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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도 강가의 풍경은 변함이 없었다. 다슬기 할매는 허리를 직각으로 꺾은 채 탁한 물속에 코를 들이밀고 있었다. 간간히 외지 사람들이 보였다. 한 남자가 강물에 낚싯대를 드리워 놓고 가만히 서 있었다. 양복차림이어서 유난히 눈에 띠었다. 근처에 그의 승용차가 서 있었다. 무리를 지어온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은 모두 강물에 다리를 깊숙이 담근 채 일렬로 서 있었다. 오른손에는 다들 견지를 들고 있었다. 떡밥을 뿌렸기 때문에 물고기들은 모조리 그 주위로 몰려들었다. 물고기가 걸려들 때마다 그들은 일제히 손뼉을 치고 환호성을 질러댔다. 낚시를 끝낸 뒤에는 강가에 쳐놓은 천막 안으로 들어가 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소주잔도 돌았다. 얼마 안 가 강 주변이 뿌연 연기와 고기 냄새, 술 냄새로 가득 찼다. 양복을 입은 남자는 툴툴 대며 낚싯대를 접었다. 곧 그의 차는 강가를 빠져나갔다. 소영이는 저들이 오늘 다슬기 할매의 해장국을 팔아주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화가 났다.
골이 난 건 떡붕어 아저씨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얼굴은 이미 오래 전에 딱딱하게 굳어져 내면의 다채로운 감정을 담아낼 수는 없었으나, 속은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떡밥에 대해 그는 참을 수 없는 혐오감을 갖고 있었다. 이때만은 그도 사심 없는 생태주의자가 됐다. 강물과 물고기 건강을 해치는 데 떡밥만큼 고약한 건 없었다. 덧붙여 저놈의 고기와 소주만큼 자연을 망가뜨리는 것도 또 없었다. 아, 그런 게 하나 더 있다면 바로 저런 인간들이었다. 떡붕어 아저씨도 바로 그 ‘인간’에 속하면서도 괜히 혼자 분통을 터뜨렸다. 하지만 그가 성질이 난 가장 큰 이유는 물고기들이 괘씸해서였다. 아침부터 지금껏 피라미 새끼 하나 건져 올리지 못한 것이다. 직접 키운 미끼도 다 바닥났다. 떡붕어 아저씨는 마지막 남은 미끼통을 꺼냈다. 아까 다슬기 할매의 비닐하우스에서 공짜로 얻어온 것이었다. 그가 미끼통의 뚜껑을 열자마자 소영이는 야단스레 소리를 질렀다.
“으악, 징그러워!”
조그맣고 불투명한 플라스틱 상자 속에는 자잘한 톱밥이 가득했고 그 안에서 구더기들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더러 하얀 구더기도 있었지만 대부분이 새빨갛게 익은, 말하자면 이미 숙성한 구더기였다. 어떤 녀석은 몸에 벌써 날개가 돋고 있었고, 어떤 놈은 이미 완전해진 날개를 파닥거리며 파리로서의 첫 비상을 준비하고 있었다. 역시 공짜인 건 다 이유가 있었다. 그는 속으로 다슬기 할매를 원망했다. 그래도 제법 쓸 만한 두 놈을 골라냈다. 상자는 아예 엎어버렸다. 톱밥과 자잘한 구더기들이 주위로 흩어졌다. 아직은 도톰하고 뽀얀 구더기 두 놈은 떡붕어 아저씨의 제물이 됐다. 몸이 꺾이고 바늘에 끼워지는 내내, 녀석들은 바동거리며 괴상한 춤을 추었다. 그 동안 자갈 위에 널브러진 빨간 구더기들은 뜨거운 햇빛을 받으며 순식간에 어른이 됐다. 몸 옆에 점처럼 붙어 있는 날개를 파닥이는 순간, 녀석들은 파리가 되어 아저씨 주위를 맴돌았다.
“으악, 아저씨는 저 구더기가 징그럽지도 않아?”
소영이는 떡붕어 아저씨의 대답을 기다렸다. 떡붕어 아저씨는 이제야 소영이의 존재를 인지한 듯 잠깐 놀란 눈을 치켜 올렸다. 하지만 역시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한쪽 팔을 크게 돌리며 낚싯대를 강물로 던졌다. 그래도 한 번 입을 뗀 소영이는 물러서지 않았다.
