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열흘쯤 뒤 떡붕어 아저씨는 민물낚시를 떠났다. 소영이는 이번에는 떡붕어 아저씨의 말을 어기고 방 밖을 나갔다. 그러곤 성채를 반 바퀴 돌아 뒤쪽으로 갔다. 저 높이 성 꼭대기에 백발을 꼬아서 만든 굵은 밧줄이 계단 모양으로 매달려 있었다. 소영이는 그 끄트머리를, 꼭 땋은 머리를 묶은 리본 같은 것을 한 번 잡아 당겼다. 허연 머리채가 성벽을 따라 굽실굽실 춤을 추었다. 갑자기 떡붕어 아저씨의 방, 아니 욕실 창문으로 튕겨나가 하늘을 날던 기억이 났다. 저도 모르게 머리채를 양손으로 붙잡고 첫 계단 위에 발을 올려놓았다. 보기와는 달리 넓고 평평한 땅에 닿은 것처럼 편안했다. 소영이는 천천히 머리채 계단을 딛고 올라갔다.

 

구름이 몇 번이나 소영이의 등을 훑고 지나갔고 바람에 머리카락이 날렸다. 한참을 차곡차곡 올라간 뒤 아래를 보니 연못이 조그맣고 파란 동그라미처럼 보였다. 이상하게도 조금도 무섭지 않았다. 그 다음에는 위를 쳐다보았다. 저 멀리 커다란 창문만한 사각형의 구멍이 보였다. 소영이는 다시 올라가기 시작했다. 마침내 창문에 다다랐다. 다락방보다 한참 더 높은 곳, 손을 뻗으면 하늘을 긁을 수 있을 것만 같은 높은 곳이었다. 소영이는 조심스럽게 창턱으로 발을 올린 다음 바닥으로 뛰어내렸다. 발에 와 닿는 감촉이 부드러웠다.

 

방 한가운데에 거대하고 물렁해 보이는 형체 하나가 있었다. 소영이는 가까이 다가갔다. 그것은 어떤 할머니였다. 다만, 소영이의 할머니보다 훨씬 더 늙었고, 바싹 말랐던 할머니와는 달리 몹시 피둥피둥했다. 흡사 쭈글쭈글한 자루 속에 공기와 살을 잔뜩 집어넣어 부풀린 것 같았다. 사람은 늙을수록 마르고 쪼그라드는 줄만 알았는데, 늙으면서 더 커질 수 있다니 좀 놀라웠다. 할머니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마디마저 살에 묻혀버린 손과 손가락 끝이, 또 검버섯으로 뒤덮인 얼굴의 주글주글한 주름들이 보일 듯 말 듯 파닥대고 있었다. 할머니는 경사가 완만한 안락의자에 반쯤 눕다시피 앉아 있었다. 볼끈 잡아맨 복주머니처럼 생긴 입에는 투명한 뚜껑이 씌워져 있고, 희끗희끗한 머리카락은 길게 늘어져 벽으로 이어졌다. 벽은 온통 기괴한 구멍으로 가득 차 있었다. 머리카락은 그 무수한 구멍을 한 오라기씩 통과하여 벽 너머로 드리워졌다. 할머니 곁에는 한 중년여자가 고도의 기술로 만든 인조인간처럼 서 있었다. 낯선 사람이 들어와도 눈동자 한 번 돌리지 않고 눈꺼풀 한 번 깜박이지 않았다.

할머니!”

소영이의 외침은 조용하고 넓은 방안에서 더 큰 메아리가 되어 소영이에게로 돌아왔다. 제 목소리에 흠칫 놀란 소영이는 더 크게 외쳤다.

할머니 누구야? 밥은 먹을 줄 알아? 죽은 거야, 산 거야, ?”

그러자 뚱보 할머니의 입술이 달싹이며 무슨 말이 흘러나오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은 음절로 나눌 수 없는 괴상한 소리였다.

 

죽은 것도 산 것도 아니야.”

갑자기 뒤에서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렸다. 문지기였다.

함부로 죽지도 못하는 세상이 됐어. 저렇게 삶을 죽이면서, 죽음을 살면서 30년이 넘도록 누워 있는 거지. 저런 식이라면 불멸은 최악의 징벌이야.”

에이,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나 하고, 정말! 아저씨 오뉴월에 불알이나 터져버려라!”

소영이는 다슬기 할매한테 들은 주문을 되는 대로 마구 지껄였다.

저 할머니는 누구야? 아저씨 아는 사람이야?”

우리 어머니. 그리고 주인이지.”

저 할머니가 여기 주인이야? 우아, 이 성이 전부 다 저 할머니 거라고? 에이, 나는 떡붕어 아저씨가 주인인 줄 알았네. 주인 아닌 사람은 매달 방세 내야 되는데, 에이, 좋지 않아!”

소영이는 떡붕어 아저씨를 생각하며 실망감과 미안함을 감추지 않았다. 하지만 산송장처럼 누워 있는 뚱보 할머니를 보니 금세 또 다른 생각이 들었다.

어라, 저렇게 가만히 누워만 있으면 방값은 어떻게 받아, ? , 아저씨가 대신 받는구나?”

문지기는 대답 대신 엉뚱한 말을 내뱉었다.

너 그만 집에 가야겠다. 아빠가 찾잖아.”

, 나 아빠 없는데. 그래도 집에 갈래.”

