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천정에서 불어 내려와 방 구석구석까지 퍼졌다. 소영이는 눈을 떴다. 창문 너머로, 연못이 쏘아 올린 푸른 하늘이 보였다. 하얀 연꽃과 붉은 연꽃마저 하늘 위로 쏘아, 구름처럼 둥둥 떠다녔다. 갑자기 연꽃이 터지면서 꽃잎들이 소나기처럼 쏟아졌다. 방바닥이 흔들리고 천정이 와르르 무너졌다. 소영이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눈을 떴다. 천정 한가운데에는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그 구멍 어디에서 시커멓고 두툼한 줄이 내려왔고 거기에는 뭔지 모를 물건이 앙상한 골조의 형태로 힘겹게 매달려 있었다. 줄은 징그러운 구렁이처럼 꿈틀대며 허공에서 요사스럽게 움직여댔고, 앙상한 물체는 고문이라도 당하는 양 처참하게 낑낑댔다. 덩달아 짙은 회색의 먼지덩어리가 솜처럼 뭉텅뭉텅 떨어졌다. 소영이는 어리둥절해하며 그 자리에 서 있다가 현관으로 달려갔다. “누가 벨 눌러도 절대 문을 열어주지 말고, 절대 밖에 나가지도 말고!” 떡붕어 아저씨의 말이 생각났지만 소영이는 이미 복도로 나와 있었다.

 

복도 끝에서 희미한 불빛이 비쳐왔다. 불빛이 점점 더 커지는가 싶더니 한 남자가 불빛을 등에 지고 섰다. 그는 슬리퍼 끄는 소리도 내지 않고 나긋나긋한 발걸음으로 다가왔다.

으악! 아저씨 뭐야?!”

하지만 상대방은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표정도 멍했다. 그저 가로 지름이 넓은 타원형의 두 눈만이 잃어버린 초점을 찾으려고도 하지 않고 불안한 기색 없이 고요하게 빛날 뿐이었다. 그는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현관 안으로 발을 들여 놨다. 소영이는 고목나무에 붙은 매미 마냥 남자의 허벅지에 달라붙어 그를 꼬집고 물어뜯고 두들겨 팼다. 그제야 상대방은 반응을 보였다.

그만 좀 하면 안 되겠니? 아프잖아.”

아저씨 뭔지 말해! 사람이야, 귀신이야?”

나는 문지기야.”

그는 나긋나긋한 고양이 걸음을 자랑하며 방 안으로 들어갔다. 남자답지 않게 가느다란 몸과 팔다리가 움직이는 모양새가 꼭 바람에 팔랑이는 나뭇잎 같았다.

 

방 안을 보자 문지기는 얼음망치로 얻어맞은 것처럼 한 자리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점검을 빙자하여 사태를 관망했다. 에어컨이 떨어지다가 중간에서 멎었다. 땅바닥에 닿지도, 고로 박살이 나지도 않았다. 그건 오직 배수관이 순간적으로 천정과 벽 사이의 돌출부에 찍혀 고정된 덕분이었다. 여기서 문지기는 질문을 던졌다. 저 비좁은 틈새에 어떻게 돌출부가 있을 수 있지? 저렇게 허약해 보이는데 어떻게 에어컨을 붙들고 있을까? 그나저나 저게 언제 생겼지? 문지기는 이 성에서 태어나 성과 함께 자라났으며, 이 성의 영원한 문지기였다. 오늘 발견한 성의 새로운 구조에 그는 상당히 달떴다. 그리고 이 하찮은 사실이 대단한 의미라도 지니는 양 오랫동안 상념에 잠겼다. 그 시간은 허망하게 뚫려 버린 거대하고 시커먼 심연에 경의를 표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드디어 문지기가 몸을 움직였다. 지금껏 쳐들고 있던 고개를 다시 내리자 목뼈가 뻐근해왔다. 그는 목을 앞뒤, 좌우로 천천히 숙였다 펴더니 방을 나갔다. 지금껏 옆에서 계속 떠들던 소영이는 숫제 소리를 질렀다.

