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섬은

 

 

 

 

 

끝이 없을 것 같았던 자갈길의 종착지는 연못이었다. 흐르는 강물과 달리 몹시 탁하고 적막했다. 그 위로 푸른 연꽃 이파리들이, 또 그 위로 흰색과 자주색 연꽃들이 동동 떠 있었다. 연못 가두리의 물은 개구리밥으로 덮여 있었다. 습기를 머금은 부들도 무성하게 자라 있었다. 수초들은 헝클어진 긴 머리카락 마냥 수면 아래서 흐느적댔다. 그 위를 물방개와 장구애비들이 휘젓고 있었다. 연못 건너편으로 꼭대기가 보이지 않는 높은 성채가 서 있었다. 하지만 볼품없이 높기만 할 뿐, 애매하게 방치된 폐가처럼 씁쓸하고 서글퍼 보였다. 담쟁이 넝쿨이 담벼락을 뒤덮어 벽돌은 잘 보이지도 않았다. 벽돌의 틈새에는 눅눅한 이끼들이 음침하게 끼여 있었다. 대체로 멀리서 볼 때와는 달리 참 초라한 성채였다.

 

, 이제 구경은 그만 하고 내리렴.”

떡붕어 아저씨는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어느새 이렇게 무거워진 거냐?”

땅바닥에 두 발을 내딛자 소영이도 깜짝 놀랐다. 순식간에 새로운 몸을 얻은 기분이었다. 길게 자란 머리채를 흔들며 길어진 팔다리를 움직여 보았다. 성큼성큼 걸음도 내딛었다. 이제 세상 끝까지라도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저씨 우리 저기서 사는 거야?”

왜 마음에 안 들어?”

소영이는 잠깐 입을 다물고 있다가 말했다.

빛도 들어온다며? 변소에 구더기도 없다며? 그럼 됐어. 아저씨, 이제 우리 헤엄쳐야 돼?”

연못가에서 걸음을 멈춘 소영이가 물었다.

 

떡붕어 아저씨는 연못 옆에 우두커니 서 있는 나무를 더듬었다. 볼록하고도 거칠게 돋아난 옹이 위에 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그 주변으로 ‘château d'if’라는 문자도 있었지만 보호색을 입은 곤충 같아 간신히만 알아볼 수 있었다. 떡붕어 아저씨는 을 집게손가락으로 지그시 눌렀다. 성 저 편에서 거대한 다리가 내려왔다. 삐거덕거리는 소리가 저쪽 하늘에서 이쪽 땅으로 떨어지는 것 같았다. 다리는 소영이 바로 앞에서 철커덕 내려앉았다. 소영이는 아저씨를 한 번 올려다 본 뒤 조심스럽게 다리를 건너기 시작했다. 진홍색, 하얀색, 검정색의 커다란 물고기들이 소영이 곁을 지나갔다.

우아! 물고기 되게 많다! 아저씨 쟤들도 잡아먹으면 맛있어?”

쟤들은 저렇게 놀라고 있는 거야.”

왜 어떤 물고기는 잡아먹고 어떤 물고기는 그냥 놀게 내버려둬? 불공평하잖아?”

떡붕어 아저씨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무뚝뚝한 얼굴의 살갗이 아주 미세하고 재빨리 경련을 일으켰다.

 

둘은 이미 다리를 다 건너왔다. 굳게 닫혀 있던 성문이 저절로 열렸다. 두 개의 문짝이 밖으로 쩍 갈라지면서 성의 내부가 드러났다. ‘우아!’를 외칠 준비가 되어 있었던 소영이도 당혹스러울 만큼 누추한 공간이었다. 천정은 나지막하고 군데군데 페인트가 떨어져 나가 지저분했다. 홀 바닥에는 여기저기에 해묵은 먼지와 쓰레기가 눈에 뜨였다. 청소를 하다 말았는지 물동이와 밀대걸레도 한쪽 벽에 세워져 있었다. 그 맞은편에 다양한 크기의 종이 박스가 쌓여 있었다. 그곳에는 조그만 방이 하나 있었다. 방문의 절반이 유리로 되어 안을 들여다 볼 수 있었다. 탁자 위에 먹다 남은 과자와 커피 잔, 꽁초가 가득 담긴 재떨이가 보였다.

저 방엔 누가 살아?”

아무도 안 살아.”

그럼 빈 방이야?”

아니, 관리실이야.”

그게 뭐야?”

관리인이 있는 곳이고, 관리인은 이를 테면 문지기와 같은 거야.”

이 말에 소영이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다가 반문했다.

문지기라면서 왜 문을 안 지켜?”

그때 성문이 열리면서 우체부가 나타났다. 그의 손에는 여러 개의 소포가 들려 있었다. 그 중 하나가 떡붕어 아저씨가 P항에서 부친 낚시 장비였다.

그거 307*호에 온 거죠?”

