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시절 <철학> 교과서가 있었으나 주된 과목은 아니었다. 철학을 그나마 맛이라도 본 건 아마 도덕(윤리)이나 사회 교과서를 통해서가 아니었나 싶다. 달리 말해, 철학은 모든 학문, 적어도 인문학의 토대. 심지어, 자연과학조차 (어제도 김상욱 강의를 좀 들으며 생각했지만) 철학에서 나왔으니 그 위엄이 과연 대단하다 할 터이다. 하지만 철학은 무엇인가.

 

<도덕> 책에 '실존철학', '실존주의'를 설명하는 부분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아, 옛날이여! 기억나는 건 단어 몇 개. 키에르케고르, 실존철학의 창시자(선구자), '신앞에 선 단독자', '죽음에 이르는 병' 등. 이 정도만 외워도 적어도 이 주제 때문에 서울대 떨어질 일은 없었다. 돌이켜 보면, 그 무렵 우리는 얼마나 많은 공부를 했던가. 얼마나 많은 정보/지식의 더미 속에 살았던가. 당장 미분적분, 확률통계, 삼각함수 등만 떠올려도 머리가 빙빙 돈다.

 

대학에 들어와 한국문학 강의를 듣는데, '키-'의 이름이 출몰한다. 김윤식 선생님 강의에서이다. 그의 책을 쭉, 쭉 찾아본다. "이것이냐 저것이냐". 이런 책이 인용된다. 기억나는 대로 빼 보면. 결혼해라, 후회할 거다, 결혼하지 마라, 후회할 거다. 이런 식이다. 뭘해도 너는 다 후회할 거다, 라는 것. '이것'이든 '저것'이든 우리를 후회(회한)로부터 구원하지 못한다. 그 기저에 깔린 건?? 저 도저한 시간-권태이다. 차라리, '권태'보다는 '나태'가 극복하기 쉽다. '나태'는 게으름인바, 의지력을 발휘하여 일을 하면 된다. 그 즉시 극복된다. 그러나 '권태'는?  일을 하면서 오는 권태야말로 최악의 권태이다. 그러나 극악한 권태 없이는, 그것을 이겨내지 못하면 어떤 창조도 없다.

 

쓰다 보니 뒷부분은 지금 내가 읽은 책에서 얻은 지식이다. 어릴 때는 저기까지는 안/못가고 김윤식 선생이 긁어다 놓은 부분을 반복해서 읽고 언제 원서를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리고는 잊혔다. 그러다가...

 

 

 

 

 

 

 

 

 

 

 

 

 

 

<지루함의 철학>을 읽으며 '키-'를 다시 떠올린다. 그와 나의 명실상부한 첫(!) 인연은 1999년 여름에 맺어졌다. 그해 나는 박사과정에 다녔고 과에서 마련된 여름 연수차 페테르부르크에 있었다. 정말 황홀한(!) 여름이었다. 8주인가, 그랬는데, 러시아-페테르부르크란 딱 그만큼만 체험하면 정말 좋은, 황홀한 시공간이다.(다른 곳도 그런가?^^;) 그때 내가 챙겨간 책이 당시 민음사에서 '이데아총서'라는 이름으로 나오던 시리즈 속 <두려움과 떨림>이다. 러시아어 страх и трепет. 두 단어의 운을 맞추자면 '불안과 전율'. '공포와 전율'. 이런 조합도 생각해볼 수 있고, 우리말을 살리고 싶으면 '떨림'도 그대로 두어도 좋겠다. 오래 전에 읽었지만, 그 책에서 아브라함-이삭, 아가멤논-이피게니아 얘기를 다뤘다는 기억은 남아 있다. 즉, 신의 뜻에 따라 귀한 아들을 제물로 바쳐야 하는 아비, 마찬가지로 대의를 위해(여기도 신탁) 딸을 바쳐야 하는 장군-아비의 고뇌 등. 후자는 괴테의 희곡의 소재이기도 하다.(그랬던 듯.)

 

 

 

 

 

 

 

 

 

 

 

 

 

 

 

흐억, <두려움과 떨림>은 이미지도 뜨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당신을 잊고 있던 사이 이런 책들이 나와 있었다. 낼름 주문하며 지금 1권을 삼분의 이 정도까지 읽었다. 아, 잘 읽힌다! 생몰연도를 다시 본다. 1813-1855. 19세기도 한참 초반. 활동기를 따져도 초중반. 하지만 글만 던져주고 가늠하라면 줄잡아도 니체 이후, 그 언저리로 보지 않을까 싶다. 내가 과문한 탓?^^; 그럴 수도 있겠지만, 지금도 '키-'가 읽힌다는 사실 자체가 그의 현대성과 의미를 증명해주는 것이리라. 덧붙여, 혼자서 이거 다 번역하신 님은 누구심? 고 임춘갑, 이라고 소개되는 걸 보면 작고하신 듯도 한데, 당신이 누구든 정말 대단하시다!

 

 

 

 

 

 

 

 

 

 

 

 

 

 

덴마크가 인류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은 안데르센과 키-르일 것이다. 이삼십대 청년이 쓴 글을 세월이 흘러흘러, 아시아의 웬 아줌마가 읽고 감동하는 이런 정황이야말로 '사피엔스'의 본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인 듯하다. 대체 어떻게 썼기에! 기회가 되면 몇 부분 옮겨 놓겠지만,  어떤 장르를 쓰든 '필력'이 나날이 '쇠-'해지는 것을 느끼는 요즘, 무엇보다도 부러운 건, 열정!이다. 즉, 이 글은 쓰고 싶어서 쓴 글이다, 쓰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쓴 글이다, 몸과 마음에서 절로 터져 나와서 쓰인 글이다, 이런 느낌이 곳곳에서 느껴진다. 진정성이라고 해도 좋을 법하다. 

 

나이 들 수록 이런 욕구, 열정을 잃게 되어 있다. 세포 분열이 더디기 때문에, 기초 대사율이 떨어지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그 시간이 긴 사람이 대가로 남는 것 같다. 톨스토이가 대표적. 최근에 근처(?)에서는 이어령 같은 분. 자, 그럼, 모든 청춘은 다 이런 에너지를 갖고 있나? 절대 그렇지 않다! 그렇지 않기에 키-르의 글이 더 절절히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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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히 미남처럼 보이는데 (칸트나 아인슈타인처럼) 살짝 위트랄까, 유머랄까, 이런 것이 느껴지는 얼굴이라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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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의 코펜하겐, 이라고 한다. 굉장히, 모스크바 뒷골목스러운 느낌이라, 가져와 본다. 가끔씩 그립다, 모스크바 유학 시절. 나도 한 때는 자작나무의 나라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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