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영이는 열흘이 넘도록 침침한 방안에서 혼자 잠들었다. 할머니가 툇마루에 앉아있어 주는 것과 구덩이 속에 묻혀 있는 것은 무척 달랐다. 소영이는 한밤중에 곧잘 깨어났고 어둠 속에서 엉엉 울었다. 똑같은 방인데 느낌이 너무 달라졌다. 신기한 노릇이었다. 어둠이 싫었기 때문에, 또 밝은 빛을 더 오래 보기 위해 소영이는 일찍 일어나려고 애썼다. 눈에는 핏대가 섰다. 얼굴 가득 희뿌옇게 피어있던 마른버짐은 이제 말라비틀어지기 시작했다. 밥알은 꺼칠꺼칠한 흙 알갱이 같았다. 뱃속은 늘 따끔거렸다. 며칠 째 화장실도 제대로 가지 못했다. 소영이는 성냥개비처럼 깡말라버렸다. 밤에도 낮에도 어떤 무섬증과 허함이 기승을 부렸다. 7년도 안 되는 인생에 처음 맛보는, 뭐라 딱히 꼬집어 말할 수 없는 기분 나쁜 느낌이었다. 오늘 주인이 남긴 말은 밤새도록 뾰족한 가시처럼 소영이의 머릿속을 쑤셔댔다. 소영이는 어서 아침이 되길 기다렸다.
구덩이 오막살이의 아침은 떡붕어 아저씨의 등장으로 시작됐다.
“아저씨! 왔구나!”
소영이는 반가워 어쩔 줄을 몰랐다. 뱃속과 목구멍에 차곡차곡 쌓여 있던 질문이 터져 나왔다.
“아저씨 집 변소엔 구더기 안 살아?”
“우리 집에선 구더기는 톱밥이나 신문지 속에만 살아.”
“아저씨 방에는 낮에 햇빛이 들어와?”
“눈이 부실 정도지.”
“밤에 전깃불 켜도 돼?”
“낮에도 켜도 돼.”
“그럼 나 아저씨 집에 갈래. 어디야?”
“좀 멀어.”
“강 너머야?”
“아니, 더 멀어.”
“아! 절벽 너머에 있구나?”
“아니, 그보다도 더 멀어. 가면 여기는 다시 못 올 지도 몰라.”
“왜?”
“왜냐고? 너무 머니까.”
“할머니 보고 싶으면 어떡해?”
“여기 있어도 다시는 못 본다니까.”
“왜? 왜 자꾸 거짓말해?”
“거짓말이 아니니까 더 문제다, 요 녀석아.”
아저씨는 소영이를 납득시키는 걸 포기하고 방을 둘러봤다. 챙길 짐이라곤 전혀 없었다. 서랍의 옷가지와 물건을 다 꺼내도 배낭 하나면 충분했다.
이들이 구덩이 오막살이를 나서기 직전에, 기적처럼 주인이 또 나타났다. 그는 떡붕어 아저씨에게 조그만 종잇장을 내밀었다. 며칠간의 방세와 물세, 전기세의 내력이 소상히 적힌 명세서였다. 인도주의적 관점에서 주인은 이 돈을 받지 않겠노라고 생각했지만 떡붕어 아저씨의 낚시 장비를 보고서 마음을 바꿨다. 그의 명민한 판단력은 전적으로 옳았다. 떡붕어 아저씨는 그 자리에서 주인에게 돈을 쥐어주었다. 주인은 3천 5백 70원을 정확히 거슬러 주었다. 떡붕어 아저씨가 됐다고 거부해도 소용없었다. 돈 계산에 정확을 기하고 또 그 내역을 장부에 기록하는 것이 주인의 인생의 가장 보람된 일이었기 때문이다.
구덩이 오막살이를 떠나며 소영이는 훌쩍거렸다. 저 멀리, 다슬기 할매의 가짜 대궐이 눈에 들어오자 또 훌쩍댔다. 마침 비닐하우스 가게에 있다가 밖으로 나온 할매의 모습도 보였다. 걸음을 뗄수록 할매는 점점 더 작아져 마침내는 조그맣고 새카만 다슬기로 변해버렸다. 소영이는 급기야 울음을 터뜨렸다. 그래도 걸음을 멈추지는 않았다. 꼭 쥔 떡붕어 아저씨의 손을 놓지도 않았다. 이제 자기에게 밥을 줄 사람은 이 사람 밖에 없었다.
*
한참을 걸어서야 소영이와 떡붕어 아저씨는 신작로 길에 도착했다. 길가의 가로수들은 먼지를 뒤집어써서 회색 옷을 걸친 깡마른 거인처럼 보였다. 둘은 거기서 한참을 기다렸다. 소영이는 다리가 아파 떡붕어 아저씨 옆에 쪼그리고 앉았다. 마침내 언덕 너머에서 뽀얀 먼지가 일면서 버스가 나타났다. 떡붕어 아저씨가 소영이를 안아 올렸다. 난생 처음 타보는 버스에 소영이는 온 몸이 울렁거렸다. 기름 냄새가 코를 찔러댔고 버스는 심하게 덜커덩거렸다. 열린 창문으로 불어들어 오는 산바람이 시원했다. 이제 구덩이 오막살이는커녕 그 근처의 공장 굴뚝도, 아파트 옥상도 보이지 않았다.
