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밤에도 변함없이, 잠든 아이를 옆에 두고 스마트폰을 만지작대다가 '석경징'이라는 이름 석자를 떠올렸다. 왜 갑자기? 정말 너무 뜬금없다. 아무래도 최근에 나온 나보코프 소설 때문이 아닌가 싶다.

 

 

 

 

 

 

 

 

 

 

 

 

 

 

주지하다시피, 나보코프는 포스트모더니즘, 미국작가, 이런 맥락에서 영문학자들에 의해 처음 소개되었다. 그 중 <어둠 속의 웃음소리>는 그의 유명작도, 대표작도, 애정작도(?) 아니다. 90년대 초중반 <롤리타>로 쬐금(^^;;) 유명하던 그를, 오직 러시아 출신 작가이기에, 찾아 읽었다. '찾아'라는 말도 맞지 않는 것이 번역된 작품이 그리 많지는 않았다. 주로 세계문학 전집에 끼여 있고, <창백한 불꽃>인지 <세바스찬...>은 존 업다이크의 <달려라 토끼>와 같이 수록되어 있었던 것 같다. 아무튼 그 무렵 학교 근처 서점에서 오직 그의 소설이라는 이유로, 활자가 아주 작은 문고판 책을 한 권 샀다. 박영사였나. 서점은 <그날> 아니면 <광장>이었을 터.

 

 

 

 

 

 

 

 

 

 

 

 

 

 

 

<어둠 속의 웃음 소리> 역자가 석경징이었다. 이름이 너무 특이해서 쉽게 외워졌다. 나중에도 곱씹었지만, 번역이 참 좋았다. 물론 처음 읽을 때는 소설의 내용에 집중했는데, 중산층 멀쩡남의 몰락이 뭐랄까, 엄청 고소했던 것 같다. 마르고(?)던가, 작고 속된 여자도 왠지 마음에 들었다. 그녀가 사랑하는 화가(?) 남자의 귀여운 악랄함(?)에도 왠지 사람을 끄는 구석이 있었다. 거듭 말하건대, 이 소설은 나보코프가 그리 아낀 것도, 또 후대 연구자들에 의해 그리 사랑 받는 것도 아니지만, 내 입장에서는 <롤리타>보다도 더 나보코프다운 소설이다.

 

 

 

 

 

 

 

 

 

 

 

 

 

 

 

 

 

3학년때던가, 석경징 선생님의 <영산문강독>(??)인가 하는 수업을 들었다. 한학기 내내 조이스의 <더블린사람들>만, 그 중 두 어편만 읽었다. 그것도 곤혹이었다. 문제는... 중간고사 치는 날인가, 왠일지 대박, 속수무책, 늦잠을 자고 지각을 해버린 것이다. 나는 제법 성실한 학생이었는데, 이상하게 한 번씩 이런 미친 일이 벌어지곤 했고, 열에 아홉 수면 탓이었다. 앗, 후다닥 일어나 셔틀 버스 타고 학교 갔더니 이미 끝. 부리나케 연구실로 갔다. 다행이 연구실에 계셨고, 뿔테인지 쇠테인지 아무튼 동그란 안경을 낀 선생님은 예의 그 느긋한 웃음을 웃으시면서 여기 앉아 시험을 보라고 하셨다.

 

그 다음. 학점이 B+인가, B0인가 나왔다. 1학년 1학기의 '방황' 이후 공부를 열심히 하던 터라, 사실 2학년부터는 B를 받은 적이 없다. 심지어 A0, A-도 속상하고 아쉬운 마음이었고 21학점 들으면서 소위 올A+을 받은 학기도 있었다. 헉, 그런데 B라니. 게다가 그때는 아무 말씀 없이 시험도 여기서 보면 된다고 하셨으면서. 이런 서운한 마음이, 배신감이 물론 들었지만, 그렇게 저렇게 묻혔다.  영어와 영문학에 관심이 별로 없어 재수강은 하지 않았다.

 

세월이 흘러 내가 그 자리에 서 보니 이른바 '형평성'이라는 것이 교단에 선 자를 얼마나 옥죄는지 알겠다. 그리고 학점을 깎기에 가장 마음 편한 것이 바로 결석(혹은 심한 지각), 결시, 보고서 미제출 같은 것이다. 사실상 결시라고 봐도 될 상황인데, 그나마 답안을 써냈기에 저 정도라도 나온 것일 터. 그 학기에 조이스 소설인지 뭔지를 읽고 페이퍼를 쓰라 하셨던 것 같다. 그때 처음 조이스를 읽었다.

 

 

 

 

 

 

 

 

 

 

 

 

 

 

 

 

석경징 선생의 번역으로 저 이론서도 읽었으나, 저역서가 많은 것도 아니다. 당장 조이스를 좋아셨지만(아마 전공) 마땅히 번역을 제대로 내놓으신 것도 아니다. 대중적으로 인지도가 높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강의가 아주 빛나는 것도 아니었다. 또한 그럴 수 있는 성격의 강의도 아니었다. 한마디로, 우리의 스승들 90프로(심지어 99프로?)에 해당하는 분. 그래도 나로서는 (다시 학생으로 돌아간다면^^;) 저런 개인적 인연이 있어서 상위 몇 프로의 평가는 주고 싶은 분이다.  "우리가 이번 학기에 한 번도 안 쉬었나요? (예!) 그럼 다음 주 * 요일은 그냥, 아무 이유 없이 한 번 쉬죠!" 씨-익 웃음. 하필 그맘때 영화 <파리넬리>가 나왔는데, 아주 불편한 심사를 완곡하게 표현하시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꼰대려나?^^; 하지만 그때는 중년(노년?) 교수의 그런 발언에 날을 세우곤 하던 때가 아니었다. 그저 선생님은 저리 생각하시는구나, 끄덕끄덕. (단, 수업 준비 안 하는 선생님은 못 참아!!^^;;)

 

 

 

 

 

 

 

 

 

 

 

 

 

 

 

 

얘기가 길어졌다. 어제 검색해보니...

선생이 돌아가셨더라. 마지막 사진을 보니 내가 알았던 모습보다 체구가 좀 더 커보였다. 수필가 피천득의 애제자인 것, 영문과가 아니라 영교과 출신인 건 이번에 알았다. 출신이 왜 중요하냐고? 대학, 특히 국립대는 굉장히 보수적이다. 보수일 수록 출신을 따진다. (요즘에는 진보도 그런 것 같긴 하다^^;) 

 

선생의 죽음을 애도하는 것은 물론이고,

이미 박제된 나의 저 시절 또한 애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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