, . 그럼 그쪽이 떡붕어 아저씨? 소포 왔습니다!”

우체부는 이렇게 외치면서 무척 기뻐했다. 두드릴 대문이 없어, 당장 옆에 있는 관리실 문을 탁탁 두드리기도 했다.

 

그는 엄청난 거구에 한꺼번에 80킬로그램 정도는 거뜬히 들 수 있는 괴력의 소유자였다. 어릴 때는 거인이라며 놀림과 따돌림도 많이 받았다. 그런데도 그의 꿈은 가로수가 호젓하게 심어진 포장도로 위에서 천천히 시간을 음미하며 낙엽을 쓰는, 몸집이 왜소한, 심지어 여자처럼 가녀린 청소부가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딱히 그가 거구여서도 아니고 이곳에 가로수길이랄 것이 없었던 까닭에 실현할 수 없는 꿈이었다. 대신 그는 이 섬의 유일한 우체부가 되었다. 지나치게 큰 몸집에 대한 해묵은 열등감은 자신감으로 바뀌었다. 아침부터 그는 불끈 쥔 주먹으로 대문을 두드리며 우체부 아저씨요!”라고 목청껏 외쳤다. 초인종이 버젓이 있는데도 이러는 건 그의 습관이었다. “최도승씨, 편지 왔습니다!” “한훈탁씨, 소포요!” 이런 말을 덧붙일 때 그의 얼굴에선 흐뭇함이 배어나왔고, 온 몸에선 생기가 샘솟았다. 사람들이 편지나 소포를 건네받을 때는 표정을 유심히 살폈다. 상대방이 몸을 돌린 뒤에는 그 뒷모습을 5초 정도 감상했다. 우체부의 빈틈없는 하루일과에서 성은 늪과 같은 것이었다. 성에는 많은 사람들이 살았기 때문에 소포나 편지도 많았다. 하지만 그들이 우체부를 맞이하는 일은 없었다. 다들 집을 비웠거나 혹은 비운 척했다. 무엇 때문인지 작당이라도 한 듯 우편물을 받는 일만은 문지기가 해야 된다고 암묵적인 원칙을 세웠다.

 

, 이건 됐고, 젠장, 또 아무도 없군.”

우체부는 매번 겪는 일이지만 이번에도 또 화를 냈다. 그는 투덜거리며 관리실 옆 벽에 박힌 버튼을 눌렀다. 저쪽에서는 즉각 응답이 왔다.

누구세요?”

우체부 아저씨, 우체부 아저씨요!”

문 앞에 두십시오.”

아니, 그러다가 도둑이라도 맞으면 어떡합니까? 분실도 분실이지만 누구든 수령자가 사인을 해야 되는데요?”

직접 하시면 안 되겠습니까?”

아니, 우체부 아저씨가 직접 사인을 하는 일이 어디 있습니까? 그러지 말고 잠깐 내려 오셔서,”

우체부는 말이 길어졌다. 문지기는 상대방의 말을 끊지 않고 끝까지 경청했다. 결국 우체부가 제풀에 지쳐 꼬리를 내렸다. 우체부는 내키지 않는 듯 우편물을 관리실 앞에 내려놓으며 툴툴거렸다.

대체 뭐 하는 양반인지, .”

하지만 떡붕어 아저씨는 무사히 배달된 낚시 장비를 매만지느라 정신이 없었다. 수신인의 행복과 감사에 전 표정을 보자 우체부는 관리인으로 인한 짜증이 싹 녹는 기분이었다.

 

성을 마지막으로 오늘 그의 일과도 끝났다. 그는 곧장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몸집이 어린 계집아이만큼 작고 지능도 딱 그 수준인 아내가 해주는 밥을 배불리 먹고, 점점 아비 못지않게 덩치가 커지고 있는 아들을 바라보며 흐뭇한 웃음을 흘리고는 죽은 사람처럼 잠들었다.

 

*

 

소영이가 성에 들어온 지 일주일이 지났다. 이른 아침부터 떡붕어 아저씨는 소영이를 달랬다. 출장을 가야 된다는 것이었다. 소영이는 자기 혼자 집을 지켜야 된다는 사실에 울음을 터뜨렸다.

이제 넌 다 컸어. 충분히 혼자 집에 있을 수 있는 나이라고.”

이 말에 소영이는 의젓한 척 굴며 눈물을 닦았다.

아저씨, 또 배 타고 가?”

.”

그 다음엔 또 멀미나는 버스 타?”

아니, 기차.”

그거는 멀미 안 나?”

글쎄, 그건 모르겠다. 태어나서 차멀미 하는 사람은 너밖에 못 봤거든.”

아저씨, 나 기차 탈래. 나도 데려가줘.”

소영이의 얼굴엔 서운한 기색이 역력했다. 떡붕어 아저씨는 다음번엔 꼭 데려가겠다고 약속하고서 성을 나갔다. 소영이는 처음에는 훌쩍 거렸지만 금세 그의 존재를 잊었다.

