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일찍 눈을 뜬 떡붕어 아저씨와 소영이는 해산물 시장으로 갔다. 상인들과 손님들이 북적댔다. 막 잡아 올린 생선들이 신선한 비린내를 풍겼다. 곳곳에 물이 가득 담긴 대야가 보였다. 연체동물은 대야에 갇혀 있기 싫어 가끔씩 물을 거슬러 밖으로 기어 나왔다. 문어, 낚지, 오징어, 꼴뚜기, 주꾸미 등이 발에 채였다. 저쪽에선 해삼과 멍게가 쥐죽은 듯 잠자고 있었고 또 저쪽에선 대게들이 집게발을 꽁꽁 묶인 채 서로들 싸우고 있었다. 새우들은 수족관 안에서 유유자적하게 헤엄을 치며 놀았다. 난생 처음 보는 경관에 소영이는 쩍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구덩이 오막살이를 떠난 날부터 계속 만화경 속을 헤매는 기분이었다. 신기한 것 투성이였다.
마침내 떡붕어 아저씨는 소영이를 데리고 바닷가로 나왔다. 바다 바람을 맞으며 둘은 선착장을 향해 걸었다. 바람 한 점 없이 화창하고 아침녘의 신선한 기운이 유쾌했다. 바다가 곁에 있는 남쪽 지방에서나 볼 수 있는 그런 여름날이었다.
“아저씨 저것도 강이야?”
소영이가 오랜만에 입을 열었다. 떡붕어 아저씨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이 아이가 아예 말을 잃어버린 건 아닌가 줄곧 두려웠던 것이다.
“저건 바다야.”
“바다?”
“그게 뭐야?”
“저거.”
그것은 구덩이 오막살이 근처의 강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넓고 크고 푸른 물, 아니, 물의 땅이었다.
“우리는 저기를 건너갈 거야.”
“으악! 정말? 어떻게?”
“저걸 타고 건너는 거야.”
아저씨는 저 멀리 물 위에 둥둥 떠 있는 조그만 장난감 같은 것을 가리켰다.
“저건 또 뭐야?”
“배.”
“그게 뭐야?”
“저거.”
“치이, 아저씨 바보야. 말하는 거 잘 못해. 이제 아저씨한테는 아무것도 안 물어볼 거야.”
정말 그러기로 다짐을 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또 궁금한 것이 생겼다. 소영이는 입을 열었다. 지금까지 쌓아둔 얘기를 한꺼번에 다 풀어놓겠다는 듯.
“아저씨, 아저씨, 아까 거기 사람들 많은 데, 물고기도 정말 많은 데, 거기 말이야, 그거 그 사람들이 직접 다 잡은 거야? 아저씨처럼 낚시해서 잡는 거야, 엉?”
“아니, 그건 다 그물로 잡은 거야.”
“그물? 그게 뭐야?”
“저거.”
떡붕어 아저씨는 조그만 어선 위에 드리워져 있는 그물을 가리켰다. 그러곤 소영이를 안아 올렸다.
“우아, 세상이 높아졌다! 하늘도 가깝다!”
소영이는 하늘을 향해 손을 뻗으며 떡붕어 아저씨의 품안에서 까불어댔다. 그는 균형을 잡으려고 노력하며 여객선에 올랐다.
파도가 거의 일지 않아 운항하기엔 딱 좋은 날씨였다. 배는 금방 P항을 떠났다. 저 멀리로 철제다리와 해산물시장이 아스라이 보였다. 햇빛이 은근히 환하게 들어, 객실은 아늑하고 조용했다. 선창 밖으로 보이는, 너울처럼 일렁이는 쪽빛 바다의 움직임도 다정스러웠다. 떡붕어 아저씨는 자기에게 일어난 일에 대해 생각해 봤다. 더불어 앞으로 있을 일에 대해 상상해 봤다. 마땅히 그 어떤 것도 또렷하게 그려지지 않았다. 떡붕어 아저씨는 습관적으로 한 손을 들어 수염을 쓸었다. 잡초처럼 무성한 것이 그 속에서 벌레들이 우글거릴 것 같았다. 아저씨는 옆에서 곤히 잠이 든 소영이를 남겨두고 세면도구를 챙겨 화장실로 갔다.
소영이는 오랜 시간 잠에 푹 빠져 있었다. 눈을 떴을 때는 햇빛이 선실 안을 환히 비추고 있었다. 옆자리가 비어 있었다. 느닷없이 찬물 세례를 받은 양 온 몸이 서늘해졌다. 소영이는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떡붕어 아저씨의 짐이 보이자 그제야 안심이 됐다. 소영이는 조그만 선창에 코를 박고 바깥을 내다봤다. 시퍼런 물이 출렁거릴 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아무것도! 구덩이 오막살이도, 가짜 대궐도, 강가도, 아무것도! 소영이는 울컥했다. 갑자기 눈물이 줄줄 쏟아졌다. 떡붕어 아저씨가 사색이 되어 소영이 곁으로 달려왔다.
