보다 더 애틋한 심정이었다.
하지만 사실 은학이는 거의 이 섬을 통틀어 가장 덩치가 크고 힘이 센 아이였다. 그런 녀석이 또한, 수시로 아이들의 주먹질과 놀림을 당하면서도 정작 자기는 주먹을 휘두르는 일이 없는 비폭력주의자에 평화주의자였다. 한 번은 모래밭에서 혼자 모래 장난에 몰두하고 있는 은학이에게 아이들이 콜라 캔을 던진 적이 있었다. 은학이의 머리나 어디 몸에 맞았다면 괜찮았을 것을(이런 일은 허다했다), 하필 그것이 이제 막 쌓아 올린 모래성을 무너뜨려버렸다. 은학이는 순식간에 온 몸이 화석처럼 굳는 것 같더니 갑자기 벌떡 일어나 모래밭을 막 달렸다. 그러곤 괴성을 지르며 운동장 끝에 있던 쓰레기통을 주먹으로 쾅 내리쳤다. 플라스틱 쓰레기통이 단번에 박살나면서 쓰레기가 와르르 쏟아졌다. 그러고도 분을 가라앉히지 못한 은학이는 발로 쓰레기를 짓밟기 시작했다. 이 장면을 본 뒤로 아무도 은학이를 건드리지 않게 됐다. 저만한 괴력을 갖고 있으면서도 자기들을 가만히 놔뒀다는 사실도 놀라웠다. “역시 바보라서 그런가봐.”라며 쑥덕거리긴 했지만 그뿐이었다.
학교 측에서도 은학이를 계속 받아주었다. 가뜩이나 학생 수가 적은 학교였다. 주로 승진을 염두에 두고 오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교장과 교감도 길어야 2, 3년 주기로 바뀌었다. 더러 내년에는 저 녀석을 꼭 중학교에 보내야겠다며 단단히 벼르는 자도 있었다. 하지만 정작 그 내년이 왔을 때는 그 자신이 우물이 있는 학교를, 때론 아예 섬을 떠나버렸다.
일반 교사들과 직원들은 은학이를 총애했다. 거친 일, 특히 물건을 나르는 일을 늘 도맡아하는 아이였던 탓이다. 무엇보다도 이 만년 6학년생의 아버지가 바로 우체부였다. 그는 고군분투하며 학교를 오가는 모든 우편물을 담당했다. 섬 중앙의 교육청으로 가는 중요 문서는 죄다 우체부의 손을 거쳤다. 그가 없으면 아직도 소설가의 꿈을 접지 못한 어느 중년 교사는 해마다 연말이면 신춘문예에 응모를 할 수 없었다. 또 꽃 편지지에 편지 쓰는 낙으로 사는 한 늙은 남자교사는 머나먼 육지에 남겨둔 가족에게 편지를 부칠 수 없었다. 이 학교에서 유일하게 인터넷 쇼핑의 존재를 알고 그것을 즐기는 신임 여교사도 우체부를 소중히 여겼다. 우체부 아버지를 둔 덕분에 은학이는 몇 년째 모래장난을 즐길 수 있었다.
은학이 옆에는 지난봄에 입학한 태형이가 있었다. 태형이는 키도 작고 몸도 성냥개비처럼 가늘었다. 얼굴도 뽀얀 것이 꼭 계집애 같았다. 샘이 많고 아기자기한 물건을 모으는 데도 열심이었다. 6학년인 은학이가 구구단을 외우자 자기에게도 구구단을 가르쳐달라고 고집을 부렸다. 특수교사는 더하기와 빼기를 한 다음에야 구구단으로 넘어갈 수 있다고 열심히 타일렀다. 그러자 태형이는 사내아이들처럼 반항하기보단 혼자 책상 위에 엎드려 훌쩍거렸다. “선생님, 미워요!” “형, 미워!” 불만이 있을 때마다 태형이가 늘 내뱉는 말이었다.
공작 시간에도 태형이는 만용을 부렸다. 별 접는 것도 힘들어하면서 종이학과 개구리를 접고 싶어 했다. 아무리 접었다 펴고 또 폈다 접어도 종이학이나 개구리가 탄생하지 않으면 너덜너덜해진 종이를 꼭 껴안은 채 훌쩍댔다. 특수교사는 남은 종이로 종이컵 인형을 만드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그믐달, 초승달, 반달, 보름달이 태형이의 종이컵 위에 예쁘게 붙었다. 태형이는 끝내 종이학이나 개구리가 되지 못한 종이 뭉치를 그 종이컵 속에 소중히 담아 간직했다.