“저 징그러운 걸 어떻게 손을 만져, 엉? 아저씨 왜 말 안 해? 아저씨 벙어리야?”
갑자기 떡붕어 아저씨가 소영이 쪽으로 손을 뻗었다. 축축하고 퀴퀴한 흙냄새가 코를 찔렀다. 소영이는 소스라치게 놀라 저도 모르게 몸을 움찔했다. 떡붕어 아저씨는 소영이의 호들갑엔 아랑곳하지 않고 자갈돌 위에 놓아둔 담뱃갑을 집어 들었다. 그의 얼굴은 제멋대로 자란 수염으로 뒤덮여 있었다. 텁수룩한 수염 사이, 거무스름한 구멍에서 담배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소영이는 콜록콜록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눈도 매워왔다. 저 쪽 천막에서는 아직도 고기, 술잔치가 한창이었다. 강가가 온통 매캐한 연기로 뒤덮였다. 오직 다슬기 할매만이 물이끼가 가득 낀 돌 위를 종횡무진 누비고 있었다. 소영이는 담배 연기를 피해 다슬기 할매 쪽으로 갔다. 그리고 다슬기 잡는다는 핑계를 대며 물장난을 하고 놀았다.
그날 밤 소영이는 할머니와 함께 툇마루에 앉아있었다.
“아참, 할머니, 어제 그 아저씨 말도 할 줄 모르나봐. 나는 그래도 말은 할 줄 알잖아, 그치? 그러니까 나는 바보 아니야, 그치, 할머니?”
할머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옅은 회색이 동공을 덮고 있어 할머니의 눈은 늘 흐릿했다. 간혹 빨간 핏줄이 자잘하게 번져있기도 했다.
“할머니, 우리 이제 그만 자자, 응?”
할머니는 이번에도 고개를 끄덕이며 힘겹게 손을 들어올렸다. 방에 들어가서 자라는 뜻이었다.
“할머니는 또 고양이 잠, 토끼 잠 자는 거야?”
소영이는 이렇게 말하고서 방 안으로 들어갔다. 할머니가 옆에 함께 눕지 않은 지 오래였지만, 쉽게 잠이 들었다. 왠지 할머니가 툇마루에서 자기를 지켜준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아침 일찍 눈을 뜨자마자 소영이는 툇마루로 나갔다. 툇마루도 방안 못지않게 후텁지근했다. 구덩이 오막살이에는 빛이 들지 않을 뿐만 아니라 바람도 좀처럼 머물질 않았다. 소영이는 수돗가로 나가 세수를 했다. 그 동안에도 할머니는 침침한 툇마루에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쌀집 아줌마가 쟁반에 아침을 담아왔다. 아욱 몇 장이 떠 있는 맑은 된장국과 흰 쌀밥이었다. 갓 담은 겉절이도 있었다. 소영이는 군침이 돌았다. 눈 깜짝할 새에 밥 반공기가 비워졌다. 그제야 할머니의 움푹 팬 두 눈에 미소 섞인 눈물이 고이는 걸 알아챘다. 소영이는 왠지 미안해졌다.
“또 내가 나가야 밥 먹을 거야?”
할머니는 빙긋이 웃으며 손을 들어올렸다. 나가 놀라는 뜻이었다. 소영이는 구덩이 오막살이를 나왔다.
*
날이 푹푹 쪘다. 강가에는 여기저기 천막이나 파라솔이 쳐져 있었다. 물놀이를 하는 사람도 많았다. 소영이는 떡붕어 아저씨를 찾기 위해 한참을 걸었다. 그는 물살아 가팔라 인적이 드문 곳에 석고상처럼 앉아 있었다. 낚싯대 위에 걸쳐진 그의 손에선 여전히 톱밥 썩는 냄새가 났다. 강 너머 어디로 던져 놓은 시선도 여전히 멍했다. 자갈 위에는 요사스러운 물건이 잔뜩 널브러져 있었다.
“아저씨도 나처럼 바보야? 여기는 물고기 없어.”
떡붕어 아저씨는 소영이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저기 더러운 물엔 많이 살아..”