“으악!”
“왜? 무슨 일이야?”
“아저씨는… 누구야?”
소영이는 한참동안 들여다본 뒤에야 떡붕어 아저씨를 알아봤다.
“아, 아저씨였구나. 난 아저씨가 나 버리고 가버린 줄 알았어!”
소영이는 또 다시 울음을 쏟아냈다. 떡붕어 아저씨는 소영이를 다독이며 선실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갑판 위로 뜨거운 햇빛이 무자비하게 꽂혔다. 갑판이 물결의 흐름을 타며 조금씩 흔들거렸다. 짭짤한 바닷바람의 움직임이 몸으로 느껴졌다. 하얀 갈매기들이 떼 지어 창공과 바다를 갈랐다. 잔잔한 바다를 보며 떡붕어 아저씨는 생각에 잠겼다. 머릿속은 온통 낚시로 가득 차 있었다. 올 여름이 끝나기 전에 통통배를 탈 생각이었다. 갑자기 자기 허벅지에 몸을 바싹 붙이고 있는 아이가 눈에 들어왔다. 모든 것이 너무 신기해서 눈을 깜박이는 시간도 아깝다는 듯 눈에 힘을 주고 있었다. 떡붕어 아저씨는 잠깐 이 아이의 앞날에 대해 생각했다. 별로 떠오르는 것이 없어 또 다시 낚시 생각에 잠겼다. 이쪽은 성과가 많았다. 통통배를 타고 사량섬으로 들어가 사흘을 머무른다, 갯지렁이와 크릴새우를 준비한다, 우럭과 도다리가 많이 잡힐 거다 등등. 그의 알찬 명상을 소영이가 깨버렸다.
“아저씨, 지금까지 아침이 몇 번이나 왔어?”
“응?”
“그 동안 아침이 몇 번이나 왔냐고?”
떡붕어 아저씨가 대답을 못하고 뭉그적댔다.
“치이, 아저씨 바보야. 내가 말해줄까, 엉? 세상의 모든 아침이 한꺼번에 다 왔어. 아저씨, 나 목말라.”
“조금만 참아, 이제 다 왔어.”
“목말라!”
“자꾸 말하면 더 목마르니까 좀 참아.”
“나한테 이래라 저래라 하지 마! 우아, 저건 뭐지?”
배가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자 조그만 점 하나가 보였다. 점은 급속도로 커져, 어느새 청신한 초록빛 섬이 됐다. 초록빛 곳곳에 알록달록한 지붕들이 박혀 있었다. 그 지붕들 뒤로, 푸른 숲 한가운데 높게 솟은 성채가 나타났다. 배는 그리로 점점 더 가까이 다가갔다. 그때마다 소영이는 몸이 쑥쑥 늘어나는 걸 느꼈다. 그 속도가 너무 빨라, 뼈마디가 콕콕 쑤시고 살갗이 팽팽하게 땅겼다. 눈도 아려왔다. 머리카락도 쑥쑥 자라는 모양이었다. 고무줄로 묶어놓은 꽁지머리의 끄트머리가 어느새 등을 건드렸다.
“앞으로 저기서 살 거야.”
“아, 아저씨 나 죽는 거 아니었어?”
햇볕이 따가워 반쯤 감겨진 아이의 눈에는 침착하고 평온한 의혹이 깃들어 있었다.
“뭐?!”
“아, 아니었구나…. 나는 내가 죽는 거라고 생각했어.”
소영이는 떡붕어 아저씨의 손을 잡고서 섬에 첫발을 내디뎠다. 떡붕어 아저씨는 선착장의 매점에서 노란 보리차 한 잔을 사주었다. 소영이는 찬 보리차를 단숨에 벌컥벌컥 들이켜고 조막만한 손으로 입을 훔쳤다. 그리고 남은 보리차를 아저씨에게 내밀었다.
“아저씨도 마셔. 왜 돌멩이 밖에 없어? 배에서 볼 때랑 너무 다르잖아!”
떡붕어 아저씨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묵묵히 걷기만 했다. 자갈들이 발에 채였다. 소영이는 또 칭얼댔다. 떡붕어 아저씨는 소영이를 등에 업었다. 소영이는 또 환호성을 내질렀다.
“우아, 세상이 높아졌다! 하늘이 가깝다!”
다시 초록빛 세상이 펼쳐지고 그 사이로 짙은 초록색 벽돌로 지은 높은 성채가 보였다. 떡붕어 아저씨는 소영이를 업었다 안았다 걸렸다 하면서 며칠 밤낮을 쉼 없이 걸었다. 소영이는 떡붕어 아저씨의 등에서, 또 품에서 자다 깨다를 반복했다. 그때마다 새로운 아침이 시작됐다. 성채는 여전히 멀리 있었다. 그 때문에 여전히 웅장하고 위엄 있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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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가 끝났습니다. 다음 주부터는 2부가 이어집니다.
소박한 밥상, 찾아주시는 분들, 정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