그렇게 선물을 많이, 많이 모아 누군가를 찾아가는 것이 태형이의 꿈이었다. 다름 아니라, 재작년 봄에 싸리 꽃을 꺾어 온다며 집을 나갔다가 영영 사라져버린 누나였다. “선생님, 마녀잖아요? 우리 누나 보러 가요, 예?” “형, 우리 누나 지금 어디 있는지 알아? 나랑 같이 가 줄 거야?” 하지만 특수교사도, 은학이도 난감해했고, 나중에는 아예 얘기를 피하려 했다. 오직 소영이만 관심을 보였다.
“어쩌면 큰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갔는지도 몰라.”
“우아, 정말! 그럴 수도 있겠다. 누나는 바다 너머에 뭐가 있는지 알아?”
“당연하지, 거기서 왔는걸!”
소영이는 으스대며 구덩이 오막살이와 다슬기 할매의 대궐 얘기를 늘어놓았다. 태형이 눈에는 소영이 누나가 무척 대단해 보였다. 뭍으로 떠나는 사람은 있어도, 뭍에서 오는 사람은 정말 드물었던 것이다.
이제 태형이는 소영이를 붙잡고 누나를 찾으러가자고 졸랐다. 소영이는 슬슬 겁이 났다. 누군가가 자기한테 매달리는 일이 처음이었기 때문에 당혹스럽기도 했다. 저도 모르게 꼬리를 내렸고, 태형이는 그때마다 “누나, 미워!”라며 눈물을 훌쩍였다. 결국 소영이는 나뭇잎이 빨갛게, 노랗게 물들면 꼭 함께 그 누나를 찾으러 가겠다고 약속했다. 까마득히 많이 남았다고 생각했는데, 그날이 곧 다가왔다.
“누나, 교문 옆에 단풍나무 봤어? 빨개졌지? 우리 누나 찾으러 가줄 거지? 약속 안 지키면 진짜 미워할 거야.”
“에잇! 유치하긴 정말! 그래, 가자!”
*
금요일 오후, 특수반 아이들은 머나먼 길을 떠났다. 한사코 반대했던 은학이도 결국 따라 나섰다. 아니, 선두에 섰다. ‘어린 것’을 단둘이만 보내는 것은 위험하다는 생각에서였다. 세 아이가 막 운동장을 지나왔을 무렵, 뒤에서 특수교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얘들아! 집에 가니?”
특수교사 옆에는 고양이 얼굴을 한, 커다란 개 한 마리가 느긋한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아뇨! 선생님, 우리는요, 아주, 아주 먼 길을,”
태형이가 옹알대기 시작하자 은학이가 말을 가로막았다.
“선생님, 지금 우리가 집에 가느냐고 물으셨죠? 흠, 그건 아닙니다.”
“뭐? 그럼 어딜 가는데?”
“우리가 어딜 가느냐고요? 그건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어라, 선생님한테도 비밀이야? 에이, 그러지 말고 선생님한테 살짝 말해주면 안 돼?”
“정 궁금하시면 네이버한테 물어보세요. 그럼, 이만! 자, 얘들아, 가자!”
특수교사는 피식 웃었다. 가봐야 결국 요 근처 바닷가가 아닐까 싶었다. 아닌 게 아니라 산책하기 딱 좋은 날씨였다. 특수교사는 고양이 얼굴을 한 커다란 개의 등에 몸을 싣고 유유자작 집으로, 성으로 향했다.
특수교사의 짐작대로, 학교를 빠져나간 아이들은 바닷가를 걷고 있었다. 해안도로는 구불구불, 끝없이 이어졌다. 이제 곧 딴 세상이 나오리라 기대했지만, 지금까지 걸어온 것과 별반 다를 바 없는 길의 연속이었다. 오른쪽으론 뒤에 무엇이 있는지 통 알 길 없는 험준한 산들이, 왼쪽으론 바다가 하늘과 맞닿아 있었다. 은학이는 물과 도시락을 꺼냈다. 배를 채운 뒤 아이들은 또 걷기 시작했다. 해안도로를 등지고 산 속으로 접어들었다. 처음에는 해안도로와 비슷한 아스팔트길이 나왔다. 아이들은 나란히 선 채 타박타박 걸어갔다. 한참을 걸어가자 이번에는 시멘트길이 나왔고 길이 좀 좁아졌다. 더 들어가자 신작로가 나왔다. 시멘트길보다 더 좁았고 다니는 차도 별로 없었다. 어쩌다 한 대라도 지나가면 몇 분 동안 신작로에는 뽀얗게 먼지가 일었다. 아이들은 슬슬 지쳐갔다. 태형이는 투정을 부렸다.
“누나, 얼마나 더 가야돼?”
“너희 누나 집이 나올 때까지 가야지.”
“우리 누나 집이 어디야? 바다는 언제 건너 가?”