 

소영이는 떡붕어 아저씨의 집이 좋았다. 낮이면 햇빛이 환하게 들고 밤이면 검푸른 하늘빛이 포실한 이불처럼 깔리는 아늑한 집이었다. 소영이의 방은 벽에 손을 댈 때마다 조금씩 커지더니 급기야는 운동장처럼 넓어졌다. 소영이는 방을 빙빙 돌며 뜀박질을 했다. 방구석에 놓여있던 줄넘기를 들고 놀기도 했다. 벽을 향해 공도 던졌다. 공이 벽에 부딪칠 때마다 벽은 또 조금씩 뒤로 물러났다. 그때마다 방은 세로로, 혹은 가로로 조금씩 더 넓어졌다. 소영이는 모서리를 향해 공을 힘껏 던졌다. 이번에는 그 쪽 모서리만 저 혼자서 뒤로 쑥 빠지면서 방이 사다리꼴 모양이 됐다. 정확히 맞은편 모서리를 향해 똑같은 힘을 써서 공을 던져봤다. 그러자 이번엔 그쪽으로 방이 확장됐다. 졸지에 방은 평행사변형이 돼버렸다. 소영이는 방을 키우고 넓히는 놀이에 흠뻑 빠졌다. 키득키득 웃음이 나왔다. 선반도, 옷장도, 창문도, 장판도 다 소영이를 따라 키득키득 웃어댔다.

 

다음날, 소영이는 옷장 문을 열었다. 옷 대신 텅 빈 넓은 공간이 나왔다. 소영이는 옷장 안으로 들어가 봤다. 안쪽 벽에 손을 대자마자 벽이 문으로 바뀌었다. 곧 소영이의 방과 똑같은 방이 나왔다. 그곳에는 아직 뒤집기조차 할 수 없는 갓난아이가 손발을 놀리며 누워 있었다. 그 아이에게 세상은 얼굴위로 보이는 천정이 전부였다. 소영이는 살그머니 다가가 아이를 내려다보았다. 자기를 10년 전으로 되돌려 놓은 것 같았다. 아직 채 자라지도 않은 아이의 눈썹 위에 보일 듯 말 듯 자그마하고 연한 점이 그려져 있었다. 왠지 그 점이 소영이를 무척 슬프게 만들었다. 소영이는 얼른 옷장 속으로 들어와 버렸다.

 

다시 옷장 문을 열자 톱밥과 흙냄새가 코를 찔렀다. 방 가득, 구더기와 지렁이가 꿈틀대고 있었다. 소영이는 얼른 옷장 문을 닫고서 왔던 곳으로 되돌아갔다. 하지만 갓난아이는 온데간데없고 파스텔 톤의 타일이 깔린 텅 빈 욕실이 나타났다. 욕실 벽 위쪽엔 조그만 창문이 뚫려 있었다. 햇빛과 바람을 맞는 곳이었다. 소영이는 의자 위로 올라가 창문 밖으로 손을 뻗었다. 팔꿈치 부분까지 창틀을 넘어버리자 갑자기 온 몸이 바깥으로 확 빨려나갔다. 겨드랑이가 가려오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날개가 돋아났다. 소영이는 두 팔을 쫙 뻗고 손을 구부려 날개 끝을 살짝 잡았다. 그렇게 손으로 날개를 움직이며 하늘을 날아다녔다. 고개를 높이 쳐들자 성의 꼭대기가 보였다. 그것은 날카로운 바늘 모양새로 하늘을 꿰뚫고 있었다. 소영이는 그곳으로 올라가기 위해 힘껏 손짓을, 날갯짓을 했다. 아무리 해도 몸이 그리로는 비상하지 않았다. 그래도 소영이는 안간힘을 쓰며 몸을 움직였다. 급기야 균형을 잃고 밑으로, 밑으로 끊임없이 추락했다. 추락의 최종 지점은 욕실의 타일 바닥이었다. 성탑에 뭐가 있는지 궁금해 죽을 지경이었지만 당장은 목이 너무 말랐다.

 

소영이는 냉장고 문을 열었다. 신선한 우유와 여러 종류의 과일 주스가 있었다. 반찬도 차곡차곡 정리돼 있었다. 야채박스에는 참외와 포도, 딸기가 가득 들어있었다. 이제 냉장고에선 어떤 놀라운 일이 있을까. 소영이는 기대에 부풀었다. 하지만 얼굴이 시려올 때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소영이는 냉장고 문을 닫았다. 놀랍게도, 이건 그냥 냉장고였을 뿐이다. 하지만 이 물건보다 더 신기한 건 없었다. 10년 평생 냉장고는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찬물을 벌컥벌컥 마신 뒤 소영이는 잠이 들었다. 선선한 바람 덕분에 꼬박 일주일을 잠 속에 빠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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