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해성사

 

 

 

 

 

 

1.

 

1995년초 겨울날, 아마 스무번째 생일날 

성당에 처음 가 보았다 저녁 미사 때였다

믿고자, 심지어 종교를 갖고자 했던 모양이다 

아 야속하신 하느님, 왜 저를 찾아주지 않으셨나요!

 

덕분에 정신과, 아니 교내 무료 상담센터에 다녔다

소설을 많이 썼다 대학문학상에 당선되었다

마음이 너무 아파서 면도날과 사귀게 되었다

피가 흐를 때마다 염증을 걱정하는 내가 한심했다

나의 친구가 수면제를 잔뜩 먹고 배 아프다고

전화한 것이 그해 여름이었던가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고 되뇌던 시절,

슬픔에게 안녕!하고 인사하던 시절이었다

 

모든 일에는 원인이 있다고

모든 죄악에는 원흉이 있다고

믿었던 시절이기도 하다  

 

 

2.

 

몇년 뒤 모스크바대학 기숙사 화재로 

한 선배가 죽었고 장례미사가 겨울날 저녁

그 성당에서 있었고 나의 친구가 뼛가루보다

음침한 우울을 뒤집어 쓴 채 한 구석에 박혀 있었다 

신림동 성당은 레닌 도서관처럼 높고 웅장했다

우리는 레닌 도서관 앞 도스토옙스키 동상처럼

구부정한 자세로 엉거주춤 존재했던 것 같다

우리 머리 위로 모스크바 참새가 날아와 앉았다

 

아 야속하신 하느님, 왜 그러셨어요!

그 엄동설한에 저의 발바닥은 하느님을 찾아갔는데요 

죽은 그 선배는 매주 다녔을 텐데요

그 친구도 그날은 살아서 갔는데요

 

과연 모든 일에 꼭 원인이 있어야 하는가

모든 죄악에 꼭 원흉이 있어야 하는가

내 운명으로 도피하는 수밖에 없다

 

 

2021년 1월 5일

 

 

*

 

혈육들은 전화 한 통 문자 하나 없는 반면 비혈육들은 모두 문자를(심지어 돈까지) 보내온 것이 너무 웃긴다. / 노란장미 다섯 송이, 빨간 카네이션 두 가지.(?) 이래저래 깎아서 3만원. 쓰인 대로라면 4만 9천원이어야 하는데. 비교적 젊은 여성 사장이었는데, 작은 히터 하나 켜 두고 파카까지 걸친 채 오돌오돌 떨며 앉아 있었다. 수경재배 중인 '빅토리아'는 아이가 학교에서 가져온 것이다. 저것도 생명이라고 일주일에 한 번씩 물을 갈아주어야 한다, 그런 수고를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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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05 17: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푸른괭이 2021-01-06 08:36   좋아요 0 | URL
‘산문시 장르‘도 아니고 뭣인지 저도 잘 모릅니다 -_-;; 시를 써 본적이 어릴 때 이후로는 없어서요, 그냥 쓰고 있습니다.

요즘은 스터디카페만 북적대나 봐요, 너무 웃긴 시국입니다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