아저씨 어디 가? 그냥 가면 어떡해? 뼈다귀들이 울잖아! 뱀도 싫단 말이야! 에이, 나 여기 싫어! 구덩이 오막살이로 돌아갈래!”

 

한참 뒤에 다시 나타난 그의 손에는 의자와 펜치, 빈 봉지가 들려 있었다. 그는 의자를 사고가 난 지점 밑에 갖다 놓고 천천히 위로 올라갔다. 그러곤 고개를 두 손을 뻗으며 고개를 완전히 뒤로 젖혔다. , 줄 끊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동시에, , 굉음이 울려 퍼지면서 에어컨 덩어리가 방바닥에 떨어졌다. 그 자리는 운석을 맞은 양 움푹 파였고 그 주위로 에어컨의 파편이 흩뿌려졌다. 문지기는 조용히 의자에서 내려왔다. 운석 자국을 오랫동안 바라본 뒤 그는 쪼그리고 앉아 부서지고 토막 난 잔해를 봉지에 주워 담았다. 그러다 갑자기 짧은 비명을 지르며 뒤로 벌렁 넘어갔다. 언뜻 그의 손끝에서 짧은 순간이지만 불꽃이 인 것도 같았다.

 

으악, 아저씨 왜 이래? 아저씨, 아저씨! 정신 차려!”

소영이는 문지기의 뺨을 찰싹찰싹 때리고 그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기고 겨드랑이를 깨물었다. 그래도 문지기는 죽은 사람처럼 꿈쩍도 하지 않았다. 소영이는 문지기의 배 위로 올라가 콩콩 뜀박질을 시작했다. 처음 발바닥에 닿은 것은 물렁하고 보드라운 쿠션이었지만 발을 뗐다가 다시 붙이자 딱딱하고 가느다란 뼈다귀의 감촉이 느껴졌다. 소영이는 문지기의 배에서 다시 내려왔다. 이제는 발바닥을 간질이고 사타구니를 깨물었다. 그래도 반응이 없었다. 소영이는 주먹을 꽉 쥐고 씩씩대다가 홧김에 사타구니 사이의 둔덕을 있는 힘껏 내리쳤다. 그러자 문지기는 회생한 좀비처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저씨, 괜찮아? 뭐야 손바닥이 왜 이리 시커매?”

소영이는 깔깔대며 웃기 시작했다. 문지기는 예의 그 초점 없는 눈을 전선 토막에 고정시켰다. 이미 죽어버린 전선에 전류가 남아 있었다니 놀라운 일이었다. 공포의 잔영 때문에 문지기는 섣불리 거기에 손을 대지 못했다. 손바닥을 뒤덮은 검은 색이 그에겐 무척 불길하게 느껴졌다.

아저씨 뭐해? 뼈다귀 시체를 치우란 말이야, 빨리! 빨리! 저 천정 구멍은 또 어떡해?”

문지기가 천천히 일어났다. 그리고 역시나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나마도 이 말을 하기가 무척이나 아깝다는 듯 조용조용, 조심스러웠다.

이 아저씨는 말이야, 생각이 아주, 아주 많단다. 너무, 너무 많아서 문제야.”

어라, 무슨 생각이 그리 많아?”

 

또 시련이 시작됐다. 소영이가 아무리 안달복달해도 문지기는 유유자작하게 느릿느릿 방을 나갔다. 소영이는 종종 걸음을 치며 문지기의 뒤를 좇아갔다. 이미 복도를 절반 이상 지나왔다. 복도의 끝이 아득히 먼 불빛 속으로 함몰하는 중이었다.

그건 비밀이야.”

함몰하기 직전, 문지기는 이런 답을 남겼다. 이번에도 무척이나 사랑스러운 보물을 꺼내 보여주듯, 조심스러운 태도였다. 문지기가 완전히 사라지자 소영이는 투덜대며 방으로 돌아왔다. 떡붕어 아저씨가 일러준 대로 문을 꼭꼭 걸어 잠갔다.

