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 준비하기가 힘들어서^^; 뺄까 하다가, 오히려 또 역으로, 이 참에 한 번 더 읽어보자 싶어서 강의를 진행했다. 현재 상황상, 읽고 정리하고 강의동영상을 찍는 것이다. 새 번역이 나온 <해피 데이스>를 들춰 보고 싶은 욕심 때문이기도 하다. 이 희곡, 역시나 너무 어려웠다 ㅠㅠ

 

<고도를 기다리며>. 응당 '고도'는 누구인가. 물론 신-구원의 다른 이름일 터. '신'은 또한 '개'이이기도 하다. GOD. DIEU.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 포조와 럭키, 1막과 2막의 소년(혹은 그의 형) 등 등장인물은 모두 (카프카의 소설과 비슷하게도) 정체성이 명확히 규정되지 않는다. '신'과 '개'가 언어유희 차원의 대상으로 바뀌는 마당에, 다른 것들이야 말해서 뭐하라. 두 명의 도둑 중 한 명은 구원 받았어, 나머지는 구원 못 받았어, 아니야, 둘 다 팽이야~ 등의 얘기도 그렇다. 중요하지 않다. 여기서 우리는 -

 

- 그렇다, 즐겁게 웃어야 한다.

이 모든 것은 한바탕 웃음, 희극이다. 딱 올라온 만큼만 드문드문 봤지만, 이런 연출의 분위기일 법하다. 과연 우리 모두가 기다리는 '너', 고도는 누구인지.

 

https://www.youtube.com/watch?v=MUXtzkLTABI

 

신분과 계급과 빈부와 남녀와 노소와, 과거와 현재와 미래와, 여기와 저기와 거기와, 너와 나와 그(그녀)와, 등등 모든 '다른' 것들 사이의 경계와 차이를 싹 날려버리는 놀라운 마법이 <고도...>에서 펼쳐진다. 한 학생의 말대로, 이건 너무 유쾌한 건 아닐지라도,,,, 어딘가 나를, 우리를 위로하는 요소를 갖고 있다. 베케트보다 앞서, 체호프의 마지막 드라마 <벚꽃 동산>에서도 그런 것을 본다. 전 재산을 다 날리고도, 아니, 그러고서야 오히려 더 평안을 찾은 것 같은 주인공의 모습!

 

- 거봐, 차라리 팔리고 나니 더 좋잖아? 그 전까지 우리가 얼마나 힘들었어?

여기서 "팔리고"는 "죽고"의 동의어로 읽어도 좋을까? ^^;

 

 

 

*

 

 

 

 

 

 

 

 

 

 

<고도...>에서 항상 놓친 것. '기다림'에 너무 주목한 나머지, 블-르(디디)와 에-공(고고)이 계속 어딘가로 가려고 한다는 사실을 잊었다. 마찬가지로, 포조와 럭키 역시 어디선가 오는 인물, 또한 어디론가 가는 인물이다. 소년(2)도 마찬가지. 그들은 어디로 가는가. 과연 갈 곳은 있는가. 그들의 신발은 왜 그리 낡았는가. 이런 물음으로 가득 찬 신기한, 신통방통한 텍스트!

 

- 나도 가고(가서) 그리고 기다린다.

 

 

 

 

내가 제일 먼저 떴다. 그 직후, 아이들이 들어와서 한창 떠들다가 자, 안녕~ 하면, 정말로 아이들이, 그 얼굴이 하나둘씩 팍팍 꺼진다. 아이들이 꺼져버린다. 50개의 얼굴이 뿅뽕, 사라지는 모습이 참 진풍경이다.

 

놀라운 건, 이 실시간 쌍방 화상 강의에 익숙해져서, 행여 대면으로 전환되면 얼마나 뻘쭘(!)할까 하는 것. 막상 해보니 이런 형식의 강의도 장점이 많다. 우선, 집에서 원하는 시간대에 강의를 찍어두니 편리하다. 책을 싸들고 가야 할 필요가 없고 예쁜 얼굴의^^; <편집자 K>처럼 그 자리에 앉아 책을 직접 소개할 수도 있다. 수시로 '변신', 녹화를 하는데, 옆에서 아이를 째려보는(!) 것도 한 재미다. 묘한 동시성의 체험이다. 이 재미가 큰 탓인지, 이번 달 카드값이 평소보다 절반으로 줄었다, 뭐냐?! ^^; 다른 한편, 동영상을 미리 올려두면 그걸로 시수를 채울 수가 있지 않나. 행여, 나나 아이가 아플 때 휴강하지 않고 강의를 진행하는 셈이 되기도 한다.

 

그러게, 호모 사피엔스는 이런 식으로 역병 이후의 시대를 살아왔나 보다. 존재의 양상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요컨대, 살아 있음이 중요하다. 하지만, '생사 역시 궁극에는 다 사라진다. 이게 너무 즐겁고 유쾌하다! 라고 (어느 학생처럼) 쓸 수 있으면 좋겠지만, 나는 조금은 슬프다, 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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