읍내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한낮이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정말 장날이었다. 사람들은 너나할 것 없이 땀을 뻘뻘 흘렸다. 장터에 깔린 물건들도 덥기는 마찬가지였다. 탐스럽게 익은 사과와 토마토가 쨍쨍 내리 쬐는 햇볕 아래서 바싹바싹 말라갔다. 오늘 새벽 밭에서, 또 산에서 캐온 푸성귀들은 축축 늘어져 갔다. 나무판자 위에 놓인 자반고등어에서는 짜디 짠 비린내가 진동했다. 수내 마을에서 내려온 한 농부는 파장 무렵, 그 자반고등어 한 손을 최대한 헐값에 사는 것이 꿈이었다. 그러려면 돼지고기가 팔려야 했다. 토막을 내놓은 그의 돼지고기 위에는 파리들이 새카맣게 붙어 있었다. 농부는 종이부채와 손을 수시로 써가며 파리를 쫓았다.
아들 녀석은 아비의 근심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난생 처음 구경하는 장터를 휘젓고 돌아다녔다. 발을 뗄 때마다 쓰레기와 돌멩이가 툭툭 걸려들었다. 그 어느 것도 이 새카만 시골 소년의 활약을 방해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갑자기 발밑에 뭔가 물컹하고 큼직한 것이 밟혔다. 소년은 얼른 발을 떼고 고개를 숙여 보았다. 생쥐 치고는 너무 크고 들쥐 치고는 좀 작은, 짙은 회색 쥐였다. 소년은 신이 나서 쥐꼬리를 손으로 잡았다. 그러곤 쥐꼬리를 빙빙 돌리며 시장 바닥을 누볐다. 어른들이 욕설을 퍼붓고 고함을 질렀지만 누구 하나 다가갈 생각도 못했다. 그때 소영이가 떡붕어 아저씨와 함께 그 곁을 지나갔다.
“야! 말라깽이! 성냥개비! 바보야!”
소년은 뭣이 그리 즐거운지 연신 희죽거리며 이렇게 외치더니, 소영이를 향해 죽은 쥐를 획 집어던졌다.
“으악!”
소영이는 잽싸게 몸을 피했다. 너무 놀라 대거리를 할 엄두도 못 냈다. 죽은 쥐는 땅바닥으로 떨어졌다. 그 주위로 파리와 날파리가 잔뜩 몰려들었다. 사람들이 그 쥐를 밟고 지나갔다.
시외버스터미널은 장터를 가로 질러, 조금 더 걸어간 곳에 있었다. 도로 주변에 노점상들이 일렬로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그들은 삶은 계란과 귤을 그물망에 넣어서 팔았다. 군밤도 보였다. 소영이는 침을 꼴깍 삼켰다. 배에서 꼬르륵 소리도 났다. 떡붕어 아저씨는 터미널 안에서 김밥과 우동을 사주었다. 배가 좀 꺼져갈 때 아저씨는 조그만 약병을 건넸다. 처음 맛보는 독한 약물에 소영이는 눈살을 찌푸렸다. 누르스름한 액은 목구멍을 넘어가기도 전에 곧장 게워버렸다. 떡붕어 아저씨는 혀를 끌끌 찼다.
먼 길이 시작됐다. 떡붕어 아저씨와 소영이를 태운 버스는 도중에 5분 여 정도 정차했다. 그런 일이 몇 번이나 반복되었다. 소영이는 거의 목숨이 끊어진 사람처럼 잠을 잤다. 잠에서 깨어났을 때는 먹은 것을 다 토했다. 그렇게 기진맥진하여 잠이 들었다가 깨어나면 버스는 고속도로를 쌩쌩 달리고 있었다. 잘 자란 푸른 벼들이 가득한 논이 소영이 곁을 재빨리 훑고 지나갔다. 창밖 구경도 잠시, 소영이는 또 한 차례 멀미를 하고 잠들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캄캄한 밤이었고 버스는 어둠 속을 질주하고 있었다. 속이 울렁거렸지만 이번에는 음식물 찌꺼기가 하나도 없이 싯누런 물만 나왔다. 헛구역질을 하는 사이 저도 모르게 잠이 쏟았다.
상쾌한 햇살이 막 쏟아질 때 버스는 종착역에 도착했다. 떡붕어 아저씨는 원래 오늘 저녁에 바로 배를 탈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건 좀 가혹한 일이었다. 하나밖에 없는 피붙이를 잃은데다가 난생 처음 동네 밖을 떠나 이 머나먼 길을 온 소녀에겐 말이다. 소영이는 작은 진흙 인형처럼 오그라들어버렸다. 사실 떡붕어 아저씨도 지쳐버렸다. 그는 선착장 근처 여관에서 방을 하나 빌려놓고서 우체국을 찾아가 낚시 장비를 소포로 부쳤다. 다시 방으로 돌아왔을 때 떡붕어 아저씨는 완전히 뻗어 버렸다. 어린아이를 데리고 여행을 한다는 것은 지옥이나 다름없었다. 어쩌자고 선뜻 이 아이를 데려 왔을까. 앞으로 이 아이를 어떻게 키울 것인가. 아니, 남자 혼자 계집애를 키우는 것만큼 엄청난 지옥이 어디 있을까. 이런 생각들은 모두 떡붕어 아저씨의 길게 자란 턱수염 속에 묻혀 버렸다. 산골에 머문 한 달간 면도날 한 번 대지 않고 내버려뒀더니 그야말로 괴기스러운 신선의 몰골이 됐다. 소영이는 잠꼬대를 하고 몸부림을 치며 그의 수염을 잡아당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