 

*

 

소영이를 성에 남겨둔 채 떡붕어 아저씨는 지루한 여행을 감행했다. 섬을 벗어나, 소영이와 함께 밟았던 선착장에 도착했다. 일렁이는 바다를 보자 손끝이 찌릿하고 손발이 저려왔다. 곧 온 몸이 근질근질해지면서 신경이 쭈뼛쭈뼛 서는 것 같았다. 하지만 욕망을 억누르고서 의연히 기차역을 향해 걸어갔다. 상상 속의 그는 미지의 적수를 향해 낚싯대를 던져놓고 한판 승부를 기다리고 있었다. 현실 속의 그는 고속열차에 몸을 싣고 내륙으로 더 깊이 들어가고 있었다.

 

1125, 떡붕어 아저씨는 T역에 도착했다. 땅덩어리가 널찍하고도 둥그렇게 파인 분지였다. 첫 발을 떼놓을 때부터 우울해졌다. 어느 새 그는 환골탈태하여, 말쑥한 직장인 내지는 관록이 좀 쌓인 젊은 사업가 차림이었다. 텁수룩한 머리카락도 깔끔하게 정돈돼 있고 손에는 서류 가방과 노트북이 들려 있었다. 하지만 졸라맨 넥타이 때문에 숨이 턱턱 막히고 양복에 갇힌 몸은 갑갑증을 호소해왔다. 사방팔방 어딜 보나 물 한 방울 보이지 않고 바람 한 점 불지 않았다. 대신 나른하고 촌스러우면서도 부산스러운 소도시의 분위기가 물씬 느껴졌다. 이제는 익숙해진 것이지만 그렇다고 해도 정이 들진 않았다. 역사로 들어선 그는 조그만 구내식당에서 간단히 요기를 했다. 그의 단골 메뉴는 시원한 우동 국물과, 유독 어묵에만 고추장 양념을 한 김밥이었다. 동시에 이것이 그가 T시에 머무는 동안 사심 없이 즐길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낙이기도 했다. 피비린내 나는 접전을 앞두고 여유롭게 치루는 만찬은 황홀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일정이 시작됐다. 무수히 많은 사람을 만나고 무수히 많은, 하지만 형식적인 말이 오가고 무수히 많은 서류에 도장이 찍혔다. 그동안 T시는 점점 더 더워졌다. 닭들이 더위를 견디지 못해 집단적으로 폐사했고, 기왕지사 죽을 날을 세고 있던 노인들의 명줄이 마침 올 여름에 탁탁 끊겨버렸다. 이제 막 태어난 것들, 절찬리에 삶의 향연을 즐기고 있는 것들, 삶의 황혼을 맞보기 시작한 것들 모두 푹푹 찌고 활활 타는 무더위 속에서 허덕였다. 버스와 택시조차도 짜증나는 열기를 온 몸으로 뿜어냈다. 덕택에 도로는 온통 갑갑하고 불만스러운 매연으로 가득 찼다. 떡붕어 아저씨는 T시의 거리를, 사무실과 매장을, 학교와 연구소를 정신없이 오갔다. 그 흐름에 따라 보이지 않는 돈이 역시나 보이지 않는 선을 따라 이리저리 옮겨 다니다가 그의 계좌에 정착했다. 그 동안 수많은 냉수와 수많은 냉커피와 냉홍차가 그의 몸을 거쳐 땀으로 증발했다. 땀이 다 빠져버리자 이제 피가 공기와 부딪쳐 산화됐다. 공기는 그와 같은 인간들, 동물들, 곤충들의 땀과 피에 절어, 혓바닥을 축 늘어뜨리며 헉헉거렸다. 그의 몸속에는 필요 이상의 당분과 염분이 수북이 쌓였다. 반대로, 수분과 혈액은 거의 다 빠져 나가버렸다. 몸의 인내력이 임계점에 다다랐을 때 그는 다시 T역에 와 있었다.

