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 자먀틴(-찐)의 <우리>(We)를 읽어보려고(논문을 쓰려고) 했는데, 흐억, 벌써 겨울이 끝난 기분이다. 클리어런스^^; 세일차 연일 이월 겨울 상품을 주문하고 공부라곤 정말이지 조금씩, 야금야금 하고 있다. <우리>는 레퍼런스가 비교적 많은, 또한 쉽게 구할 수 있는 소설이다. 소설 자체도 어지간히 재미있고 분량도 만만하고, 아무래도 주제의 유의미성이 큰 이유인 것 같다. 위의 저 두 작품과 엮기도 좋다. 물론, 비교 연구를 하지는 않을 것인데, 그러기에는 저 두 작품이 크게 마음에 들지 않아서다. 특히 헉슬리 소설은 SF, 즉 사이언스 픽션의 함정에 빠진 대표적인 예가 아닐까 한다. 뭐냐면, 사이언스가 너무 강해서 픽션을 이겨버렸다. 아마 그건 헉슬리가 H. G. 웰스의 과학소설(유토피아 비전의)을 너무 염두에 둔 탓, 그다음, 그가 어려서부터 학문-과학에 대한 강박이 좀 강해서가 아닐까 싶다. 허버트 조지 웰스(웰즈)는 자먀틴도 읽고 많이 배운(-것으로 얘기되는, 심지어 에세이도 하나 쓴) 작가이다.
국내 자료 중 홍성욱이 쓴 <크로스 사이언스>에 저 두 작품이 나온다.(자먀찐 소설은 아무래도 지명도가 낮아서 빠진 것이 아주 당연해 보인다.) 해당 부분만 찾아보려고 했는데, 정보량도 많고 재미도 있어서, 또 구성도 좋아서(한 학기 강의 커리큘럼) 다 읽어버렸다. 찾아보니, 하, 역시 저런 유의 책은 하루 아침에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꽤나 내공이 많은, 기존에 저서가 많은 분. 내 주제와 관련해서는^^; 디스토피아를 얘기하기 전에 먼저 유토피아에 대한 얘기를 (비록 양은 적더라도) 한 것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또한 그 챕터의 맨 마지막 부분에, 우리가 디스토피아(안티-유토피아)의 위협에 빠지지 않으려면, 간단히 총체적으로 망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할 것인가? - 라는 물음에 대한 답은 위의 저 소설에서 예언하는 것들을 피하면, 조심하면 되는 것이다. 그밖에 여성 과학자 마리 퀴리 얘기, 이른바 프라이버시의 개념과 그 역사와 현재 그 정황 등에 대한 얘기도 인상적이었다.
<우리>의 최근 영화 버전
МЫ - официальный тизер - YouTube
독일 버전도 있는 모양.
Фильм-антиутопия "Мы" (1982 г.) - YouTube
<우리>를 다시 읽은지 오래 되었다. <1984>를 얘기하며 살짝 붙인 적은 있다. 이번에 여러 학자들의 선행연구 도움을 받아 다시 정독해보려고 한다. 다른 한편, 우리문학도 가히 SF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사회성과 환상성, 두 마리 토끼가 다 잡히는 것 같다. 적어도, 지난 학기 잠깐 훑어본 인상은 아주 좋았다. 김초엽, 정세랑. 박보영 신작이 나온 걸 읽지 못한 채 종강해서 아쉽다.
덧붙여 최근 시간을 통해 김초엽 작가 청각장애 3급임을 알게 되었다. 장애 종류 상관 없이 통상 1-3급이면 정도가 심한 것, 우리가 손쉽게 장애라고 할 만한 정도이다.(한 번은 센터관에서 시각장애 6급인 분이 그걸 큰 불행, 비극인 양 얘기하는데, 다들(모두 그보다 위중한 상태이다 보니) 어이가 없었던 기억이 있다. 심지어 그 자리에는 자폐 2급 아들을 둔, 거의 전맹인 분도 계셨다 -_-;;) 아무튼 이 사실을 알고 나니 지난 학기 읽고 또 강의 영상도 찍었던 소설이 새삼 다르게 느껴진다. 나도 1년이 넘도록 (새로 올라온) 뇌전증으로 고생 중인 아들을 어떻게 키워야 하나, 고민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