“….”
“ 여기는 물이 너무 맑아서 아무것도 안 살아. 살아도 덜 떨어진 물고기만 살아.”
“….”
“떡밥 뿌려, 아저씨. 그럼 물고기들이 몰려와.”
갑자기 떡붕어 아저씨의 손이 퍼뜩 움직이는가 싶더니 눈에 광채가 일었다. 그는 팔을 휘두르며 챔질을 시작했다. 낚싯대 끄트머리에서 작은 생명체가 파닥거리고 있었다. 무더운 여름 날 오후의 햇빛을 받아, 은빛 비늘이 총천연색으로 반짝였다.
“우아! 물고기다!”
소영이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폴짝폴짝 뛰었다. 떡붕어 아저씨는 미끼를 문 물고기를 낚시 바늘에서 떼어 냈다. 또 떡붕어였다. 그는 투덜대며 물고기를 다시 강물에 풀어주었다. 소영이가 옆에서 왜 풀어 주냐고 난리법석을 떨었다.
“아저씨 바보야? 이러니까 그물이 텅텅 비어 있는 거야!”
떡붕어 아저씨는 신경질이 났다. 후텁지근한 뙤약볕에 온 몸이 흠뻑 젖어버렸다. 그럴 듯한 참붕어가 올아 와도 뭣 할 판에 계속 떡붕어만 걸려들었다. 옆에서 앵앵거리는 꼬맹이 소리가 짜증을 더 부채질했다. 벌써 며칠 째였다. 좀처럼 떨어질 것 같지 않은 계집애였다.
잠시 뒤 또 신호가 왔다. 이번에도 상황은 똑같았다.
“우아, 또 붕어다! 아저씨, 이 붕어 가지고 붕어빵 만들 거야?”
탱자만큼 크고 동글동글한 두 눈에서는 호기심이 데굴데굴 굴러 다녔다. 그는 소영이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막 잡은 떡붕어를 강물 속으로 획 집어던졌다.
“에이, 왜 또 놓아줘? 그럴 거면 뭐 하러 잡아? 왜 한마디도 한 해? 아저씨 벙어리야? 에잇, 벙어리! 꼬마 소영이는 바보고 아저씨는 벙어리다!”
소영이의 조잘거림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아저씨는 미끼통의 뚜껑을 열었다. 지렁이들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소영이의 얼굴이 완전히 일그러졌다. 아저씨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꿈틀대는 지렁이 한 마리를 엄지와 검지로 집어 들어 낚시 바늘에 꽂았다. 낚시 바늘이 몸속으로 들어오자 지렁이는 너무 고통스러워 허공을 사방팔방으로 휘저으며 몸부림을 쳤다. 그래도 그는 무뚝뚝한 표정을 지으며 지렁이 몸을 세 번을 꺾어, 꼭 넓적하고 긴 어묵에 꼬챙이를 끼듯, 굵은 바늘땀으로 천을 누비듯, 낚시 바늘에 꿰었다.
“으악!”
지금껏 씩씩대며, 무엇 때문인지 입가로 침까지 흘러가며 가슴 졸이며 지켜보던 소영이가 드디어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떡붕어 아저씨는 천연덕스럽게 낚싯대를 물 안으로 던져 넣었다.
“아저씨, 이제 보니 나쁜 사람이었구나! 지렁이가 불쌍하지도 않아?”
응수를 안 해주자 소영이는 그의 팔을 콕콕 찌르면서 대들기 시작했다.
“지렁이가 피를 흘리잖아? 물에 담그면 숨 막힐 거 아니야? 아저씨는 나쁜 사람이야. 남의 눈에 눈물 나게 하면 자기 눈에 피눈물 나. 아저씨 눈에 피눈물 날 거야.”
떡붕어 아저씨는 한 손에 낚싯대를 쥔 채, 다른 한손으로 능수능란하게 담배를 한 대 꺼내 물었다. 아저씨의 입에서 뿜어져 나온 첫 담배 연기가, 때마침 불어온 바람을 타고 소영이의 얼굴을 뒤덮었다.
“으악! 담배 연기 싫어!”
소영이의 새된 비명에 떡붕어 아저씨도 폭발해버렸다.
