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무지 이번 주말까지 논문을 완성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자 갑자기 시간이 무척 많아졌다. 참 아이러니하다. 지난 여름의 무리를^^; 반복하고 싶지 않기도 하고, 아이의 등교 수업 일수도 많아진 까닭도 있다. 그 와중에...

 

 

 

 

 

 

 

 

 

 

 

 

 

 

 

 

 

정작 직에 계실 때는 만난 적이 없는 듯한데, 최근 10여년 간 오다가다 한 번씩 마주치는 얼굴. 그저께도 커피숍에서 스치듯 뵈었고, 그 참에 그의 책을 찾아보았다. 물론 제일 신세를 진 건 푸코 번역이 아닌가 싶다.

 

 

 

 

 

 

 

 

 

 

 

 

 

 

 

 

내가 그를 알았을 때는 이미 (체감^^;) 중년-노년, '할아버지'였다. 저렇게 많은 책을 쓰고 번역한 사람도 늙는다, 죽는다, 라는 평범한 사실이 지금 막 칼로 벤 상처의 통증처럼 알싸하다. 오생근 선생의 모습에 프랑스 시들이, 그것들을 읽던 이십대의 내가 떠올라 오랜만에 찾아본다. 몇 편은 다시 읽으려 한다. 보들레르는 그 사이 역자가 김붕구에서 황현산으로 (지당하게도^^;) 바뀌었다. 김붕구의 <보들레에르>를 감사히 읽은 기억이 있다.

 

 

 

 

 

 

 

 

 

 

 

 

 

 

 

 

 

 

 

 

 

 

 

 

 

 

 

 

 

 

영미권 시보다, 또 독일어권 시보다 프랑스(어) 시를 좋아한 건 무척 당연했다, 당시로서는. 고등학교 때 제2외국어로 프랑스어를 배웠는데, 그건 처음부터 너무 좋은 외국어, 남의말이었다. 그래서 대학에 가서도 계속 공부를 하려고 애썼고, 외국어 공부를 겸하기에, 시를 읽고 외우는 것이 참 유익했다. 팝송 가사도 많이 쓰고 외웠던 것 같다. 좋은 시절이었다, 그립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못할 건 없다^^; 시간을 조금 내어 짬짬이 읽은, 읽고 있는 시집은 윤동주와 백석이 사랑한 그대 -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옛날 판본을 구했다. 앞서 가져온, 내가 어릴 때 읽은 상징주의, 모더니즘, 아방가르드, 초현실주의 등등의 시와는 정반대되는 결의 시다. 이 모든 것이 다 소중하다.

 

 

 

 

 

 

 

 

 

 

 

 

 

 

 

 

*

 

아이의 원격수업 링크 동영상 중 5세부터 75세까지 사람들에게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묻는 것이 있었다. 흥미로운 것이 대략 20대까지는 남녀 답변의 차이가 그렇게 크지 않다가 30대부터는 제법 커진다. 30대 이후 적잖은 여성이 '아이'와 관련된 답변을 한 반면, 남성은 결코 그렇지 않다. 여자들: 첫 아이 낳았을 때, 우리 아들 낳았을 때, 우리 딸 낳았을 때, 우리 아들 둘이 박사학위 받았을 때(심지어 더 자랑하고 싶어 안달하는 모습^^;), 손주들 볼 때 제일 행복해요  등등. 물론, 모두 그런 건 아니지만 '여자-암컷'에게 '새끼'가 의미하는 바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대목인 것 같다. 엄마는 아이의 시간표까지, 학습 내용까지 다 알고 있어도 아빠는 아이가 오늘 등교일인지 아닌지도 모른다는 것만 봐도 이미 -_-;;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