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문제에 예민한 편이라 이 부분이 눈에 확 들어온다.
“베주호프 백작의 재산이 막대하긴 했지만, 재산을 물려받고 연 수입 50만 루블을 받게 된 이후 피에르는 고인이 된 백작에게서 1만 루블을 받던 때보다 돈이 훨씬 부족하다고 느꼈다. 그는 수입과 지출 상황에 대해 대충 다음과 같이 어렴풋하게 짐작하고 있었다. 영지 전체에 대해서는 약 8만 루블이 지방 의회에 납부되었다. 모스크바 근교의 영지와 모스크바의 저택 유지비, 공작 영애들의 생활비로 약 3만 루블이 들었다. 현금으로 1만 5000루블, 그리고 자선 단체에도 그만큼이 나갔다. 백작 부인의 생활비로 15만 루블이 송금되었다. 빚에 대한 이자로 약 7만 루블이 나갔다. 이미 개시된 교회 건축에 지난 이 년 동안 약 1만 루블이 나갔다. 나머지 약 10만 루블은 그도 어떻게 쓰는지 모르게 없어졌다. 그래서 거의 매년 그는 빚을 지지 않을 수 없었다.”(민음사 판, 2권, 211)
피에르는 키릴 베주호프 백작의 사생아인 지라 상속 자격이 없었으나, 마지막에 극적으로 막대한 유산과 작위를 상속받는다.(황제에게 백작이 청원한다.) 졸지에 부유한 젊은 백작이 된다, 라고 나오는데 이런 추상성(!)은 소설에서 배격되어야 한다. 중요한 건 구체성, 디테일이다. 귀족의 후예답게, 돈 속에 묻혀 살았던 사람답게 톨-이는 이 부분을 거의 무슨 명세서, 영수증처럼 썼다. 지주귀족이 된 피에르에게는 영지 경영 역시 중요한 업무이다. 어쩌면 이게 제일 중요한 것이다. 재산이란 관리하지 않으면 당연히 줄어든다. 아니면 '기법으로서 줄어들기'(?) 같은 기부나 뭐 이런 것도 있겠지만, 그래서 말년의 톨-이 역시 이런 것을 꿈꾸긴 하지만, 그것을 위해서라도 일단은 제대로 된 관리와 증식이 필요하다.
1810년을 전후한 상황인데, 연수입이 50만루블이다. 세월이 흘러흘러, 1860년대가 배경인 <백치>. 로고진이 나스타시야 필.-나를 '사는 데' 요구되었던 돈이 스또-뜨이시치, 즉 100,000루블이다. 십만 루블. 1870년대가 배경인 <카라마조프>. 드미트리가 아비를 죽이네 마네 하면 언급하는 돈이 3천 루블이다. 184-50년대(?), 지주 귀족의 아들인 투르게네프가 엄마한테 1년 용돈으로 받은 돈은 6천 루블이다.
이 맥락에서 이 소설의 꽃인 나타샤 로스토바. 지참금 없는 가난한 백작 영애에서 모스크바 굴지의 대부호의 아내로, 키릴로바 백작 부인으로 거듭난다. 특별히 하는 것도 없이 모두에게 사랑 받고(by 소냐) 항상 행복한 여자. 어릴 때 읽었을 때는 이런 풍경이 참 싫었지만, 내가 백작 부인 나이가 되고 보니(즉 나타샤 엄마 나이^^;;) 이거야말로 삶의 진실임을 여실히 알겠다. 인간사, 결코 새옹지마가 아니다... 잔혹하지만 이게 현실이다. 소설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꼬마 소공작 니콜렌카(어릴 때의 톨-이를 연상시킨다)의 삶 역시, 여느 고아와는 너무 다를 터.
문득 떠오르는 얼마 전 뉴스. 어려서 엄마한테 버림 받고 아빠마저 죽고 고모 가정에서 자랐다가 결혼을 앞두고, 웬 조현병 운전자에 의해 얼토당토 하게 사망한 한 젊은 여성. 죽은 이후에도 스토리는 끝나지 않는다. 30년만에 돈 찾아 나타난 생모라니. 본질과 무관하게, 어떤 댓글대로, 그녀의 인생이 참...
그러게 더더욱 현재의 처지에, 바로 오늘에 만족할 필요가 있다.