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미노 수(스)조우오 타베타이> 일본 애니-션 좋아한다. 이제는 좋아한다는 말도 하기 머쓱할 정도로 거의 못 보고 있지만, 어제 힘들게(즉 쪼개서 ㅠㅠ) 다 보았다. 일본인들은, 참, 이런 걸 어찌 이리도 잘 만드는지. "이런 걸" 어떤 걸? 우선, 정치나 사회나 이데올로기가 하나도 없는(것 처럼 보이는) 미시사를 그려내는 솜씨다. 하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일본 사회에서 지진만큼 무섭다는 '묻지마 살인'에, 17세 (아마) 췌장암 환자의 삶과 죽음, 그리고, 일본 애니-션의 트레이드마크인 달착지근한 로맨스까지. 단, <췌장...>은 이른바 베드신이 뭐랄까, 재미도 있고 감동도 있었으나, 너무 노골적으로, 이른바 야애니의 양화 버전처럼 보여, 그 부분이 조금 걸렸다. 아마 이 역시 여주가 이른바 시한부 인생이니까(요즘은 이런 표현 잘 안 쓰는 것 같다). 그녀의 다소 오바스러운, 격한 명랑함과 밝음, 까불까불함도 그런 맥락에서. 마지막, <어린 왕자> 재해석 부분도 너무 오글거리지만, 역시 만화인지라. 만화가 우리에게 필요하다!^^; 아줌마, 가슴 설렌다. 도키도키시타?^^;
다들 아는 그런 영화지만, 나는 '적자 생존'에 대해 생각했다. 적는 자가 산다! 이순신은 <난중일기>를 썼지만, 원균을 아무것도 안 썼기 때문에, 우리는 원균이 뭔 생각을 했는지 알 수 없다. (<알쓸신잡>) 원균 말도 들어보아야 하지만 당최 들을 수가 있어야지. 한데, <췌장>에서 사쿠라는 <공병문고>라는 제목의 일기, 유서를 남긴다. 여주가 죽은 다음에도 만화가 꽤 지속되는데, 그 내용은 모두 이 기록을 토대로 한다. 살아 남은 자(들)인 남주 하루키(이름!), 쿄쿄 등. <어린 왕자>는 남주 여주 모두 읽지 않은 책. 남주가 여주 집에서 빌려온, 그러나 돌려주지 못한 책. 어떤 의미에서 <췌장>은 책 읽기와 책 쓰기에 대한 영화로도 볼 수 있겠다. 우리의 기억은 부실하니까, 우리의 존재는 언제든 사라지니까 아쉬운 ㅠㅠ 마음에 뭔가를 쓰는(그리는/ 만드는) 건지도. 그 역시 사라진다는 것을 알기에, '만드는'(작/쓰꾸루) 우리의 행위는 어쩌면 오로지, 이 시간을 존재하기 위한 한 방식인지도.
남주 하루키(봄+나무)는 책만 읽는데, 그가 쿄쿄한데 잔소리^^; 들을 때 읽고 있던, 그만 바닥으로 떨어뜨리는 책은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 코코로, 다. 그 분위기에 아주 잘 맞는다. 작가 이름만으로도, 책 제목만으로도, 내용으로도. 언제 다시 읽을 기회가 있을지. 내가 맨처음 읽은 나쓰메 소세키 소설이기도 하다.
이제는 만화를, 만화영화를 얕잡아 보지는 않는 분위기인 것 같다. 적어도, 일본의 경우 잘 만든 만화가 어지간한 소설, 영화보다 낫다. 이 애니-션도 실사 영화 버전이 있지만, 나는 그래도 이 2D애니-션이 좋다. 포근하고 투명하고 영롱한 수채화 느낌. 작화에 많은 한국인이 투입된다던데, 한 편의 애니-션을 보면 역시 문제는 단순히 손재주만이 아님을 절감한다. 일본식 탐미주의, 퇴폐주의에 대해(다른 더 좋은 개념어가 없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한다. 내 췌장은 안녕하신지. 아프지 않을 때, 혹은 약발 잔존할 때 공부 열심히 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