 

이미 해는 넘어갔지만 잔혹하게 데워진 지표면은 식을 생각을 안 했다. 공기도 여전히 텁텁하고 눅눅했다. 떡붕어 아저씨는 횡단보도를 건너 역사를 향해 걸었다.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졌다. 그는 뛰기 시작했다. 불과 1분 사이에 몸이 흠뻑 젖어버렸다. 그 몸으로 그는 기차에 올랐다.

 

P역에 도착했을 때는 도시의 불빛이 어둠을 재촉하고 있었다. 그는 이제 막 노숙자의 길로 들어선 사람처럼 변해 있었다. 얼굴은 시뻘건 구릿빛이었고 몸뚱어리는 둔하다 못해 슬퍼 보일 만큼 두툼했으며 행색은 몹시 초라했다. 무엇보다도 불가피하게 강요된 노동 이후에, 그 특유의 고약한 제취가 더욱더 고약해졌다. 사람들은 힐끔힐끔 그를 훔쳐보면서 피했다. 그는 무뚝뚝하고 음울한 얼굴을 한 채 밤 시장으로 갔다.

 

어둠이 자욱이 내린 가운데, P시 슬럼가에는 다양한 가게들이 닥지닥지 붙어 있었다. 붕어빵과 호떡, 혹은 떡볶이와 어묵, 혹은 순대와 닭발, 돼지국밥과 수육을 파는 곳은 어디서나 볼 수 있었다. 그밖에 갓 태어난 아이를 파는 곳, 살아 있는 동물을 파는 곳, 죽은 동물의 고기를 파는 곳, 젊고 건강한 남자의 노동력을 파는 곳, 젊고 예쁜 여자의 몸을 파는 곳, 나이와 성별과 신선도가 등급별로 나눠진 장기를 파는 곳, 마음에 들지 않는 헌 몸 틀을 대체할 새로운 몸 틀을 파는 곳 등 이곳의 밤거리는 꽤나 다채로웠다. 그곳에는 그가 매년 두 번씩 들르는 단골 가게가 있었다. 금괴를 사고파는, 평범하고 건전한 곳이었다.

 

주인이 그를 맞으며 눈인사를 했다. 그는 떡붕어 아저씨가 내민 지폐 뭉치를 오랫동안 세고 또 살폈다. 돋보기는 물론이고 현미경까지 동원되었다. 위조 여부가 확인된 뒤에도 거쳐야 되는 과정이 있었다. 주인은 지폐 뭉치를 들고서 특수한 방으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지폐들은 지문감식까지 거쳤다. 마침내, 밖으로 나온 주인이 입을 열었다.

이번에는 칼부림이 좀 심했던 모양이지요?”

평생 동안 검이나 창을 두들겨 온 일급 장인의 표정과 어조였다. 떡붕어 아저씨 역시 졸지에 검술사로, 창술사로 바뀌었다.

딱히 유별날 것도 없지요. 늘 그렇잖습니까.”

아시다시피 요즘 어디나 기운이 좋질 않습니다. 다슬기 할매가 죽었습니다. 구덩이 오막살이도 그대로 묻혀 버렸지요. 그 아이는 어떻습니까? 정신도 성치 않은 여자아이를 돌보는 게 쉽지 않을 텐데.”

주인은 음흉하게 눈을 찡긋했다. 떡붕어 아저씨는 잠깐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값을 쳐 주시지요.”

주인도 잡담을 계속할 마음을 접었다.

 

그는 구석진 방으로 들어갔다. 다시 가게로 나온 그의 손에는 가짜 비단으로 싼 크고 굵은 금괴가 들려 있었다. 떡붕어 아저씨는 말없이 그것을 받아들었다. 지난번보다 무게가 적었다. 하지만 군말은 하지 않았다. 금괴의 무게는 그가 넘긴 지폐의 무게에 비례했고, 나날이 불어나고 있는 그의 체중에도 비례했다. 이 속도로 간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 더 이상 T시를 오가지 못하게 될 것이다. 몸이 너무 무거워져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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