“그걸 나한테 물으면 어떡해?”
“누나가 찾아준다고 했잖아?”
“네가 말을 안 해줬는데 내가 어떻게 알아?”
“아, 이런 바보들이 다 있나! 위치를 모르면 출발하기 전에 네이버에게 물어봤어야지! 너희들을 믿은 내 잘못이다!”
은학이는 진심으로 자책하며 고개를 푹 숙였다. 묵념이라도, 묵상이라도 하는 듯했다. 분위기가 숙연하고도 침울해졌다. 드디어 은학이가 고개를 들고 전투적인 눈빛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신작로 옆쪽, 산속으로 꼬불꼬불하고 좁은 오솔길이 나 있었다. 은학이는 이제야 영감을 얻은 양 소리쳤다.
“저쪽이다! 얘들아, 가자!”
소영이와 태형이의 눈이 초롱초롱해졌다. 다시 씩씩한 행군이 시작됐다. 은학이를 앞세운 채 나머지 두 아이가 따라 붙은 모양새가 꼭 짜리몽땅한 줄줄이 사탕 같았다.
어느덧 날이 어두워졌다. 맨 뒤에 섰던 태형이가 뒤를 돌아보았다. 지금까지 걸어왔던 길이 사라지고 없었다.
“형! 큰일 났다!”
은학이도 덜컥 겁이 났다. 태형이의 말을 듣고 뒤를 보니 얼룩덜룩하고 울창한 숲 높이를, 또 두께를 가늠할 수 없는 벽이 돼 있었다. 그때 소영이가 감탄을 내질렀다.
“우아! 저거 좀 봐!”
아이들의 시선이 일제히 앞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과자로 만든 집이 의기양양하게 서 있었다. 아몬드 초콜릿 볼, 초콜릿 아이스크림, 참깨 크래커, 과일 드롭스 캔디, 버터 쿠키, 생크림 케이크, 고구마 케이크, 치즈 케이크, 슈크림 빵, 감자 크로켓, 호밀 빵 샌드위치…. 휘황찬란하고 먹음직스러운 과자를 보자 군침이 고였다. 태형이는 입맛을 쪽쪽 다셨다.
“얘들아, 안 돼! 선생님이 읽어준 동화 생각 안 나? 과자로 만든 집엔 절대 들어가면 안 돼!”
은학이는 목청껏 외쳤지만 제일 먼저 달음박질을 시작한 것도 은학이였다.
과자로 만든 집의 문과 벽은 알록달록한 색깔의 사탕이었다. 아이들은 사탕을 핥아먹기 시작했다. 빨강색에서는 딸기 맛이, 연녹색에서는 풋사과 맛이, 주황색에서는 귤 맛이, 초록색은 멜론 맛이 났다. 노란색은 망고 사탕이었다. 아이들은 뭔가 달콤하고 향긋한 망고 맛에 반해버렸다. 벽과 문을, 또 문의 손잡이를 아무리 핥아먹어도 사탕은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기둥을 이루고 있는 막대 과자 역시도 세 아이가 모두 달라붙어 뜯어 먹는데도 끄떡없었다.
갑자기 문이 천천히 열렸다. 이제 막 소녀티를 벗은 예쁜 아가씨가 치맛자락을 팔랑이며 나왔다. 볼에서는 복숭아 과육 냄새가, 검은 머리카락에서는 옥수수수염 냄새가 났다. 새카맣고 투명한 눈동자는 뜨거운 햇빛 아래서 농염하게 익은 오디와 비슷했다. 아가씨는 웃으며 앵두로 된 입술을 살짝 열었다. 풋풋한 향내가 퍼져 나왔다. 하얀 이빨은 개암나무 열매로 돼 있었다.
“누나, 저 누나가 우리 누나야? 우리 누나는 조그만 아이였는데….”
“바보! 우리 선생님이잖아?”
소영이가 핀잔을 주었다.
“에이, 그럼 우리 누나는 어디 있어?”
태형이는 이제 곧 울음이라도 터뜨릴 기세였다. 조그맣던 누나가 저렇게 커버렸다는 것이 통 믿어지지 않았다. 지금껏 사태를 살피고 있던 은학이가 마침내 소리를 질렀다.
“얘들아, 저 아줌마는 우리 선생님도, 태형이 누나도 아니야! 얼른 가자, 얼른!”
“오빠, 바보! 태형이도 바보야! 왜 선생님을 몰라 봐?”
“그래, 소영이가 제일 똑똑하구나. 들어오렴.”
아가씨는 안으로 들어가며 손짓을 했다. 소영이는 통통거리며 그 뒤를 따랐다. 은학이와 태형이도 주춤하며 따라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