“거참, 고기도 안 잡히는데 조그만 게 되게 귀찮게 구네.”
그는 무척 아깝다는 듯 한 모금을 더 깊이 빨고는 담뱃불을 껐다.
“우아! 역시 아저씨 말 할 줄 아는구나. 그런데 아저씨가 잘 모르는 모양인데, 담배 피우면 바보 낳는대. 우리 엄마가 나 가졌을 때 담배를 많이 피워서 내가 바보가 된 거래.”
“야, 너 집에 안 가냐? 엄마 아빠가 걱정하시잖아.”
“엄마 아빠 없어.”
소영이의 말에 잠깐 뜸을 들인 뒤 그가 물었다.
“그럼 누구랑 살아?”
“할머니랑.”
“할머니 좋아?”
소영이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하지만 곧 시무룩한 표정을 지으며 덧붙였다.
“그런데 자주 울어. 내가 바보라서 그래. 내가 바보라서 엄마 아빠가 밥을 안 먹었대. 대신 술만 먹었대. 엄마는 담배만 더 많이 피웠대. 그래서 빨리 죽은 거래. 요새는 할머니도 이상해. 말 하는 법을 까먹었어. 걸음마도 못해. 그래도 밥은 먹어. 잠도 자, 고양이처럼, 토끼처럼 웅크리고 앉아서, 히.”
떡붕어 아저씨는 잠깐 생각에 잠겼다가 물었다.
“아저씨가 집까지 데려다줄까?”
소영이는 또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떡붕어 아저씨는 낚시 장비를 챙겼다. 그러곤 소영이의 손을 잡고 구덩이 오막살이로 향했다.
떡붕어 아저씨는 소영이를 따라 구덩이 오막살이로 들어섰다. 돌계단에 이르렀을 때 바로 옆 변소 문이 열리며 사내애가 하나 나왔다.
“저 오빠는 배추집 아들이야. 똥을 하루에도 두 번씩, 세 번씩 싸. 미워 죽겠어!”
소영이는 못 생긴 소년을 가리키며 인상을 썼다. 배추집 아들은 혀를 한 번 내밀곤 자기 집으로 뛰어갔다.
현관문은 오늘도 열려 있었다. 하지만 툇마루가 텅 비어 있었다.
“할머니!”
목소리가 불안했다. 소영이는 조심스레 툇마루 위로 올라갔다. 열린 방문 너머로 형상 하나가 보였다. 그것은 방구석에 발을 모은 채 앉아 있었다. 인간이 아니라 인간의 잔영처럼, 앉은 자세로 그대로 잿더미가 돼 버린 늙은 신부처럼. 하지만 소영이가 품안으로 안겨들자 몸을 움직였다. 손녀를 보듬어 안으려는 몸짓으로도 보였다. 삭정이처럼 마른, 검버섯 가득 한 거죽으로 뒤덮인 할머니의 손이 소영이의 등짝에 닿았다. 위아래로, 좌우로 움직이는 손길에는 힘은 없었지만 따사로운 온기가 뿜어져 나왔다.
“소영이 왔냐? 밥 먹으러 와!”
연탄집 아줌마가 마당에서 큰소리로 외쳤다.
“할머니는?”
“아까 죽 드셨어. 너나 얼른 와. 밥 식겠다.”
“응!”
소영이는 할머니의 품안에서 조심스럽게 빠져나왔다.
“아저씨 밥은 없어. 나는 바보라서 사람들이 밥을 주지만 아저씨는 바보가 아니잖아.”
그러곤 호주머니에서 사과를 꺼내 떡붕어 아저씨에게 건넸다.
“대신 이거 가져가. 선물이야.”
떡붕어 아저씨는 사과를 곧장 입으로 가져갔다. 절반 정도를 도려낸 사과였는데, 칼질을 서툴게 해서 썩은 과육 냄새가 났다. 떡붕어 아저씨의 표정이 순간 미묘하게 일그러졌다.
“사과집 아줌마가 준 거야. 썩은 사과도 팔면 돈이야. 그런데 일부러 나 먹으라고 줬어. 귀한 거니까 맛있게 먹어야 해.”
말을 마치자마자 소영이는 연탄집으로 달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