 

소영이는 곧장 창문 쪽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창턱은 아까와는 달리 턱없이 높았고 머리채 계단은 아예 사라지고 없었다. 소영이는 울음을 터뜨릴 기세로 문지기를 올려다보았다. 그는 소영이의 손을 잡고 빠른 속도로 앞을 향해 걸었다. 계속 해서 칸막이가 나와, 눈 깜짝할 새에 그들 곁을 스치고 지나갔다. 마침내, 마지막 칸막이 앞에 이르렀다. 문지기가 돌출부를 누르자 칸막이가 쩍 벌어지면서 조그만 방이 생겼다. 문지기는 소영이를 안으로 밀어 넣은 뒤 자기는 바깥에 멍하니 서 있었다. 조그만 방은 소영이를 태운 채 급속도로 하강하다가 갑자기 털커덕 멈추어 섰다. 소영이는 낯익은 복도에 서 있었다.

 

소영이는 달려온 떡붕어 아저씨의 목을 감으며 안겼다.

아저씨, 나 때문에 방세 더 많이 내야 돼?”

? 그게 무슨 소리야?”

아저씨 자살할 거야?”

도대체 어디서 그런 이상한 말을 배웠어?”

구덩이 오막살이 살 때 맨 끝 방 아줌마랑 아저씨 죽었어. 방값 못 내서 죽었대. 사람들이 자살이라고 그랬어.”

어휴, 네가 없어도 방세는 내야 되니까 쓸데없는 걱정 하지 마. 그리고 자살이란 아주 나쁜 말이니까 잊어버려.”

왜 나빠? 아저씨, 그런데 있잖아,”

소영이는 오늘 있었던 일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떡붕어 아저씨는 시종일관 무뚝뚝한 얼굴이었다. 속으론 웃고 있어도, 또 울고 있어도 그의 얼굴은 좀처럼 변하지 않았다.

 

소영이 얘기를 들으며 떡붕어 아저씨는 민물고기를 다듬었다. 날카로운 칼날이 닿을 때마다 물고기는 비명 한 번 못 지르는 한을 풀겠다는 듯 죽어라 몸부림을 쳤다. 하지만 아무리 발악을 해도 쉽게 죽지도 못했다. 내장이 완전히 제거되고 비늘이 싹 벗겨진 채 멍한 눈을 치켜뜨고 아가미를 뻐끔거리는 물고기의 뱃속에 양파와 다진 마늘과 생강이 들어갔고, 그 몸통에는 골고루 소금이 뿌려졌다. 물고기는 그렇게 죽음과 삶의 처절한 경계를 오가야 했다. 뜨겁게 달궈진 전골냄비에 들어가자 펄펄 끓는 간장이 물고기의 온 몸을 파편으로 뒤덮었고, 물고기는 마지막으로 최후의, 또 최고의 비상을 시도했다. 하지만 떡붕어 아저씨가 능수능란한 손놀림으로 잽싸게 뚜껑을 덮어버리자 천정까지 뛰어오르지도 못하고 꼬꾸라졌다.

 

슬슬 보내야겠는걸.”

누구? 어딜?”

요 녀석, 이제 학교에 가야지.”

떡붕어 아저씨는 굳어버린 얼굴에 근심을 담아내고 싶었다.

 

*

 

화창한 초가을 아침이었다.

 

성을 나와 논밭을 따라 쭉 걷자 바다가 나왔다. 그 바닷가를 따라 또 쭉 걸어가니 큰 도로가 나왔다. 우체국, 약국, 은행, 대형 슈퍼마켓, 세탁소, 다방 등이 보였다. 그 길을 따라 몇 발짝을 떼자 교문이 소담하게 서 있었다. 넓은 운동장 너머로 고즈넉한 바다가 그보다 더 넓게 펼쳐졌다. 운동장의 오른쪽엔 등나무가 연보랏빛 꽃을 피웠고 밑에는 나무벤치가 단정하게 배열돼 있었다. 왼쪽에 나지막한 집이 한 채 서 있었다. 원래는 외지에서 온 교사들을 위한 숙사였지만 아무도 살지 않아 그냥 버려졌다.

 

운동장 옆을 따라 걸어가자 학교 건물이 나왔다. 그 옆으로 코스모스가 하늘거리며 총 천연색을 뽐내고 있었다. 건물 바로 앞에는 조그만 꽃밭이 있었다. 그 예쁜 꽃들을 다 제압할 기세로 동상 하나가 서 있었다. 한 쪽 겨드랑이에 책보를 낀 어린소년의 대리석상 밑에는 이승복이라는 이름이 쓰여 있었다.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는 문구도 보였다. 소년으로부터 좀 떨어진 곳엔 한 소녀의 대리석상이 있었다. 소녀는 긴 머리에 챙이 넓은 모자를 쓰고 다소곳이 앉아, 얌전하게 모아진 허벅지에 책을 올려놓고 있었다.

 

그 옆으로 좀 더 가서 학교 건물을 끼고 돌면, 너무 많이 자라서 들국화처럼 돼 버린 쑥 틈새로 도르래가 달려 있는 우물이 나왔다. 우물 위에는 나무 지붕이 쳐져 있었다. 옆에 수돗가를 두고서도 아이들은 우물에서 물을 길어 올렸다. 아이들이 줄을 잡아당길 때마다 도르래가 노래를 불렀고, 물통과 물이 우물 벽을 때리며 화음을 넣었다. 이곳이 소영이가 다닐 학교였다. 섬사람들이 우물이 있는 학교라고 부르는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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